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13] 주민들의 포근한 휴식처가 되어주는 개운산
- 성북구에는 여러 산이 있어 가까이에서 자연을 느끼기 좋습니다. 그중에서도 성북구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주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산이 있는데요, 바로 개운산(開運山)입니다. 개운산은 북한산(835.6m)이나 북악산(342m) 등 성북구의 다른 산들과 비교하면 야트막한 134m 높이를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접근성이 좋아 주민들에게 친근한 공간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오늘의 금도끼에서는 개운산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들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이기석
- 삼선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929년 신간회 복대표회의에서 상무집행위원, 신간회 영덕지회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930년에는 조선공산당 재건설준비휘원회 경북책임자, 조선좌익노동조합전국평의회조직준비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1934년 징역 2년을 받았다. 1939년 경성콤그룹에 참여하여, 1940년 성북동 또는 삼선동 자택에서 경성콤그룹의 기관지를 받아 읽었다. 1944년 비밀결사단체인 조선건국동맹이 결성되자, 노농군 편성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동대문구 돈암정 522번지(현 삼선교로6 일대로 추정)에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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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미당
- 성북동에 거주했던 독립운동가이다. 본명은 연충효이나 1938년 임시정부가 장사로 피신했을 때부터 아명인 ‘연미당’을 사용하였다. 1920년 가족과 함께 상하이[上海]로 이주했다가 아버지를 따라 진강으로 이사하여 진강여자중학교를 다녔다. 1926년 아버지 사망 후 상하이에 정착하였으며, 1927년 3월 엄항섭과 결혼하였다. 상해여자청년동맹, 한인애국단, 임시의정원, 한국독립당, 한국애국부인회 등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광복 이후 엄항섭이 1945년 11월에 환국하였고, 연미당과 가족들은 1946년 6월 입국하였다. 엄항섭·연미당 가족은 경교장에서 일주일을 보낸 후 성북동 산꼭대기 별장에 거처를 마련하고, 이후 삼청동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성북동에 거주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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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광세
-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44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재학 중 조선민족해방협동당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조선 독립의 가능성을 의식하면서 영국, 미국에 종속되는 독립을 할 바에는 조선인 스스로 독립운동을 하여 조선인의 실력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이들은 무장투쟁을 위해 경기도 포천의 깊은 산속에 본거지를 두고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락하는 한편, 미국으로 하여금 B-29폭격기를 통해 무기를 산속으로 공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임광세는 1944년 10월 포천의 아지트로 입산하려던 도중 체포되어 1945년 6월 기소유예로 출옥했다. 정부에서는 2013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유공자 정보에 따르면 그의 주소는 서울 동대문(東大門) 돈암(敦岩) 29-55(현 돈암동 29-1)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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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봄, 배움, 소통을 위한 정릉 마을카페 만들기
- 2012년 ‘성북구 마을만들기 공모사업’을 통해 정릉동 주민들이 지역공동체 사업으로 카페를 만들었던 일이다. 정릉동의 주민들이 마을 내에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만날 수 있는 사랑방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동네 사람들의 소모임과 문화생활을 엮는 커뮤니티 카페를 구상하였고, 구청의 도움을 받아 ‘행복한 정릉 카페’를 열었다. 처음 발의한 사람들은 정릉동에 살면서 아이를 키우던 5명의 엄마들이었기에 아이 돌봄, 육아와 재교육 관련 배움의 공간, 정보 교류를 위한 소통 공간의 필요성이 컸기에 부담없이 들러서 만날 수 있는 카페라는 형태의 공간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현재 정릉카페는 운영되고 있지 않으며, 2014년 폐점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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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