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162] 양잠 농사의 풍요를 빌다, 선잠제와 선잠단지
- 한낮에 내리쬐는 따끈따끈한 햇살이 여름을 재촉하는 요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봄이 되면 한해 농사의 풍요를 비는 제례를 국가적 차원에서 시행하곤 했는데요. 특히 음력 3월에는 누에를 사육하여 고치를 생산하는 일인 양잠(養蠶) 농사의 풍요를 비는 ‘선잠제(先蠶祭)’를 드렸습니다. “계춘(季春)의 길일(吉日)인 사일(巳日)에 지낸다.” (『국조오례의』) 선잠제는 양잠을 위하여 잠신(蠶神)으로 알려진 중국 황제의 비 서릉씨에게 드렸던 국가 제사로, 그 시기는 음력 3월의 길한 ‘뱀날’로 규정되어 있는 것을 『국조오례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고려사(高麗史)』 권62 「예지(禮志)」4 길례중사(吉禮中祀) 선잠조(先蠶條)에 그 제향 절차가 수록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초부터 시작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이완기
- 성북동에서 거주한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중동학교 재학 중이던 1940년 7월, 성북정 전태현의 집에서 함께 살던 손용우에게 '조선인은 조선독립의 목적을 달성해야 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같은 달 같은 곳에서 전태현과 손용우에게 일본은 패전할 것이므로 기회를 잃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1940년 9월에는 중동학교 교실에서 중일전쟁을 계기로 조선독립이 실현될 것이라 말했고, 지원병제도를 반대했다.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이후 가혹한 신문과 조사를 받다가 판결이 나기 전인 1942년 5월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경성부 성북정 133-60(현 성북로 53-2)에서 전태현, 손용우와 함께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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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광세
-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44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재학 중 조선민족해방협동당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조선 독립의 가능성을 의식하면서 영국, 미국에 종속되는 독립을 할 바에는 조선인 스스로 독립운동을 하여 조선인의 실력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이들은 무장투쟁을 위해 경기도 포천의 깊은 산속에 본거지를 두고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락하는 한편, 미국으로 하여금 B-29폭격기를 통해 무기를 산속으로 공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임광세는 1944년 10월 포천의 아지트로 입산하려던 도중 체포되어 1945년 6월 기소유예로 출옥했다. 정부에서는 2013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유공자 정보에 따르면 그의 주소는 서울 동대문(東大門) 돈암(敦岩) 29-55(현 돈암동 29-1)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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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학교-연세대학교 정기전
-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가 친선을 도모하기 위해 운동경기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승부를 겨루는 행사이다. 두 학교가 공식적으로 운동경기에서 만난 것은 1925년 열린 제5회 전(全) 조선 정구대회였다. 이후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사립 전문학교인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와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가 자주 맞붙게 되면서 두 학교의 학생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큰 화제가 되었고, 이들의 경기는 식민지라는 암울한 시대상 속에서 민족의 혼을 살리는 민족적인 경기로 인식되었다. 1945년 12월 양교 OB구락부와 조선 축구협회의 공동 주관으로 열린 축구전은 고려대와 연세대의 정기전의 시발점이 되었고, 1956년 현재의 정기전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1957년부터는 고려대가 주관시에는 고·연전으로, 연세대가 주관시에는 연·고전으로 부르기로 양교가 합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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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