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성당
1955.10.18
서울미래유산
장소 종교시설
성북구 고려대로7길 120(동선동2가 1-2)에 위치한 종교시설이다. 돈암동 성당은 1955년 혜화동 본당으로부터 분가해 탄생했다. 설립 당시 돈암동 성당은 혜화동 본당으로부터 삼선동, 안암동, 보문동과 돈암동 일대를 관할구역으로 인계받았다. 예배당은 1950년대의 석조 성당을 대표하는 건물로, 6.25전쟁 이후 건축물의 견고성에 더욱 역점을 두어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화강암을 외벽에 붙였다. 건물의 디자인은 준고딕양식으로 석조건물에 성곽과 같은 높은 종탑을 세우고 아치형의 문이 안과 밖을 연결하게 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새로운 성당 건물은 2000년에 준공된 것이다. 2013년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에 등재되었다.
동선동
  • 돈암동천주교성당
  • 돈암동성당 성모상
  • 돈암동성당 건물 외부(1)
  • 돈암동성당 건물 외부(2)
  • 돈암동성당 내부(1)
  • 돈암동성당 내부(2)
  • 제1회 성북구 민간기록물 수집 공모전_돈암동 성당 행사 사진(3)
  • <그 남자네 집> 속 장소_돈암동성당(1)
  • <그 남자네 집> 속 장소_돈암동성당(2)
  • <그 남자네 집> 속 장소_돈암동성당(3)
  • 돈암성당 종탑
  • 돈암성당 종탑 종치는 모습
  • 돈암성당 종탑 종의 앞면
  • 제1회 성북구 민간기록물 수집 공모전_돈암동 성당 행사 사진(2)
  • 제1회 성북구 민간기록물 수집 공모전_돈암동 성당 행사 사진(1)
  • 제1회 성북구 민간기록물 수집 공모전_돈암동 성당 세례식 사진(2)
  • 제1회 성북구 민간기록물 수집 공모전_돈암동 성당 세례식 사진(1)
  • 돈암성당과 성북천 양옆의 한옥집들(1959)
  • 돈암성당 종탑 종의 뒷면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敦岩洞聖堂
  • 이명칭: 천주교 돈암동 교회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장소 종교시설

시기

  • 시대: 현대
  • 시기: 1955.10.18

주소

  • 주소: 02849 서울특별시 성북구 동선동2가 1-2 (고려대로7길 120)

문화재 지정

근거자료 원문

  • 박완서의 소설 속 배경으로 잘 알려진 돈암동성당은 1955년 혜화동 본당의 세 번째 자본당으로 세워졌다. 1950년대의 석조성당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전쟁 이후 예배당은 건축물의 견고성에 더욱 역점을 두어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화강암을 외벽에 붙였다. 건물의 디자인은 준고딕양식으로 석조건물에 성곽과 같은 높은 종탑을 세우고 아치형의 문이 안과 밖을 연결하게 하였다. 성당에는 김겸순 수녀가 그린 유리화 작품이 있고, 성당 입구에는 성모상이 세워져 있다. 성모상은 한국적 미의식과 민족정서를 조형언어로 표현한 조각가 최종태가 조각하였다. 한국 성聖미술의 토착화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는 법정스님과 인연으로 1999년 성북동 길상사에 관음보살 상을 만들기도 했다. 맑은 물의 안감내가 복개되었다 다시 개천으로 바뀌어 온 시간만큼 돈암동 성당의 모습도 조금씩 변화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새로운 성당 건물은 2000년에 준공된 것이며, 행정구역 변화로 지금은 동선동2가(1-2)에 속해 있다.
  • ○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성북구의 명소 성북구의 명소 97 사제와 교인들이 하나되는 ‘종교의 힘' - 돈암동성당은 우리나라 성당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숱한 위기와 난관에 굴복하지 않고 교세를 확장하면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종교의 힘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돈암동성당은 본당 창설 14주년인 1969년, 본당 관할권이 서울교구로 귀속되고 교구 방인 사제들이 부임하면서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 사제로 부임한 김정수 레오 신부는 반상회를 활성화하고 불우청소년들을 위한 야간중학교를 개설해 지역사회에 공헌했다. 또 신자들이 힘을 모아 2천만 원의 공사비를 투입해 회관을 세워 명실상부한 문화센터 역할을 했다. 이와 함께 1970년대 중반부터 본당의 힘을 밖으로 펼치기 시작하여 군종 후원사업을 시작했고, 경기도 파주의 금촌성당과 사제관을 돈암동 본당의 힘으로 건립하여 봉헌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본당 공동체의 발전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조동식 총회장은 1978년 교황청으로부터 성그레고리오 기사 훈장을 받았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2009, 성북 100경, 164-165쪽
  • 3) 본당의 확대와 부할 이 무렵 이 지역 일대는 서울시로 편입되어 신설된 성북구 지역이 되어 있었으며 주민 수가 증가하면서 천주교 신자들도 여기 저기에 산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또 하나의 본당 신설이 요구되고 있었는데, 그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 돈암동본당의 설립이었다. 돈암동 본당은 다른 경우와 달리 1955년 10월 18일 성당의 건립과 동시에 본당이 이루어지고, 아울러 신부가 파견된 특이한 경우였다. 아마도 그 이유는 성골롬바노전교회에서 성당을 건립하고, 그 초대 신부로 동 전교회 의 도슨 (Rev. Patrick Dawson, 孫) 신부를 임명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설립 당시 이 본당은 혜화동 본당으로부터 三仙洞·安岩洞·普門洞과 돈암동 일대를 관할구역으로 인계받았으므로 신자 수가 이미 900여명에 이르고 있었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611-612쪽
  • 1955년 지어진 돈암동성당 건물은 고딕양식의 1950년대의 교회 건축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성당은 견고한 성처럼 표현되었다. 성곽 형태의 종탑, 버팀벽, 뾰족 아치 등 외관은 고딕양식을 고수하고 있지만, 건물 내부는 예배공간인 신랑(身廊)과 측랑(側廊)의 구분이나 앱스(apse : 하나의 건물이나 방에 부속된 반원 또는 반원에 가까운 다각형 모양의 내부 공간)의 구성이 없는 강당 형태로 자유스럽게 구성되어 있다. 돈암동성당은 한국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이며 서울특별시 성북구 인촌로7길 120(동선동2가 1-2)번지에 위치하며, 1955년 10월 성당 건물이 건립되었다. 건립 후 10여 년 동안 성 콜룸반 외방선교회(1916년 아일랜드의 에드워드 갤빈 신부에 의해 창설된 로마 가톨릭 선교 단체)가 운영하였다. 돈암동성당은 성 콜룸반 외방선교회가 설립한 일련의 석조성당 중에서 외부 디테일의 완성도가 가장 높은 건물이다. 그리고 돈암동성당은 한국인 종합건축 설계사무소가 설계한 소수의 종교건축물 중 하나이다. 1969년 4월 12일 본당 관할권이 서울대교구로 귀속되었다. 1971년 9월 교육관이 신축되고 사제관이 개축되었으며, 1989년 2월 다윗유치원이 설립되었다. 2000년 10월 새 성당 건물이 준공되어 오늘에 이르며, 대지면적은 2,215㎡ 로, 성당 및 부속실(1,114㎡), 교육관( 618㎡), 다윗유치원(486㎡), 사제관(360㎡), 수녀원(165㎡)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울특별시 문화본부 문화정책과, 서울미래유산, 항목명: 돈암동 성당
  • ['돈암성당' 종지기 신덕순 님 인터뷰] 돈암성당은 성북구에서 지금까지 유일하게 사람이 종을 치고 있는 성당이다. 성북구의 ‘소리 문화’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골롬반’도 초기에는 하루 세 차례 울렸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아침은 생략되었고 마흔 두 번에서 스물 아홉 번으로 줄었다고 한다. 돈암성당의 종은 매번 사람이 직접 줄을 좌우로 흔들어 소리를 낸다. 종을 치는 곳에서는 종이 보이지 않으며 줄을 건 상태에서 당겨 꺾어 친다. 종을 치는 일이 몸에 배기까지는 적어도 한 달 반에서 두 달 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다. 처음 이 일을 하게 되면 밧줄을 쥔 손바닥에 물집과 굳은살이 생긴다.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하루도 빼지 않고 종을 치는 사람은 누구일까? 돈암성당의 타종은 주·야간 두 사람의 관리장이 담당한다. 이들 중 선임자인 야간 관리장 신덕순(세례명 알퐁소) 님을 만났다. 항상 얼굴에 웃음기가 떠나지 않는 그는 14년 전 자전거 사고로 다리가 좀 불편하지만 누구보다 부지런히 성당의 궂은일을 처리하는 유쾌한 사람이다. Q.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1959년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금곡리에서 태어났어요.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셨는데 구멍가게도 하셨지요. 아버님은 법원리에서 단위농협 영농부장까지 하셨고 이장 일도 보셨어요, 저는 삼 형제의 맏이였는데 비교적 유복하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집사람은 1986년도에 중매로 만났는데 마음에 들어 제가 많이 쫓아다녔어요. 남매를 두었습니다. 딸은 결혼을 했고 아들은 지금 미국 뉴욕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Q. 천주교 신앙은 어떻게 받아들이셨어요? A. 아들이 먼저 성당에 다녔습니다. 그 후 집사람이 성당에 나가게 되고. 제가 가족들에게 먼저 다녀보라고 했어요. 저는 좀 쉬었다 하려 했는데 집사람 친구가 하도 들들 볶는 바람에 약속을 하고 2005년에 교리 교육을 10개월 받고 2006년도에 영세를 하였습니다. 저는 영세 받기 전에도 성지순례를 많이 따라 다녔어요. 한번은 절두산성당에 성지순례 갔는데 성모상을 껴안는 코스가 있어요. 거기에서 특별한 체험을 했습니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이 껴안은 느낌이었어요. 엄청 놀랐지요. Q. 관리장 일을 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는지요? 성당의 종은 언제부터 쳤는지 들으신 바가 있으십니까? A. 7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전임이신 김창호 베드로라는 분이 3, 40년 정도 일을 하셨는데 그전부터 종을 쳤다 하니 아마 성당 초창기 부터로 여겨집니다. Q. 현재 서울에 있는 성당 중 몇 곳에서 어떤 방식으로 종을 치는지 알 수 있을까요? A. 제가 정확한 건 모르고요, 명동성당은 녹음하여 틀어주고 서울역 근처의 중림동성당에서 종을 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거기는 종을 바라보면서 치는 방식인데 돈암성당은 종은 볼 수가 없습니다. 밧줄 하나 묶어 놓고 밧줄을 쇠 파이프 속에 집어 넣어가지고 당기면서 순간적으로 멈추게 해서 쳐요. 돈암성당만의 독특한 방식이지요. 그래서 배우기가 쉽진 않습니다. 힘이 많이 들어가고 어깨도 좀 아프고 손가락도 아파요. 밧줄 자체가 딱딱하다 보니까요. 처음에는 요령이 없으니까 줄을 잡고 있으면 사람이 딸려가기도 합니다. 제가 듣기로는 아현동성당도 쳤었는데 요즘은 안친다고 하더라고요. Q. 종소리에 얽힌 사연이나 에피소드 같은 것이 있으시면 소개해 주셔요. A. 제가 “땅” 종을 치면요, 여기 가까운 경찰서 직원들이 시계 볼 것도 없이 퇴근 시간이라고 사무실을 나선다고 얘기하는 걸 들었습니다. 그리고 종소리가 어떤 때 들렸다 안 들렸다 하면 성당 사무실로 “사람 바꿨어요?” 하고 전화가 온답니다. 종을 치는 것도 자기만의 방식이 있기 때문에 치는 사람에 따라 소리가 달라집니다. Q. 그동안 종을 치시면서 맛보았던 보람은 어떤 것이고 시간을 놓치거나 실수하신 적은 없으셨는지요? 혹 몸이 불편하셔서 못 치신 적은요? A. 아, 3,4년 전에 제가 통풍이 좀 있어서 1주일 정도 다른 분이 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종소리가 다르지? 어디 아프신가?” 하고 궁금해 했어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건강에 신경 써서 그런지 몰라도 종을 치며 몸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5분 전에 휴대폰 알람을 맞춰 놓습니다. Q. 어떤 마음으로 종을 치셔요? A. 일단 종치기 전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성호를 긋고 “주님 오늘도 당신 앞에 나가서 종을 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하고 기도를 드립니다. 또 사람이 살다 보면 여러 일이 생기는데 그럴 때면 종을 치며 “주님, 당신만이 나를 도와줄 수 있고 당신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고 기도하지요. 주님께서 열심히 살라는 격려인지 일이 생길 때마다 풀어 주셔요. 종소리에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신앙체험을 하고 있지요. 사람 마음이 간사합니다. 기분 좋을 때는 신명 나게 치고 성질이 나면 더 세게 때려버리고 그런 게 있습니다. Q. 비단 신자가 아니라도 종소리를 듣는 사람의 마음에 어떤 울림이 있으면 좋으시겠어요? A. 지나가는 분들이 종소리가 독특하고 상당히 듣기가 좋다고 가끔 그런 말씀을 하셔요. 그럴 때는 저도 마음이 좋고 종소리를 듣는 그분들의 마음에 위안이 생기는 것 같아 흐뭇합니다. Q. 성당 종소리는 언제까지 어어질까요? A. 그건 제가 확신을 못하겠어요. 종은 마구 몰아쳐서 칠 수 있는 게 아니고 치는 방법을 누군가가 가르쳐주고 배워야 하는데 세월이 지나면 좀 어려워지지 않을까 우려가 있지요. 그때 가 봐야 알겠지만 세대가 바뀌고 시대가 바뀌면 못 칠 수도 있고 좀 더 수월한 녹음방식으로 바뀔 수도 있겠지요. Q. 돈암성당 종지기라는 호칭이 혹 불편하시지는 않으십니까? A. 전혀요. 충분히 보람을 느끼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주보성인인 알퐁소 성인도 종지기였답니다. 운명이라고 할까요 Q. 이 밖에도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지요? A. 제가 있는 한은 종을 계속 칠 거니까 많은 분들이 종소리를 듣고 기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민기록단 활동보고서(2023. 10. 04. 돈암동성당의 종소리와 종지기) / 주민기록단 임진희 작성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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