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도심과 가깝고 교통이 편리했으며, 주변에 교육기관이 많은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성북구는 수많은 독립지사들과 연을 맺었습니다. 한용운이 지조를 지키며 말년을 보낸 곳이 성북동 심우장이고, 이육사가 대표작 「청포도」와 「절정」을 발표한 곳이 종암동 62번지입니다. 나중소, 김규식, 최용덕, 김기진, 손진태 등 성북구와 인연이 있는 인물들의 독립운동은 의병활동부터 의열 활동, 3.1운동, 무장투쟁, 임시정부 활동 등 거의 모든 유형의 독립운동을 포괄합니다. 해방 이후에도 성북구는 독립지사들의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김의한, 정정화 부부와 삼균주의의 제창자 조소앙이 자리 잡은 곳이 돈암동이고, 평생을 독립운동에 매진한 유우석과 조화벽 부부, 이회영의 아내, 그의 아들로 독립운동을 했던 이은숙과 이규창이 마지막을 보낸 곳이 정릉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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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8 독립선언
    사건
    2.8 독립선언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조선유학생들이 주도한 독립선언 운동이다. 이때 일본 유학생들의 활동과 조직을 주도했던 사람 가운데 한명이 1950년 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성북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조소앙이었다. 그는 1904년부터 1912년까지 도쿄에서 유학하면서 재일본 유학생들의 조직을 만드는데 앞장서는 한편, 일제의 침략에 반대하는 운동을 주도했다. 또한, 1919년 2월 1일 만주 지린[吉林]에서 독립운동가 39인이 발표한 「대한독립선언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선언문이었는데, 이 선언서는 조소앙이 기초하였으며, 2.8독립선언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 3.1 운동
    사건
    3.1 운동
    1919년 3월 1일부터 시작된 전국적인 독립만세 운동이다. 성북구에서도 안암천 주변과 돈암동 등지에서 활발히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23일 밤 10시경 안감천(성북천 안암동 구간)에서 피한봉 등 500명이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했고, 3월 26일에는 안감천에서 200명의 군중이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 3월 27일에는 안감천 부근에서 500명이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돈암리(돈암동)에서는 3월 23일 돈암리시장에서 100명이 시위를 전개했고, 3월 24일 성북리(성북동)에서 60명이 시위를 전개했다. 3월 27에는 돈암리의 산(개운산으로 추정) 위에서 50명이 횃불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밖에도 성북구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종로나 미아동 일대로 나가 만세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 6.10 만세운동
    사건
    6.10 만세운동
    1926년 6월 10일에 일어난 학생 중심의 항일 만세운동이다. 성북구 출신의 독립운동가들도 참여했다. 순종의 장례식에 맞추어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대규모 시위를 계획했지만, 일제에 의해 사전에 발각되어 지도부가 체포되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산발적이지만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일제에 의해 약 5,000명의 시위대가 연행되었다. 이때 체포된 중앙고등보통학교 학생 권유근은 돈암동에 거주하였는데, 1929년에도 광주학생항일운동의 동조시위를 계획하다 다시 투옥되었다. 역시 이때 체포되었던 장익민도 돈암동에 거주하였었는데, 1928년 신의주고등보통학교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징역 3년의 선고를 받았다.
  • 대한독립선언
    사건
    대한독립선언
    1919년 2월 1일에 만주 지린[吉林]에서 독립운동가 39인이 「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한 사건이다. 이 독립선언은 일본 도쿄에서 발표한 2.8독립선언이나 서울 종로에서 발표한 3.1독립선언에 앞선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선언이다. 성북구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인 조소앙이 선언서를 집필하였는데, 선언서에는 일본과의 병합은 무효이며 육탄혈전으로라도 독립을 쟁취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선언서에 함께 서명한 39인 중에는 조소앙을 포함해 김동삼 등 성북구와 관련된 독립운동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 강영옥
    인물
    강영옥
    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1944년 10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국가총동원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45년 6월 5일 출옥하였다. 거주지는 경기도 경성부 돈암 124-2이다.
  • 강영준
    인물
    강영준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강영준은 경성인문중등학원에 다니던 중 지인에게 보낸 편지로 인해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시국에 관하여 인심을 어지럽히는 사항을 유포'하였다는 것이 이유였다. 조선임시보안령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그는 경성부 동대문구 돈암정 499-11번지(삼선교로16길 13)에 거주하고 있었다. 2017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 강주환
    인물
    강주환
    성북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치안유지법, 국가총동원법 위반으로 1942년 7월 1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45년 6월 9일 출옥하였다. 주소는 경성부 성북 177-24이다.
  • 강천룡
    인물
    강천룡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944년 7월 경성부 종로구 명륜정4정목 70번지 5호의 식료품 공장에서 지인에게 종종 시국과 내각에 대한 사항, 재미 한인들의 조선독립운동에 대한 사항 등을 이야기하였는데, 이로 인해 1944년 11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육군형법, 해군형법, 조선임시보안령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당시 강천룡은 경성부 동대문구 돈암정 288-41(현 동소문로11길 13)에 거주하고 있었다. 201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 국순만
    인물
    국순만
    성북구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1930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서대문서에 수감되었다. 주소는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 183-10(현 성북구 성북로8길 12-6)이다.
  • 권유근
    인물
    권유근
    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1926년 중앙고보 재학 중에 6.10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체포되었다. 1929년에 일어난 광주학생항일운동의 동조시위를 벌이려 했다가 다시 체포되어 2년간 투옥하였다. 체포당시 주소지는 경성부 돈암정 7-123이다.
  • 김광섭
    인물
    김광섭
    시인, 언론인, 번역가이다. 일본에서 유학 후 교사 생활과 평론 활동을 하였다. 1933년부터 모교인 중동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면서 1940년까지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41년 2월 이로 인해 경찰에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1961년 성북동 168-34(현 성북로10길 30)에 집을 마련했지만, 뇌출혈로 쓰러져 오랜 기간 병석에 있었고 그동안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는 성북동 집에 대한 애착을 잃고 동소문동을 거쳐 미아동으로 이사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병마와 싸우면서 관념적인 시에서 구체적인 체험을 시로 형상화하는 변화를 보인다. 그의 대표작인 「성북동 비둘기」를 비롯한 「겨울산」, 「산」 등은 성북동 집에서 구상하여 미아동에서 완성한 것이다.
  • 김교신
    인물
    김교신
    정릉동에서 거주한 종교인, 독립운동가, 교육자이다. 일본 유학 당시 무교회운동을 전개하던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영향을 받아 송두용, 유석동, 양인성, 정상훈, 함석헌 등과 함께 조선성서연구회를 조직하였다. 1927년 귀국 후 이들과 함께 『성서조선』을 창간하였고, 1930년 5월부터는 주필 겸 발행인으로 단독 간행하였다. 1936년 정릉으로 이사한 그는 『성서조선』의 간행을 이어나가며 무교회운동을 전개하였다. 1942년 『성서조선』의 머리말인 「조와」에 민족 해방을 염원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1년간 옥고를 치렀고 『성서조선』은 폐간되었다. 이후 1944년 7월 흥남질소비료공장에 입사하여 일하던 중이던 1945년 4월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2010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 김규식
    인물
    김규식
    돈암동의 독립운동가이다. 돈암동에 거주하던 김규식은 1907년 군대해산 후 연천 등지에서 허위 등과 함께 의병투쟁을 하다가 체포되어 유형 15년을 받았다. 이후 만주로 망명, 김좌진 등 독립운동가들과 북로군정서를 조직했다. 1920년 청산리 전투에 제2연대 제1대대장으로 참가해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31년 반대세력의 습격으로 피살되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김대봉
    인물
    김대봉
    돈암동 관련 시인, 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38년 창간된 『맥』의 창간동인으로 박남수·김상옥·김용호·윤곤강·임화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38년에 민족의식이 농후한 시집 『무심』을 발간하려다가 출판금지를 당하였다. 그는 의학의 대중화를 위한 『대중의학』이라는 잡지를 주재하기도 하였다. 1943년 3월 환자로부터 발진티푸스가 전염되어 작고하였다. 주소는 경성부 돈암정 455-13이다.
  • 김동삼
    인물
    김동삼
    성북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910년대 초반부터 간도 지역에 독립운동기지를 세우는데 단단한 기반을 마련한 주역이었다. 1931년 하얼빈에서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7년 순국한다. 이때 김동삼의 시신을 수습해줄 사람이 없었는데 한용운이 그의 시신을 수습하여 심우장에서 장례를 치러주었다. 이 일화는 뮤지컬 <심우>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김동익
    인물
    김동익
    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919년 3월 말 서대문 1정목 부근에서 10여명과 독립만세시위를 벌였다가 체포되어 징역 8월이 선고되었고, 고등법원에서 상고기각으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거주지는 경성부 동대문구 돈암동 산 49번지이다.
  • 김복진
    인물
    김복진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자 우리나라 근대조각의 개척자이다. 1920년 도쿄미술학교에 유학하여 조각을 전공하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서구식 조소 기법을 도입하였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과 ML당에 가담했다가 투옥되었는데, 신건설사 사건으로 검거될 당시 동생인 평론가 김기진과 함께 성북리 175번지(현 성북로8가길 18-9)에 거주하고 있었다. 「백화」, 「소년」, 「다산선생상」 등의 작품이 있으나, 6.25전쟁 당시 모두 불타 없어졌다. 다만, 금산사 미륵전의 「미륵대불」과 법주사 팔상전의 「미륵대불」이 현존한다.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김상준
    인물
    김상준
    안암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김상준은 경성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당시 한낙규의 감화를 받았고,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경제학 대강 등의 좌익서적을 탐독하여 공산주의에 공명하여 조선독립과 공산화를 희망하게 된다. 1941년 이종갑으로부터 사회과학에서 공산주의 이론과 실천, 학생운동의 중요성에 대해 교육 받았으며, 보성전문학교 내에서 동급생 등과 사회과학문제, 경제학 등을 연구하였다. 1943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1944년 9월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 받았다.
  • 김성룡
    인물
    김성룡
    성북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1943년 경성전기학교 2학년 생이었던 그는 “2천4백만명의 반도민이여 맹진하자. 반도청년이여 각성하여 혁명의 앞에 서자”라는 불경낙서 용의자로 검거되었다. 주소는 경성부 성북정 176-4번지이다.
  • 김수룡
    인물
    김수룡
    성북동(현 성북로8가길 18-1)에서 거주한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919년 중앙학교 재학 중에 현상윤의 권고로 독립선언서를 배부할 책임을 맡아 파고다에서 단성사까지의 연도의 일반인 및 상인에게 선언서를 배포하였다. 1919년 3월 5일에는 태극기를 제작하여 제2차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 김순원
    인물
    김순원
    안암동 관련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부친과 형의 영향으로 숭실고등보통학교 재학 당시부터 민족주의 사상을 가지게 되었고, 보성전문학교 2학년 손석태의 영향으로 신사상에 찬성하여 신사회 건설을 위한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다시 1940년부터 조선독립을 위한 조선공산당 경성콤그룹 재건활동 및 조직 확대, 신사상의 이론학습, 동지획득 등을 위한 활동을 하였다. 1941년에 치안유지법으로 기소되어 재판 도중 옥사하였다고 알려졌으나 사망사실이 확인되지는 않는다.
  • 김시현
    인물
    김시현
    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경상북도 안동 출신인 김시현은 3.1운동을 기점으로 독립운동에 나서 만주로 망명, 의열단에 가입한 후 중국에서 확보한 폭탄을 조선으로 운반하는 활동을 하였다. 1923년 이른바 '황옥 경부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폭탄밀반입시도로 경찰에 쫓기고 있을 때 안암동 오세덕의 집(현 성북구 안암로9가길 57, 49, 59)에서 은거하였다.
  • 김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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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아동
    정릉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1938년 증산교 포교활동을 전개하던 중 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되어 기소되었으나 면소 처분을 받았다. 거주지는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정릉리이다.
  • 김양복
    인물
    김양복
    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1928년 일본 메이지대학에서 아나키즘단체인 일성단을 조직하였다. 1929년 평남 용강군의 한 씨름대회에서 총독정치의 억압과 착취를 폭로하고 농민들을 단결하여 일제타도에 앞장설 것을 호소하는 무정부주의 선전문을 살포하였다. 1929년 7월 평양에서 체포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거주지는 서울 안암정 205번지 11호이다.
  • 김영규
    인물
    김영규
    정릉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충청남도 출생이며 경성으로 직장을 옮긴 뒤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정릉리 416-33(현 성북구 정릉로 237-2~8일대로 추정)에 살았다. 그는 1940년 사립한영중학원에 입학하여 강사 야산옥동(창씨명)으로부터 감화받아 조선 독립을 희망하게 되었으며, 1943년 12월경부터는 친지인 장궁건일(창씨명)에게서 민족주의사상을 지도받게 된다. 1944년 1월 함께 정릉리(현 정릉동)와 돈암정(현 동선동, 돈암동 일대)을 중심으로 민족주의 사상과 혁명적 독립운동을 함께할 동지들을 규합해 나갔다. 1945년 1월에 이러한 활동들이 일경에 발각되어 유지법 제5조와 형법 제55조 위반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 김용태
    인물
    김용태
    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전라북도 고창 출신으로 1934년 고창농민조합에서 독서회를 조직하여 농민들에게 신사상을 선전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36년에는 서울 낙원정 허신병원에서 홍종식과 신사상 운동의 필요성과 그 실천의 불가피성에 대하여 협의하였던 사실이 발각되어 치안유지법위반 및 군형법위반으로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 검사국으로 보내졌다. 거주지는 서울 안암정 157번지이다.
  • 김원근
    인물
    김원근
    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등대사사건 당시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체포되었다. 등대사사건은 일제가 1939년 6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종교적 신념에 따라 신사참배, 병역 등을 거부했던 자들을 체포, 구금한 사건이다. 거주지는 경기도 고양군 돈암리 402-18이다.
  • 김원정
    인물
    김원정
    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1935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경기도 경찰부 고등과에 체포되었다. 거주지는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 58-64번지이다.
  • 김월옥
    인물
    김월옥
    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함남 원산 출신으로 서울의 정신여학교, 용곡여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34년 용곡여학교에서 독서회 활동을 전개하였고, 히라다백화점, 경성보육학교,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내의 비밀조직에서 활동하였으며, 체신국에서 적색노동조합 결성을 준비하였다. 1936년에는 이주하그룹과 연계하여 활동하였다. 거주지는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 245번지이다.
  • 김의한
    인물
    김의한
    정릉동에서 자라고 돈암동(현 동선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비밀결사 대동단의 조직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부친인 김가진과 함께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활동에 참가하였고, 선전위원회의 선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한인애국단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낙양군관학교 분교 내의 한인군관학교와 의열단 계열의 군관학교에 관여해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해방 후 돈암동에 거처를 마련했지만 전쟁 때 납북되었다. 임시정부 요인으로 여성 계몽운동에 힘썼던 정정화가 아내이며,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인 김자동이 그의 외아들이다. 김자동의 구술 증언에 의하면, 이들 가족은 해방 이후 돈암동 178-1번지(현 동선동 3가 130-7)의 한옥에서 거주하였다고 한다.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김재권
    인물
    김재권
    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1941년 12월 19일에 국가총동원법 위반으로 징역 10월 재정(裁定) 60일을 받고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거주지는 경기도 경성부 돈암정 458-309이다.
  • 김재황
    인물
    김재황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인 1939년에 동교생과 함께 항일결사 조선학생동지회를 조직하고, 3.1운동과 같은 방법으로 독립투쟁을 거행하고자 하였다. 1942년 3월 1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전국 주요 도시에 하부조직을 설치하던 중 일본 경찰에 발각돼 징역 1년 6월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당시 김재황의 거주지는 경성부 돈암정 458-349(현 동소문로2길 21)이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 김종윤
    인물
    김종윤
    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 경성공립중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조직된 조선인 해방투쟁동맹(일명 ‘CHT’)에 가입하여 활동하여,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거주지는 서울 안암정 200-13호이다.
  • 김창준
    인물
    김창준
    목사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세 때 미국인 선교사 문약한에게 세례를 받았으며 평양 중앙교회·박구리교회 등에서 시무하다가 1919년 3.1운동 때 33인 중 가장 어린 나이로 독립선언서 서명하고 참가하였다. 1924년에는 미국으로 유학하여 1926년 귀국하였다. 목사로 있는 중앙교회뿐만 아니라 서울 상동교회·성북동교회·석교교회 등을 돌며 설교를 계속하였고, 1930년대에는 성북동교회에서 강연하였다. 1950년에는 서울에서 남선기독교도연맹을 조직하여 그 위원장을 맡았다. 6.25전쟁 후 월북하여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지냈다.
  • 김하경
    인물
    김하경
    성북동 관련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경성제국대학 학생이었다. 1940년 김한성과 공산주의 사회 실현에 관한 협의하였다. 이 사건으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거주지는 경성부 종로구 성북정 188-1이다.
  • 김현국
    인물
    김현국
    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김현국은 1929년 충주에서 권오순, 서상경 등과 함께 아나키즘 단체인 문예운동사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잡지인 『문예운동』을 간행하여 무정부주의를 선전하려다가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받았다. 1931년에는 비밀결사 언론기관인 자유연합사를 조직하여 주간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 1934년에도 무정부주의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당시 거주지는 서울 안암정 86-11번지(현 안암로111)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 나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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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소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정릉리(현 성북구 정릉동 603-3)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대한제국 진위대 부위로 재직 중에 정미7조약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만주로 망명했다. 대한정의단의 교관으로 무장 독립군을 양성했으며, 북로군정서 사령관 김좌진과 함께 청산리 전투에 참여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군인양성소 사령관, 신민부 중앙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중 지린성에서 순국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노국환
    인물
    노국환
    돈암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 10월 당시 중앙중학의 4학년 학생이었던 노국환 외 5명은 민족정기와 독립쟁취에 관한 협의 및 역사·정치에 관한 문제를 토론하기 위한 ‘5인독서회’를 조직하고 지리를 담당하고 있던 최복현을 지도교사로 추대하였다. 5인독서회의 회원이었던 이기을의 회고록에 따르면 독서회라는 것은 3.1운동 이후 각급 학교의 맹휴와 독립투쟁을 실질적으로 지도 통제하는 기능을 담당했다고 한다. 5인독서회는 1941년 7월 활동 범위를 확대하여 활동하던 중 황종갑의 서신이 발각되어 그해 8월에 검거되었다. 관련 학생들은 100일 만에 함흥형무소에서 석방되었고 지도교사였던 최복현은 1943년에 출옥하였다.
  • 노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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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태진
    성북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로 당시 주소는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이다.
  • 노현중
    인물
    노현중
    성북동에 거주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다. 서울 성북 177번지 25호(현 성북로8길 9)에 거주한 그는 1942년 당시 조선방송협회 사업부 보수과 기술원이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외부 방송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에 있었는데, 미군이 일본군을 제압했다거나 일본군의 패망이 예상된다는 등의 내용 등을 듣고 삼청동과 성북동에 모인 지인들에게 전하며 독립은 당연한 것이라고 얘기했고, 결국 유언비어를 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 문석준
    인물
    문석준
    성북동에서 거주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 교원양성소를 졸업하고 함경남도에서 보통학교 교원으로 활동하였다. 일본으로 유학하여 일본 내에서 학우회, 재일조선교육연구회 등에 소속되어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귀국 후 신간회 경성지회에서 민족의 권익 및 역량을 결집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3년에 “육해군사에 관한 유언비어를 한 혐의”로 체포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육군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1년 2월을 받았고 상고 중 사망하였다. 성북정 195-23(현 창경궁로35다길 55)에 거주하였다. 2017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박노태
    인물
    박노태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경성제국대학 졸업 후 휘문중에서 교사로 생활하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1943년 일본의 전시상황과 연해주 등지의 독립군 활동 상황을 전파하는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가 해방 후에 출옥하였다. 당시 성북정 189-1번지(현 성북로 27)에 거주하였다. 1995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 박래수
    인물
    박래수
    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 8, 9월 중순경에 지인인 전태현의 집에서 조선독립에 대한 결의를 하고 조선의 왕이 조선인이라면 조선독립에 당연히 왕위에 복귀해야 한다는 ‘왕족에 대한 불경언동’을 하여 체포되었다. 돈암정 산 65-18에 거주하였다.
  • 박용선
    인물
    박용선
    성북동 관련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1931년 10월 조선공산당 재건공작사건으로 체포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6월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거주지는 성북정 175-8번지이다.
  • 박원장
    인물
    박원장
    성북동 관련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1931년 6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용산서에 수감되었다. 당시 거주지는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 183-10번지이다.
  • 박진목
    인물
    박진목
    성북동에서 활동한 언론인, 통일운동가이다. 한국전쟁 당시 박진목은 최익환과 함께 민간인 신분으로 비공식적으로 서울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이승엽을 만나 전쟁 종결과 평화를 촉구하였다. 북한군의 퇴각 후에는 미군의 주선으로 평양을 방문하였으나 북측 지도자들을 만나지 못하고 억류되었다가 1953년 초에 남쪽으로 돌아왔다. 박진목은 간첩죄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 최익환은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이승만 정권의 핍박 속에 불우한 일생을 마쳤다. 성북동은 그들이 활동한 종전평화운동의 중심 공간이었다.
  • 박진홍
    인물
    박진홍
    삼선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28년 경성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31년 동교 동맹휴교 사건의 주모하여 퇴학처분을 받았다. 같은 해 8월 경성용산제면회사, 대창직물회사의 여공으로 취직하여 그곳에서 좌익서적을 탐독하게 되었다. 이효정 등과 함께 ‘경성트로이카’라는 이름의 사회주의 비밀조직단체의 조직원으로 활동하다가 1938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복역후 1939년 출소 하였다. 출소 후에도 공산주의자 이종갑 등과 회합하거나 성북동 김한성의 집에서 공산주의 운동 전개에 대해 논의하는 등의 경성콤그룹 활동에 관여하다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체포 당시 거주지는 경성부 동대문구 돈암정 245-64(삼선교로23길 23 일대로 추정)이었고, 공판에 회부되었으나 무죄를 받고 면소되었다.
  • 박철
    인물
    박철
    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1927년 평양에서 김가진, 김종성, 서원준 등과 함께 평양에서 공산주의계 노동단체인 평양노동청년회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었다. 그는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감형되어 1928년 12월 출옥하였다.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 25번지에 거주하였다.
  • 박홍식
    인물
    박홍식
    성북동에서 거주한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3일 밤 종로 5정목에서 150명의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미결구류 30일 통산)을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0년 2월 21일 출옥하였다. 당시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 5번지(현 선잠로2길 29-8)에 거주하였다. 201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 방용모
    인물
    방용모
    성북동에 거주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경성고등공업학교에 다니던 중 김상준, 이진영 등에게 감화를 받아 공산주의에 공명하고 조선의 독립과 공산화를 희망하게 되었다. 1940년 이진영의 소개로 알게된 공산주의자 이종갑과 교유하며 좌익 저서를 대여하고 공산주의 사상을 학습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으며, 1941년부터 매주 월요일 성북동 한양도성 부근에서 이종갑가 회합하였다. 이후 경성고등공업학교에서 동지 획득의 책임자를 맡으라는 권유를 받고 활동하다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경성부 종로구 성북정 195-28번지(창경궁로43길 27 일대로 추정)에 거주하였다.
  • 배성룡
    인물
    배성룡
    성북동에서 거주한 신문기자, 평론가, 저술가이자 당대 최고의 이론가였던 독립운동가이다. 배성룡은 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자주적 통일민족국가 건설을 위한 이론개발과 실천활동에 심혈을 기울인 비판적 지식인이었다. 해방 후에는 좌우연합을 통한 자주적인 통일민족국가 건설 운동에 매진하여 김규식의 특사로 평양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이후에는 통일독립촉진회 조직에 참여해 상무집행위원, 조직국장 등을 지내면서 남북통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경성부 성북정 176-4(현 성북로 40-1)에 거주하였다.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 백매수
    인물
    백매수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919년 3.1운동 당시 경신고등보통학교 학생으로 파고다공원에서 거행된 독립선언식에 참여하고 남대문 앞에서 서울역까지 만세시위행진을 하였다. 1920년 3월 4일에는 황해도 이도면 일대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주동하였다가 이듬해 체포되어 해주지법 송화지청에서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90세인 1991년에 자택인 성북동 58-18번지에서 작고하였다. 정부에서는 1983년에 대통령 표창을,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 서광훈
    인물
    서광훈
    성북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가이다. 1922년에 성북리에 있던 삼산학교의 교사가 되었고, 1923년 성북구락부가 결성될 당시 총무를 담당하였다. 1924년에 사회운동단체였던 형평사 서기가 되었다. 성북구락부는 1925년 8월 8일 총회에서 사회주의 계열의 청년조직인 한양청년동맹에 가입할 것을 결의했는데 이때 그의 역할이 컸다. 1926년 형평사 집행위원에 선정되는 한편 한양청년연맹 집행의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에는 고려혁명당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1928년 무죄로 석방되었으며, 이후에도 형평사 내에서 활동 하였다. 서광훈은 1925년 이후 성북리를 떠나 활동하게 되지만 성북구락부는 성북리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그의 당시 거주지는 성북리 173번지(현 성북로12길 8)이다.
  • 성봉진
    인물
    성봉진
    성북동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1928년 서울에서 경성출판노동조합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 조사 중 유치장에서 장티푸스가 발병하였으나 감기 치료만 받았고, 점차 병세가 악화되어 같은 해 11월 19일에 순화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러나 이미 병세가 기울어 22일 오후 8시에 순국하였다. 성봉진은 본적과 거주지 모두 성북리였는데, 지번은 확인되지 않는다. 2008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 손경순
    인물
    손경순
    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1928년 황해도 평산에서 김형도, 양동춘 등과 토요소년회를 설립하였다.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 242번지에 거주하였다.
  • 손용우
    인물
    손용우
    성북동에 거주한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 조선문화학원 중등과 1학년 교실에서 안병구, 권의, 이종호 등 동료 학생들에게 일본패전을 기회로 조선독립을 목표로 매진하자고 협의하였다. 또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폐간을 성토하는 등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항일운동을 하였다. 이로 인해 일본 경찰에게 체포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2년 3개월간 복역했다. 2018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당시 성북정 133-60(현 성북로 53-2)에서 전태현, 이완기와 함께 거주하였다.
  • 손진태
    인물
    손진태
    사학자, 민속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3일 밤 안암동·안감천(성북천)의 만세시위에 참여할 당시 안암리 11번지에 거주하고 있었다. 1932년 송석하·정인섭과 함께 조선민속학회를 창설하고 1933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민속학회지 『조선민속』을 창간하였다. 1934년 안암동으로 이전한 보성전문학교의 사서로 고용되고, 이후 보성전문학교의 문명사 교수와 도서관 관장직을 맡았다. 1949년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학장을 거쳐 문리대학장에 재직 중 6.25 전쟁으로 납북되었다. 저서로는 『조선신가유편』 『조선민담집』 『조선민족설화의 연구』 『조선민족문화의 연구』 『조선민족사개론』, 『국사대요』 등이 있다.
  • 송인헌
    인물
    송인헌
    삼선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943년 8월 경성부 동대문구 돈암정 245-65(현 삼선교로23길 23일대로 추정)의 자신의 집에서 등사판을 사용하여 '조선민족의 참신한 힘과 광영할 수 있는 것을 확신한다'는 등의 내용이 적힌 선언문 60통을 만들고 조성회(助成會)를 창립하였다. 이를 9월 두 차례에 걸쳐 경성부내의 우편함에 넣어 60명에게 이를 열람하게 하였다. 이 일로 체포되어 '조선불온문서임시취체령,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었으나 면소(免訴)되었다.
  • 송재옥
    인물
    송재옥
    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치안유지법 위반, 범인 은피 등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경성부 동대문구 돈암정 63-2에 거주하였다.
  • 신낙현
    인물
    신낙현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42년 배재중 재학 중에 김영헌과 함께 자유주의 사상과 독립사상을 가졌다. 1944년 6월에는 충청남도 서천의 김영헌 집에서 지인들과 함께 조선독립사상에 매진하자고 다짐하였다. 같은 해 8월 함평여관에서는 농촌정신대를 조직한 후 적절한 시기에 이를 역이용할 것과 일본 패망에 따른 결정적인 기회가 오기를 준비하자고 김영헌과 협의하였다. 이로 인해 1945년 4월에 치안유지법 및 조선임시보안령 위반으로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의 처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당시 신낙현은 경성부 동대문구 돈암정 69-27번지(현 동소문로 111)에 거주하였다. 2017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 신현수
    인물
    신현수
    성북구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돈암동에 있던 심정섭의 자택에서 심정섭과 함께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항일결사단체인 ‘조성회(助成會)’를 조직하고, 창립선언일을 명시한 선언문을 등사해 120명에게 송부하였다
  • 신형균
    인물
    신형균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양정중학에 재학 중이던 1937년경에 민족적 성격이 농후한 소설을 읽고, 이듬해 통의동에서 서주원 등과 함께 조선독립의 실행에 관하여 협의하였다가 체포되었다.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돈암정 288-5번지(현 동소문로3길 126)에 거주하였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 심정섭
    인물
    심정섭
    정릉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관동기계제작소에 근무하던 중 지인 신현수의 민족주의 사상에 감화를 받고 독립을 열망하여 신현수와 함께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조성회(助成會)’를 조직하였다. 지난 10년간의 조선의 참상을 알리고 조선민족의 광영을 확신하고 선배들이 귀국할 때를 기다리자고 하는 등 내용과 창립선언일을 명시한 선언문을 등사해 120명에게 송부하였다. 그러나 곧 발각되어 치안유지법 위반혐의로 체포돼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5년형을 받았다. 돈암정 63-33(현 아리랑로5길 162 부근)에 거주하였다.
  • 안복산
    인물
    안복산
    성북동 관련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1931년 2월부터 『조선일보』 급사로 근무하였는데, 그해 5월 권우성 등과 독서회를 조직한 후 다음달인 6월에 적우회로 변경하였다. 만주사변이 발발하자 반전격문과 적우회 기관지 『적우』를 발간, 배포하려다가 체포되어 1932년 징역 2년 6월 선고받았다. 출옥 후 적색노동조합 조직에 참여하였다가 1935년 5월 메이데이 시위를 앞두고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성북리 170-5에 거주하였다.
  • 안재홍
    인물
    안재홍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사학자, 언론인이다. 그는 1910년 일본 도쿄로 건너가 1911년 9월 와세다대학 정경학부에 입학하였고, 10월 조선인유학생 학우회를 조직하였다. 1914년 여름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였다. 비밀결사인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임시정부의 연통부 역할을 수행하였다. 귀국 후 『시대일보』 와 『조선일보』에서 약 10년 동안 언론인 생활을 하였다. 해방 후 돈암동 산 11-152번지에서 거주하였다. 미군정기에 민정장관을 역임하였고, 1950년 제2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6.25전쟁 때 납북되어 1965년 평양에서 사망하였다.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양원길
    인물
    양원길
    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경성의학전문대학 재학 중에 일제가 육군특별지원병제도(1943)와 단기군의지원병제도(1944)를 실시하자 동창생과 함께 일본의 전쟁패배와 조선의 독립을 확신하고 신사상 서적 탐독 및 동지 획득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45년 5월 3일 체포되었다. 안암정 171-14에 거주하였다.
  • 오세덕
    인물
    오세덕
    안암동에서 태어나고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897년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안암리 127번지(현 성북구 안암로9가길 57, 49, 59)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단과 철원애국단에서 활동했으며 애국단 대표로 상하이에 파견되었다. 1923년 이른바 '김시현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폭탄밀반입시도로 김시현이 경찰에 쫓기고 있을 때 그를 자신의 집에 숨겨주었다. 같은 해 한성은행에서 근무하던 중 의열단원 구여순(具汝淳)의 한성은행 자금 탈취를 도와주려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77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고,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오세창
    인물
    오세창
    독립운동가, 서예가, 언론인이다. 『만세보』, 『대한민보』 사장을 역임하며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고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활약하였다. 전각과 서예에도 뛰어났으며 1918년에는 서화협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우리나라 역대 서화가의 사적과 평전을 수록한 사전인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1928)을 편찬하였다. 성북동 128번지는 그가 서화류를 보관하기 위한 가옥인데, 이곳에서 골동품의 수집·감정이 이루어졌고, 간송미술관과 최순우 옛집을 오가는 사람들의 접대 혹은 객사의 공간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 유석복
    인물
    유석복
    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중앙고보에 다니던 중 반제국주의 운동을 하다가 1935년 2월 치안유지법 위반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로 검거되었다.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 245-63에 거주하였다.
  • 유영민
    인물
    유영민
    정릉동에서 거주하고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정릉리에 소재하는 먹 제조공장의 직공이었다. 1945년 1월 지인들을 만나 일본의 패전에 관한 말들을 하고 다니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청은 그를 조언비어를 유포한 혐의로 조선임시보안령 위반으로 판결하고 징역 6월을 언도하였다. 당시 정릉리 111-4번지(현 정릉로32가길 29)에 거주하였다. 2017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 유영하
    인물
    유영하
    성북구와 관련이 있는 독립운동가이다. 성북구 돈암동, 안암동에 거주하였던 독립운동가와 함께 항일결사단체를 조직하였다. 중앙중학교에 재학중이던 그는 1940년 10원 노국환, 이기을, 조성훈, 황종갑 등과 함께 5인 독서회를 조직하고 독립쟁취에 관한 협의와 역사·정치에 관한 문제에 대해 토론하였다. 그러나 5인독서회는 1941년 7월 활동범위를 확대하여 활동하던 중 황종갑의 서신이 발각되어 그해 8월에 검거되었다. 2019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 유우석
    인물
    유우석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자, 유관순의 오빠, 조화벽의 남편이다. 3.1운동 때 공주의 영명학교에 재학중이었는데 1919년 4월 1일 공주의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다른 학생대표들과 함께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장터에 나가 시위 군중에게 나누어주고 그 선두에 서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에 체포되어 같은 해 8월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혐의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7년에는 원산청년회를 조직,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4년형을 구형받았다. 성북구 정릉동에 거주하였고, 1968년 5월 28일 숙환으로 별세하였다. 유우석의 장례식은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 유진희
    인물
    유진희
    성북동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성북동에서 병원을 경영하였다. 1922년 11월 『신생활사』의 기자로 격문과 자유노동조합 취지서를 인쇄·발부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 6개월을 받아 복역하였다. 1925년 4월에는 조선공산당 중앙집행위원을 역임해 식민지정책 타도와 조선총독정치 배격을 주장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4년을 받았다. 해방 이후에는 남조선과도입법의원 관선의원을 역임했다.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 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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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04년 미국에서 안창호, 정재관 등과 함께 공립협회(共立協會)를 창립하고 1905년 기관지 『공립신문』을 창간해 주필이 되었다. 1907년 귀국하여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하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서 정재관과 함께 신민회 블라디보스토크지회를 설립하였다. 이밖에도 『대동공보』 편집책임을 맡아 독립사상을 고취시켰다. 1919년에는 강우규의 폭탄 투척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 석방 후 상해로 탈출하여 임시정부에 참여, 의정원 의장을 역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안창호가 중심이 된 흥사단 운동에도 참가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1964년 10월 13일 자택인 정릉동 재건주택 88호(현 정릉동 16-7)에서 별세하였다.
  • 이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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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창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우당 이회영 선생과 이은숙 여사의 장남으로 1913년 만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독립운동을 도왔으며, 남화한인청년동맹, 흑색공포단 등에서 활약하였다. 1935년에는 정화암, 엄형순과 함께 친일파 이용로를 사살하고 도피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징역 1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9년 8월 감옥에서의 옥중투쟁으로 다시 가형을 받았다가 해방으로 출옥하였다. 1955년에는 체신부에 들어가 공직활동을 했고, 1974년 정년퇴직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90~1993년에는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원으로 참여하여 독립운동사 기술에 도움을 주었다. 1961년 정릉에 정착하여 어머니 이은숙 여사를 모시고 살았다.
  • 이근창
    인물
    이근창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42년 3월 6일 조선방송협회 사업부 보수과에 입사하여 기술원으로 근무했다. 1942-1943년 단파수신기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방송된 조선어 방송 등을 청취하였다. 내용은 세계대전에서 연합국 측이 승리할 것이므로, 연합군이 일본을 공략할 때 조선 동포들도 국내에서 호응하여 연합군을 승리로 이끌고 조선의 독립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방송 내용을 1942년 12월 성북정에 거주하는 조선방송협회 회원 김병욱에게 전달하고, 1943년 2월 20일경에는 성북정에 거주하는 동료 노현중에게 전달하였다. 1943년 7월 4일 체포되어 징역 8개월의 옥고를 치르다가 1944년 1월 2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이기석
    인물
    이기석
    삼선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929년 신간회 복대표회의에서 상무집행위원, 신간회 영덕지회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930년에는 조선공산당 재건설준비휘원회 경북책임자, 조선좌익노동조합전국평의회조직준비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1934년 징역 2년을 받았다. 1939년 경성콤그룹에 참여하여, 1940년 성북동 또는 삼선동 자택에서 경성콤그룹의 기관지를 받아 읽었다. 1944년 비밀결사단체인 조선건국동맹이 결성되자, 노농군 편성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동대문구 돈암정 522번지(현 삼선교로6 일대로 추정)에 거주하였다.
  • 이기을
    인물
    이기을
    안암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940년 서울 중앙중학교 3학년 재학 중에 노국환, 황종갑, 유영하, 조성훈과 함께 정치와 역사에 대하여 토론하는 ‘5인독서회’를 조직하고 최복현을 지도교사로 추대하였다. 1941년 활동 범위를 확대하던 중 황종갑의 서신이 사전 검열에 발각되어 그를 비롯한 관련 학생들이 체포되어 100일 만에 석방되었다. 교사 최복현은 1942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 받아 1943년에 출옥하였다.
  • 이길용
    인물
    이길용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자 기자이다. 1936년 동아일보 체육부 기자 재직시절에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제거한 후 사진을 보도하였다. 이 사건으로 동아일보에서 강제 퇴직당한 후 집회에서 반일 가요를 부르거나 반일 발언을 하고 창씨개명도 거부했다. 이길용은 1930년대 초부터 전쟁 이후 납북 직전까지 성북동 56번지에 거주했다. 그는 성북동 조기회 활동도 했는데 일본은 이를 항일운동단체라고 트집잡아 그를 투옥시키기도 했다. 성북동에서는 심우장을 찾아 한용운과 법담을 나누며 위로를 받기도 했고, 이웃인 이태준, 전형필, 배성룡 등과 교류하였다. 1989년 한국체육기자연맹은 이길용체육기자상을 제정하여 매년 수여하고 있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이병우
    인물
    이병우
    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1943년 3월 강원도 홍천군의 한 음식점에서 지원대근(池原大根)에게 경기도에서 식량부족으로 아사한 사람 2명을 보았다는 말을 하였다가 조선전시보안령위반으로 체포되어 벌금 200엔(혹은 40일간 노역장 유치)을 받았다. 서울 안암정 186-28에 거주하였다.
  • 이병희
    인물
    이병희
    보문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이경식, 이동하, 이병기 등 많은 독립운동가가 배출된 집안의 영향을 받아 당연히 독립운동을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며 자랐다고 한다. 경성여자상업학교(현 서울여상)에 다니다가 중퇴한 후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다. 1933년에는 숭인면 신설리(현 성북구 보문동, 동대문구 신설동 일대)에 있었던 종연방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전면에서 이끌다가 체포되었다. 1940년에 중국 북경으로 망명하여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그는 북경에서 이육사가 감옥에서 순국하자 그의 시신을 화장하고, 유품인 「광야」 「청포도」 등 시 작품을 정리하여 국내의 유족에게 전달하는 중책을 맡아 수행하였다.
  • 이성학
    인물
    이성학
    성북동 관련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935년 8월 경성제대 중심의 반제동맹에 간여하였다가 성북동에서 체포되었다.
  • 이완기
    인물
    이완기
    성북동에서 거주한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중동학교 재학 중이던 1940년 7월, 성북정 전태현의 집에서 함께 살던 손용우에게 '조선인은 조선독립의 목적을 달성해야 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같은 달 같은 곳에서 전태현과 손용우에게 일본은 패전할 것이므로 기회를 잃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1940년 9월에는 중동학교 교실에서 중일전쟁을 계기로 조선독립이 실현될 것이라 말했고, 지원병제도를 반대했다.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이후 가혹한 신문과 조사를 받다가 판결이 나기 전인 1942년 5월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경성부 성북정 133-60(현 성북로 53-2)에서 전태현, 손용우와 함께 거주하였다.
  • 이용상
    인물
    이용상
    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1942년 8월 임천규(林天圭), 서원기석(西原耆錫) 등과 여러 차례 모여 김상옥열사의 의거, 지원병 제도의 비판, 창씨제도의 반대, 전황 등을 이야기하면서 체제를 비판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하다가 1942년 체포되었다. 경성부 돈암정 153-14에 거주하였다.
  • 이육사
    인물
    이육사
    종암동에서 거주한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본명은 이원록이다. 1925년(혹은 1926년)에 중국에 건너갔다가 1927년 여름 중국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같은 해 10월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가 1년 7개월 뒤에 석방되었다. 이때 받은 수인번호 '264'는 '이육사'라는 필명의 유래가 되었다. 1932년 중국 난징에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교육생으로 입교하여 훈련을 받았다. 1933년 7월 조선으로 돌아온 그는 군사활동이 아닌 문학활동을 시작하였고, 1939년 종암동 62번지로 이사하여 이 곳에서 「청포도」, 「절정」 등 대표작을 발표하였다. 그는 1944년 1월 16일 베이징[北京] 감옥에서 옥중 순국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 이은숙
    인물
    이은숙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우당 이회영의 아내이기도 하다. 1966년에 자서전적 회상기인 『서간도시종기』를 출간하였다. 한국독립운동사의 일면을 기록한 일종의 역사서이자 전통적 양반집 부인의 교양과 생활, 의지를 절실하게 묘사한 문학작품이다. 작가의 가계와 이회영과의 혼인, 신민회의 초기 활동부터 1910년 말 서간도(만주)로 이주 후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이은숙은 아들인 이규창과 함께 1961년부터 정릉에서 거주하였다. 집의 정확한 위치는 정릉동 226-33번지로, '재건주택'이라 불리는 작은 마당이 있는 단층 주택이었다. 정릉동 언덕에 위치한 이 장소에는 현재 그의 손자가 빌라를 건축하여 거주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이재성
    인물
    이재성
    독립운동가이다.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안감리 78번지(현 안암동 5가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4.18기념관 일대로 추정)에 거주하였으며, 직업은 연초상(煙草商)이었다. 1919년 3월 26일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사무소(현 성북구 안암동5가 일대로 추정) 앞에서 다수의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가 체포되었다. 이로인해 1919년 5월 1일 치안유지법위반을 이유로 5월 1일 태 90대 형을 선고받았다.
  • 이정우
    인물
    이정우
    정릉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경성사립소화공과학교 졸업 후 설계사무에 종사하였으며, 종로 2정목(현 종로구 종로2가) 건축사무소에서 설계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1942년 8월에 큰 형의 아들이 취업 알선을 목적으로 상경하여 자신의 집에 머물자 같은 달 16일 작은 형 앞으로 편지를 보내 “경성에서는 식량이 부족하여 대곤란에 빠져 있고 자살도 한다”는 서신을 보냈다. 20일 이러한 사실이 발각되어 체포된 후 벌금 200원 형에 처해졌다.
  • 이종암
    인물
    이종암
    종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1916년 대구은행의 출납계주임이었는데, 만주를 왕래하며 동지와 함께 조국광복투쟁을 결의하고 은행 금고 속에 있던 만 구백원의 돈을 꺼내 만주로 갔다. 그가 가져온 자금은 의열단의 활동비로 유용하게 쓰여졌고, 그 일부는 동지인 구영필에게 전해져 만주 봉천의 비밀결사인 삼광상회의 설치자본으로 쓰였다고 한다. 1925년 9월 재정상황이 궁핍해지자, 군자금 확충을 위해 국내로 잠입하였다가 잠입중이던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26년 12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62년 정부는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이준열
    인물
    이준열
    독립운동가이다. 1889년 충청남도 아산 출생으로 경성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재학 중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였다. 그는 성북구 보문동 지역에 있었던 일제강점기 교육시설인 '고학당' 설립을 계획한 인물이다. 이준열은 『조선일보』 사장인 남궁억과 논의한 끝에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교육기관인 고학당 설립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일제가 고학당 설립 자금이 박상진의 운동자금이었다는 것을 알고 설립 자금을 압수하였다. 이에 이준열은 자신의 가옥을 처분하여 경비를 마련해 고학당을 설립하였다.
  • 이현우
    인물
    이현우
    돈암동 관련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경성부 성북동 삼산보통학교에서 2년간 수학하였다. 1939년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에 본과 3년 재학 중에 경성콤그룹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1944년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미결구류 450일 본형 산입의 형을 받았다. 경성부 동대문구 돈암정 294-8에 거주하였다.
  • 이효정
    인물
    이효정
    보문동과 관련있는 독립운동가이다. 1933년 9월 21일 숭인면 신설리(현 성북구 보문동, 동대문구 신설동 일대)에 있었던 종연방직[종방(鐘紡)] 경성제사공장의 여성노동자들이 총파업을 주도했다. 이 사건은 1930년대 열악하였던 조선인 여성 노동자들의 상황과 당시 성북구의 노동환경을 알 수 있는 파업 사건이다. 종방 파업 이후 1933년 10월 17일 청량리에서 동대문경찰서 고등계 형사에게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35년 11월에는 이재유, 권우성 등이 주도 조직한 ‘경성지방좌익노동조합 조직준비회’에 가담하여 동지 규합과 항일의식 고취에 주력하다가 경찰에 검거되어 약 13개월 동안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2006년에 건국포장을 받았다.
  • 임규
    인물
    임규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자 한글학자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운동의 기획과 실행에 참여한 핵심 인사 48인 중 한 사람으로 일본 정부와 귀족원·중의원에 조선독립에 관한 의견서와 통고문 및 선언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3월 1일에 일본 도쿄에 도착하여 일본수상과 의회에 문서를 전달하고 3월 9일 귀국 도중에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압송되었다. 미결수로 1년 7개월간 옥고를 치르다가 이듬해 10월 30일 경성복심법원의 판결을 받아 출옥하였다. 말년에 성북동 미륵당(현 성북로28길 60)이라는 암자에서 약 10년간 거주했는데, 그곳에서 한시집 『북산산고』를 탈고했다. 미륵당에서 기거하며 한용운을 비롯해 오세창, 정인보 등과 시류를 논하기도 했다. 정부에서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임치정
    인물
    임치정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된 독립운동가이다. 임치정은 1880년 평안남도 용강(龍岡)에서 태어났다. 1904년 미국에 건너가 안창호(安昌浩) 등과 함께 공립협회(共立協會)를 조직하여 간사로 일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신민회를 창립하고 간부로 일하다가 1911년 만주무관학교 사건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복역 중에 105인 사건으로 다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1932년 1월 9일 자택에서 뇌일혈로 별세한 후 미아리 공동묘지에 장지가 마련되었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 장건상
    인물
    장건상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미국 유학 후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되고 외무차장으로 활약하였다. 또한 상해에서 의열단으로 활동하며 국내로 폭탄을 반입시키다가 붙잡혀 국내로 압송되었으나 증거가 없어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해방 후에는 조선인민당과 근로인민당의 부위원장을 지냈고,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 아래 감옥을 여러 차례 드나들었던 장건상은 정릉동 338-1번지(현 솔샘로6마길 17-4)에 거주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1986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 장동옥
    인물
    장동옥
    성북동 관련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다. 김한과 무산자동맹회 활동을 하였는데, 김한이 구속될 당시 장동옥의 집 또한 수색을 당하였다. 성북동 191번지에 거주하였다.
  • 장익민
    인물
    장익민
    돈암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조선민족의 독립을 도모하고자 신의주에서 재신유학생 친목회를 조직하였다. 그 모임에서 학생들이 총역량을 집중하여 조선독립 달성을 위해 운동 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 일로 체포된 장익민은 1930년 11월 26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받았다. 경성부 돈암동 164에 거주하였다.
  • 전명선
    인물
    전명선
    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1942년 7월 경성지방법원에서 국가총동원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43년에 출옥하였다, 본적지는 경기도 경성부 돈암정 170이다.
  • 정만산
    인물
    정만산
    월곡동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이다. 정만산은 숭인면 월곡리 24번지(현 화랑로5길 90)에 거주하며, 활동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확산하던 때인 3월 26일 숭인면사무소 앞에서 다수의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숭인면사무소의 위치는 현재 성북구 안암동5가 일대로 추정된다. 만세운동으로 인해 체포된 정만산은 1919년 5월 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형 90대를 선고받았다. 1941년에 사망하였고, 정부는 2008년에 공훈을 기려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 정정화
    인물
    정정화
    돈암동(현 동선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대동단 총재인 시아버지 김가진, 남편 김의한과 함께 3.1운동 직후 상해로 건너갔다. 이후 1930년까지 임시정부의 재정 지원을 위하여 6회에 걸쳐 국내를 왕복하면서 거액의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임시정부가 위치를 옮길 때마다 함께 항일활동을 하였다. 1940년대 충칭의 3.1유치원 교사로 임명되어 독립운동가 자녀들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고, 국내외 한인 부녀의 총단결과 조국광복을 위한 활동을 하였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정정화의 아들 김자동의 증언에 의하면, 해방 후 돈암동 178-1번지(현 동선동 3가 130-7)의 한옥에서 거주하였고, 성신여고 앞쪽에 있었다고 한다.
  • 정종진
    인물
    정종진
    정릉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1938년 증산교 포교 활동을 전개하던 중 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되어 기소되었으나 면소 처분을 받았다. 정릉리에 거주하였다.
  • 정진숙
    인물
    정진숙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44년 10월 근무하던 조흥은행 종로지점에서 동료들에게 전시상황을 전파했다. 그는 사이판 섬에서 돌아온 사람에게 들었다고 하며 사이판의 상황을 전했다. 이로 인해 '군사에 관한 조언비어'를 만들었다 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5년 1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육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당시 서울 동대문구 성북정 177-40번지(현 성북로8길 7)에 거주하고 있었다. 해방 이후에는 을유문화사를 창립하여 전무로 재직하다가 1952년 대표이사가 되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명예회장, 대한출판문화협회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출판인 정진숙』(정진숙,을유문화사,1983)이 있다. 정부에서는 201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정태식
    인물
    정태식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다. 경성제국대학을 졸업 후 법문학부 조수로 경제연구실에서 근무하였다. 성북동에 거주하면서 독서회, 적색노동조합, 공산주의자그룹 결성에 매진하다가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경성콤그룹에 참여하였고 해방후에는 남로당 중앙위원, 조사부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4월 체포되어 5월 육군본부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으나 한국전쟁 당시 풀려났고, 북한에서 농림성 기획처 부처장을 지냈다. 남로당 숙청 당시 숙청되었다. 경기도 경성부 성북정 184-32(현 성북구 성북로6길8-2)에 거주하였다.
  • 조병옥
    인물
    조병옥
    동선동에 거주했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이후 신간회, 수양동우회 사건 등 항일운동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미군정청 경무부장으로 취임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 때 성북구에서 출마하였다. 출마 당시 주소는 돈암동 89-7번지(현 동소문로120)로 전차 종점 부근, 현재의 동선동 태극당제과 부근으로 추정된다. 조병옥은 이 선거에서 조소앙에게 큰 표 차로 지며 낙선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대구에서 당선되어 정치활동을 시작하였다. 1960년 정부통령선거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선거를 앞두고 심장병으로 사망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 조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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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병호
    성북동 관련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다. 1929년 당시 휘문고등보통학교 5학년 재학당시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동조시위를 진행하였다. 성북동 160번지(현 성북구 성북동 159-6)에 거주하였다.
  • 조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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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훈
    독립운동가이다. 중앙고보 3학년 재학 중에 노국한, 이기을, 조성훈, 황종갑, 유영하 등 5명은 역사와 정치에 관한 문제를 토론하기 위한 ‘5인독서회’를 조직하고 최복현을 지도교사로 추대하였다. 1941년 7월에 활동범위를 확대하여 항일유격대의 활동 소식, 일본의 운동가와의 연락, 김성수, 송진우 등 민족운동지도자와의 연락 등을 위해 활동하였다. 다음 달인 8월에 황종갑의 서신이 발각되어 체포된 후 함흥경찰서로 압송되었다. 100여 일의 옥고를 치르고 석방되었다. 경성부 돈암정 401에 거주하였다.
  • 조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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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소앙
    돈암동에서 거주하고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일본 메이지대학에서 공부한 후 경신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3년 중국에 망명하여 항일단체 대동당을 조직하였다. 1918년 무오독립선언서를 기초하여, 독립운동 지도급 인사 39인의 공동성명으로 발표하였다.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민주공화제헌법의 기초를 비롯한 임정의 이론정립 등 전반에 걸쳐 주역을 맡았고, 해방 후에는 임시정부의 정통성 고수를 주장하였다. 성북구 돈암동에 거주하면서 1950년 5.30 총선에 사회당으로 서울 성북구에서 출마하였다. 선거에서 전국 최다득표로 조병옥을 꺾고 당선되어 제2대 국회에 입성하였다. 그러나 6.25전쟁 당시 납북되어 1958년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198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 조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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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헌영
    성북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한의학자이다. 시인 조지훈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조헌영(호는 해산)은 1927년 일본에 유학하던 중 신간회 동경지회장을 맡았으며, 귀국해서는 명륜동에 살면서 동양의약사(東洋醫藥社)를 만들어 학술지 『동양의약』을 발간하여 한국 근대 한의학의 기초를 수립하는데 공헌하였다. 1935년에는 조선어표준말사정위원회 위원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명륜동에 거주하던 조헌영은 일제강점기 말인 1940년대 초에 성북동으로 이사 왔다. 해방 후 제헌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으로 활약하였다. 6.25 전쟁 중에 피난가지 않고 성북동에 머물던 중 북한군에 의해 납북되었다. 북한에서도 한의학연구에 심혈을 기울였고, 1988년 평양에서 사망하였다.
  • 조화벽
    인물
    조화벽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강원도 양양 출신으로 개성의 호수돈 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 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호수돈 비밀결사대’를 조직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휴교령이 내려지자 조화벽은 버선 솜에 독립선언서를 감추고 고향 양양으로 귀향하여 지역만세운동의 불씨 역할을 했다. 1925년 교직생활을 하던 중 유관순 열사의 오빠인 유우석과 결혼하였다. 이후 유우석의 가족을 모두 양양에 은신시켰으며, 유관순의 동생인 관복과 관석을 양육하였다. 1932년에는 양양에 정명학원을 설립하여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쳤다. 광복 이후 정릉동 604-16번지(현 아리랑로5길 128)에서 거주하였고, 1975년 타계하였다. 정부에서는 1982년 대통령표창을,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주영복
    인물
    주영복
    정릉동에 거주했던 독립운동가이다. 1923년 대구에서 태어나 1937년에 경성전기주식회사에 전기견습공으로 취직하였다. 그는 취직 후 공산주의 활동가 조중심에게 지도를 받으면서 조선의 독립과 공산화를 희망하게 되었고,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조직인 경성콤그룹에 가입하여 조선 독립과 공산주의에 관한 학습을 받았다. 1941년 12월 일제의 대대적인 경성콤그룹 관련자 검거시 홍영의, 김한성 등과 함께 검거되어 미결수로 2년 가까이 옥살이를 한 끝에 1943년 10월에 마지막 재판을 받았다. 형량은 확인되지 않으나 재판 후 주동자를 제외한 다른 경성콤그룹 관련자들과 함께 풀려났을 것으로 추측된다.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정릉리 533-1(현 성북구 정릉동)에 거주하였다.
  • 채동선
    인물
    채동선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이다. 1901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나 일본과 독일에서 바이올린과 작곡을 공부하였다. 1929년 귀국하여 연주활동을 시작하였고, 1932년부터 작곡을 하였다. 정지용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 「고향」을 발표하여 널리 알려졌다. 피아니스트 이소란과 결혼하고 성북구 성북로8길 12-8(성북동 183-17)에 양옥집을 짓고 살았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피난갔다가 1953년 부산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홍난파, 현제명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1세대 서양 음악가였는데, 채동선은 1930년대부터 한국 음악계를 이끄는 역할을 하며 민족의 정서를 가곡에 담기 위해 노력하였다. 대표곡으로 「동백꽃」, 「그리워」, 「내 마음은」,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이 있다.
  • 최경옥
    인물
    최경옥
    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1932년 동아자동차회사 공장노동자로 신사상 운동을 위한 동지 규합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1934년에는 권영태 그룹에서 인쇄한 메이데이 격문을 서울 용산공작주식회사 등에 배포하였기도 하였다. 1935년에 조선공산당재건동맹사건으로 체포되어 치안유지법위반 및 출판법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른 후 1936년 12월 출옥하였다. 이후에 그는 다시 일용직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적색노동자조합을 조직하였으나, 1938년 조선공산당재건경성준비그룹 사건으로 체포되어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안암정 112-17에 거주하였다.
  • 최두선
    인물
    최두선
    성북동 관련 민족주의계열 독립운동가이다. 일본 와세다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후 독일에서 유학하였고, 1919년에 중앙중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1921년 발족한 조선어연구회에 참여하였다. 1925년에 조직된 기독교 계열의 항일운동단체인 흥업구락부 소속으로 활동했는데, 1938년에는 피검되기도 하였다. 이후 제8대 국무총리와 제5대 대한적십자 총재를 역임하였다. 성북 177-30에 거주하였다.
  • 최승우
    인물
    최승우
    안암동에서 태어나고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일본 유학 후 1943년 4월부터 욱동산업주식회사의 총무과장으로 재직했다. 같은 해 12월 중국 충칭[重慶]의 대한민국임시정부로 가려다 발각되어 강제귀국당했다. 1944년 4월 안암정의 처가 유해창의 집에서 독립운동을 할 것을 협의하였다. 친일파를 처단하고 격문을 작성 살포하는 파괴부, 독립 실현 후 건설 부분을 담당하여 연구 준비하는 건설부 등 구체적 계획을 구상하였으나 조선총독의 암살을 계획하다가 체포되었다. 1944년 10월 23일 체포되어 1945년 7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았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재판 당시의 본적과 주소 모두 서울 동대문 안암정 228번지(현 성북구 안암동1가 229)였다.
  • 최용덕
    인물
    최용덕
    성북동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191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중국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군에 입대하였다. 1922년에는 의열단에 참여하여 폭탄운반 및 투척계획을 협의하는 등 의열활동을 지원하였다. 1922년 이후 1940년까지 중국 공군에서 교관, 수상비행대장 참모장, 공군기지사령관 등을 역임하였다. 1940년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총사령부 총무처장, 참모처장, 사령관 등을 역임하였다. 해방 후에는 대한민국 초대 국방부차관을 역임하였으며, 공군사관학교 교장을 거쳐 공군후방사령관·항공기지사령관·공군본부작전참모부장·공군참모총장 등을 역임하였다. 최용덕의 자필 이력서에 의하면 본적은 성북동 265번지(성북로 148-5)로 기록되어 있다.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최익환
    인물
    최익환
    독립운동가이자 종전평화운동가이다. 일제에 의한 강제병합을 앞둔 1909년에는 서천군 재무주사로 근무하던 중 망명을 결심하고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공금을 빼돌렸다가 발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대동단을 결성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또다시 옥고를 치렀고, 출소 후에는 신간회에 참여하였다. 해방 후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피난 가지 않고 성북동 자택(성북동 260번지)에 머무르면서 북한 당국자와 이승만 정부에 종전을 호소했다. 미군의 도움으로 평양까지 가서 종전을 호소했으나 양쪽 정부 모두 제대로 만나주지 않았다. 1950년에 간행된 『대한민국인사록』에는 주소가 돈암동 458-392번지로 기록되어 있다. 정부에서는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최차옥
    인물
    최차옥
    성북동에 거주했던 독립운동가이다. 1930년 7월 실천여학교의 생도로서 포흘(飽迄) 교장의 행위를 비난하며 실천여학교의 동맹휴교를 전개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32년 3월에는 홍원농민조합사건으로 체포되었다. 1934년 권영태 등이 주도한 프로핀테른 태평양노동조합 서기국의 선내공작사건에 관련하여 검거되었다. 프로핀테른 태평양노동조합 서기국의 선내공작사건에 관련하여 체포될 당시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 88(현 성북동 88)에 거주하였다.
  • 편강청덕
    인물
    편강청덕
    동선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14년 3월 경성의 오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의 금릉대학에서 1년을 배우고 귀국하였다. 1921년 3월 경성고등법원에서 제령7호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았다. 1941년 7월 중순경부터 9월 하순까지 돈암동 친구들에게 군사에 관한 사항을 이야기하였다가 유언비어를 유포하였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경성부 돈암정 92번지(현 동소문로 117 부근)에 거주하였다.
  • 피한봉
    인물
    피한봉
    안암동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피한봉은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안암동 164번지(현 안암동1가 164)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19년 3.1 만세운동이 확산되던 때인 3월 23일 밤 10시경, 안암동 안암천 부근에서 다수의 군중을 모아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형 90대를 선고받아 고초를 겪었다. 정부는 2017년에 공훈을 기려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한순기
    인물
    한순기
    독립운동가이다. 서적 행상을 하다가 1939년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대대적 소탕령에 의해 검거되었다. 여호와의 증인이 대대적으로 검거된 것은 신사참배 및 징집거부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2년형을 선고받았다. 성북 185번지에 거주하였다.
  • 한용운
    인물
    한용운
    성북동에서 거주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승려이다. 본명은 정옥, 법호는 만해이며 용운은 법명이다. 1905년 백담사에서 출가하였고, 불경 번역과 대중화에 노력을 기울이면서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발간하였다.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경성지회장을 맡았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의 진상을 폭로하는 민중대회 사건으로 일제에 피감되었다. 1933년 성북동 심우장으로 이사하였다. 1938년에는 불교계 항일단체인 만당사건 배후로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 성북동 심우장에서 만년을 보내다 1944년 중풍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에서는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 한홍택
    인물
    한홍택
    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경기도 수원 출신으로 반제동맹 경성지방조직 준비위원회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기소의견이 없는 것으로 보아 수사 과정에서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 숭인면 안암리 117번지(현 성북구 안암동)에 거주하였다.
  • 현학손
    인물
    현학손
    성북동 관련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다. 1934년 양복점 등에서 일하면서 양복직공에게 공산주의를 선전하였고, 1937년에는 유인술·유창여·박기복과 좌익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활동으로 이른바 ‘조언비어(造言飛語)’를 유포죄로 체포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육군형법 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1월(미결구류 90일 산입)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939년 10월에 출옥하였다. 서울 성북 성북정 185-2번지에 거주하였다.
  • 홍기문
    인물
    홍기문
    안암동에 거주했던 독립운동가이자 국어학자이다. 1927년 신간회 경성지회 간사로 선임되었고, 1931년에는 중앙위원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한 활동을 벌이다 체포되어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또한 국어연구에도 전념하여 1927년에 「조선문전요령」을 『현대문학』에 발표하기도 하였다. 해방 후에는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 선전부에서 활동하였으며, 서울신문사 편집국장으로 활동하면서 『정음발달사』, 『조선문법연구』을 간행하였다. 1948년 4월 남북정치협상 대표였던 부친 홍명희를 따라 입북하여 그대로 잔류하면서 국어연구와 정치활동, 문화활동을 병행하였다. 1981년에는 『조선왕조실록』 한글 번역의 공로로 노력영웅 칭호와 국기훈장 제1급을 받았다.
  • 홍석표
    인물
    홍석표
    돈암동 관련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다. 1937년 7월 경부터 경성부 충신정 33-3번지 홍규익의 집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목적으로 하는 무명그룹을 조직하여 혁명론과 계급투쟁 등에 관한 서적을 읽었으며, 의식고취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으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 458-26번지에 거주하였다. 1938년 검거 당시 연령은 22세였다.
  • 황금수
    인물
    황금수
    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1934년 6월 조선공산당재건 코민테른 조선레포트회의 사건으로 체포되었으나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고양군 숭인면 안암리 122번지에 거주하였다.
  • 황수연
    인물
    황수연
    조선시대 내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44년에 경상북도 평해에서 태어나 서울로 와서 양봉협의 양자가 되었다. 1863년 내관시험에 합격하였고, 고종의 호종내관을 지냈다. 본명은 황윤명인데 고종이 수연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호는 춘파이다. 1893년 벼슬에서 물러난 후, 동소문 밖 별장(현 서울 성북동 별서)에 머무르면서 한시를 지었는데, 유고집 『춘파유고』에 수록된 한시 90편 가량이 대부분 성북동 별장에서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1908년에는 삼산의숙(三山義塾)을 설립하고 제반 경비를 부담하였으며 항일의병활동도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 고종과 긴밀한 관계였던 만큼 그의 활동에 고종이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 황응선
    인물
    황응선
    정릉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1938년 증산교 포교 활동을 전개하던 중 김아동, 정종진과 함께 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되어 기소되었으나 면소 처분을 받았다.
  • 황종갑
    인물
    황종갑
    성북구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성북구 돈암동, 안암동에 거주하였던 독립운동가와 함께 항일결사단체를 조직하였다. 1940년 중앙중학교 학생이었던 황종갑은 민족정기와 독립 쟁취에 관한 협의와 역사·정치에 관한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노국한, 이기을, 조성훈, 유영하 등과 5인독서회를 조직하고, 교사 최복현을 지도교사로 추대하였다. 1941년 7월 활동범위를 확대하며 다른 중학교 및 사회조직과 연락을 시도하다 서신이 발각되어 그 해 8월에 검거되었다가 함흥형무소에서 석방되었다. 정부에서는 2006년에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 이관구
    인물
    이관구
    성북동에서 집필활동을 한 독립운동가이다. 황해 송화 출신으로 평양 숭실전문학교 재학 중 경술국치를 당하자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그 뒤 중국과 유럽, 하와이를 여행하고 귀국하여 1914년 해주에서 이종문·오순원 등과 밀의하여 항일격문을 작성·배포하였다. 그리고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동제사에 가입하였으며, 1916년에는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대외업무를 맡았다. 신흥학교 이시영에게 자금을 조달하는 한편, 성낙규 등에게 권총을 수교 총독 암살을 지령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1918년 초 동회의 조직이 발각되어 5년 형을 받고 옥고를 치른다. 해방 이후 의친왕의 별장이었던 서울 성북동 별서(성락원)에 기거하면서 사학 연구회라는 학술 단체를 설립하였다. 이곳에서 『언행록』, 『의용실기』 등을 집필하며 항일운동과 사상을 집대성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정재용
    인물
    정재용
    장위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88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들이 독립선언 장소를 인사동 태화관으로 변경하며 예정된 시간에 등장하지 않아 파고다공원에서의 독립선언식이 혼란에 빠졌는데, 이때 경신중학교 졸업생인 그가 팔각정 단상으로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같은 해 8월에 체포된 정재용은 평양 감옥에서 2년 6개월 간 옥고를 치뤘다. 출옥 후에는 구국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의용단 활동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77년 12월 31일 성북구 장위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하였다. 자택의 주소는 동아일보에서는 장위동 219-100번지, 경향신문에서는 장위동 219-195번지로 보도했다. 정부에서는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최복현
    인물
    최복현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06년생으로 중앙고보를 졸업, 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에서 지리와 역사를 전공했다. 귀국하여 정주 오산학교에서 재직하고, 1935년부터 중앙고보에서 재직했다. 1941년 8월의 5인 독서회 사건에 연루되어 2년간 옥고를 치렀고 1943년 1월 출옥한 후 만주 봉천의 만주방적주식회사에서 교육 부문에 종사하였다. 광복 후 전남 순천중학교 교장, 서울대 사범대 교수, 중앙고등학교 교장, 서울특별시 교육위원회 교육감 등을 역임했다. 최복현은 1977년에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1979년 사망하였다. 1990년에는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의 유공자 정보에는 본적이 경기도 양평 용문 망탕, 주소가 서울 성북 정릉 192-272(현 서경로9길 1-3)로 표기되어 있다.
  • 연미당
    인물
    연미당
    성북동에 거주했던 독립운동가이다. 본명은 연충효이나 1938년 임시정부가 장사로 피신했을 때부터 아명인 ‘연미당’을 사용하였다. 1920년 가족과 함께 상하이[上海]로 이주했다가 아버지를 따라 진강으로 이사하여 진강여자중학교를 다녔다. 1926년 아버지 사망 후 상하이에 정착하였으며, 1927년 3월 엄항섭과 결혼하였다. 상해여자청년동맹, 한인애국단, 임시의정원, 한국독립당, 한국애국부인회 등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광복 이후 엄항섭이 1945년 11월에 환국하였고, 연미당과 가족들은 1946년 6월 입국하였다. 엄항섭·연미당 가족은 경교장에서 일주일을 보낸 후 성북동 산꼭대기 별장에 거처를 마련하고, 이후 삼청동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성북동에 거주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엄항섭
    인물
    엄항섭
    성북동에 거주했던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한 이래 임시의정원 의원, 청년동맹회 집행위원, 한국교민단 의경대장, 한국독립당 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임시정부 선전부장, 주석비서로 임명되어 광복 전까지 독립운동을 하였다. 광복 후 1945년 11월 환국하여 김구를 보좌하였고, 1946년 귀국한 가족들과 성북동 산꼭대기 별장에 거처를 마련하고 삼청동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성북동에 거주하였다. 그는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였고, 김구와 함께 1948년 4월 남북협상에 참여하였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고 같은 해 9월 납북되었다. 북한에서도 남북통일을 위해 노력했으나 1962년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1989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 이승만
    인물
    이승만
    동소문동(당시 돈암동)에서 거주한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독립협회에 참가해 활동했고, 고종 폐위 음모에 휘말려 약 6년간 옥고를 치렀다. 미국에 유학하여 5년만에 학사·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의 대통령이 되었고, 1925년 탄핵 면직되었다. 광복 후 귀국하여 반탁반공노선을 견지하였고, 남한 단독정부 수립 불가피론을 주창했다. 1948년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부산정치파동, 사사오입개헌, 3.15부정선거 속에서 세 차례 더 대통령에 선출되지만, 4.19혁명으로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환국 이후 돈암동의 돈암장에서 약 2년간 거주하였다. 돈암장의 구조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승만은 아래채를 썼고, 위채는 비서와 살림 맡은 사람들, 바깥채는 경비원들이 사용했다.
  • 강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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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윤국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자 생활을 하던 중 일제의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대우로 궐기하여 농성시위를 주도했다. 그 후 1945년 5월 여러 동지들과 함께 서울 관수동 유만수의 집에서 비밀결사인 대한애국청년당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그 해 7월 24일 저녁에는 친일매국대회가 개최되는 경성 부민관(현재 서울시의회)에 잠입하여 장치해 둔 2개의 폭탄을 터뜨려 대회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이 거사는 일제 말기 한민족의 민족적 의열투쟁의 대미를 장식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1977년 건국포장과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유공자 정보에 따르면 그의 주소는 서울 성북 정릉 16-29(현 정릉로40길 3)였다.
  • 권태휴
    인물
    권태휴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17년에 출생한 권태휴는 1927년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갔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함에 중국 중앙군관학교 특별훈련반에 입교하여 1942년 6월에 군사교육을 마쳤다. 이후 조선의용대에 입대하여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 1943년부터는 임시정부의 비밀명령을 받고 화중(華中) 일대에서 정보수집 등 지하활동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197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유공자 정보에 따르면 주소는 '서울 성북(城北) 성북동(城北洞) 131-55'였다.
  • 길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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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영희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경성의학전문학교 1학년 재학 중 만세운동을 논의하였고, 선배와 함께 학교 대표로 학생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1일 사전 계획대로 탑골공원으로 갔으나 민족대표들이 장소를 변경하여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을 하자, 독자적으로 독립선언식을 갖고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이후 체포되어 약 8개월의 옥고를 치르던 중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경신고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했고, 1938년경부터 인천에서 농촌계몽운동과 문맹퇴치운동을 전개했다. 광복 후 인천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했고, 1954년 제물포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을 겸임했다. 교직에서 물러난 뒤, 1969년 충남 덕산에 가루실농민학원을 설립, 농민교육에 헌신했다. 2005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김동수
    인물
    김동수
    돈암동(현 삼선교로 76)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23년 부친을 따라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소학교와 중학교를 마치고, 중국군관학교 뤄양분교에 입학하여 훈련을 받았다. 1937년 임시정부에 합류한 뒤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조직하여 부대장이 되었으며, 1941년 공작대원들이 중심이 되어 광복군 제5지대를 조직하였다. 그는 제5지대에서 시안(西安)을 중심으로 장병을 훈련시키는 동시에 선전·정보활동을 하였다. 1945년 4월 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에서 제3대 대장을 역임하였다. 광복 후 1946년에는 임시정부 주화대표단 동북특파원으로 중국 당국과 교섭하여 교포 귀국의 편의를 도모하다가 1948년 6월에 귀국하였다. 정부에서는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김여재
    인물
    김여재
    길음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본적은 황해도 황주(黃州)이다. 1944년 초 광복군 제1지대 제2구대에 입대하여 통역 및 포로심사, 연락업무 등을 담당하였다. 정부에서는 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유공자 정보에 따르면 김여재의 주소지는 서울 성북 길음동 595-61(현 길음동 598)였다.
  • 김영기
    인물
    김영기
    삼선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32년부터 대구사범학교에서 한문·조선어 교사로 근무하며 학생들에게 민족적 긍지를 심어주면서 학생들의 황도교육비판·민족정신을 함양시켰다.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의 문예부 등 비밀결사의 조직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그의 실질적 지도아래 이루어졌다. 1941년 대구사범학교 윤독회의 간행물인 『반딧물』이 일본 경찰의 손에 들어가게 됨으로써 비밀결사의 전모가 드러나 체포되었고, 6개월간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광복 후 대구사범학교 교장, 경북 교육회장, 서울시 교육위원 문화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정부에서는 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의하면 서울 성북 삼선1 247-1에 거주한 것으로 확인된다.
  • 김영재
    인물
    김영재
    성북동(현 동소문로 64)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31년 상해로 망명한 뒤 상해한인청년단을 조직하여 그 이사에 선임되었다. 또한 의열단에 가입하여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졸업하고 의열단 동지들과 함께 통합된 민족혁명당에서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35년에는 중국비행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중국 공군의 기계사 직책으로 대일전에 참가하였다. 1938년 10월 김원봉이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를 창립하자 그는 제3지대장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40년에 광복군 총사령부원으로서 충칭[重慶]에서 요인 경호 및 비서직을 맡았으며, 1945년에는 미군과 합작으로 한국항공대를 창설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민영숙
    인물
    민영숙
    돈암동(현 안암동1가 48)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27년 두 오빠와 함께 상해로 건너가 인성학교 등을 다녔다. 1942년 2월 중국 사천성 충칭[重慶]에서 임시정부의 법무부 직원에 임명되어 근무하였으며, 1944년 4월부터는 임시정부 법무부 총무과에서 근무하였다. 같은 해 6월에는 임시정부 외무부의 정보과원에 전보되어 근무하였고, 1944년 7월부터 회계검사원 조리원(助理員)을 맡아 일하면서 대적 방송에 종사하였다. 정부에서는 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박승호
    인물
    박승호
    동선동(현 동선동 84-41)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선천군의 원동교회 목사로 재직 중 3·1운동 만세시위를 주도하여 체포되었다. 1920년 8월 미국의원단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관전현의 광복군총영에서는 일제의 주요기관을 폭파하고, 요인을 암살하고자 결사대를 파견하였다. 그러나 국경 경비가 강화되어 무기의 반입의 늦어져, 미국 의원단이 선천을 통과하는 시기에 계획대로 실행하지 못하였다. 이후 대원들은 창고 및 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유인물을 살포하고 피신했다. 박승호는 세칭 '선천서투탄사건'의 범인 16인 중 한 사람으로 활약하다 잡혀 징역 5년을 언도받았다. 정부에서는 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서승효
    인물
    서승효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42년 서울에서 이우식 등 지인들에게 조선어학회에 출자하도록 권유하다 체포되어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당시 '성북 돈암 산48'(현 동소문로 179-42)에 거주하였다. 현재 집터 추정 장소에는 1965년에 준공된 돈암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 성동준
    인물
    성동준
    정릉동(현 정릉동 17-1)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44년 일본 규슈제국대학(九州帝大) 법과를 졸업하고 학병으로 동원되었다가,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일본군 60사단을 탈출하였다. 그는 김영남(金映男) 등과 함께 제3전구 충의구국군 사령부에 도착하여 미국 고문관에게 일본군 문서와 정보를 제공하였다. 이 사실은 3전구 사령부에 보고되어 전선일보(戰線日報)에 대서특필되었다. 이러한 공적으로 구국군 정치부 대일선전과에서 박영(朴英)과 함께 선전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광복군에 편입되어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았다. 정부에서는 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안석응
    인물
    안석응
    돈암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유여대 등과 함께 의주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했다. 3월 1일 오후 2시 읍내 교회에 8백여 명의 교인을 중심으로 한 시위군중이 모이자, 대형 태극기 2개를 교회에 세워놓고 종이로 만든 백여 개의 작은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누어주었다. 유여대의 독립선언서 낭독이 끝나자, 시위군중과 함께 만세삼창을 외치고 행진을 했다. 그는 일제의 검속 때 체포되어 보안법 위반 혐의로 옥고를 치렀다. 그는 출옥 후 의주에서 상해임시정부의 군자금모집을 위해 활동하였고, 1928년부터 1929년까지 신간회 진천(鎭川)지부장으로 활약하며 독립사상 고취에 노력하였다. 정부에서는 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엄송여
    인물
    엄송여
    성북구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경기 개성출신으로 1929년 개성에서 학생운동에 참가하였고, 이후 중국 난징[南京]으로 건너갔다. 1934년에는 중국 군관학교 낙양분교의 한국인학생특별반에 입교하여 군사훈련을 받고 1935년 졸업하였다. 1935년 애국단에 가입하여 밀명을 받고 국내에 들어왔으나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개성역에서 체포되었다. 다음해 2월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에는 육군에 입대하여 6.25전쟁에 참가하였으며, 1956년 육군대령으로 전역하였다. 1977년에는 대통령표창,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2002년 대전 보훈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하였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의하면 '서울 성북 □□ 787'에 거주한 것으로 확인된다.
  • 오기열
    인물
    오기열
    돈암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전라북도 진안군 출신으로 1919년 진안 마령면 평지리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독려하는 격문 3통을 작성하여 게시판에 붙이고, 시위군중을 인솔하며 선두에서 시위를 전개했다. 이때 체포되어 보안법 위반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복역하였다. 해방 후 초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남 진안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48년 반민족행위처벌법 특별기초위원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에 위촉되었다. 같은 해 12월 조소앙 등과 함께 사회당 발기인대회에 참여했다. 1950년 8월, 전주를 점령한 조선인민군에 의해 전주형무소에서 피살되었다. 1977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따르면 돈암1동에서 거주하였는데, 상세 지번은 확인할 수 없다.
  • 유봉영
    인물
    유봉영
    장위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평안북도 철산 출신으로 1919년 철산의 명흥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3.1운동에 앞장섰다. 경찰과 충돌한 후 2,000원을 가지고 상해로 망명했다. 임시정부 재무부에서 일하면서 재정지원을 하다가 여러 차례 수감되어 옥고를 치렀다. 1936년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하여 1940년 폐간될 때까지 재직하였고, 광복 이후 조선일보가 복간한 뒤 재입사하여 1971년 퇴사했다. 학교법인 숙명학원 이사장과 제8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정부에서는 1977년에 대통령표창을,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에는 주소가 성북(城北) 장위(長位) 219(현 장위동 219-3)로 표기되어 있으나, 그의 별세 기사를 통해 자택 주소는 장위동 219-403번지인 것을 확인했다.
  • 윤하진
    인물
    윤하진
    삼선동3가(현 보문로29길 103)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평안북도 의주 출신으로 1919년 3.1운동 이후 독립운동단체인 광제청년단을 조직하여 재무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에는 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에서 오동진과 함께 사령부 제2영에 소속되어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이후에는 국내진공작전을 효율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압록강 연안에 설립된 광복군총영에서 활동했다. 평안남도 경찰국과 선천경찰서 폭탄투척에 성공하는 등 성과를 거두었다. 1926년 체포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44년에는 잔칫집에서 일본의 패전을 강조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광복을 맞아 출옥했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이동화
    인물
    이동화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36년 도쿄제국대학 졸업 후 혜화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했다. 경성콤그룹 학생부의 비합법 독서회에서 이론을 지도했다. 1941년 성북정 하숙집에서 경성콤그룹의 김한성으로부터 혁명운동에 참여할 것을 의뢰받았는데, 경성콤그룹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면서 체포되었다. 1944년 경성지방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에 참가했고, 북한으로 가서 평양민보 주필, 조소문화협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김일성대학에서 정치학을 강의했다. 월남하여 대한민국 육군본부 정보국에서 일했고,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1955년 진보당 창당준비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5.16군사정변 이후 혁신계 엄단조치에 의해 1962년 구속, 1964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 이윤장
    인물
    이윤장
    장위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충북 청주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광복군으로 활약하며 항일투쟁에 앞장선 애국지사이다. 중국 광시성[廣西省] 류저우[柳州]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하여 항일투쟁에 관한 계몽 및 선전활동을 전개했다. 그후 광복군 제2지대에 편입되어 산시, 허난 지구에서 일본군 와해 공작활동을 전개했다. 정부에서는 1977년에 건국포장을,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유공자 정보에 따르면 그의 주소는 '서울 성북(城北) 장위(長位) 74-54'(현 장위동 74-54번지)였다.
  • 이정선
    인물
    이정선
    상월곡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21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난 이정선은 1939년 중국 난징의 국립중앙대학 재학 중 항일비밀결사 한족동맹회와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결성하여 지하공작을 전개했다. 이후 1942년 5월 중국 시안에서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하여, 입대 지망자들을 모집하는 활동, 대적 선전공작, 일본군 동향에 대한 정보수집 등 적후방공작을 전개했다. 1945년 5월에는 한미군사합작훈련인 OSS훈련 무전반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국내 침투공작을 위하여 대기하던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정부에서는 1977년 건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유공자 정보에 따르면, 이정선의 주소는 '서울 성북(城北) 상월곡 6-24'(현 상월곡동 산6-3)였다.
  • 임광세
    인물
    임광세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44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재학 중 조선민족해방협동당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조선 독립의 가능성을 의식하면서 영국, 미국에 종속되는 독립을 할 바에는 조선인 스스로 독립운동을 하여 조선인의 실력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이들은 무장투쟁을 위해 경기도 포천의 깊은 산속에 본거지를 두고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락하는 한편, 미국으로 하여금 B-29폭격기를 통해 무기를 산속으로 공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임광세는 1944년 10월 포천의 아지트로 입산하려던 도중 체포되어 1945년 6월 기소유예로 출옥했다. 정부에서는 2013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유공자 정보에 따르면 그의 주소는 서울 동대문(東大門) 돈암(敦岩) 29-55(현 돈암동 29-1)였다.
  • 장기영
    인물
    장기영
    장위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강원도 영월 출신으로 1924년 상해임시정부에서 안창호, 김구의 권유로 미국에 건너가 인디애나대학을 졸업했다. 1932년 이승만의 부름을 받고 워싱턴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위원부의 위원으로 임명되어 독립자금을 모집하고, 교민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시키는 등의 활동을 했다. 1943년 미국과 일본의 전쟁이 확대되자 미군에 자원입대하여 충칭[重慶]에 있던 임시정부의 연락원으로 활동했다. 광복 후에는 강원도 영월에서 무소속으로 초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체신부장관, 서울특별시장, 신민당 운영위원, 국민당 사무총장, 민중당 총재 등을 역임했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았다. 주소는 '서울 성북(城北) 장위(長位) 246-396'이었다.
  • 조재옥
    인물
    조재옥
    성북동 286번지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조재옥은 1935년 경성법학전문학교 재학 중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조선의 독립과 신사회 건설에 뜻을 두었다. 1939년에는 자신이 거주하던 성북정 하숙집에서 윤명의, 조희영과 회견하고 독서회를 조직하여 신사상을 연구했다. 1940년 경성콤그룹에 가입하여 조선 독립과 신사회 건설을 위한 실천 활동을 전개했다. 1941년에는 김한성의 집에서 독소전쟁 발발 후의 정세에서 일본과 소련의 전쟁은 필연적이므로 그에 따른 혁명의식을 고취하는 기관지 발행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폐결핵으로 병보석되었으나, 다음 해인 1944년 7월 1일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200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최철
    인물
    최철
    정릉동(현 서경로 124)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경기도 개성 출신으로 광복군 최동균(이명 최일성)의 동생이다. 1938년에 형과 함께 뤄양[洛陽]으로 건너갔다. 1940년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입대했고,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 제4단특과대학원대한청반에서 훈련을 받고 제1기로 졸업했다. 그 뒤 황포군관학교 보병과에 입교하였으며 광복군 제2지대에 합류하여 제3구대 제3분대장을 맡아 대원 모집과 선전, 정보수집 등의 공작을 수행했다. 1944년 미국 국방성 전략첩보국의 협조로 국내진공을 위한 특수훈련을 받고, 연합군 최후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대기하던 중 광복을 맞이했다. 카이펑, 허난 지구에서 일본군 내 한국인 장병의 인수 공작을 하다가 귀국했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홍애시덕
    인물
    홍애시덕
    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경기도 수원 출신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유관순과 함께 비밀결사인 여성동지회를 조직하여 활동했고, 1920년 김활란 등과 7인전도회를 조직해 전국을 순회하며 계몽운동을 하다가 경찰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3년 조선기독교여자절제회 결성에 참여하여 여성 권익옹호 및 사회풍토 개선활동을 했다. 1926년 기독교계 인사들과 함께 망월구락부를 결성하여 사회주의 계열 여성운동과 협력을 모색했다. 이후에도 1927년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 회장 역임하고, 근우회의 결성준비에 참여하는 등 종교를 통한 여성운동과 항일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1977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안암동 4가에서 거주한 것으로 확인되는데, 상세 주소는 알 수 없다.
  • 김준엽
    인물
    김준엽
    안암동의 고려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944년 일본 게이오대학 2학년 재학 중 학도병에 징집되었다. 중국 쉬저우지역에서 기초훈련을 받고 경비중대에 배치되었으나, 1944년 3월 하순 부대를 탈출했고, 이후 중국 중앙군 소속 유격대에 배치되었다. 6월 장준하, 윤경빈 등과 함께 충칭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향해 떠났다. 광복군 훈련반에 입교하여 1945년 광복군 제2지대에 편입되었으며, 8월 초 미국 전략정보국의 특별군사훈련을 받고 광복군 국내 정진군 강원도반 반장에 임명되어 국내진입의 날을 기다리던 중 광복을 맞이했다. 광복 후 고려대학교 문리대 조교, 교수를 거쳐, 1982년 고려대학교 제9대 총장을 역임하였다. 정부에서는 1980년에 건국포장을,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다.
  • 차미리사
    인물
    차미리사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차미리사는 조국의 자주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교육 구국운동이 시급하며, 특히 여성교육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실천한 근대 민족교육운동가이다. 1900년대 초 외국 유학을 떠난 신여성으로, 미국에서 대동교육회, 대동보국회 활동을 하였다. 1917년 선교사로 귀국한 후 배화학교 사감으로 있었다. 3.1운동 이후에는 여성 교육과 생활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조선여자교육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근화여학교를 설립, 교장에 취임하였다. 1950년에는 덕성여자초급대학(현 덕성여자대학교)을 설립하였다.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유공자 정보를 통해 '돈암동 117-1'번지에 거주하였음을 확인하였다.
  • 신익희
    인물
    신익희
    정릉동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894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早稲田]대학 정경학부에 유학하여, 『학지광』의 발간을 주도했다. 만주와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등지를 드나들면서 해외독립운동원과의 연락을 맡았고, 안으로는 민족지도자들과 독립운동의 방법을 토의하여 3.1운동의 도화선을 당기는 데 일역을 담당했다. 만세시위에 가담했던 신익희는 1919년 3월 다시 상하이로 떠나 26년 간의 망명생활을 시작했다. 대한민국임시헌법을 기초했고, 임시정부의 초대 대의원과 초대 내무차관 등을 역임했다. 광복 이후 임시정부 요인의 한 명으로 귀국한 신익희는 활발한 정치활동을 전개했다. 초대 국회에서 국회의장으로 활약했고, 1956년에는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출마하였으나, 선거를 앞두고 사망하였다.
  • 5인 독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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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인 독서회
    성북구에 거주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소속된 학생 항일단체이다. 1940년 10월, 중앙중학교의 노국환, 조성훈(이상 돈암동 거주), 이기을(안암동 거주), 황종갑, 유영하 등 5명이 민족정기와 독립쟁취에 관한 협의와 역사·정치에 관한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5인독서회'를 조직하였다. 점차 활동 범위를 확대해갔지만 1941년 7월 황종갑의 서신이 발각되어 같은 해 8월 검거되었다. 관련 학생들은 함흥형무소에 있다가 100일 내에 석방되었고, 지도교사였던 최복현은 1943년 출옥하였다.
  • 경성트로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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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트로이카
    조선공산당의 재건을 위해 조직된 사회주의 단체이다. 1930년대 당 재건 운동 당시 이재유가 회원들이 각자 자유롭게 활동하다가 때를 기다려 조직을 만들자는 ‘트로이카 운동’을 제안하였고, 1933년 8월 경성트로이카가 결성되었다. 경성트로이카는 1933년부터 1936년까지 노동운동, 학생운동, 반제국주의운동 등을 진행하면서 대중 기반의 확대를 꾀하였다. 경성부 성북정 184-32에 거주하였던 정태식은 이 단체의 주요 구성원으로 경성콤그룹에서도 활동을 하였다. 이밖에 돈암정에 살았던 박진홍, 신설리에 살았던 이효정 등도 조직원으로 활동하였다.
  • 조선민족대동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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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민족대동단
    항일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1919년 3월 일진회 회원이었던 전협과 최익환이 중심이 되어 조직되었으며, 귀족, 관계(官界), 유림, 종교계, 상공인, 청년학생을 대상으로 단원을 모집하였다. 제2의 독립만세시위를 목적으로 사회각층의 인사들을 포섭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김가진을 총재로 추대하였다. 김가진은 의친왕 이강과 사돈 관계로 상해임시정부 특파원 이종욱에게 의친왕의 서울 탈출을 위한 공작을 추진케 하였다. 1919년 11월 10일 의친왕 등 5명의 수색역을 출발해 만주 안동행 열차에 탑승하였으나 안동역에 도착할 무렵 일본 경찰에 적발되어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대동단 조직은 일망타진되었고, 이후 의친왕은 일제에 의해 성북동 별장(성락원)에서 유폐 생활을 하게 되었다.
  • 신간회
    인물
    신간회
    1920년대 후반 좌익과 우익세력이 합작하여 결성된 독립운동단체이다. 1926년 순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일어난 6.10만세운동의 자극받아 국내에 있는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공산주의자 간의 타협에 의해 민족유일당운동으로 조직되었다. 성북구에 거주하였던 독립운동가 중 신간회에 참여했던 인물이 여러 명이 있다. 조헌영은 신간회의 도쿄지회장을 지냈고, 한용운은 신간회 중앙집행위원과 경성지회장을 겸하였다. 최익한은 신간회 창립총회 당시 규칙심사위원이자 간사로 선출된 바 있고, 안재홍 역시 신간회의 총무간사로 활동했다. 이밖에 이기석, 홍기문, 문준석, 유진희 등이 신간회에서 활동했던 성북인들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신간회는 1931년에 이르러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 간의 갈등으로 인해 해산되었다.
  • 조선건국동맹
    인물
    조선건국동맹
    1944년 조직된 비밀결사단체이다. 여운형이 태평양전쟁으로 일본의 패망이 가까워졌음을 확신하고 조동호, 이만규 등과 함께 조선 독립을 목표로 비밀결사단체를 조직하였다. ‘불문(不文)’, ‘불언(不言)’, ‘불명(不名)’ 을 3대 원칙으로 내세우고 조선 민족의 자유와 독립 회복, 반동세력 박멸, 민주주의 원칙에 의한 정치와 노농 대중의 해방 등의 강령에 따라 행동하였다. 조선건국동맹에서 활동했던 인물 중에는 돈암동에 거주했던 이기석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조선건국동맹에서 주로 노농군 편성을 위한 활동을 하였다.
  • 조선어학회
    인물
    조선어학회
    우리말과 글 연구를 목적으로 창립된 학술단체이다. 1908년 8월 주시경과 김정진 등이 ‘국어연구학회’를 창립하여 활동하였으나 1917년 활동이 중단되었다. 1921년 12월 임경재, 최두선, 이승규 등이 모여 ‘조선어연구회’라는 이름으로 학회를 재건하고, 1931년 1월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고쳤다. 조선어학회는 학문 연구뿐 아니라, 말과 글을 통해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일을 실천하였다. 1942년 일제에 의해 학회의 중요 인사가 모두 검거되거나 기소되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인해 학회활동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광복과 함께 활동을 재개하였고, 1949년 9월 5일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한 인사 중 성북구에 거주했던 인물로는 안재홍, 최두선, 이극로 등이 있다.
  • 조성회
    인물
    조성회
    정릉동에 거주 인물이 결성한 항일결사단체이다. 1942년 정릉동에 거주했던 심정섭은 지인 신현수의 민족주의 사상에 감화를 받는다. 1943년 9월 정릉동 자택에서 신현수, 송인헌 등과 함께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조성회(助成會)’를 조직하고 조성회 창립선언일을 명시한 선언문을 120명에게 송부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이 일제에 발각되어 심정섭은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5년형을 받았다.
  • 의열단
    인물
    의열단
    1919년 11월 만주에서 조직된 민족주의 노선을 지향하는 항일 무력독립운동단체이다. 창단 단원은 대체로 신흥무관학교 출신이 중심이 되었고, 단원은 김원봉, 윤세주 등 13명이었다. 의열단은 창단 직후 ‘공약10조’와 뒤에 ‘5파괴’, ‘7가살(可殺)’이라는 행동목표를 독립운동의 지침으로 채택하였고, 일본 고관 암살과 관공서 폭파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6년부터는 사회주의 이론을 수용하였고, 1928년 “창단9주년기념성명”을 계기로 급진적 민족주의 내지 사회주의 노선으로 전환하였다. 성북동에는 의열단의 통신기관이 있었으며(1924.05.04. 『시대일보』 기사), 독립운동가 오세덕은 의열단원 김시현에게 자신의 집을 은신처로 내어 주는 등 의열단 지원 활동을 하다가 구여순 사건으로 연루돼 옥고를 치렀다.
  • 성북천
    장소
    성북천
    북한산 서쪽 구준봉에서 발원하여 성북동·안암동을 지나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개천이다. 안암동을 지나는 구간은 안암천, 안감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부터 마전터로 이용되었으며, 물이 맑아 아이들의 놀이터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뿐 아니라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500여명의 사람들이 만세 시위를 벌렸던 장소이기도 하다. 1960년대 말 삼선교~성북경찰서 뒤편 총 1,300m를 복개한 것을 시작으로 1990년대 청계천 합류지역에서부터 보문동 1가 성암교회까지의 구간을 제외한 상류지역이 모두 복개하였다. 2002년 성북천 복원·정비공사에 착공하여 2019년 현재 성북동 성북아파트~한성대입구역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원되었다.
  • 만해 한용운 심우장
    장소, 유물
    만해 한용운 심우장
    성북구 성북로29길 24에 있는 유적이다. 독립운동가이자 「님의 침묵」을 지은 시인이며, 불교개혁가였던 만해 한용운이 1933년부터 1944년 6월 29일 입적할 때까지 살던 집이다. 심우장은 벽산 스님이 땅을 제공하였고, 수학교사인 최수동이 설계하였으며, 방응모와 박광, 그리고 아내 유숙원 등이 자금을 보태어 만들어졌다. 조선총독부가 보기 싫어 북향으로 지었다고 전해진다. 한용운은 이곳에 거처하며 그의 또 다른 본거지인 선학원을 출입, 불교 개혁운동과 독립운동을 이어갔으며, 『흑풍』을 집필하는 등 문학 활동도 이어갔다. 현재 심우장 입구에 만해 산책 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매년 6월 29일 선생의 기일에 성북문화원 주관으로 추모 다례가 열린다. 2019년 4월 8일 사적 제550호로 등록되었다.
  • 김광섭 집터
    장소
    김광섭 집터
    「성북동 비둘기」(1969)를 쓴 시인 김광섭[1905-1977]이 1961년부터 1966년까지 5년 간 거주하였던 성북동의 가옥이 있던 자리이다. 가옥 건물은 1990년대 후반까지 약 40년 간 존재했다가 다세대주택이 들어서게 되면서 철거되었다.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했던 건물로, 3미터 가량의 축대를 쌓고 60여 평의 대지에 지은 2층 기와집이었다. 김광섭 시인 이후에는 어느 은행원이 이 집을 소유했다가 1990년대 당시 서울대 천연물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이 집에서 30년 이상 거주한 적이 있다(『경향신문』 1996.09.08.). 현재 이 자리에는 2003년에 지어진 빌라가 들어서 있다.
  • 오세덕 집터
    장소
    오세덕 집터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안암리 127번지(현 성북구 안암로9가길 57, 49, 59)에 있었던 독립운동가 오세덕의 집이다. 오세덕은 1897년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현재 성북구 안암동)에서 태어났다. 오세덕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철원(鐵原)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으며, 이후 철원애국단을 조직하여 임시정부와 연락하며 활동하는 등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3월에는 의열투쟁을 전개하던 김시현이 이른바 '황옥 경부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폭탄밀반입시도로 경찰에 쫓기게 되자 안암리 127번지에 있던 오세덕의 집에서 은거하였다. 현재 오세덕의 집터에는 빌라들이 들어서 있으며 집터의 뒤편으로는 고려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 장동옥 집
    장소
    장동옥 집
    성북구 성북동 191에 있었던 독립운동가 장동옥의 집이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 12월 의열단원이었던 김상옥을 잡기 위해 경관들이 주변 인물들을 체포하고자 출동하여 장동옥의 집을 가택 수색하였고, 이어서 관수동에 있었던 무산자동맹회에 가서 의열단원인 김한을 구인하였다. 당시의 신문기사로 이 정도의 정보만 확인할 수 있다. 비록 장동옥의 구체적인 행적은 확인되지 않고 아직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지도 못했지만, 의열단원으로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일본 경찰들과 교전하다 숨진 김상옥과 관련된 인물인 것으로 보아 비밀리에 활동하던 독립운동가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 최복현 집터
    장소
    최복현 집터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최복현의 집터이다.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의 유공자 정보에는 최복현의 주소가 서울 성북 정릉 192-272로 표기되어 있다. 경사면에 위치한 이 집은 위채와 아래채가 있는데, 출입구도 2개이다. 현재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 뮤지컬 심우
    작품
    뮤지컬 심우
    성북동의 심우장을 배경으로 한 창작뮤지컬이다. 성북구에 연고를 둔 극단 더늠에서 2014년에 초연하였다. 1937년 봄, 만해 한용운이 심우장에서 일송 김동삼의 장례를 치른 일화를 중심으로 공연이 진행된다. 독립운동가의 치열한 삶과 고민을 녹여낸 이 공연은 2014년 초연 이후 성북구의 대표적 문화공연으로 자리잡았다. 공연 시작 전 뮤지컬과 심우장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는 시간을 마련해 한용운 선생에 대해 잘 모르는 관람객들도 쉽게 관람할 수 있다.
  • 우당 이회영 손자 이종철
    우당 이회영 손자 이종철
    조부 이회영 선생, 조모 이은숙 여사, 부친 이규창 선생의 삶과 독립운동, 해방 이후의 가족들의 삶 등을 구술
  • 독립군 김혁장군 증손자 김성태 가족
    독립군 김혁장군 증손자 김성태 가족
    독립군 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와 증손자며느리(이정하)로 김혁 장군의 삶과 독립운동, 김동삼 선생과의 관계 등을 구술
  • 독립운동가 정재용 집터 추정(1)
    시청각류
    독립운동가 정재용 집터 추정(1)
    독립운동가 정재용의 집터로 추정되는 첫 번째 장소이다. 정재용은 188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으며, 평양 감옥에서 2년 6개월 간 옥고를 치르었다. 장위동 219-100번지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독립운동가 정재용 집터 추정(2)
    시청각류
    독립운동가 정재용 집터 추정(2)
    독립운동가 정재용의 집터로 추정되는 첫 번째 장소이다. 정재용은 188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으며, 평양 감옥에서 2년 6개월 간 옥고를 치르었다. 장위동 219-100번지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1977년에 건국포장,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독립운동가 정재용 집터 추정(3)
    시청각류
    독립운동가 정재용 집터 추정(3)
    독립운동가 정재용의 집터로 추정되는 두 번째 장소이다. 지금은 다세대 주택이 들어선 모습이다. 정재용은 188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으며, 평양 감옥에서 2년 6개월 간 옥고를 치르었다. 장위동 219-100번지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1977년에 건국포장, 199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유우석 선생이 살던 정릉 주소지의 집
    시청각류
    유우석 선생이 살던 정릉 주소지의 집
    백노 유우석이 말년을 보낸 정릉동 집이다. 유우석은 유관순의 친오빠로, 1919년 4월 1일 학생대표로 공주에서 독립만세운동을 하였으며 이후에도 해방까지 계속해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아내는 독립운동가 조화벽이다. 현재는 이 자리에 돈암동 코오롱 하늘채 아파트가 들어서있다.
  • 강영준 집터
    시청각류
    강영준 집터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강영준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거주지 일대는 아파트단지와 빌라가 들어섰다. 현재의 성북세무서 지역으로 추정된다.
  • 강천룡 집터
    시청각류
    강천룡 집터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강천룡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지금은 빌라와 주택이 건립되었고 산은 주택지로 개발되어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다.
  • 김광섭 집터(원익스카이빌)
    시청각류
    김광섭 집터(원익스카이빌)
    성북문화원 대학생기자단에서 촬영한 김광섭 집터에 세워진 빌라 사진이다.
  • 김수룡 집터
    시청각류
    김수룡 집터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김수룡의 집터이다. 성북동 대로에 인접한 좁은 골목에 위치해 있다. 현재 단층 단독주택이 그 자리에 있다.
  • 김복진 집터
    시청각류
    김복진 집터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김복진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현재는 언제 지어졌는지 알 수 없는 한옥이 위치해 있고, 마당에는 큰 은행나무가 보인다.
  • 김의한·정정화 집터
    시청각류
    김의한·정정화 집터
    돈암동(현 동선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정정화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정정화와 그의 남편 김의한, 아들 김자동은 해방 이후 돈암동의 한옥에서 거주하였다고 한다. 당시의 집 주소는 돈암동 178-1번지였고, 성신여자고등학교 앞쪽에 위치해 있었다. 사진은 성신여자고등학교 아래 동선동 주민센터 부근이다.
  • 김재황 집터
    시청각류
    김재황 집터
    돈암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 김재황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성북천이 한성대입구역쪽으로 접어들면서 꺽이는 곳으로 지금은 많은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 김현국 집터
    시청각류
    김현국 집터
    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김현국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그는 안암정86-11번지에 거주하였다. 현재 넓은 공터에 주유소가 들어서 있다.
  • 나중소 집터
    시청각류
    나중소 집터
    정릉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나중소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현재 아리랑로 5길 주변으로 추정되며 주변에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있다.
  • 문석준 집터
    시청각류
    문석준 집터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문석준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그의 집으로 추정되는 장소에는 2층 주택이 자리하고 있다. 혜성교회와 경신중학교의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으며, 그 일대에는 빌라촌이 들어서있다.
  • 박노태 집터
    시청각류
    박노태 집터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박노태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그는 당시 성북정 198-1번지에 거주하였다. 현재 그 자리에는 상가건물이 세워져 동물병원과 식당이 들어서 있다.
  • 박홍식 집터
    시청각류
    박홍식 집터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박홍식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박홍식의 당시 주소지는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 5번지로 현주소지는 성북구 성북동 5-1번지로 추정된다. 현재의 서울 성북동 별서 부지 내에 집터가 있다. 서울 성북동 별서 출입구 바로 안쪽에 있는 건물로 추정된다.
  • 배성룡 집터
    시청각류
    배성룡 집터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배성룡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2020년 현재 빌라 건물과 자동차 정비소가 들어서 있다.
  • 장건상 집터
    시청각류
    장건상 집터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장건상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장건상의 자택은 정릉천 변의 손가정 바로 앞이었다. 현재 빌라 건물이 건축되었고, 건물의 1층에는 편의점이 운영 중이다.
  • 백매수 집터
    시청각류
    백매수 집터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백매수의 집터이다. 백매수는 1991년에 자택인 성북동 58-18번지에서 작고하였다. 그 자리에는 오래된 한옥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 손용우 집터
    시청각류
    손용우 집터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손용우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그가 항일운동을 하다가 경찰에 체포될 당시 거주지는 성북정 133-60이었다. 성북로 변에 위치한 이 자리에는 현재 오래된 이용원(새이용원)과 단층 주택이 세워져 있다.
  • 신낙현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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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낙현 집터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신낙현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그는 당시 동대문구 돈암정 69-27번지에 거주하였으며, 성신여대입구역 7번 출구 앞 8차선 도로변에 들어선 미술학원 및 카페건물로 추정된다.
  • 신형균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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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형균 집터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신형균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현재 이 부근에는 빌라가 밀집되어 있고, 추정되는 집터에는 공인중개사 사무소와 어린이집 등이 들어서 있다.
  • 안재홍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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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홍 집터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안재홍의 집터이다. 해방 후 돈암동 산11-152번지에서 거주하였다. 6.25전쟁 때 납북되었지만 남은 그의 가족들은 한동안 돈암동에서 생활하였다. 현재 그의 집터는 동선동 주민센터와 성신여자고등학교 사이로 추정된다.
  • 오세덕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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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덕 집터
    독립운동가 오세덕의 집이다. 그는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현 성북구 안암동)에서 태어났다. 당시 주소지는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안암리 127번지(현 성북구 안암로9가길 57, 49, 59)이다. 현재 오세덕의 집터에는 빌라들이 들어서 있으며 집터의 뒤편으로는 고려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 오세창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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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창 집터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오세창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그 자리에는 현재 술집과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 유영민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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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민 집터
    정릉동에서 거주하고 활동한 독립운동가 유영민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현재는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빌라가 세워져 있다.
  • 유우석·조화벽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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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우석·조화벽 집터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유우석의 집터이다. 유우석은 성북구 정릉동 604-16번지에 거주하였는데, 현재 유우석이 살던 집터에는 돈암코오롱하늘채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집터 추정 지역을 사진 촬영하였다.
  • 이강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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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 집터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이강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이강이 살던 재건주택은 주민들 사이에서 ‘영단주택’으로 불리고 있으며, 현재 정릉1동 힐스테이트아파트에서 우성아파트 사이에 위치하였다고 한다. 추정 지역의 중심부를 사진 촬영하였다.
  • 이규창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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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창 집터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이규창의 집터이다. 재건주택이라 불리는 작은 마당이 있는 단층주택이었는데, 현재는 빌라 건물이 건축되었다.
  • 이근창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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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창 집터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이근창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이근창은 체포 당시 성북정 177-25번지에 거주하고 있었다. 해당 장소에는 현재 신축 한옥 건물이 들어서 있다.
  • 이길용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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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길용 집터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자 기자 이길용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선잠단지 부근의 언덕에 위치한 이 장소에는 현재 작은 규모의 공동주택이 세워져 있다.
  • 종연방직주식회사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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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연방직주식회사 터
    종연방직주식회사가 있던 터이다. 1933년 9월 21일 종연방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전면에서 이끌다가 체포되었다. 종연방직의 위치에는 현재 대광고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보문동 방향으로 사진을 촬영하였고, 도로를 기준으로 좌측이 보문동, 우측이 동대문구 신설동이다.
  • 강윤국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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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윤국 집터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강윤국의 집터이다. 길음교 사거리의 대로변에 위치해 있다. 현재 이 장소에 지어진 건물에는 음식점과 PC방 등이 운영되고 있다.
  • 이육사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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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육사 집터
    종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이육사의 집터이다. 현재 빌라가 밀집되어 있는 주택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 숭인면사무소 터(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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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인면사무소 터(추정)
    행정구역 변경으로 인해 숭인면사무소는 여러차례 이전되었는다. 강북구 미아동 송천아파트 부근은 숭인면사무소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 중 하나이다. 길음동과 접해있는 장소이다.
  • 정만산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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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만산 집터
    월곡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정만산의 집터 추정 장소이다. 동덕여자대학교 바로 앞에 위치한 장소로, 현재 상가 건물이 지어져 있다. 이 건물에는 월곡1동 우편집중국과 미용실, 카페 등이 운영 중이다.
  • 정진숙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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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숙 집터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정진숙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해당 장소에는 현재 오래된 한옥과 상가 건물이 들어서 있다. 독립운동가 이근창의 집터와 이웃해 있다.
  • 조병옥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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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병옥 집터
    돈암동(현 동선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조병옥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당시 조병옥의 주소는 돈암동89-7번지였는데 해당 주소지는 지도에서 찾을 수 없었다. 돈암동 전차 종점 근처 태극당제과 옆의 골목에 조병옥 가옥이 있었다는 증언을 토대로 장소를 추정하였다.
  • 조소앙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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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소앙 집터
    돈암동(현 동소문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조소앙의 집이다. 한성대입구역 근처에 자리한 이 집은 현재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일반 주택으로 이용 중이다.
  • 최승우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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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승우 집터
    안암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승우 집터이다. 최승우는 안암동에서 태어나고 거주했다. 본적과 주소 모두 서울 동대문 안암정 228번지였다. 집터로 추정되는 지역을 사진 촬영하였다.
  • 최용덕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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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용덕 집터
    성북동 출신 독립운동가 최용덕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현재 단독주택이 들어서 있다.
  • 최익환 집터
    시청각류
    최익환 집터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최익환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언덕에 위치한 이 장소는 현재 고급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 피한봉 집터
    시청각류
    피한봉 집터
    안암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피한봉의 집터이다. 피한봉은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안암동 164번지(현 성북구 안암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집터 추정 장소를 사진 촬영하였다.
  • 권태휴 집터
    시청각류
    권태휴 집터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권태휴의 집터이다. 경신중고등학교 근처에 위치한 이 장소에는 현재 빌라 건물이 들어서 있다.
  • 길영희 집터
    시청각류
    길영희 집터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길영희의 집터 추정 장소이다. 성북동 언덕에 위치한 이 추정 장소에는 단독 주택이 들어서 있다.
  • 김동수 집터
    시청각류
    김동수 집터
    삼선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김동수의 집터 추정 장소이다. 집터 추정 장소에는 현재 빌라 건물이 들어서 있다.
  • 김여재 집터
    시청각류
    김여재 집터
    길음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김여재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계성고등학교와 접해 있는 이 장소는 재개발이 진행되어 현재 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 김영기 집터
    시청각류
    김영기 집터
    삼선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김영기의 집터이다. 삼선동 재개발 진행 구역에 인접한 좁은 골목에 위치해 있다. 현주소는 삼선동1가 247-1번이며, 현재 그 자리에는 빌라 건물이 새로 건축되었다.
  • 김영재 집터
    시청각류
    김영재 집터
    동소문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김영재의 집터이다. 한성대입구역과 성신여대입구역 사이의 대로변에 위치한 해당 장소의 건물에는 카페가 운영되고 있다. 건물 뒤쪽은 성북천과 접해있다.
  • 민영숙 집터
    시청각류
    민영숙 집터
    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민영숙의 집터이다. 성신여자대학교와 성북천 사이의 골목에 있다.
  • 박승호 집터
    시청각류
    박승호 집터
    동선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박승호의 집터이다. 성신여자고등학교 바로 뒤편에 위치해 있다.
  • 서승효 집터
    시청각류
    서승효 집터
    독립운동가 서승효의 집터 추정 장소이다. 현재 집터 추정 장소에는 1965년에 준공된 돈암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 성동준 집터
    시청각류
    성동준 집터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성동준의 집터 추정 장소이다. 집터 추정 장소는 현재 도로에 편입되었다. 길음교 사거리에서 정릉역으로 향하는 대로이다.
  • 유봉영 집터
    시청각류
    유봉영 집터
    장위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유봉영의 집터 추정 장소이다. 북서울꿈의숲 맞은 편의 언덕에 위치한 장소이다. 추정 장소 가운데 한 부분을 사진 촬영하였다.
  • 이동화 집터
    시청각류
    이동화 집터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이동화의 집터이다. 경신중고등학교 부근의 가파른 언덕에 위치한 이동화의 집터에는 현재 단독주택이 건축되어 있다.
  • 윤하진 집터
    시청각류
    윤하진 집터
    삼선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윤하진의 집터 추정 장소이다. 윤하진의 집터 추정 장소에는 현재 한성대학교 글로벌빌리지라는 건물이 들어서 있다.
  • 이윤장 집터
    시청각류
    이윤장 집터
    장위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이윤장의 집터이다. 돌곶이역에서 북서울꿈의숲으로 가는 대로의 사거리 모서리에 위치해 있다. 현재 이윤장의 집터는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어 공사가 진행 중이다.
  • 이정선 집터
    시청각류
    이정선 집터
    상월곡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이정선의 집터 추정 장소이다. 월곡중학교 바로 뒤편에 위치한 장소이다. 그 자리에는 현재 단독주택이 건축되어 있다.
  • 임광세 집터
    시청각류
    임광세 집터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임광세의 집터 추정 장소이다. 길음교사거리 가까이에 위치한 임광세의 집터는 현재 동소문로에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미아리고개를 넘어서 길음교사거리를 바라보며 촬영하였다.
  • 장기영 집터
    시청각류
    장기영 집터
    장위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장기영의 집터이다. 월곡산 아래의 높은 언덕 주택가 끝에 위치해있다. 월곡초등학교 뒤편이다. 현재 오래된 단독주택이 건축되어 있다.
  • 조재옥 집터
    시청각류
    조재옥 집터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조재옥의 집터이다. 현재 조재옥의 집터 자리에는 1972년에 건축된 주암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 최철 집터
    시청각류
    최철 집터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최철의 집터이다. 현재 최철의 집터는 서경대학교 캠퍼스의 일부가 되었다.
  • 차미리사 집터
    시청각류
    차미리사 집터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차미리사의 집터 추정 장소이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유공자 정보에 따르면 차미리사는 돈암동 117-1번지에 거주하였다. 현재는 행정구역이 변경되어 해당 번지의 장소를 찾을 수 없었고 추정 지역을 선정하여 촬영하였다.
  • 성북구의 독립운동 및 독립운동가 발굴․조사 용역 결과 보고서
    문서류
    성북구의 독립운동 및 독립운동가 발굴․조사 용역 결과 보고서
    성북구 관련 조사자료. 성북구의 독립운동 및 독립운동가 발굴·조사 연구의 결과물이다. 성북구 이야기 콘텐츠의 근거자료로 사용되었다.
  • 심우장에 만해(卍海) 문학표징 세워
    기타
    심우장에 만해(卍海) 문학표징 세워
    내용: 심우장에 한용운의 문학 표징을 설치한 것을 보도한 기사. 신문명: 경향신문 발행일: 1995년 7월 2일 일요일 판본: 20판 기사 위치: 19면 1단
  • 우리 문학유산을 찾아 (1) 만해 한용운선생의 심우장(尋牛莊)
    기타
    우리 문학유산을 찾아 (1) 만해 한용운선생의 심우장(尋牛莊)
    내용: 심우장 탐방 취재 기사. 신문명: 경향신문 발행일: 1996년 1월 29일 월요일 판본: 40판 기사 위치: 13면 1단
  • 만해(萬海)의 충절(忠節) 살아숨쉬는 심우장(尋牛莊) 반세기
    기타
    만해(萬海)의 충절(忠節) 살아숨쉬는 심우장(尋牛莊) 반세기
    내용: 성북동 심우장 탐방 기사. 신문명: 경향신문 발행일: 1983년 2월 28일 월요일 발행 호수: 제11513호 판본: 2판. 기사 위치: 10면 1단
  • 만해선생 머물던 심우장 휴식공간으로 새 단장
    기타
    만해선생 머물던 심우장 휴식공간으로 새 단장
    내용: 성북동 심우장 정비를 보도한 기사. 저널명: 중앙일보 발행 형태: 인터넷 신문 기사. 주기사항: 1997.11.04. 00:00(입력) 비고: 1997년 11월 4일 『중앙일보』 종합18면에 지면 기사 게재.
  • 만해기념관 심우장 지방기념물로 지정
    기타
    만해기념관 심우장 지방기념물로 지정
    내용: 성북동 심우장의 지방기념물 지정을 보도한 기사. 저널명: 중앙일보 발행 형태: 인터넷 신문 기사. 발행일 : 1984.06.20 00:00(입력) 비고: 1984년 6월 20일 『중앙일보』 종합 6면에 지면 기사 게재.
  • 2019 성북동 심우장 만해 동상
    시청각류
    2019 성북동 심우장 만해 동상
    만해 한용운 심우장 올라가는 길 앞 '님의 침묵' 시비와 한용운 동상을 촬영한 사진.
  • 2019 성북동 심우장 출입문(2)
    시청각류
    2019 성북동 심우장 출입문(2)
    만해 한용운 심우장 정문을 촬영한 사진. '심우장' 현판과 문 앞에 관리사무소가 보인다.
  • 2019 성북동 심우장 본채 내 전시자료(8)
    시청각류
    2019 성북동 심우장 본채 내 전시자료(8)
    만해 한용운 심우장 본채 중 한용운 선생이 주로 기거하던 방을 촬영한 사진. 한용운 선생을 그린 그림과 동상, 하단에 책장이 보인다.
  • 심우장과 김동삼 표지석
    시청각류
    심우장과 김동삼 표지석
    심우장에 설치되어 있는 심우장과 김동삼 표지석이다. 성북문화원 대학생기자단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 제2대 국회의원 선거 조소앙 홍보 전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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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대 국회의원 선거 조소앙 홍보 전단(1)
    조소앙선생기념사업회(후손 조인래)로부터 제공받은 제2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조소앙의 홍보 전단 사진이다.
  • 제2대 국회의원 선거 조소앙 홍보 전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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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대 국회의원 선거 조소앙 홍보 전단(2)
    조소앙선생기념사업회(후손 조인래)로부터 제공받은 제2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조소앙의 홍보 전단 사진이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첨부 사진_안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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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첨부 사진_안재홍
    공훈전자사료관 홈페이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에서 수집한 안재홍의 사진이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첨부 사진_장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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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첨부 사진_장건상
    공훈전자사료관 홈페이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에서 수집한 장건상의 사진이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첨부 사진_김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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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첨부 사진_김규식
    공훈전자사료관 홈페이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에서 수집한 김규식의 사진이다.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강영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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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강영옥(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강영옥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19년(1944년) 7월 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63999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강영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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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강영옥(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강영옥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강천영옥 이명 : 강영옥 지문번호 : 68767/76899 연령 : 명치41년(1908년) 7월 27일생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신장 : 특징번호 : 본적 : 경기도 경성부 돈암 124-2 출생지 : 경상남도 밀양군 이하 미상 주거 : 경기도 경성부 돈암 124-2 죄명 : 국가총동원법 형명형기 : 징역 8개월 언도관서 : 경성지방 언도연월일 : 소화19년(1944년) 10월 5일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소화20년(1945년) 6월 5일 형무소명 : 서대문형무소 검거관서 :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강주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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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강주환(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강주환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신농주환 징3년 재400일입 17.7.16 미 16 17.3농 소화15년(1940년) 6월 22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44378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강주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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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강주환(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강주환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강주환 이명 : 신농주환 지문번호 : 33338/33437 연령 : 대정3년(1914년) 3월 13일생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서적행상 신장 : 특징번호 : 본적 : 평안북도 창성군 대창면 봉룡동 500 출생지 : 주거 : 경기도 경성부 성북 177-24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징역 3년 언도관서 : 경성지방법원 언도연월일 : 소화17년(1942년) 7월 14일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소화19년(1944년) 6월 9일 형무소명 : 서대문형무소 검거관서 :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강주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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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강주환(3)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강주환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16년(1941년) 8월 30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50758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강주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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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강주환(4)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강주환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신농주환 이명 : 강주환 지문번호 : 33338/33437 연령 : 대정3년(1914년) 3월 13일생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서적행상 신장 : 특징번호 : 본적 : 평안북도 창성군 대창면 봉룡동 500 출생지 : 평안남도 창성군 대창면 봉룡동 500 주거 : 경기도 경성부 성북정 177-24 죄명 : 불경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징역 3년 400 통산 언도관서 : 경성지방법원 언도연월일 : 소화17년(1942년) 7월 14일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소화19년(1944년) 6월 9일 형무소명 : 서대문형무소 검거관서 :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국순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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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국순만(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국순만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국순만 이명 : 해람,적종,적기호,기호 지문번호 : 소화5년(1930년) 11월 8일 경성서대문서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13820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국순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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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국순만(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국순만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본적 :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면 반각리 190 출생지 :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면 반각리 190 주거 :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 연령 : 명치45년(1912년) 5월 1일 직업 : 학생 최근형 : 기타전과 :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신분 : 상민 신장 : 언도관청 : 입소연월일 : 형무소 : 검거관서 : 수구원지번호 : 수구 : 배회지 : 특징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광섭(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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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광섭(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김광섭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17년(1942년) 1월 14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51893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광섭(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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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광섭(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김광섭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금성광섭 이명 : 김광섭 지문번호 : 97879/79799 연령 : 광무10년(1906년) 9월 21일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교원 신장 : 특징번호 : 본적 : 함경북도 경성군 어대진읍 송신동 148 출생지 : 함경북도 경성군 어대진읍 송신동 148 주거 : 경기도 경성부 운니 46-1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2년 언도관서 : 경성지방법원 언도연월일 : 소화17년(1942년) 9월 1일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소화19년(1944년) 11월 30일 형무소명 : 서대문형무소 검거관서 :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광섭(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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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광섭(3)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김광섭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금성광섭 소화17년(1942년) 1월 14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51893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광섭(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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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광섭(4)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김광섭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김광섭 이명 : 금성 지문번호 : 97879/79799 연령 : 광무10년(1906년) 9월 21일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신장 : 특징번호 : 본적 : 함경북도 경성군 어대진 송신 148 출생지 : 주거 : 경기도 경성부 운니 46-1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2년 언도관서 : 경성 언도연월일 : 소화17년(1942년) 9월 1일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소화19년(1944년) 11월 30일 형무소명 : 검거관서 : 서대문경찰서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복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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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복진(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김복진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11년(1936년) 6월 1일 형사과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31039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복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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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복진(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김복진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김복진 이명 : 지문번호 : 연령 : 명치34년(1901년) 9월 23일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신문기자 신장 : 5척8촌(174㎝) 특징번호 : 본적 :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면 계산리 682 출생지 : 주거 : 경기도 경성부 사직 262-124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4년 6개월 언도관서 : 경성지방법원 언도연월일 : 소화6년(1931년) 12월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소화9년(1934년) 2월 21일 형무소명 : 서대문형무소 검거관서 : 경기도 경찰부 기타전과 : 검거 : MC사건 관계자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원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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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원근(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김원근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7년(1932년) 8월 30일 동대문서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18833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원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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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원근(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김원근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김원근 이명 : 지문번호 : 연령 : 명치37년(1904년) 9월 30일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신장 : 특징번호 : 본적 : 경기도 경성부 돈의동 12 출생지 : 주거 :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 402번지 18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언도관서 : 언도연월일 :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형무소명 : 검거관서 : 경기도 경찰서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원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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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원정(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김원정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10년(1935년) 6월 7일 당과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27797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원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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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원정(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김원정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김원정 이명 : 지문번호 : 연령 : 대정원년(1912년) 5월 16일 수구번호 : 신분 : 상민 직업 : 없음 신장 : 4척 9촌 0푼(147㎝) 특징번호 : 본적 : 경기도 경성부 마포 196 출생지 : 경기도 경성부 마포 196 주거 :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 58-64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언도관서 : 언도연월일 :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형무소명 : 검거관서 : 경기도경찰부고등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월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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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월옥(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김월옥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9년(1934년) 5월 25일 형사과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24394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월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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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월옥(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김월옥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김월옥 이명 : 지문번호 : 연령 : 대정3년(1914년)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타자수 신장 : 5척(150㎝) 특징번호 : 본적 : 함경남도 원산부 남촌동 121 출생지 : 주거 : 경기도 경성부 관훈동 33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언도관서 : 언도연월일 :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형무소명 : 검거관서 : 경기도경찰부 기타전과 : 검거 : 소화9년(1934년) 5월 18일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재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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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재권(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김재권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징10월 2898 입감중 소화15년(1940년) 11월 2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47268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재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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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재권(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김재권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금촌재권 이명 : 김재권 지문번호 : 65549/23558 연령 : 광무5년(1901년) 12월 29일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주류 판매 신장 : 1미 55(155㎝) 특징번호 : 본적 :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 조암리 4 출생지 :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 조암리 4 주거 : 경기도 경성부 돈암 458-309 죄명 : 국가총동원법(가격 등 통제령) 형명형기 : 징역 10개월 재정 60일 언도관서 : 경성지방법원 언도연월일 : 소화16년(1941년) 2월 19일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소화16년(1941년) 10월 19일 형무소명 : 서대문형무소 검거관서 :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종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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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종윤(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김종윤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미16.10.2보석 소화16년(1941년) 2월 2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47978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종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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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종윤(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김종윤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송포윤 이명 : 김종윤, 퇴승 지문번호 : 연령 : 대정12년(1923년) 7월 3일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신장 : 특징번호 : 본적 : 경기도 경성부 숭인 63-10 출생지 : 경기도 경성부 숭인 63-10 주거 : 경기도 경성부 안암 200-13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보석 언도관서 : 경성지방 언도연월일 : 소화16년(1941년) 10월 2일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소화16년(1941년) 12월 2일 형무소명 : 서대문형무소 검거관서 :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창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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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창준(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김창준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김창준 연령 : 599년 5월 3일 지문번호 : 11333/33335 신장 : 5척 3촌 5푼(160.5㎝) 특징 : 오른쪽 위팔에 2개의 문신이 있음 사진의 오른쪽 문장 : 原板ハ京城監獄ニアリ(원판은 경성감옥에 있음)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창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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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창준(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김창준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본적 : 평안남도 평양부 대찰리 106 출생지 : 평안남도 강서군 증산 가풍 5 주소 : 경기도 경성부 인사동 246 신분 : 평민 직업 : 목사 죄명 : 출판법위반 형명형기 : 2년 6개월 언도연월일 : 대정9년(1920년) 10월 30일 형/시기 : 대정9년(1920년) 10월 30일 언도재판소 : 경성복심법원 집행감옥 : 경성감옥 출옥연월일급기사유 : 대정10년(1921년) 12월 22일 가출옥 비고 : 360일 통산 전과 : 초범 ※직업란의 원문은 '예수교전도사'로 적혀있음.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창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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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창준(3)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김창준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김창준 연령 : 지문번호 : 신장 : 특징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창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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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창준(4)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김창준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본적 : 출생지 : 주소 : 신분 : 직업 : 죄명 : 보안법범 형명형기 : 언도연월일 : 형/시기 : 언도재판소 : 집행감옥 : 서대문감옥 출옥연월일급기사유 : 비고 : 전과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현국(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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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현국(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김현국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김현국 이명 : 지문번호 : 94632/44547 소화5년(1930년) 5월 2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13204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현국(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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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현국(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김현국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본적 : 경기도 이천군 청미면 광탑리 176 출생지 : 주소 : 충청북도 충주군 노은면 연하리 연령 : 명치38년(1905년) 9월 1일 직업 : 정미업 최근형 : 기타전과 :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징역 2년 신분 : 상민 신장 : 1미 66 (166cm) 언도관청 : 경성복심법원 언도연월일 : 소화5년 5월 26일 형무소 : 검거관서 : 수구원지번호 : 수구 : 배회지 : 특징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래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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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래수(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박래수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징1년입 16.5미 미 소화15년(1940년) 12월 1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47553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래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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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래수(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박래수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진정무준 이명 : 박래수 지문번호 : 70777/69778 연령 : 대정14년(1925년) 7월 28일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신장 : 1미62 (162cm) 특징번호 : 본적 : 황해도 옹진군 서면 읍저리 421 출생지 : 황해도 옹진군 서면 읍저리 421 주거 : 경기도 경성부 돈암 산65-18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육해군형법위반 형명형기 : 징역 1년 200일 통산 언도관서 : 경성지방 언도연월일 : 소화17년(1942년) 2월 12일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소화17년(1942년) 8월 4일 형무소명 : 서대문형무소 검거관서 :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래수(3)
    시청각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래수(3)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박래수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진정무준 소화15년(1940년) 12월 1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47553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래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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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래수(4)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박래수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박래수 이명 : 지문번호 : 70777/69778 연령 : 대정14년(1925년) 7월 28일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신장 : 1미62 (162cm) 특징번호 : 본적 : 황해도 옹진군 서면 읍저리 421 출생지 : 황해도 옹진군 서면 읍저리 421 주거 : 경기도 경성부 돈암 산65-18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육해군형법위반 형명형기 : 징역 1년 미결구류200일 통산 언도관서 : 경성지방 언도연월일 : 소화17년(1942년) 2월 12일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소화17년(1942년) 8월 4일 형무소명 : 서대문형무소 검거관서 :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용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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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용선(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박용선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박용선 이명 : 지문번호 : 1642 보존원판 : (소) 제14861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용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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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용선(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박용선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본적 :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면 대라리 362 출생지 :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면 대라리 362 주소 : 부정 연령 : 명치37년(1904년) 3월 12일 직업 : 없음 최근형 : 기타전과 :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신분 : 신장 : 언도관청 : 입소연월일 : 소화5년(1930년) 12월 16일 형무소 : 검거관서 : 수구원지번호 : 수구 : 배회지 : 특징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원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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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원장(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박원장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6년 6월 13일 경성용산서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15754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원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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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원장(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박원장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박원장 이명 : 지문번호 : 연령 : 명치45년(1912년) 1월 18일 수구번호 : 신분 : 양반 직업 : 신장 : 5척 4촌(162㎝) 특징번호 : 본적 : 함경남도 문천군 구산면 성저동리 105 출생지 : 주거 :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 183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언도관서 : 언도연월일 :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형무소명 : 검거관서 :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원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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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원장(3)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박원장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7년(1932년) 5월 13일 촬영 보존원판 : (소) 제18342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원장(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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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원장(4)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박원장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박원장 이명 : 지문번호 : 연령 : 대정원년(1912년) 1월 18일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없음 신장 : 특징번호 : 본적 : 함경남도 문천군 구산 성저 105 출생지 : 주거 : 경기도 고양군 숭인 성북 183-10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언도관서 : 언도연월일 :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형무소명 : 검거관서 :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진홍(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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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진홍(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박진홍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7년(1932년) 3월 24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제17787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진홍(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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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진홍(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박진홍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박진홍 이명 : 지문번호 : 연령 : 대정3년(1914년) 4월 3일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신장 : 특징번호 : 본적 :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 황암 75 출생지 :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 황암 75 주거 : 경기도 경성부 청엽정 1-15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언도관서 : 언도연월일 :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형무소명 : 검거관서 :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진홍(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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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진홍(3)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박진홍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9년(1934년) 5월 25일 형사과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24402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진홍(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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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진홍(4)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박진홍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박진홍 이명 : 이영숙 지문번호 : 연령 : 대정4년(1915년)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없음 신장 : 특징번호 : 본적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출생지 : 경기도 경성부 송월 94-2 주거 :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언도관서 : 언도연월일 :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형무소명 : 검거관서 : 경기도 경찰부 기타전과 : 검거 : 소화9년(1934년) 1월 22일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진홍(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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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진홍(5)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박진홍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10년(1935년) 4월 1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27405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진홍(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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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진홍(6)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박진홍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박진홍 이명 : 이영숙, 최순녀 지문번호 : 97768/75868 연령 : 대정3년(1914년) 4월 3일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없음 신장 : 특징번호 : 본적 : 함경북도 명천군 고 황암 75 출생지 : 함경북도 명천군 고 황암 75 주거 : 경기도 고양군 한지 신당 349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징역 1년 6개월 언도관서 : 언도연월일 : 소화11년(1936년) 7월 30일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소화13년(1938년) 5월 24일 형무소명 : 검거관서 : 기타전과 : 초범1도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진홍(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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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진홍(7)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박진홍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30■ 징1년 14.7.17 만석 소화13년(1938년) 4월 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37639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진홍(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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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진홍(8)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박진홍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박진홍 이명 : 소영 지문번호 : 97768/75868 연령 : 대정5년(1916년) 4월 3일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신장 : 특징번호 : 본적 : 함경북도 명천군 하고면 황암 75 출생지 : 주거 : 경기도 고양군 한지 신당 석산동 349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미결구류 150산입) 형명형기 : 징역 1년 언도관서 : 언도연월일 : 소화13년(1938년) 12월 16일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소화14년(1939년) 7월 19일 형무소명 : 서대문형무소 검거관서 :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홍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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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홍식(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박홍식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박홍식 연령 : 광무6년(1902년) 3월 17일, 명치 35년 3월 17일 지문번호 : 11315/11116 신장 : 5척 2촌 5푼(157.5㎝) 특징 : 475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홍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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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박홍식(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박홍식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본적 :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 5 출생지 : 경기도 경성부 종로 4정목 주소 :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 5 신분 : 평민 직업 : 제화공(구두제작전문인) 죄명 : 소요, 보안법위반 형명형기 : 징역 6개월 언도연월일 : 대정8년(1919년) 9월 20일 형/시기 : 대정8년(1919년) 9월 20일 언도재판소 : 경성복심법원 집행감옥 : 서대문감옥 출옥연월일급기사유 : 대정9년(1920년) 2월 21일 만기 비고 : 귀주지본적지이신연방 전과 : 초범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배성룡(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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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배성룡(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배성룡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배성룡 신장 : 5척 8촌 3푼(174.9㎝) 지문번호 : 14654/37853 이명 : 특징 : 대정3년(1914년) 2월 16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중)제8153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배성룡(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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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배성룡(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배성룡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본적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면 경산동 2■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면 경산동 2■ 주소 : 경기도 경성부 누하동 10-3 연령 : 명치29년(1896년) 10월 28일 직업 : 저술업 호주/속병 : 인치연월일 : 인치관서 : 인치사유 : 신분 : 상민 석방 : 소화3년(1928년) 9월 16일 석방 호주 / 이름 :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부모/이름 : 형명, 형기(금액) : 징역1년 언도연월일 : 언도관서 : 경성지방법원 전과급별급범수 : 공범자이름 : 출옥후/귀주지 : 기타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안복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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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안복산(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안복산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6년(1931년) 10월 26일 본정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19415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안복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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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안복산(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안복산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안복산 이명 : 지문번호 : 연령 : 당18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신장 : 특징번호 : 본적 : 경기도 경성부 숭사 46 출생지 : 주거 : 경기도 경성부 혜화 198 죄명 : 치안유지법, 출판법 형명형기 : 언도관서 : 언도연월일 :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형무소명 : 검거관서 : 본정경찰서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안복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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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안복산(3)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안복산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7 12 9 김천소 소화6년(1931년) 11월 30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17138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안복산(4)
    시청각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안복산(4)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안복산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안복산 이명 : 지문번호 : 24457/45669 연령 : 대정3년(1914년) 5월 14일 수구번호 : 신분 : 상민 직업 : 신문사 급사 신장 : 특징번호 : 본적 : 경기도 경성부 혜화 198-■ 출생지 : 경기도 경성부 숭일 17 주거 : 경기도 경성부 숭사 46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징역 2년 언도관서 : 경성지방법원 입소연월일 : 소화7년(1932년) 11월 24일 출소연월일 : 소화9년(1934년) 5월 28일 형무소명 : 김천소년형무소 검거관서 :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안복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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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안복산(5)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안복산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10년(1935년) 3월 3일 형사과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28581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안복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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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안복산(6)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안복산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안복산 이명 : 안효성 지문번호 : 24447/44659 연령 : 대정3년(1914년) 5월 14일 수구번호 : 신분 : 상민 직업 : 세포업 신장 : 5척 6촌 3푼(168.9㎝) 특징번호 : 본적 : 경기도 경성부 혜화 198-2 출생지 : 경기도 경성부 숭일 17 주거 : 경기도 고양군 숭인 성북 170-5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언도관서 : 언도연월일 :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형무소명 : 검거관서 : 경기도 경찰서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피의자 권우성과 함께 적색노동조합을 조직한 자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안재홍(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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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안재홍(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안재홍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11년(1936년) 6월 23일 종로서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31347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안재홍(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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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안재홍(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안재홍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안재홍 이명 : 민세 지문번호 : 연령 : 명치34년(1901년) 11월 30일 수구번호 : 신분 : 양반 직업 : 저술업 신장 : 특징번호 : 본적 : 경기도 진위군 고덕면 두릉리 646 출생지 : 경기도 진위군 고덕면 두릉리 646 주거 : 경기도 경성부 평동 75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언도관서 : 언도연월일 :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형무소명 : 검거관서 : 경기도 경성종로경찰서 기타전과 : 1. 대정9년(1920년) 12월 제령위반 징역3년 1. 소화3년(1928년) 6월 명예훼손죄 벌금70원 1. 소화3년(1928) 7월 신문지법위반 금고8개월 1. 소화8년(1934년) 4월 업무횡령죄 징역 6개월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신문지와 잡지 및 강연 등을 통해 합법적조선독립운동을 한 자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안재홍(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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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안재홍(3)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안재홍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11. 10 소화11년(1936년) 7월 3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31862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안재홍(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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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안재홍(4)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안재홍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안재홍 이명 : 지문번호 : 54646/15666 연령 : 명치24년(1891년) 11월 30일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저술업 신장 : 5척 5촌 9푼(167.7㎝) 특징번호 : 본적 : 경기도 진위군 고덕면 두릉리 646 출생지 : 경기도 진위군 고덕면 두릉리 646 주거 : 경기도 경성부 평동 75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언도관서 : 언도연월일 :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형무소명 : 검거관서 :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안재홍(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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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안재홍(5)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안재홍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13년(1938년) 7월 1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38676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안재홍(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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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안재홍(6)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안재홍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안재홍 이명 : 지문번호 : 54646/15666 연령 : 개국501년(1892년) 11월 30일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저술 신장 : 5척 5촌 9푼(167.7㎝) 특징번호 : 본적 : 경기도 진위군 고덕면 두릉리 646 출생지 : 경기도 진위군 고덕면 두릉리 646 주거 : 경기도 경성부 평동 75-15 죄명 : 보안법위반,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징역2년, 미결150일 언도관서 : 경성복심법원 언도연월일 : 소화13년(1938년) 5월 4일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형무소명 : 서대문형무소 검거관서 : 기타전과 : 업무횡령1범, 기타2범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오세창(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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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오세창(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오세창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오세창 이명 : 지문번호 : 소화4년(1929년) 7월 22일 형사과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10655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오세창(2)
    시청각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오세창(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오세창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본적 : 경기도 경성부 돈의동 45 출생지 : 경기도 경성부 돈의동 45 주소 : 경기도 경성부 돈의동 45 연령 : 원치원년(1864년) 7월 15일 직업 : 최근형 : 기타전과 : 배일정사요시찰인 죄명 : 형명형기 : 신분 : 신장 : 언도관청 : 입소연월일 : 형무소 : 검거관서 : 수구원지번호 : 수구 : 배회지 : 특징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오세창(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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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오세창(3)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오세창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오세창 연령 : 지문번호 : 신장 : 특징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오세창(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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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오세창(4)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오세창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본적 : 출생지 : 주소 : 신분 : 직업 : 죄명 : 보안법범 형명형기 : 언도연월일 : 형/시기 : 언도재판소 : 집행감옥 : 서대문감옥 출옥연월일급기사유 : 비고 : 전과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유석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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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유석복(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유석복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昭和10年 5月 3日 送局ノ結果起訴猶豫處分ヲ受ク (소화10년 5월 3일 송국한 결과 기소유예 처분을 받음 ) 소화10년(1935년) 3월 23일 종로서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27176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유석복(2)
    시청각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유석복(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유석복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유석복 이명 : 지문번호 : 연령 : 대정13년(1924년) 11월 11일 수구번호 : 신분 : 상민 직업 : 학생 신장 : 특징번호 : 본적 : 경기도 개풍군 흥교면 희문리 336 출생지 : 경기도 개풍군 흥교면 희문리 336 주거 : 경기도 경성부 숭인면 돈암리 245-63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형명형기 : 언도관서 : 언도연월일 :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형무소명 : 검거관서 : 경기도 종로경찰서 기타전과 : 검거 : 중앙고보교에서 소화10년(1935년) 2월 21일 검거 상용수구개요 : 중앙고보반제운동폭력행위사건관계자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유진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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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유진희(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유진희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유진희 신장 : 지문번호 : 77767/89799 이명 : 3290 특징 : 소화3년(1928년) 2월 2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중) 제8131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유진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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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유진희(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유진희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본적 :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면 예산리 498 출생지 :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면 예산리 498 주소 : 경기도 경성부 도염 39 연령 : 명치26년(1893년) 2월 11일 직업 : 저술업 호주와의 관계 : 인치연월일 : 인치관서 : 인치사유 : 신분 : 상민 석방 : 소화3년(1928년) 8월 석방 호주 / 이름 :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부모 / 이름 : 형명, 형기(금액) : 징역 1년 6개월 언도연월일 : 소화3년(1928년) 2월 13일 언도관서 : 경성지방법원 전과종별급범수 : 공범자이름 : 출옥후 / 귀주지 : 기타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병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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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병희(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이병희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12년(1937년) 3월 19일 형사과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33777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병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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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병희(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이병희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이병희 이명 : 지문번호 : 연령 : 20(소화12년)(1937년) 수구번호 : 신분 : 상민 직업 : 없음 신장 : 특징번호 : 본적 : 경기도 경성부 봉익동 29 출생지 : 주거 : 경기도 경성부 청량 88-2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징역 1년(3년 집유) 언도관서 : 경성지방법원 언도연월일 : 소화14년(1939년) 4월 14일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형무소명 : 검거관서 : 경기도 경찰부 기타전과 : 검거 : 소화11년(1936년) 12월 사건 검거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병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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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병희(3)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이병희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14.4.14 刑執行猶豫(형집행유예) 소화12년(1937년) 5월 14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34829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병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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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병희(4)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이병희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이병희 이명 : 지문번호 : 43316/43489 연령 : 대정7년(1918년) 1월 14일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없음 신장 : 1미터51(151cm) 특징번호 : 본적 : 경기도 경성부 봉익 29 출생지 : 경기도 경성부 봉익 29 주거 : 경기도 경성부 청량리 88-2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1년 언도관서 : 경성지방 언도연월일 : 소화14년(1939년) 4월 14일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소화14년 4월 14일 형무소명 : 서대문형무소 검거관서 : 기타전과 : 3년간 형집행유예 미결 300일 통산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성학(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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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성학(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이성학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6년(1931년) 10월 2일 본정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19406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성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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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성학(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이성학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이성학 이명 : 지문번호 : 연령 : 20세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인쇄직공 신장 : 특징번호 : 본적 : 경기도 경성부 동숭 21 출생지 : 주거 : 경기도 경성부 숭인 57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출판법위반 형명형기 : 기소 언도관서 : 본정경찰서 언도연월일 :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형무소명 : 검거관서 :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성학(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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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성학(3)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이성학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7년(1932년) 5월 13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18363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성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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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성학(4)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이성학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이성학 이명 : 지문번호 : 연령 : 명치44년(1911년) 6월 6일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직공 신장 : 특징번호 : 본적 : 경기도 경성부 동숭 21 출생지 : 경기도 연천군 불상 주거 : 경기도 경성부 숭인 57-4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언도관서 : 언도연월일 :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형무소명 : 검거관서 :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성학(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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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성학(5)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이성학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10년(1935년) 9월 3일 형사과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28587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성학(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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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성학(6)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이성학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이성학 이명 : 없음 지문번호 : 11159/43438 연령 : 대정원년(1912년) 6월 6일 수구번호 : 신분 : 상민 직업 : 인쇄직공 신장 : 5척 6촌 8푼(170.4㎝) 특징번호 : 본적 : 경기도 경성부 창신동 583-16 출생지 : 경기도 연천군 이하불상 주거 : 경기도 경성부 창신 600-4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언도관서 : 언도연월일 :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형무소명 : 검거관서 : 경기도경찰서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피의자 권우성과 함께 적색노동조합을 조직한 자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준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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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준열(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이준열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이준열 이명 : 지문번호 : 소화5년(1930년) 12월 13일 ~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14333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준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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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준열(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이준열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본적 : 충청남도 아산군 탕정면 갈산리 157 출생지 : 충청남도 아산군 탕정면 갈산리 157 주소 : 경기도 경성부 숭인 176 연령 : 건양원년(1896년) 8월 12일 직업 : 최근형 : 기타전과 :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신분 : 상민 신장 : 언도관청 : 입소연월일 : 소화4년(1929년) 7월 16일 형무소 : 검거관서 : 수구원지번호 : 수구 : 배회지 : 특징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효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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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효정(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이효정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10년(1935년) 12월 14일 종로서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29523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효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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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효정(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이효정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이효정 이명 : 지문번호 : 97757/27868 연령 : 대정3년(1914년) 6월 21일 수구번호 : 신분 : 상민 직업 : 무직 신장 : 특징번호 : 본적 : 경기도 경성부 봉익동 29 출생지 :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 의양 주거 : 경기도 고양군 숭인 청량 88-2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언도관서 : 언도연월일 :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형무소명 : 검거관서 : 경기도 경성종로경찰서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안창대, 안승락과 연락 비밀본부를 담당함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효정(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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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효정(3)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이효정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11년(1936년) 1월 6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29705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효정(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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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효정(4)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이효정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이효정 이명 : 춘식 지문번호 : 97747/27868 연령 : 대정2년(1913년) 7월 28일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없음 신장 : 5척 1촌 0푼(153㎝) 특징번호 : 본적 : 경기도 경성부 봉익 56 출생지 :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 의양 주거 : 경기도 고양군 숭인 청량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언도관서 : 언도연월일 :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형무소명 : 검거관서 :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전명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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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전명선(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전명선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17년(1942년) 5월 2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53662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전명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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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전명선(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전명선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전명선 이명 : 지문번호 : 05679/04068 연령 : 명치30년(1897년) 8월 15일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식육상 신장 : 특징번호 : 본적 : 경기도 경성부 돈암 170 출생지 : 경기도 경성부 돈암 170 주거 : 경기도 경성부 창신 696-1 죄명 : 국가총동원법 형명형기 : 징역 10개월 언도관서 : 경성지방법원 언도연월일 : 소화17년(1942년) 7월 10일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소화 18년(1943년) 5월 10일 형무소명 : 서대문형무소 검거관서 :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정태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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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정태식(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정태식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9년(1934년) 5월 19일 형사과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24783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정태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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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정태식(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정태식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정태식 이명 : 지문번호 : 연령 : 명치44년(1911년) 9월 8일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성대 조수 신장 : 특징번호 : 본적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면 읍내 386 출생지 : 주거 : 경기도 경성부 관훈 33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언도관서 : 언도연월일 :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형무소명 : 검거관서 : 경기도경찰부 기타전과 : 소화9(1934).5.19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정태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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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정태식(3)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정태식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11.10 소화9년(1934년) 6월 17일 형사과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24783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정태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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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정태식(4)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정태식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정태식 이명 : 지문번호 : 87885/34995 연령 : 명치44년(1911년) 9월 8일 수구번호 : 신분 : 상민 직업 : 원 경성제대 조수 신장 : 5척 2촌(156㎝) 특징번호 : 본적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면 읍내 386 출생지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면 읍내 386 주거 : 경기도 경성부 성북 184-32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징역5년을 징역4년 7개월 2일로. 소화15년(1940년) 은사 언도관서 : 경성복심법원 언도연월일 : 소화11년(1936년) 11월 1일 미결180일 산입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소화15년(1940년) 7월 8일 형무소명 : 서대문형무소 검거관서 : 경기도경찰부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정태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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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정태식(5)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정태식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9년(1934년) 11월 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제25601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정태식(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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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정태식(6)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정태식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정태식 이명 : 지문번호 : 연령 : 명치43년(1910년) 5월 13일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원 제대 조교수 신장 : 특징번호 : 본적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면 읍내 386 출생지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면 읍내 386 주거 : 경기도 경성부 관훈 33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징역금고5년 언도관서 : 경성복심법원 언도연월일 :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소화15년(1940년) 12월 5일 형무소명 : 서대문형무소 검거관서 :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재정 330일 산입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조병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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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조병옥(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조병옥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조병옥 이명 : 지문번호 : 소화4년(1929년) 12월 21일 형사과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11303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조병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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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조병옥(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조병옥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본적 : 출생지 : 주소 : 연령 : 직업 : 최근형 : 기타전과 :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신분 : 신장 : 언도관청 : 입소연월일 : 형무소 : 검거관서 : 수구원지번호 : 수구 : 배회지 : 특징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조병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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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조병옥(3)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조병옥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13.7.29 보석 소화12년(1937년) 8월 23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35680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조병옥(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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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조병옥(4)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조병옥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조병옥 이명 : 지문번호 : 연령 : 개국503년(1894년) 8월 15일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광업 신장 : 특징번호 : 본적 : 충청남도 천안군 동면 용두리 327 출생지 : 주거 : 경기도 경성부 관훈 74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언도관서 : 경성지방 언도연월일 : 소화12년(1937) 8월 10일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형무소명 : 검거관서 : 기타전과 : 소화13년(1938) 7월 29일 보석출감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최경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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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최경옥(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최경옥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13년(1938년) 3월 3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36932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최경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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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최경옥(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최경옥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최경옥 이명 : 지문번호 : 44764/33897 연령 : 대정3년(1914년) 8월 7일 수구번호 : 신분 : 상민 직업 : 경성궤도 고용인 신장 : 1미 65 (165cm) 특징번호 : 본적 : 경기도 경성부 종로 육정목 12 출생지 : 경기도 경성부 종로 육정목 12 주거 : 경기도 경성부 효제 118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2년 재정100일 언도관서 : 경성지방법원 언도연월일 : 소화13년(1938년) 7월 22일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소화14년(1939년) 2월 18일 형무소명 : 서대문형무소 검거관서 : 기타전과 : 1범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최경옥(3)
    시청각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최경옥(3)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최경옥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10년(1935년) 1월 1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26099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최경옥(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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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최경옥(4)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최경옥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최경옥 이명 : 지문번호 : 44964/33897 연령 : 대정3년(1914년)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없음 신장 : 1미 64 (164cm) 특징번호 : 본적 : 경기도 경성부 종로 육정목 12 출생지 : 경기도 경성부 종로 육정목 12 주거 : 경기도 경성부 종로 육정목 12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1년 6개월 언도관서 : 경성지방법원 언도연월일 : 소화10년(1935년) 12월 20일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소화11년(1936년) 12월 21일 형무소명 : 서대문형무소 검거관서 : 기타전과 : 초범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최익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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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최익환(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최익환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최익환 연령 : 명치24년(1891년) 지문번호 : 신장 : 특징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최익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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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최익환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본적 : 충청남도 홍성군 홍주면 옥암리 출생지 : 주소 : 충청남도 홍성군 홍주면 옥암리 신분 : 직업 : 죄명 : 보안법범 형명형기 : 언도연월일 : 형/시기 : 언도재판소 : 집행감옥 : 서대문감옥 출옥연월일급기사유 : 비고 : 대동단음모사건으로 징역6년에 처하여 대정14년(1925년) 7월 17일 출옥함 전과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한용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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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한용운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한용운 연령 : 지문번호 : 신장 : 특징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한용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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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한용운(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한용운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본적 : 출생지 : 주소 : 신분 : 직업 : 죄명 : 보안법범 형명형기 : 언도연월일 : 형/시기 : 언도재판소 : 집행감옥 : 서대문감옥 출옥연월일급기사유 : 비고 : 전과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한용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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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한용운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한용운 이명 : 지문번호 : 소화4년(1929년) 12월 21일 형사과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11306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한용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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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한용운(4)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한용운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본적 : 출생지 : 주소 : 연령 : 직업 : 최근형 : 기타전과 : 죄명 : 치안유지법위반 형명형기 : 신분 : 신장 : 언도관청 : 입소연월일 : 형무소 : 검거관서 : 수구원지번호 : 수구 : 배회지 : 특징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현학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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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현학손(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현학손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13년(1938년) 11월 2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39778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현학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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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현학손(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현학손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현학손 이명 : 기백, 성하, 방 지문번호 : 38646/34447 연령 : 융희3년(1909년) 7월 6일 수구번호 : 신분 : 직업 : 양재 신장 : 1미 64 (164cm) 특징번호 : 본적 : 충청북도 충주군 산천면 송강리 1246 출생지 : 경상북도 영주군 봉현 대촌 주거 : 경기도 경성부 성북정 185-2 죄명 : 치안유지법, 육군형법, 해군형법 형명형기 : 징역10년 (미결90) 언도관서 : 경성지방 언도연월일 : 소화14년(1939년) 3월 8일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소화14년(1939년) 10월 8일 형무소명 : 서대문형무소 검거관서 : 기타전과 :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홍기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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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홍기문(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홍기문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11년 5월 18일 형사과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30842번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홍기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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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홍기문(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홍기문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홍기문 이명 : 대산 지문번호 : 연령 : 명치36년(1904년) 8월 3일 수구번호 : 신분 : 양반 직업 : 조선일보기자 신장 : 5척 3촌 특징번호 : 본적 : 경기도 경성부 아현 383 출생지 : 주거 : 죄명 : 형명형기 : 언도관서 : 언도연월일 : 입소연월일 : 출소연월일 : 형무소명 : 검거관서 : 기타전과 : 특요 검거 : 상용수구개요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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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이강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이름 : 이강 연령 : 지문번호 : 신장 : 특징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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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이강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본적 : 출생지 : 주소 : 신분 : 직업 : 죄명 : 거주제한요시찰인 형명형기 : 언도연월일 : 형/시기 : 언도재판소 : 집행감옥 : 출옥연월일급기사유 : 비고 : 전과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해제 링크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ia.html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기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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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이기석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6년(1931년) 6월 13일 경성 용산서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15742번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기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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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기석(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이기석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6년(1931년) 6월 13일 경성 용산서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15742번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기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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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기석(3)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이기석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6년(1931년) 7월 1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16102번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기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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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이기석(4)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서 수집한 독립운동가 이기석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미지이다. 소화6년(1931년) 7월 1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 보존원판 : (소) 제16102번
  • 3.1독립선언서(보성사판)(1919)[국가지정기록물 제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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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독립선언서(보성사판)(1919)[국가지정기록물 제12호]
    3.1독립선언은 인류양심에 입각하여 당시 우리 민족의 강렬한 독립 의지를 세계만방에 천명한 것으로, 1910년대 독립운동의 이론과 논리를 정리한 대표적인 선언이다. 특히 3.1운동의 지도 이념을 표출하고, 독립의 절실한 필요성을 설득력 있게 호소함으로써 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파급되도록 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3.1독립선언서(보성사판)의 크기는 가로 44.9㎝, 세로 20.1㎝이며 재질은 양지이다. 해당 자료는 독립기념관으로부터 제공받았으며, 독립기념관에서 발간한 사진집 『자료로 본 대한민국임시정부』에도 수록되어 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자료 내용 인용]
  •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장 조소앙이 스탈린에게 보낸 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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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장 조소앙이 스탈린에게 보낸 공함
    1941년 12월 24일 중국 중경(重慶) 소재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장관 조소앙이 소련 수상 스탈린 앞으로 보낸 정식 외교 공한이다. 소련군의 독일군 격파를 축하하며, 소련의 적인 나찌 독일과 군국 일본을 제거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한국도 오직 주권국으로서의 자유를 위해 3천만이 기꺼이 소련에 협력할 것임을 천명한다. 한국은 만주사변이래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어떠한 희생도 치를 각오로 대일본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 공함의 크기는 가로 29.6㎝, 세로 42㎝이며 재질은 양지이다. 해당 자료는 독립기념관으로부터 제공받았으며, 독립기념관에서 발간한 사진집 『자료로 본 대한민국임시정부』에도 수록되어 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자료 내용 인용]
  •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미국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앞으로 보낸 공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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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미국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앞으로 보낸 공문
    1941년 12월 10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무장관 조소앙이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앞으로 보낸 외교 공한이다. 미국의 대일 선전 포고에 경의를 표하며, 유럽에서의 추축국 궤멸을 위해서는 태평양에서의 일본 격파가 선행되어야 한다. 극동에서의 신질서 구축도 일본의 제거가 선결 조건임을 명시하고, 한국은 미국과 영국의 공동선언을 전폭지지하며, 민주 연합국들의 승리를 기원한다는 내용이다. 이 공문의 크기는 가로 29.6㎝, 세로 42㎝이며 재질은 양지이다. 해당 자료는 독립기념관으로부터 제공받았으며, 독립기념관에서 발간한 사진집 『자료로 본 대한민국임시정부』에도 수록되어 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자료 내용 인용]
  • 2.8독립선언서(1919.2.8)[국가지정기록물 제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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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독립선언서(1919.2.8)[국가지정기록물 제12호]
    1919년 2월 8일 일본 동경의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조선인 유학생들이 조선독립청년단 명의로 발표한 독립선언서이다. 이 선언서는 한민족의 독립운동으로 건립될 국가가 민주주의에 입각한 신국가임을 명시하면서 한일 병합조약 폐지와 조선독립 선언, 민족대회 소집 요구, 만국평화회의에 민족대표 파견 등과 함께 이를 위하여 영원한 혈전을 벌일 것을 선언하였다. 2.8독립선언서의 크기는 가로34㎝, 세로 24.5㎝이며 재질은 양지이다. 해당 자료는 독립기념관으로부터 제공받았으며, 독립기념관에서 발간한 사진집 『자료로 본 대한민국임시정부』에도 수록되어 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자료 내용 인용]
  • 외무부장인 조소앙이 중국 정부 외교부장에게 보낸 공함(1941.12.10)
    시청각류
    외무부장인 조소앙이 중국 정부 외교부장에게 보낸 공함(1941.12.10)
    1941년 12월 10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무부장인 조소앙(趙素昻)이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외교부장에게 보낸 공문이다. 중국 정부가 대일(對日)전쟁을 선포하기로 결정한 것과 동시에 우리 정부도 대일 선전 포고에 관한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이에 성명서 원문을 보내서 참조하라는 내용이다. 공함의 크기는 가로 21㎝, 세로 27.5㎝이며 재질은 양지이다. 해당 자료는 독립기념관으로부터 제공받았으며, 독립기념관에서 발간한 사진집 『자료로 본 대한민국임시정부』에도 수록되어 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자료 내용 인용]
  • 조병옥 사진
    시청각류
    조병옥 사진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조병옥(趙炳玉)의 사진이다. 조병옥(趙炳玉)은 도미(渡美)하여 컬럼비아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는 한편 한인회(韓人會)・흥사단(興士團) 등의 단체에 참여했고, 귀국하여 항일 독립운동을 하다 복역하였으며, 해방후 미군정청의 경무부장・내무부장관을 역임하였고, 196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공천을 받았으나, 신병으로 가료 중 사망하였다. 이 사진의 크기는 가로 8.3㎝, 세로 14.1㎝이다. 해당 자료는 독립기념관으로부터 제공받았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자료 내용 인용]
  • 김구가 상해 홍구비행장 도착시 환영식장에서 찍은 사진
    시청각류
    김구가 상해 홍구비행장 도착시 환영식장에서 찍은 사진
    김구와 조소앙 등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을 위해 충칭에서 상하이로 도착했을 때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의 좌측 첫번째 인물이 성북구 돈암동에 거주했던 독립운동가 조소앙이다. 이 사진의 크기는 가로12.7㎝, 세로 8㎝이다. 해당 자료는 독립기념관으로부터 제공받았으며, 독립기념관에서 발간한 사진집 『자료로 본 대한민국임시정부』에도 수록되어 있다.
  • 장건상 사진(일본유학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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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건상 사진(일본유학시절)
    일본 유학시절 장건상의 사진이다. 장건상은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의원을 비롯하여 국무위원, 외무부위원 학무부장, 외무부외교연구위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의열단을 지원 하는 등 독립운동에 공헌하였다. 이 사진의 크기는 가로 8.9㎝, 세로 13.3㎝이다. 해당 자료는 독립기념관으로부터 제공받았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자료 내용 인용]
  • 안창호가 이국전, 김복진과 함께 찍은 사진(1937)
    시청각류
    안창호가 이국전, 김복진과 함께 찍은 사진(1937)
    말년에 도산 안창호와 조각가 이국전, 김복진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제일 오른쪽이 성북동에 거주했던 독립운동가 김복진이다. 사진의 크기는 가로 9.2㎝, 세로 13.4㎝이다. 해당 자료는 독립기념관으로부터 제공받았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자료 내용 인용]
  • 독립운동가 이두성과 이강 사진
    시청각류
    독립운동가 이두성과 이강 사진
    본 사진은 1954년 1월 10일 서울 남산고등학교(南山高等學校) 앞에서 독립운동가 이두성과 이강이 함께 촬영한 것이다. 오른쪽의 인물이 정릉동에 거주했던 독립운동가 이강이다. 사진의 크기는 가로 6.2㎝, 세로 8.5㎝이다. 해당 자료는 독립기념관으로부터 제공받았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자료 내용 인용]
  • 이강과 그의 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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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과 그의 가족사진
    딸을 가운데 두고 찍은 가족 사진으로, 이 사진을 ADA도 가지고 있다고 적혀 있다. 안창호와 함께 공립협회를 창립한 이강은 1907년 10월경 신민회의 결성 지원을 위해 국내로 들어왔다가 공립협회 원동지회 설립을 위해 곧바로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해조신문], [대동공보]의 발간을 주도하였다. 이 사진의 크기는 가로 10㎝, 세로 14.2㎝이다. 해당 자료는 독립기념관으로부터 제공받았으며, 독립기념관에서 발간한 사진집 『근대 한국인의 삶과 독립운동』에도 수록되어 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자료 내용 인용]
  • 안재홍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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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홍 사진
    남조선과도정부 민정장관을 지낸 안재홍(安在鴻)의 연설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사진의 크기는 가로 20.5㎝, 세로 25.5㎝이다. 해당 자료는 독립기념관으로부터 제공받았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자료 내용 인용]
  • 한국혁명여성동맹 창립기념 사진(기강, 19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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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혁명여성동맹 창립기념 사진(기강, 1940.6.17)
    1940년 6월에 결성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 외곽단체로 활동했던 한국혁명여성동맹의 창립기념 사진이다. 1열 왼쪽에서 두번째의 인물은 동선동과 돈암동에 거주했던 독립운동가 정정화이다. 이 사진의 크기는 가로24㎝, 세로 19.4㎝이다. 해당 자료는 독립기념관으로부터 제공받았으며, 독립기념관에서 발간한 사진집 『자료로 본 대한민국임시정부』에도 수록되어 있다.
  • 3.1유치원 추계 개학기념 사진(1941.10.10)
    시청각류
    3.1유치원 추계 개학기념 사진(1941.10.10)
    3.1유치원 추계 개학 기념 사진이다. 2열의 제일 오른쪽 인물은 돈암동, 동선동에서 거주했던 독립운동가 정정화로 조국광복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중경에서 독립운동가 자녀들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이 사진의 크기는 가로 23.8㎝, 세로 16.6㎝이다. 해당 자료는 독립기념관으로부터 제공받았으며, 독립기념관에서 발간한 사진집 『자료로 본 대한민국임시정부』에도 수록되어 있다.
  • 3.1운동 100주년 특집 그날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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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운동 100주년 특집 그날이 오면
    3.1운동 100주년 특집으로 KBS에서 제작한 다큐드라마 <그날이 오면>의 영상이다.
  • [23회]나의 독립 영웅 - 2.8 독립선언
    시청각류
    [23회]나의 독립 영웅 - 2.8 독립선언
    3.1운동 100주년 특별기획으로 KBS에서 제작된 <나의 독립 영웅> 23회 '강하나의 2.8 독립선언' 편이다. 2.8독립선언은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조선유학생들이 주도한 독립선언 운동으로, 1950년 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성북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조소앙이 당시 일본 유학생들의 활동과 조직을 주도했다. 영상을 통해 2.8독립선언에 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 [95회]나의 독립 영웅 - 김동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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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회]나의 독립 영웅 - 김동삼
    3.1운동 100주년 특별기획으로 KBS에서 제작된 <나의 독립 영웅> 95회 '김동삼' 편이다. 김동삼은 독립운동을 하던 중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 순국하였는데, 이때 한용운이 그의 시신을 수습하여 심우장에서 장례를 치러주었다. 영상을 통해 독립운동가 김동삼의 활동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 [84회]나의 독립 영웅 - 이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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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회]나의 독립 영웅 - 이규창
    3.1운동 100주년 특별기획으로 KBS에서 제작된 <나의 독립 영웅> 84회 '이규창' 편이다. 이규창은 독립운동가 이회영의 아들로, 만주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을 하였다. 1961년 정릉에 정착하여 2005년 서거할 때까지 어머니 이은숙 여사를 모시고 살았다. 영상을 통해 이규창의 활동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 [57회]나의 독립 영웅 - 이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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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회]나의 독립 영웅 - 이병희
    3.1운동 100주년 특별기획으로 KBS에서 제작된 <나의 독립 영웅> 57회 '이병희' 편이다. 이병희는 학교를 중퇴한 후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다. 1933년 숭인면 신설리(현재 성북구 보문동, 동대문구 신설동 일대)에 있었던 종연방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이끌다가 체포되었으며, 1940년에는 중국 북경으로 망명하여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또한 그는 북경에서 이육사가 순국하자 그의 시신을 화장하고 국내의 유족에게 전달하기도 하였다. 영상을 통해 이병희의 활동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 [56회]나의 독립 영웅 - 이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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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회]나의 독립 영웅 - 이육사
    3.1운동 100주년 특별기획으로 KBS에서 제작된 <나의 독립 영웅> 56회 '이육사' 편이다. 이육사는 종암동에 거주했던 독립운동가이자 문인이다. 여러 독립운동단체에 가담하여 독립투쟁을 하였으며 1930년대부터는 문학활동에 몰두하였다. 특히 종암동에 거주하던 시기인 1939년부터 1942년에는 잘 알려진 「청포도」, 「절정」 등의 대표작을 『문장』에 발표하였다. 영상을 통해 이육사의 활동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 [48회]나의 독립 영웅 - 이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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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회]나의 독립 영웅 - 이은숙
    3.1운동 100주년 특별기획으로 KBS에서 제작된 <나의 독립 영웅> 48회 '이은숙' 편이다. 남편인 독립운동가 이회영과 함께 간도로 이주하여 생활하다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홀로 조선으로 돌아와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였다. 1960년부터는 아들인 이규창과 함께 정릉동에 거주하였다. 영상을 통해 이은숙의 활동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 [100회]나의 독립 영웅 - 이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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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회]나의 독립 영웅 - 이효정
    3.1운동 100주년 특별기획으로 KBS에서 제작된 <나의 독립 영웅> 100회 '이효정' 편이다. 이효정은 친척인 이병희와 함께 1933년 숭인면 신설리(현재 성북구 보문동, 동대문구 신설동 일대)에 있었던 종연방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이끌다가 체포되었으며, 이후에는 ‘경성지방좌익노동조합 조직준비회’에 가담하여 동지 규합과 항일의식 고취에 주력하다가 경찰에 검거되어 옥고를 치렀다. 영상을 통해 이효정의 활동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 [44회]나의 독립 영웅 - 정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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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회]나의 독립 영웅 - 정정화
    3.1운동 100주년 특별기획으로 KBS에서 제작된 <나의 독립 영웅> 100회 '정정화' 편이다. 정정화는 돈암동, 동선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로 시아버지 김가진, 남편 김의한과 함께 상해로 건너간 후 6회에 걸쳐 독립운동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1940년대에는 중경의 유치원 교사로 임명되어 독립운동가 자녀들의 교육을 담당하기도 했다. 영상을 통해 정정화의 활동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 [27회]나의 독립 영웅 - 조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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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회]나의 독립 영웅 - 조소앙
    3.1운동 100주년 특별기획으로 KBS에서 제작된 <나의 독립 영웅> 27회 '조소앙' 편이다.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조소앙은 중국에 망명하여 항일단체 대동당을 조직하였고, 무오독립선언서를 기초하여 독립운동 지도급인사 39인의 공동성명으로 발표하여 내외에 영향력을 크게 떨쳤다. 또한,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였다. 돈암동 445-1(현재 성북로2길 43)에 거주하면서 1950년 5.30 총선에 사회당으로 서울 성북구에서 출마하여 2대 민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영상을 통해 조소앙의 활동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 역사채널e - 조선 운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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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채널e - 조선 운동회
    EBS 교양프로그램 <역사채널e> '조선 운동회'편이다. 옛 삼선동 일대에는 '삼선평'이라는 넓은 들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행해진 최초의 근대식 운동회에 대한 이야기를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역사채널e - 빛나는 집, 보화각
    시청각류
    역사채널e - 빛나는 집, 보화각
    EBS 교양프로그램 <역사채널e> '빛나는 집, 보화각'편이다. 영상을 통해 성북동에 위치한 간송미술관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 백매수 옹 별세
    기타
    백매수 옹 별세
    내용: 성북동의 독립운동가 백매수의 사망을 전하는 기사. 저널명: 중앙일보 발행 형태: 인터넷 신문 기사. 발행일: 1991.10.22 00:00(입력) 비고: 1991년 10월 22일 『중앙일보』 15면에 게재.
  • 62기 중 안재홍 이광수 김효석 조헌영...등 좌우 인사 39명 묘소 최초 공개
    기타
    62기 중 안재홍 이광수 김효석 조헌영...등 좌우 인사 39명 묘소 최초 공개
    내용: 2004년 4월 『민족21』의 방북기자단이 새로 조성된 ‘재북인사들의 묘’를 최초로 방문, 현장을 둘러보고 쓴 기사이다. 이 곳에는 6.25전쟁 당시 북으로 간 남측 인사 62명이 모셔져 있는데, 북측 관계자들로부터 묘지 조성 경위와 의미, 안치된 남측 인사들의 면면 등을 인터뷰하였다. 이 기사에서는 특히, 성북동에 거주하였던 안재홍, 성북동에 별장이 있었던 백상규와 관련된 이야기가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저널명: 민족21 발행 형태: 잡지 기사. 발행일: 2004.05.01. 비고: 2004년 5월 1일 발간된 『민족21』 38호에 기획특집으로 게재.
  • [오세덕] 의열단의 조력자
    기타
    [오세덕] 의열단의 조력자
    내용: 독립운동가 오세덕의 생애와 오세덕과 성북구와의 관련성을 설명한 글이다. 발행일: 2019.06.18. 17:05(등록)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이강(李剛)
    기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이강(李剛)
    공훈전자사료관에서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이다.
  • 독립투사 이강 옹
    기타
    독립투사 이강 옹
    내용: 독립운동가 이강의 부고를 알리는 기사로 당시 정릉동 재건주택 88호(동아일보 기사와 불일치)에 살고 있다고 적고 있다. 인물 사진이 함께 실림. 신문명: 경향신문 발행일: 1964년 10월 13일 화요일 발행 호수: 제5841호 판본: 제2판 기사 위치: 3면 11단
  • 항일독립투사 이강 옹 별세
    기타
    항일독립투사 이강 옹 별세
    내용: 독립운동가 이강의 부고를 알리는 기사로 당시 정릉동 재건주택 87호(경향신문 기사와 불일치)에 살고 있다고 적고 있다. 인물 사진이 함께 실림. 신문명: 동아일보 발행일: 1964년 10월 13일 화요일 발행 호수: 제13222호 기사 위치: 7면 11단
  • 임치정씨(林蚩正氏) 별세(別世) 구한말명사(舊韓末名士) 구(九)일 노일혈로 자택에서 파란중첩(波瀾重疊)하든 그 일생(一生)
    기타
    임치정씨(林蚩正氏) 별세(別世) 구한말명사(舊韓末名士) 구(九)일 노일혈로 자택에서 파란중첩(波瀾重疊)하든 그 일생(一生)
    내용: 독립운동가 임치정의 사망을 전하는 기사로, 미아리 공동묘지에 장지가 마련되었음. 신문명: 동아일보 발행일: 1932년 01월 11일 월요일 발행 구분: 10일 석간 발행 호수: 제3970호 기사 위치: 2면 1단
  • 삼일운동 데이터베이스_정만산 등 3명 판결문
    기타
    삼일운동 데이터베이스_정만산 등 3명 판결문
    삼일운동 데이터베이스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삼일운동 관련 기초 정보를 종합하고 GIS(지리정보체계)와 연동하여 제공하는 데이터베이스이다. 이 기록물은 1919년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이 1919년 03월 26일 고양군 숭인면 일대의 만세 시위와 관련하여 정만산, 이재성, 최성식에게 내린 판결문이다. 이 판결문을 통해 정만산과 이재성이 각각 고양군 숭인면 월곡리와 고양군 숭인면 안감리에 거주했다는 사실과 3명 모두 태 90대의 형벌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27권_피한봉 신문조서
    문서류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27권_피한봉 신문조서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은 국사편찬위원회가 1986년부터 2007년까지 총 71책으로 완간한 대표적인 독립운동 관련 자료집이다. 주요 항일 민족독립운동 사건별로 사료 원문과 번역문을 수록하고 있다. 이 기록물은 1919년 3월 23일 안암천에서 독립만세운동을 하였던 피한봉의 신문조서 내용이다. 당시 피한봉의 나이, 신분, 주소 등 인적 사항과 만세운동에 참가한 경위, 체포 경위 등에 대해 진술한 내용이 나와 있다.
  • 2018년 07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연미당
    기타
    2018년 07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연미당
    2018년 7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연미당의 생애와 독립운동 활동을 정리한 글이다. 연미당은 1946년 남편 엄항섭과 함께 성북동 산꼭대기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 [임정100년과 독립운동가] ‘임정 숨은 공신’ 엄항섭···김구가 믿은 최측근
    기타
    [임정100년과 독립운동가] ‘임정 숨은 공신’ 엄항섭···김구가 믿은 최측근
    내용: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한 기사이다. 이 기사에서는 임시정부의 숨은 공신이자 김구의 최측근인 엄항섭의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저널명: 시사저널e 발행일: 2019.05.18 09:15(승인)
  • 이승만의 발자취 서린 돈암장과 마포장
    기타
    이승만의 발자취 서린 돈암장과 마포장
    내용: 이승만이 머물렀던 돈암장, 마포장과 관련된 기사. 저널명: 월간조선 발행 형태: 인터넷 신문 기사. 발행일: 2017.10 비고: 2017년 『월간조선』 10월호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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