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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금도끼 #267] 쉼과 위로가 있는 곳, 돈암동 미암교회
[금도끼 #267] 쉼과 위로가 있는 곳, 돈암동 미암교회
올해 성북문화원은 ‘성북구의 종교와 신앙’을 주제로 지역의 종교시설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초, 금도끼 259회에서는 돈암동 미암교회의 창립 배경과 건축, 6·25전쟁 이후 재건과 교육 등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천사를 소개해 드렸는데요. 이후 미암교회의 김철웅 담임목사님, 박선호 장로 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교회의 역사를 비롯한 새로운 에피소드를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6 월 10일 진행된 인터뷰 내용과 교회로부터 수집한 기록을 함께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1. 교회 건물에 담긴 의미 미암교회는 1948년 4월, 현재 교회 언덕 아래 위치했던 체신부 합숙소(성북구 보문로34다길 49 부근)에서 첫 예배를 드리며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지금의 자리에 새로 건물을 짓고 옮겨와 계속 운영되고 있습니다. 당시 지어진 석조 건물은 ‘일송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현재는 학생부 및 청년부 예배가 진행되는 교육관으로 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건물에 담긴 의미에 대해 아래와 같이 소개해주셨습니다. 일송이라는 게 우리 교회 초대 목사님 이태준 목사님의 호예요. 그래서 일송을 기념한다 일송기념관이고. (건물을 이룬) 돌 자체가 다 이 근처 산에서 나온 돌이에요. 그래서 의미가 굉장히 크다고 봅니다. 우리 교회 대부분 교인들이 고향 비슷하게, 이렇게 생각하고 있죠. - 박선호 장로 그런 거 있잖아요. 성북구 지역이 많이 변화되면서 새로운 건물들도 들어서고 자꾸 변해가는데, 이 자리를 지켜가는 상징적인 의미가 굉장히 있는 것 같습니다. 건물 자체가 80살이 다 되어 가니까요. 오래된 자리에서 한 자리에서 예배의 장소로, 기도의 장소로 계속해서 서 있었던 것이 저희한테는 계속해서 흘러오고 있는 샘물과 같은 것이죠. - 김철웅 목사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길음동
길음동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위치한 행정구역인 동의 하나이다. 길음동은 동선동에서 미아리고개를 넘으면 첫 번째로 나오는 동네이다. 골짜기가 길게 놓여 있는 동네라는 뜻으로 ‘기리묵골’또는 ‘기레미골’로 불렀는데, 그것이 한자화하여 길음동(吉音洞)이 되었다. 비가 많이 오면 이 일대가 물이 많이 차고 길이 질다고 하여 ‘기리미골’또는 ‘지리미골’로 불리었다고도 한다. 또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맑고 고와서 좋은 소리가 들리는 동네라는 뜻으로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1980년대만 해도 길음동 앞으로 흐르는 정릉천이 보였으나 복개 사업이 완료되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한편 길음1동 지역은 2004년에 착공한 길음뉴타운 사업으로 예전의 주택들이 대부분 철거되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전혀 새로운 동네로 변모했다.
이야기 더보기

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

  • 하천이야기 보러가기
    하천
    성북구에는 크게 2개의 하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북악산에서 발원하여 성북구와 동대문구를 거쳐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성북천은 과거에 주민들이 빨래를 하고 아이들이 수영을 즐길 정도로 맑았다고 합니다. 복개공사를 진행하여 상가아파트를 건설하고, 주차장으로도 이용했으나 다시 복원하여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정릉천은 북한산 정릉계곡에서 시작해 월곡동과 동대문구를 지나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하천입니다. 북한산의 맑은 물을 품은 정릉천은 성북천과 마찬가지로 주민들에게 휴식을 제공해주는 공간입니다. 현재는 대부분 복개가 되고 그 위에 도로가 건설되었지만, 상류 부분은 여전히 정릉동 주민들의 곁에 남아 있습니다. 현재는 복개되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인수천도 길음동을 가로질러 흘렀던 하천입니다.
  • 한옥밀집지역이야기 보러가기
    한옥밀집지역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한옥은 흔하게 볼 수 있었지만, 재개발로 인해 점차 사라지면서 이제 관광의 대상이 될 정도로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성북구는 아직도 아름답고 역사적 가치가 있는 한옥들이 많이 모여있습니다. 정릉동 한옥단지는 조상들의 주거문화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돈암지구 토지구획 정리사업을 통해 대규모로 개발되면서 대량의 한옥이 들어섰던 성북동·보문동·안암동 일대에도 여전히 많은 한옥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동소문동2가 한옥밀집지역’은 서울미래유산에서 서울 사대문 밖에 있는 지역으로는 처음으로 한옥밀집지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성북구에서는 한옥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고 실생활에서 한옥을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산신제(山神祭)이야기 보러가기
    산신제(山神祭)
    성북구에는 각 마을에서 해마다 음력 10월 초에 치르는 마을 제사가 있습니다. 성북구는 전체 면적의 70%가 산과 구릉지로 이루어졌기에 서울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산과 연관된 동신신앙(洞神信仰)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성북구의 동신제는 매년 음력 10월 초 각 동마다 정해진 장소에서 치러집니다. 아파트가 생기는 등 주변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장소가 달라지기도 했지만 성북구의 대표적 의례로서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제사의 분위기나 형식에서 동마다 특색이 드러나 각 공동체의 개성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 미아리고개 이야기 보러가기
    미아리고개
    미아리고개는 도심에서 혜화문을 나와 동북 방면으로 향하는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조선 초에는 이 길을 통해 여진인이 한양으로 왔으며, 많은 물산이 이동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교통의 편의를 이유로 ‘죽은 자의 수도’로 불린 미아리 공동묘지가 조성되었습니다. 한국전쟁 때는 서울을 두고 이 고개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통해 북으로 끌려갔습니다. 노래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당시의 아픔을 잘 전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도심에서 밀려난 맹인역술가들이 미아리점성촌을 형성하였습니다. 1960년대에는 판자촌이 형성되었고, 1970년대에 높은 고개를 깎고, 도로를 넓혔습니다. 2019년 현재 미아리점성촌은 서울시 미래유산이 되었고, '죽은 자의 수도'는 산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 전통시장이야기 보러가기
    전통시장
    현재 성북구에는 10개가 넘는 전통시장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과거 서라벌예대 학생들의 아지트였던 길음시장은 6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며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데, 지난 2003년 최신식 설비를 갖추고 현대화에 성공하여 지역의 대표시장이라는 명성을 되찾았습니다. 다양한 먹거리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돈암시장 또한 오랜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1944년 몇 개의 점포가 들어선 공설시장 건물이 세워졌고 그 주변에는 사설시장이 형성되었다가, 재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정릉시장은 매월 개최되는 ‘개울장’을 통해 특색을 갖추고 주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성북구의 시장들은 여러 프로그램을 개최하고, 상인교육 등을 통해 주민을 위한 시장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 독립운동이야기 보러가기
    독립운동
    도심과 가깝고 교통이 편리했으며, 주변에 교육기관이 많은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성북구는 수많은 독립지사들과 연을 맺었습니다. 한용운이 지조를 지키며 말년을 보낸 곳이 성북동 심우장이고, 이육사가 대표작 「청포도」와 「절정」을 발표한 곳이 종암동 62번지입니다. 나중소, 김규식, 최용덕, 김기진, 손진태 등 성북구와 인연이 있는 인물들의 독립운동은 의병활동부터 의열 활동, 3.1운동, 무장투쟁, 임시정부 활동 등 거의 모든 유형의 독립운동을 포괄합니다. 해방 이후에도 성북구는 독립지사들의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김의한, 정정화 부부와 삼균주의의 제창자 조소앙이 자리 잡은 곳이 돈암동이고, 평생을 독립운동에 매진한 유우석과 조화벽 부부, 이회영의 아내, 그의 아들로 독립운동을 했던 이은숙과 이규창이 마지막을 보낸 곳이 정릉동입니다.
  • 코로나19이야기 보러가기
    코로나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 이후 우리의 일상은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서로의 표정을 보기가 어려워졌고 음식점과 카페에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더 이상 당연한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교실과 강의실이 아닌 모니터 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게 되었고 직장인들은 사무실이 아닌 집에서 업무를 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성북구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음식점과 카페 등 여러 가게 앞에는 마스크 착용 및 방역 수칙 안내문이 부착되었으며 학생들을 기다리는 선생님들의 마음이 담긴 현수막이 교문 앞에 걸렸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 및 길거리 곳곳을 수시로 소독하는 모습도 이제는 익숙해졌습니다. 이처럼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성북구 주민들의 노력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 사찰과 불교 유물이야기 보러가기
    사찰과 불교 유물
    성북구에는 유서 깊은 사찰이 많이 모여있습니다. 돈암동 흥천사는 이성계와 조선의 건국을 함께한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지금의 위치로 옮긴 후에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 순정효황후가 한국전쟁 때 피난 생활을 했습니다. 조선 왕실과 역사를 함께한 사찰은 이후 서울 사람들의 나들이 처로 각광받기도 했습니다. 성북동 길상사는 원래 대원각이라는 고급 요정이었습니다. 백석의 연인으로도 유명한 운영자 김영한이 법정 스님에게 감화하여 땅과 건물을 시주하면서 사찰로 거듭났습니다. 흥천사를 비롯해 안암동의 개운사와 보타사, 정릉동의 경국사 등 사찰은 중요한 불교 유물을 소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찰뿐만 아니라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는 국보급 문화재인 불상과 불감을,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는 고려시대 석탑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 무형유산이야기 보러가기
    무형유산
    '무형유산'이란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되어, 공동체ㆍ집단과 역사ㆍ환경의 상호작용으로 끊임없이 재창조된 무형의 문화적 유산을 말합니다. 무형유산은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ㆍ유지되고 구현되어야 하기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해당 무형유산의 보유자를 지정합니다. 성북구에서도 많은 무형유산 보유자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정릉동에 거주했던 소목장 강대규부터 태평무 보유자 강선영, 침선장 정정완 그리고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대금산조 보유자 이생강, 발탈 보유자 조영숙, 매듭장 김은영까지 다양한 분야의 국가 및 서울시 무형유산 보유자가 성북구와 연을 맺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보유자와 함께 전승교육사ㆍ이수자가 우리 문화의 전승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서울시 무형유산 서울맹인독경의 보유단체로 인정받은 대한시각장애인역리학회 서울지부가 공연과 행사 등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정릉2동의 어제와 오늘이야기 보러가기
    정릉2동의 어제와 오늘
    우리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마을의 모습과 거리의 경관은 시시때때로 변합니다. 여러 건물이 모여 있던 곳이 공원으로 바뀌고, 한옥 밀집 지역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도 합니다. 자주 가던 오래된 단골 가게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가게가 들어오기도 합니다. 성북구 또한 이러한 변화를 많이 겪고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과 아리랑시장, 정수초등학교 등이 위치한 정릉2동은 주거시설과 상가, 문화유적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데요. 이곳의 옛 모습은 어땠을까요? 성북문화원은 옛 정릉동 주민이신 이일주 선생님의 기증을 통해 2004년 정릉2동 일대의 모습이 담긴 기록물을 입수하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2004년과 2021년 현재의 기록물을 비교하며 정릉2동 일대의 변화된 모습을 확인해보세요.
  • 영원한 안식처를 지키는 석물이야기 보러가기
    영원한 안식처를 지키는 석물
    우리나라에는 42기의 조선왕릉이 조성되어 있으며, 왕과 왕후의 생전 업적을 기리고 능이 영원한 안식처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능침 주위에 다양한 형태의 석물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혼이 노니는 돌인 혼유석, 능의 한가운데서 불을 밝혀 사악한 기운을 쫓는 장명등, 봉분을 지키는 석인(문석인, 무석인), 석수(석마, 석호, 석양) 등의 석물들은 조성 시기에 따라 양식이 변화하여 그 종류와 생김새가 왕릉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입니다. 성북구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과 조선 20대 경종과 그의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의 능인 의릉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두 왕릉의 석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왕릉을 수호하는 늠름한 자태를 만나보세요.
  • 그림, 성북의 풍경과 이야기를 담다이야기 보러가기
    그림, 성북의 풍경과 이야기를 담다
    우리의 삶에서 예술은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글이 아닌 다른 수단을 통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특히 그림의 경우에는 미적 표현이 강조되어 시각적인 즐거움을 줍니다. 화가들은 자신의 주변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성북구에 거주하며 활동했던 화가들도 성북 곳곳의 모습을 캔버스에 담았습니다. 수화 김환기는 성북동의 자연을 매우 사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소의 화가 이중섭도 정릉동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의 작가인 김성환 화백의 <6.25 스케치> 연작은 당시 성북구 일대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남아있습니다. 화가들의 작품과 함께 성북구 곳곳에 그려진 벽화와 표지석의 그림을 통해서도 성북의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북을 거쳐갔던 위대한 화가들의 다채로운 작품들과 성북천·성북동 일대에 그려진 벽화들, 마전터·북바위 전답터 등 여러 장소의 표지석을 통해 성북의 풍경과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한성대학교 아카이빙 활동] 동선·돈암동의 종교시설이야기 보러가기
    [한성대학교 아카이빙 활동] 동선·돈암동의 종교시설
    고민을 해결하고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해 존재하는 종교는 우리의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에 대해서 기도를 할 때, 우리의 가족이 언제나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기도할 때, 우리 구성원이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기를 기도할 때마다 찾았던 많은 종교의 흔적들이 여기저기에 남아있습니다. 무병장수와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구하는 기도를 올리던 산신제와 같은 무속신앙부터 천막을 세워 예배를 드린 기독교까지 다양한 종교들이 돈암동과 동선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와 기록물을 통해 그 자취들을 살펴보세요.(한성대학교 디지털인문정보학트랙 변지현, 김수빈, 김민찬)
  • [한성대학교 아카이빙 활동] 동선2구역이야기 보러가기
    [한성대학교 아카이빙 활동] 동선2구역
    2021년 여름, 동선2구역은 곧 이주가 진행되고 건물들이 철거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사람들이 평범하게 오고가고, 사람들의 흔적이 구석구석 느껴지는 장소였습니다. 재개발은 단순히 기존의 건물들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 머물던 사람들의 기억 속 장소가 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재개발이 시작되기 전의 동선2구역을 기록하여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기억 속 동선2구역의 모습을 보존하려 합니다. 이 기록들을 통해 재개발 전 동선2구역의 모습을 그리워할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달래졌으면 합니다. (한성대학교 디지털인문정보학트랙 황민, 이주진, 김한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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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날 575돌 기념
    2021년 10월 9일은 한글날이 575돌을 맞는 날입니다. 이는 한글의 창제를 기념하고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국경일로, 일제의 탄압으로부터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창립된 조선어 연구회에서 1926년 '가갸날'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정하였습니다. 조선어 연구회는 1931년,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꾸어 다양한 활동을 펼쳤는데요. 이곳 성북구에도 이극로, 최두선, 안재홍, 서승효 등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했거나 관계하던 인물들이 있으며, 광복 이후 한글학회 『국어교본』의 편찬위원을 맡았던 조지훈도 성북구와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이렇듯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지켜진 한글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문헌을 통해 그 가치를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간송미술관 및 고려대학교에는 국문연구안, 동국정운, 용비어천가, 홍무정운역훈, 훈민정음 해례본 등의 한글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으며, 장위동에 묘소가 마련되었던 순조의 셋째 딸 덕온공주와 그의 아들 윤용구의 글씨는 한글의 위대함과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