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미군부대에서 일하던 때의 경험과 피폐해진 공간 속에서 겪은 삶은 이 후박완서의 글 곳곳에서 드러난다.
한국전쟁 전 좌익운동에 투신했던 오빠 때문에 현저동을 떠나 돈암동 으로이사하고, 돈암동에서도 집을 세 번이나 옮겨야했다. 그래도 돈암동은 행복한 기억이 가득한 곳이었다. 어머니는 바람대로 딸을 가장 좋다는 서울대학에 보낸 기쁨과 뿌듯함을, 오빠는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행복과 안정감을, 박완서는 여대생이 되어 교정을 거닐고, 문학소녀의 꿈을 펼치는 첫발을 내딛는 설렘을 간직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전쟁 후 다시 돌아온 돈암동은 이전과 다른 삶이 기다리는 곳이었다. 성북경찰서에서 널찍한 양회다리를 건너 신안탕 뒤로 집들이 늘어선 골목 안에 이웃이라고는 한 집도 없었다. 텅텅 빈 집들만 있는 그 적막함이 전쟁을 떠올리게 하다. 남과 북, 누구를 위한 대립인지도 모른 채 서로를 죽인 전쟁 중에 오빠가 총상을 입고 세상을 뜨고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