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18] 이름으로 남은 다리들
-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죠. 하지만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건 사람만이 아닙니다. 이제는 남아있지 않지만 이름으로 우리 옆에 남아있는 것들이 성북구에도 있습니다. 성북천은 성북동과 안암동을 지나 청계천으로 흐르는 하천입니다. 특히 북악산에서 시작해 성북동을 지나는 상류 구간은 복개되기 전까지 오랜 시간 성북동 사람들의 생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1980년대에 성북천이 복개되며 아이들이 헤엄치던 모습, 아낙네들이 빨래하던 모습과 성북천 주변의 복숭아꽃들은 이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과거의 풍경과 함께 성북천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들도 사라졌지만, 그 이름들은 우리 주위에 남아있습니다. 오늘의 금도끼에서는 이름을 남기고 사라진 다리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함께 살펴보면서 과거를 상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조화벽
-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강원도 양양 출신으로 개성의 호수돈 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 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호수돈 비밀결사대’를 조직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휴교령이 내려지자 조화벽은 버선 솜에 독립선언서를 감추고 고향 양양으로 귀향하여 지역만세운동의 불씨 역할을 했다. 1925년 교직생활을 하던 중 유관순 열사의 오빠인 유우석과 결혼하였다. 이후 유우석의 가족을 모두 양양에 은신시켰으며, 유관순의 동생인 관복과 관석을 양육하였다. 1932년에는 양양에 정명학원을 설립하여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쳤다. 광복 이후 정릉동 604-16번지(현 아리랑로5길 128)에서 거주하였고, 1975년 타계하였다. 정부에서는 1982년 대통령표창을,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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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용묵
- 소설가, 출판인이다. 1925년 『조선문단』에 단편소설 「상환」과 시 「봄이 왔네」로 등단하였다. 문장과 구성, 내용에서 정확하고 세밀한 기교를 중요시했지만 문단에서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1935년 『조선문단』에 실린 「백치 아다다」가 평단의 관심을 끌고, 실감나는 심리묘사, 간결한 문장과 짜임새로 뛰어난 단편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집으로는 『병풍에 그린 닭이』(1944), 『별을 헨다』(1950), 『상아탑』(1955) 등이 있다. 종합잡지인 『신문화』(1952)와 동인지 『흑산호』(1953) 발간을 주도하고, 최정희, 김동리, 조연현, 정비석 등과 교류하였다. 1954년부터 정릉 입구에 있는 재건주택 85호에 거주하다가 1961년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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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식
-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다. 경성제국대학을 졸업 후 법문학부 조수로 경제연구실에서 근무하였다. 성북동에 거주하면서 독서회, 적색노동조합, 공산주의자그룹 결성에 매진하다가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경성콤그룹에 참여하였고 해방후에는 남로당 중앙위원, 조사부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4월 체포되어 5월 육군본부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으나 한국전쟁 당시 풀려났고, 북한에서 농림성 기획처 부처장을 지냈다. 남로당 숙청 당시 숙청되었다. 경기도 경성부 성북정 184-32(현 성북구 성북로6길8-2)에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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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