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266] 집단의 기억, 한예종의 학교 괴담
작성자 민문기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기억은 대개 스스로 겪은 구체적 경험과 인생을 살며 켜켜이 쌓은 추억들로 구성됩니다. 따라서 기억이란 저마다 다른 형태를 띠기 마련이지요. 그러나 어떤 공간에는 직접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그곳을 거쳐 간 이들 머릿속 어딘가에 각인되는 기이한 ‘집단적 기억’이 존재합니다. 석관동에 위치한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이 바로 그러한 공간입니다. 이 아름다운 캠퍼스는 이상하게도 들어서는 순간부터 묘한 기운이 흐르고, 남들보다 빠르게 두터운 패딩을 꺼내 입어야 할만큼 시린 기운이 감돕니다. 그래서 한예종을 거친 이들에게 천장산 자락의 이 캠퍼스는 낭만적인 대학 생활의 장소이면서 오싹한 ‘학교 괴담’이라는 형태의 기억을 심어주는 무대이기도 합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경

한국예술종합학교 전경

생각해보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무시무시한 ‘학교 괴담’은 대부분 초·중·고등학교가 배경입니다. 자정만 되면 운동장을 노니는 동상 이야기, 미술실 초상화의 눈동자가 나를 따라 움직인다는 소문, 혹은 성적 때문에 목숨을 잃고 학교를 떠도는 학생의 원혼 이야기처럼 말이죠. 왜 그럴까요? 그 시절 학교는 입시와 성적이라는 거대한 벽에 둘러싸인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해소할 심리적 탈출구로 원초적인 괴담을 만들어냈다고 보는 것이지요. 흥미롭게도 이러한 학교 괴담은 성인의 자유가 주어지는 ‘대학’에 들어서는 순간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대학에서는 더이상 밤마다 복도를 떠도는 귀신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지 않습니다. 훨씬 가볍고 현실적인 ‘취업’과 ‘연애’에 관한 낭만적 이야기만 남게 됩니다. 취업에 성공하기 위해 특정 행동을 해야 한다거나, 어떤 길을 연인과 단둘이 걸으면 얼마 못 가 헤어진다는 식의 징크스에 가까운 이야기 말입니다. 대학생들에게 학교는 억압의 공간이 아닌 자유와 낭만의 공간이기에 전통적 장르의 ‘학교 괴담’은 자연스레 설 자리를 잃고 퇴장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한예종은 이러한 일반론에서 아득히 벗어난 위치에 존재합니다. 엄연히 성인들이 모인 대학 공동체임에도 불구하고 초·중·고등학교 못지않게 날 것 그대로의 학교 괴담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이 괴담들은 끊임없이 증언되고 재생산되어 구성원들의 집단적 기억으로 각인됩니다. “다른 과 친구에게 들었는데, 학생 여럿이 모여서 야간 작업을 하다가 너무 피곤해서 다같이 과방에서 잠시 눈을 붙였대요. 그러다 가위에 눌려서 옆에서 자는 동기들을 깨우는데 다들 안 일어나더래요. 나중에 겨우 일어나서 보니 거기서 자고있던 사람 전부가 동시에 가위에 눌렸던 거예요. 한두 명도 아니었는데…” - R(미술원 24) “1학년 때 야간 연습 때문에 밤을 새다가 새벽 4시쯤인가? 화장실에 가려는데 어디서 누가 흐느끼는 거 같은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아무렇지 않은 척 했는데 무척 놀랐죠.” - S(전통예술원 23) 어째서 대학의 가벼운 징크스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여전히 이곳에 살아 숨 쉬고 있는 걸까요? 그것은 예술대학이라는 특성상 늘 작업과 연습을 위해 밤을 지새우는 환경 탓도 있겠지만, 대부분 떠올리는 것은 이곳이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 현 국가정보원)가 있던 자리였다는 사실입니다.
중앙정보부 이전 후 의릉(1967.5.) (출처: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Ⅵ)

중앙정보부 이전 후 의릉(1967.5.) (출처: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Ⅵ)

안기부와 의릉 일대 항공사진(1982.) (출처: 서울시 항공사진)

안기부와 의릉 일대 항공사진(1982.) (출처: 서울시 항공사진)

1962년 남산 부근에 있던 안기부(당시 명칭 중앙정보부)는 오늘날 한예종 부지를 포함한 의릉 능역 13만여 평을 무상임대한 후 각종 건물을 신축하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안기부는 군사독재 시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공포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석관동에 위치한 안기부를 둘러싼 흉흉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요. 지하에 고문실이 있다더라, 밤마다 비명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더라, 따위의 것들 말입니다. “06년도까지는 구관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구관 지하 깊은 곳에 시체안치소도 있었다고 해요. 본관을 새로 짓고 옮긴 후에는 그런 이야기(괴담)는 잘 못 들었어요.” - P(연극원 06) “구관 지하에 고문실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죽었다는 소문은 들었죠. 그래서 밤마다 개인 연습하고 있으면 그 쪽에서 누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 K(前 연극원 연출) 1995년 안기부는 내곡동으로 이전합니다. 안기부가 사용하던 기존 건물들은 1996년부터 한예종이 그대로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현재는 본관 건물만이 2008년 철거되었고, 천장관(기숙사), 전통예술원, 미술원 등은 안기부 건물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사용 중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한예종은 옛 안기부 건물의 뼈대와 흔적에 담긴 역사적 공포까지 함께 이어받은듯 합니다.
1996년(위)과 2018년(아래) 서울시 항공사진, 안기부의 사라진 시설은 위에 빨간색으로 표시, 나머지는 대부분 한예종이 이어받아 이용 중.

1996년(위)과 2018년(아래) 서울시 항공사진, 안기부의 사라진 시설은 위에 빨간색으로 표시, 나머지는 대부분 한예종이 이어받아 이용 중.

“원래 사용하면 안 되는 건물인데 학교 건물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더 무섭고 음산한 느낌이 있어요. 특히 추운 날씨가 아닌데도 학교 근처에만 가면 춥고 한기가 드는 느낌을 강하게 받아요.” - H(전통예술원 16) “후문을 지나서 학교에 딱 들어서면 그때부터 한기가 느껴져서 항상 겉옷을 챙겨 다녔어요. 겨울에도 남들보다 비교적 빠르게 패딩을 꺼내 입고 다녔었고요.” - S(전통예술원 23) 재학생·졸업생 모두 입을 모아 말하듯, 전통예술원·미술원 방향의 후문을 통해 캠퍼스에 진입하면 계절과 관계없이 순식간에 체감온도가 2~3도쯤 뚝 떨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기분은 건물로 진입해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렇기에 야간 작업과 철야 연습으로 지쳤을 시간 어디선가 들리는 괴이한 소리나, 갑자기 등장하는 귀신의 이야기는 어찌보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18년 쯤인가? 건물 3층에 미술 자재들이 쌓인 공간이 있거든요. 저녁 연습이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그쪽에서 갑자기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호기심에 올라가 봤는데 불은 다 꺼져있고. 그 순간 안에서 칠판을 긁는 소리가 들려서 소름이 쫙….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나왔죠.” - J(전통예술원 16) “제 선배도 들은 얘기라며 해주셨는데, 새벽에 얼굴 절반을 긴 생머리로 덮은 귀신이 소고를 들고 소리를 내며 빠르게 다가오는 걸 경험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뛰는 게 아니라 거의 날아오는 것처럼…” - S(전통예술원 23) “지하 스튜디오에서 야간 작업하던 선배가 다른 스튜디오에서 누군가 작업을 하고 있는 뒷모습을 얼핏 봤는데, 잠시 후에 다시 보니까 아무도 없더라는 거예요.” - R(미술원 24) 이제는 야간 작업 마감에 쫓기는 고학번 학생들은 정체불명의 소리를 들어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해탈’에 가까운 태도로 그냥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응 그래~, 지나가~, 여기 아니야~”라 외친다고 하지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미술원 건물 전경. 안기부 시절 국가정보대학원 건물로 쓰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미술원 건물 전경. 안기부 시절 국가정보대학원 건물로 쓰였다.

이 건물들이 괴담의 무대가 된 것은 안기부가 남긴 흉터뿐만 아니라 생김새와 구조 또한 한 몫한 듯 합니다. 전통예술원·미술원은 중앙에 마당이 있고 이를 건축물이 직사각형으로 둘러싼 중정형 건물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도는 일직선으로 쭉 뻗어있어 끝에서 끝이 훤히 들여다보이게끔 되어 있지요. 그래서 끊임없이 복도 끝에서 사라지는 귀신 이야기같은 괴담도 존재하는 듯 합니다.
전통예술원·미술원 건물 내부. 복도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시야가 탁 트여있음을 알 수 있다.

전통예술원·미술원 건물 내부. 복도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시야가 탁 트여있음을 알 수 있다.

“건물 지하에 콘크리트 벽으로 발라놔서 들어가지 못하는 공간이 있어요. 그런 걸 보면 ‘무언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아, 납득 된다’는 생각이 들죠. 주변 친구들의 생각도 마찬가지고요. 건물 외벽도 새하얀 색이라 더…” - J(전통예술원 16) 중정형 건물이 채광과 환기에 유리하다는 이점보다는, 그 익숙하지 않은 구조와 안기부의 역사가 함께 맞물려 지하 깊은 곳의 막힌 공간이나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고문실의 존재와 같은 기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을지도 모릅니다. “기숙사에서 어떤 학생이 갑자기 자다가 깨서 히히히 하고 웃고 이상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해서 룸메이트가 말을 거니까 갑자기 입술 모양을 치아없는 노인처럼 하고서 “꺼져! 얘 죽여버릴 거야!”라고 할아버지 목소리로 소리치더니 1시간 정도 통곡한 일이 있었어요. 저는 늦게 가서 할아버지 목소리 내는 모습은 못 봤지만 눈물범벅인 모습은 직접 봤어요. 가족 중에 무당이 있는 친구가 오니까 갑자기 무슨 일이 있었냐면서 멀쩡해져서 소름이 돋았었죠.” - P(연극원 06) “저희 때만 해도 미술,전통원 부지가 국정원이었어요. 근데 천장관(기숙사)은 그때부터 지금 자리에 있었거든요. 그때 가위를 정말 많이 눌렸어요. 어느 날 스탠드를 켜고 자는데 배 위에 단발머리 여자가 앉아있는 그림자가 보이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 천장관에 단발머리 귀신이 있다 하더라고요. 그 여자가 이따금 잠기지 않은 방을 빼꼼 열어 보고 간다고.” - 심은용(전통예술원 01), 「Humans of K’ARTS – 잠비나이 인터뷰」,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22. 4. 21. 기사 “이름부터 음지못이라서 음산한 느낌이 드는데, 여기서 어느 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더라는 이야기는 심심찮게 들려와요.” - J(전통예술원 16) “연희과에서 정기적으로 음지못 앞에서 공연을 하는데, 마치 민속신앙의 굿 같아요. 그래서 이게 음지못의 음기를 누르고 넋을 위로하기 위한 굿이 아니냐는 얘기가….” - R(미술원 24) 학생들이 작업을 하고 수업을 듣는 건물 이외에 안기부의 중정형 건물을 그대로 사용한 기숙사 천장관이나, 당시부터 존재했다고 알려진 교정의 연못 ‘음지못’에 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특히 천장관의 중정형 구조에 대해 ‘감시받는 느낌이 든다’라는 한 기숙사생의 감상은 이곳에 안기부의 흔적이 얼마나 뿌리깊게 박혀있는지 알 수 있게 합니다.
천장관(기숙사) 건물 전경

천장관(기숙사) 건물 전경

음지못 전경

음지못 전경

“전통예술원에서 정기적으로 전통음악 공연을 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천장산의 귀신들도 몰려와서 그 음악을 즐기고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 P(연극원 06) 그렇다면 이러한 괴담이 계속 한예종 학생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모두의 기억이 된 이유는 진정 무엇일까요? 안기부 이전 이곳은 조선 제20대 왕 경종과 선의왕후가 잠든 세계유산 ‘의릉’의 영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안기부가 이곳을 장악하여 콘크리트 청사를 짓고 인공 연못을 조성하는 등 공간을 훼손하고 군림하였습니다. 따라서 한예종의 학교 괴담의 근원에는 의릉 훼손의 역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존재합니다.
한예종 괴담을 주제로 재학생이 제작한 영상 <미스터리 헌터스> 스틸컷. (ⓒ최유경)

한예종 괴담을 주제로 재학생이 제작한 영상 <미스터리 헌터스> 스틸컷. (ⓒ최유경)

해당 영상에서는 괴담의 원인을 의릉 능역 훼손과 안기부의 희생자 등으로 풀고 있다. (ⓒ최유경)

해당 영상에서는 괴담의 원인을 의릉 능역 훼손과 안기부의 희생자 등으로 풀고 있다. (ⓒ최유경)

또한 안기부에 얽힌 이야기, 특히 이곳 어딘가에서 고문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입니다. 당시 간첩행위를 했다는 누명과 함께 얼굴에 천을 뒤집어쓰고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른 채 이곳으로 끌려와 고초를 겪은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하며, 그들의 증언 또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잡혀온 게 74년 2월 15일이니까 굉장히 추웠어. 추위를 달랠 방법이 없으니까 요만한 창의 커튼 틈새로 빛이 들어오면 발을 옮겨가며 녹이고 버티고 그랬어. 그런데 웬걸, 추위보다도 잠을 안 재우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 오는 날부터 잠을 안 재우는 거야. 지하에 있으니까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구분이 안 가. … 그 때 그 안에서 조사 받으면서 난 이제 이 세상 끝났다, 그런 느낌을 받아서 밖에 나간다는 건 아예 상상도 못했어. 수사관들이 아주 지능적이었어. 내 마음을 풀어주는 식으로 좋게 이야기했다가 돌변해서 까무러칠 정도로 고문을 했어. 심지어 '너 산 채로 묻어 버리겠다, 이야기 하려면 하고 말라면 말아라'라며 살아서 나간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게 하더라고.” - 이사영(1974년 울릉도 간첩단 사건 조작 피해자) 「한예종 학생들은 알까, 여기서 사람 고문했다는 걸」, 오마이뉴스, 2019. 4. 14. 이번 금도끼를 준비하며 인터뷰를 진행한 대상자 모두 알지 못하는 사실도 존재했습니다. 바로 일제강점기 이곳에 공동묘지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조선시대였다면 함부로 묫자리로 쓰지 못했을 왕릉 인근에 공동묘지가 조성되었다는 사실은 일제강점기부터 이 일대가 수난을 겪어왔음을 쉬이 짐작케 합니다. 그리고 만약 괴담의 주인공인 귀신이 실제한다면 근원은 공동묘지의 주인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안기부를 그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1915년경 일본 제작 지도. 의릉(파란색) 아래 공동묘지(빨간색)가 조성되어 있다.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

1915년경 일본 제작 지도. 의릉(파란색) 아래 공동묘지(빨간색)가 조성되어 있다.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한예종의 ‘학교 괴담’이 진실인지도 역시 알 수 없습니다. 더러는 이러한 괴담을 믿지 않는 분도 있었습니다. 다만 독재정권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녔던 안기부가 이곳에 존재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의 잊을 수 없는 역사가 지워지지 않는 공간적 흉터로 남았고, 이는 고스란히 구성원에게 집단적 기억으로 각인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하여 이름 약자로 처리하였으며, 내용은 일부 편집을 거쳐 게재하였습니다. 인터뷰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참고 자료> 박수진 등, 『장위동·석관동』, 성북문화원, 2019.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Ⅵ, 국립문화재연구소, 2014. 김종대, 「學校共同體에서 만들어진 이야기, 學校怪談」, 『구비문학연구』 20, 한국구비문학회, 2005. 김종대, 「學校怪談을 통해본 傳統文化의 受容과 變化에 대한 일고찰」, 『우리문학연구』 25, 우리문학회, 2008. 변상철, 「한예종 학생들은 알까, 여기서 사람 고문했다는 걸」(오마이뉴스, 2019. 4. 14.) 최유경, 「<미스터리 헌터스> 프로그램 기획안」 성북마을아카이브 https://archive.sb.go.kr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 https://www.museum.go.kr/modern-history 한국예술종합학교신문 http://news.karts.ac.kr

관련 마을아카이브

관련 마을아카이브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