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233] 보문동 역사의 산증인 박춘화 이야기
- 금도끼 <성북 사람들의 구술생애사> 시리즈, 이번 주 소개해 드릴 분은 1947년 보문동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그곳에 생활 터전을 두고 계신 박춘화 님입니다. 박춘화 님은 보문동의 변화 모습과 인생 이야기를 덤덤하게 들려주셨습니다. 지면상 모든 이야기를 공개할 수 없기에 보문동 일대의 변화와 지역 이야기를 중심으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미아리 공동묘지
- 일제강점기 미아리 일대(현 길음동)에 설치된 공동묘지이다. 1912년 「묘지규칙」이 발표되면서 묘지로 설정된 지역은 19곳이었다. 그중 1번은 미아리 오패산 일대, 2번 묘지는 숭인면 미아리 일대였다. 국가기록원 소장 토지조사부에 의하면 미아리 산25번지와 산34번지 일대가 경성부와 숭인면 공동묘지로 이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길음동에 위치한 2번 미아리 묘지는 약 69,000평 정도로 추정된다. 이후 공동묘지가 기피시설로 인식되면서 1958년대 후반에 이전이 완료되었고, 그 자리는 무허가 건물 철거민 이주단지 등으로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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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림
- 시인이다. 1956년 잡지 『문학예술』에 「갈대」를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10여 년간 농촌과 장터를 떠돌며 경험한 것을 시에 담았다. 첫 시집 『농무』(1973)는 1960-70년대 농촌의 현실과 농민의 삶을 그린 것이며, 『가난한 사랑노래』(1988)에는 시대의 탄압에 맞서 적극적으로 현실에 대항하며 만난 민중과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1978년 처음 집을 마련하고 길음동에 살다가 4년 뒤, 정릉동으로 이사하였다. 이후 40년 가까이 정릉동에 살면서 『달넘세』(1985), 『가난한 사랑 노래』(1988), 『길』(1990),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1998) , 『뿔』(2002), 『낙타』(2008), 『사진관집 이층』(2014) 등 시집들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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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8 고대학생 의거
- 1960년 4월 18일 고려대학생들이 자유당의 독재에 항거하면서 벌인 평화시위이다.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에서 온갖 부당한 일이 자행되었고, 자유당과 경찰의 반민주적이고 억압적인 행위를 규탄하는 시위가 산발적으로 진행되었다. 주로 지방도시의 고등학생들이 시위를 전개하던 가운데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대학생으로서는 최초로 서울에서 시위를 감행하였다. 18일 오후 1시 3천여 명의 고려대학생들이 교문을 나섰고, 국회의사당 앞에 도달하여 농성하였다. 시위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던 고려대학생들은 정치깡패들의 습격을 받아 10여 명이 중상을 입었다. 하지만 김주열 열사의 죽음과 고려대학생들의 피습사건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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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곡동 새마을금고 건물
- 성북구 오패산로 75(하월곡동76-17)에 위치한 새마을금고 율곡점 건물이다. 사용승인일은 1985년 4월 8일이며, 건축면적 135.35㎡, 연면적 448.64㎡이다. 건물에는 새마을금고 율곡지점이 1층에 입점해 있고, 2층에는 연세우리치과의원이 있다. 건물의 뒷면과 측면의 모습은 해당 건물 바로 좌우에 다른 건물들이 있어 확인하기가 어렵다. 숭인초등학교와 오동공원이 인접해 있어 생활권에 포함된다. 래미안, 푸르지오, 두산위브 등 여러 아파트에 인접해 있는 건물이라 은행 이용과 치과 치료를 위해서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건물은 2층짜리 건물이며 지어진 지 오래된 건물임에도 외관이 깔끔하다. 2층 진입로와 1층 입구 관리가 잘 되어있다.(2024년 2학기 한성대학교 서비스러닝 사회봉사 조사 내용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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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동 우리밀국시
- 성북구 혜화로 84에 있는 상가 건물이다. 건물의 사용승인일은 1988년 4월 25일이다. 연면적은 207.58㎡이다. 우리밀국시라는 음식점 하나가 있는 건물이며, 1층만 식당으로 쓰이고 있다. 2층에 행주를 널어놓거나 실외기가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2층 이상도 영업을 위해 사용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건물 옆 공간이 좁고 계단이 가파르다. 빨간 벽돌조로 되어있어 일반 가정집 같으면서도 가게 앞부분이 거의 유리로 되어있어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가게가 주변 건물과 다닥다닥 붙어있다시피 하기에 앞부분이 집중적으로 노출되고 옆과 뒤는 보기 힘들다. 국시는 성북동에서 많이 파는 칼국수의 종류이고, 성북동의 명물로 상징성이 있다. 성북동은 삼선교와 더불어 고위 관료 등 요직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살던 동네였고, 고기 고명의 칼국수를 파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이 좋아하던 음식이기에 더 주목받게 되었다는 배경도 있다. (2024학년 2학기 한성대학교 서비스러닝 사회봉사 조사 내용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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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