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40] 선잠단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를 현대적 공간으로, ‘카페 선잠’
- 최근 지역 고유의 문화자원을 활용하여 여러 상품이나 콘텐츠로 개발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0원 주화에 경주 불국사 다보탑(국보)이 그려져 있음에 착안하여 만들어진 ‘경주 십원빵’이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겠죠. 지역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의 큰 호응을 얻은 십원빵은 현재 대표적인 지역 브랜드로 자리 잡았고, 전국 각지에 십원빵을 판매하는 매장이 생겨났습니다. 심지어 일본에도 유사상품인 ‘십엔빵’이 생겨날 정도로요.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변종하
- 서양화가이다. 대구 계성중학교 재학시절 서진달을 만나 서양화의 기초를 배웠다. 1942년 일본군 해군 하사관으로 뽑히자 만주로 피신 후 서진달의 추천으로 만주 신경시립미술원 서양화과에 편입하였다. 1956년 제4회 국전에서 〈포푸라〉로 부통령상을 수상하는 등 1954년부터 1957년까지 연속 특선을 하며 추천작가가 되어 미술계에서 입지를 다졌다. 1960년 프랑스로 건너가 공부하였는데 이 시기의 대표적 작품은 일그러진 인물상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우화〉와 〈돈키호테〉 등이다. 성북동으로 들어온 이후인 1980년대에는 ‘서정적 풍경’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성북동 330-48번지 집의 2층에 화실을 두었고, 꽃, 새, 나무, 달, 잠자리 등을 소재 삼아 간결하고 소박하게 묘사하여 주목을 받았다. 그의 집은 생전에 큰 돌거북이 있는 집이자 성북동 구석에 있는 집이라고 해서 ‘구석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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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인문학
- 성북동에 소재하였던 청조사가 발간한 월간문예잡지이다. 1934년 8월 변서봉·유춘정·박귀송·이준숙·황백영·정규창 등이 창간하여, 1936년 9월 통권 21호로 종간되었다. 편집인 겸 발행인은 노자영으로 그가 성북동 문화주택에 살며 청조사를 직접 운영하였기 때문에 노자영의 개성과 취향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의 낭만적 감상주의로 일관되었는데 『신인문학』 역시 대중오락지적 요소가 다분하였다. 이에 대해 계용묵은 「한국문단 측면사」에서 노자영이 창간한 문학잡지 『신인문학』은 신인들을 발굴하고 기성문인층의 창작도 발표되었다는 의의가 있으나 가십란에 가십으로 판매 부수를 올렸다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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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인훈
- 소설가이다. 최인훈은 1936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는데, 가족과 함께 월남하여 목포상업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법대를 중퇴하였다. 1959년 『자유문학』에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傳)」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1960년 「가면고」, 「광장」 등을 발표하면서 작가적 명성을 굳혔다. 4.19혁명이 있고 7개월 뒤인 1960년 11월에 발표한 「광장」은 당대까지 금기시되었던 남북한의 이데올로기 대립을 파헤친 대표작으로 발표 직후 문단 안팎에 파란을 일으켰다. 한편 「소설과 구보씨의 일일」과 「화두」(1994)에서 성북동을 주된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하였으며, 특히 「화두」는 이태준의 집을 대단히 상세하게 설명하여 실제로 이태준의 집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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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
-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어 1953년 휴전할 때까지 약 3년간 한반도에서 전개되었던 전쟁이다. 북한은 성북구 미아리고개를 통해 서울로 들어왔고 후퇴할 때에도 그곳을 통해 많은 사람을 납치해 갔다. 북한은 전쟁 중에 서울을 점령했다가 후퇴하면서 남한의 많은 사람을 미아리고개를 통해 북으로 강제납치하였고, 그중에는 성북구에 살던 사람들도 다수 포함되었다. 조소앙, 안재홍, 조헌영 등은 독립운동가이자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인물로 납북 당시 성북구에 거주하고 있었다. 전쟁으로 인한 이산의 아픔과 고통은 반야월이 작사하고 이재호가 작곡한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통해 대중가요로도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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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