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262] 필름에 담긴 찬란한 일상
작성자 장지희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오늘날, 사진 촬영은 누구에게나 쉽고 익숙한 일이 되었습니다. 디지털 기기가 등장하기 전에는 추억을 남기기 위해 주로 필름카메라를 사용했습니다. 가족 행사가 있는 날,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떠날 때, 혹은 흘러가는 일상을 담고 싶을 때면 필름 한 롤을 넣은 카메라가 늘 함께했습니다. 디지털 기기와는 달리 한 장 한 장 조금 더 신중하게 셔터를 눌러야 했기에 사진을 남기는 과정의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필름의 색감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 안에 담긴 추억 때문일까요. 오래된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따뜻한 감정이 밀려옵니다. 이러한 감성과 매력 덕분에 레트로 열풍과 함께 다시 필름카메라가 주목받기도 했는데요. 오늘은 필름에 담긴 성북구민의 일상을 따라 추억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골목과 마당이 있던 그 시절의 집〉 옛 필름 사진 속 성북구의 풍경은 지금과는 사뭇 다릅니다. 당시 사진들을 보면 높이 솟은 아파트 대신 단독주택을 많이 찾아볼 수 있고, 집과 집 사이에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골목이 있었습니다. 특히 눈이 내리는 날이면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기 위해 나온 아이들로 골목은 떠들썩했습니다. 사진 속 풍경은 분명 추운 겨울이지만 어쩐지 포근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름에도 집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마당에 고무대야나 작은 풀장을 놓고 물을 받아 가족들만의 물놀이를 즐기던 모습은 오늘날의 주거 환경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여름날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가족들의 소중한 순간도 필름에 담겼습니다. 작은 상 위에 케이크 하나를 놓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생일을 축하하던 모습과 집 안에서 정성껏 준비한 돌잔치 풍경은 화려하진 않지만 따뜻한 정이 가득합니다. 함께 초를 불고, 아이의 첫돌을 축하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은 소중한 순간을 축하하는 가족의 분위기를 생생히 전해줍니다.
1980년대 눈 오는 날 장위동 집 앞 골목에서(양성열·성북문화원)

1980년대 눈 오는 날 장위동 집 앞 골목에서(양성열·성북문화원)

1980년대 장위3동 4남매의 물놀이(이희승·성북문화원)

1980년대 장위3동 4남매의 물놀이(이희승·성북문화원)

1980년대 장위3동 생일 풍경(이희승·성북문화원)

1980년대 장위3동 생일 풍경(이희승·성북문화원)

1990년 돌잔치상 준비(오진희·성북문화원)

1990년 돌잔치상 준비(오진희·성북문화원)

〈역사가 된 풍경〉 필름 사진 속 거리에는 지금 세대에게는 낯선 장면들도 등장합니다. 1970년 삼선교 인근에서 촬영된 사진에는 가판대에서 멍게와 해삼을 사 먹는 어머니와 아이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당시에는 리어카나 노점에서 해산물을 즉석으로 판매하는 풍경이 흔했습니다. 사진을 통해 그 시절 성북구 주민들의 생활상과 삼선교 일대의 거리 풍경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같은 시기 성북동에서 촬영된 사진 역시 흥미롭습니다. 사진 속 건물과 차량, 도로의 모습은 현재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주며 세월의 변화를 실감하게 합니다.
「모정(母情)」 (1970년 삼선교 근처 가판대 앞에서) (이기현·성북문화원)

「모정(母情)」 (1970년 삼선교 근처 가판대 앞에서) (이기현·성북문화원)

1970년 성북동 일대에서(김미남·성북문화원)

1970년 성북동 일대에서(김미남·성북문화원)

여름철 골목을 누비던 소독차도 이제는 사라진 추억 중 하나입니다.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골목을 지나가는 소독차가 나타나면 아이들은 신나게 그 뒤를 따라다니곤 했습니다. 당시 아이들에게는 이것이 하나의 놀이이자 즐거운 여름날의 추억이었습니다.
1971년 정릉2동, 소독차를 따라가는 아이들(박태홍·성북문화원)

1971년 정릉2동, 소독차를 따라가는 아이들(박태홍·성북문화원)

도시의 개발 과정을 보여주는 시설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60년대 현재의 석관초등학교 부근에는 가내수공업 형태로 기와와 시멘트 벽돌을 만드는 공장이 운영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생산된 건축 자재들은 주택과 건물에 활용되며 동네의 풍경을 만들어갔을 것입니다. 공장은 사라졌지만, 그 모습은 사진 속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역사가 된 풍경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69년, 군사 기초 지식과 안보의식 교육을 목적으로 시작된 고등학교 교련 수업은 1990년대 초까지 이어졌습니다. 1970년대 성신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교련 수업을 받는 모습은 오늘날 학교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장면이 되었습니다.
1969년 석관동 기와공장 풍경(임광엽·성북문화원)

1969년 석관동 기와공장 풍경(임광엽·성북문화원)

1970년대 초 성신여고 교련수업 사진(홍용희·성북문화원)

1970년대 초 성신여고 교련수업 사진(홍용희·성북문화원)

〈추억이 이어지는 장소〉 세월이 흐르며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전히 같은 자리를 지키며 추억이 이어지는 장소도 있습니다. 1957년 늦봄, 정릉동으로 나들이를 떠났던 돈암동 주민들은 봉국사 명부전 앞에 모여 기념사진을 한 장 남겼는데요. 이 사진은 봉국사가 오래전부터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지던 공간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봉국사와 가까운 정릉 역시 성북구의 대표 문화유산으로,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찾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학생들의 봄나들이 장소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1970년대 중반까지 성북동에 있었던 홍익북국민학교 학생들은 따사로운 봄볕 아래 정릉을 배경으로 소중한 추억을 남겼습니다.
1957년 돈암동 주민들의 봉국사 나들이(이종호·성북문화원)

1957년 돈암동 주민들의 봉국사 나들이(이종호·성북문화원)

1972년 홍익북국민학교 정릉 봄소풍 기념사진(김미남·성북문화원)

1972년 홍익북국민학교 정릉 봄소풍 기념사진(김미남·성북문화원)

삼선동 한성대학교와 장수마을 사이에 위치한 삼군부 총무당은 조선시대 군사 업무를 담당했던 기관으로 한 자리에서 오랜 시간을 쌓아오고 있는 곳입니다. 1991년 겨울날, 삼선동에 살던 한 아이가 눈 내린 동네를 구경하기 위해 나왔다가 남긴 기념사진 속에는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삼군부 총무당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1991년 삼군부 총무당 앞에서(김인배·성북문화원)

1991년 삼군부 총무당 앞에서(김인배·성북문화원)

〈성장의 기록이 쌓이는 곳〉 학교는 성장 과정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입니다. 학교생활의 첫 시작인 입학식은 설렘과 긴장이 공존합니다. 1970년대 돈암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여덟 살 아이의 얼굴에도 그런 감정이 묻어나네요. 입학식의 풍경도 시대에 따라 변합니다. 2000년 정수초등학교 입학식 날, 운동장에 모인 아이들은 종이 왕관을 쓴 채 해맑게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1970년대 돈암국민학교 입학식(황금이·성북문화원)

1970년대 돈암국민학교 입학식(황금이·성북문화원)

2000년 정수초등학교 입학식(차은솔·성북문화원)

2000년 정수초등학교 입학식(차은솔·성북문화원)

아이들은 아침이면 교실에 모여 하루를 시작합니다. 1980년대 장위초등학교 교실을 담은 사진에는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교실을 환하게 비추며 아늑한 분위기를 전합니다. 무더운 여름방학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 운동장은 축제의 장이 됩니다. 청군과 백군으로 나뉜 학생들은 열띤 응원전을 펼치고, 아이들뿐 아니라 학부모와 교사, 주민들까지 함께 어우러져 운동회를 즐겼습니다. 이어달리기, 공굴리기, 박 터뜨리기 등의 다양한 경기는 친구들과 협력하고 화합했던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1980년대 장위국민학교 교실(양성열·성북문화원)

1980년대 장위국민학교 교실(양성열·성북문화원)

2004년 우촌초등학교 운동회(변형진·성북문화원)

2004년 우촌초등학교 운동회(변형진·성북문화원)

졸업식은 학교생활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가족, 친구와 함께 남기는 기념사진, 교실에서 선생님과 마지막으로 나누는 인사에는 아쉬움과 새로운 기대가 교차합니다. 이렇듯 필름에는 학교생활의 시작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1985년 장위국민학교 졸업식(양성열·성북문화원)

1985년 장위국민학교 졸업식(양성열·성북문화원)

1993년 숭인초등학교 졸업식(박선녀·성북문화원)

1993년 숭인초등학교 졸업식(박선녀·성북문화원)

지금까지 오래전 필름 사진을 통해 성북구 주민들의 일상을 일부 만나보았습니다. 사진은 단순히 과거의 한순간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이 흐른 지금도 우리에게 따듯한 기억과 소중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 기록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단순한 향수가 아닌, 우리가 살아온 시간과 역사의 가치를 되새기는 과정일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도 곧 지나간 추억이 되겠지요. 한 장의 사진으로 지금의 찬란한 시간을 남겨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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