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19] “여성국극,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어”, 여성국극과 임춘앵
- 여러분은 ‘여성국극’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여성국극이란 전통연희자들이 무대 위에서 역할을 나누어 연기, 춤, 소리를 펼치는 공연인 창극의 일종으로 모든 배역을 여성이 담당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성국극은 1950년대 선풍적 인기를 끌었지만, 짧은 전성기 이후 급격한 쇠퇴기 맞이하면서 우리 기억 속에서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그런데 요즘 웹툰 <정년이>가 창극,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로 변주되면서 이야기의 주요 소재인 여성국극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고 있습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임종국
- 시인이자 평론가이며, 또한 친일문제를 연구한 역사학자이다. 성북동에 살면서 고려대학교를 다녔고, 이후 「비(碑)」, 「자화상」 등의 시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1965년 한일회담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분노하여 친일연구에 뛰어들었다. 1966년 월곡동에 거주하면서 『친일문학론』을 저술하였고, 70년대부터 본격적인 친일연구를 진행하여 80년대에는 『일제침략과 친일파』, 『일제하의 사상탄압』, 『친일문학작품선집』, 『친일 논설집』 등 다수의 저작물이 출판되었다. 1989년 임종하기까지 친일파 총서를 집필 중이었는데, 그 유지를 후학들이 받들어 민족문제연구소를 설립하고 연구를 지속하였고, 마침내 2009년 친일인명사전을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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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완서
- 소설가이다. 1970년 『여성동아』에 「나목」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 돈암동으로 이사해 몇 차례 집을 옮겨 다니며 살았는데 돈암동 시절의 경험과 추억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 『그 남자네 집』(2004) 등에 담겨 있다. 1953년 결혼 후 70년대까지 보문동 한옥에서 살았다. 그의 소설에서 1960-70년대에 보문동 한옥주택가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다. 박완서는 한국전쟁과 분단문제, 물질중심주의 풍조와 여성 억압의 현실, 거대화되고 메말라가는 도시 속에서 아웅다웅 살아가는 중산층 소시민들의 군상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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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구 본원
- 성북로24길 3(성북동 89)에 위치한 수도회 건물이다. 한국 가톨릭 최초의 내국인 수도자를 위한 남자 수도회인 ‘한국 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본원 건물로, 1955년 방유룡 신부의 설계로 건립되었다. 제단 상부 돔 역시 반원형이 아닌 타원형 반구로 조성되는 등 다른 성당과는 구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2015년 12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에서 눈여겨봐야 할 곳은 건물 외벽의 순교자상이다. 한국의 순교복자 김대건 신부, 정하상(바오로), 조신철(가롤로), 유진길(아우구스티노) 등 12명의 순교자상이 외벽에 설치되었다가 지금은 보존을 위해 수도회에서 별도로 수장하고 있다. 본을 떠 새로 제작한 성상 10개가 대신 설치되어 있다. ‘최초로 조각된 한국 순교자상’으로 알려진 이 조각상들의 종교적, 문화재적 가치 또한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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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암동성당
- 성북구 고려대로7길 120(동선동2가 1-2)에 위치한 종교시설이다. 돈암동 성당은 1955년 혜화동 본당으로부터 분가해 탄생했다. 설립 당시 돈암동 성당은 혜화동 본당으로부터 삼선동, 안암동, 보문동과 돈암동 일대를 관할구역으로 인계받았다. 예배당은 1950년대의 석조 성당을 대표하는 건물로, 6.25전쟁 이후 건축물의 견고성에 더욱 역점을 두어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화강암을 외벽에 붙였다. 건물의 디자인은 준고딕양식으로 석조건물에 성곽과 같은 높은 종탑을 세우고 아치형의 문이 안과 밖을 연결하게 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새로운 성당 건물은 2000년에 준공된 것이다. 2013년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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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