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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의 인물, 사건, 장소, 유물, 문헌, 작품 등을 유형별, 시대별, 지역별로 검색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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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영숙
    유물, 인물
    조영숙
    성북구에 거주하는 전통연희 공연가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예능보유자이다. 발탈은 인간 배우와 발과 손을 이용하여 조종하는 인형 배우가 함께 등장하여 재담을 중심으로 연행하는 전통예술이다. 조영숙은 함경도 출신으로 판소리 명창인 조몽실의 딸로 태어났다. 1951년부터 임춘앵 여성국극단에서 배우 생활을 했으며, 임춘앵의 대역을 할 정도로 인정받은 여성국극인이었다. 1980년대 중반 이동안[1906-1995] 발탈 보유자를 만나 2000년 10월 18일에 전수교육조교, 2012년 2월 2일에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전수조교 시절 성북구청 옆에 전수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 고령 나이지만 왕성한 활동을 하며 전통을 지키고 있다.
  • 조택원
    인물
    조택원
    무용가이다. 1927년 이시이[石井漠]의 공연을 관람한 뒤 무용에 매료되어, 1928년 1월 초 일본으로 건너가 이시이문하에서 서양 모던댄스를 배웠다. 1932년 귀국 후 ‘조택원무용연구소’를 개설하여 제자를 양성하였고, 1933년 2월에 선보인 「승무의 인상」은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1943년 용산구에 있던 무용연구소를 돈암동으로 옮기고 활동을 계속하였다. 전통무용과 서양무용의 기법을 두루 조합한 신무용을 전파한 공을 인정받아 한국무용협회 공로상(1964), 금관 문화훈장(1974) 등을 받았다. 그러나 1941년 내선일체 주제의 「부여회상곡」 연출과 안무 및 평가 좌담회 참석, 1942년 국민총력조선연맹 주최 문화선전협의회 참석 및 발표 등의 활동으로 인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
  • 김진걸
    인물
    김진걸
    무용가이다. 황해도 군수인 백부의 집에서 자라다가 백부가 성북동으로 이주할 때 같이 서울로 왔다. 1943년 돈암동에 있던 조택원무용연구소에 들어가 무용을 배웠다. 1955년 동양극장에서의 첫 공연을 시작으로 총 11회의 개인발표회를 가졌다. 그는 대규모 무용극보다 감정 표현을 강조한 예술무용인 무용시(舞踊詩)형태의 작품을 주로 발표했는데, 대표작 「산조散調」(1957)는 가야금 선율에 맞춰 마음의 흐름을 정리한 춤이다.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1959년 김진걸 무용연구소를 개설하였고, 1992년까지 한성대 교수로도 재직하였다. 1989년 발행한 『김진걸산조춤 무보집』에 산조춤의 기본 형식과 동작, 호흡 등을 기록하여 자신의 산조무보를 총정리하였다. 1955년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돈암동 지역에 거주하였다.
  • 강선영
    인물, 유물
    강선영
    돈암동과 성북동에서 활동한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기능보유자이다. 태평무는 풍년과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방안춤의 하나로, 다른 민속무용에 비해 장단이 복잡하고 예술성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그는 전통음악과 춤을 집대성한 한성준을 사사한 후 ‘강선영무용연구소’를 개설하고, 「초혼」, 「수로부인」 등 창작무용을 발표하였다. 170여국에서 천 오백 회가 넘는 공연을 하며 전통춤을 알렸다. 태평무의 유일한 전승자인 강선영은 1960년대 돈암동에 자리를 잡고, 성북동으로 거처를 옮긴 뒤 전수소를 열어 제자들과 일반인들에게 전통춤을 가르쳤다. 170여개 나라에서 천 오백회가 넘는 공연을 하며 한국 전통춤의 세계화에 이바지한 그는 1988년 12월 1일 주요무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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