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27] 선잠단지 지킴이 30년 이만규 님의 이야기
- 성북문화원은 지역 연구의 성과를 정리하는 다양한 책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이 중 <성북 사람들의 구술생애사> 시리즈는 성북문화원의 대표적인 간행물입니다. 2020년부터 매년 선보이고 있는 이 시리즈는 성북구 주민기록단과 함께 제작하는 책으로 성북구에 오랫동안 거주하신 어르신의 삶과 지역의 역사를 그분의 입을 통해 듣고 채록함으로써 사소하지만 중요한 지역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특히 그 과정을 주민기록단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성북 사람들의 구술생애사>는 공동체아카이브를 지향하는 성북마을아카이브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보물을 좀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자 앞으로 10회에 걸쳐 <성북 사람들의 구술생애사> 시리즈를 한 권 한 권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처음으로 소개해 드릴 분은 성북동의 이만규 님입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김의한
- 정릉동에서 자라고 돈암동(현 동선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비밀결사 대동단의 조직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부친인 김가진과 함께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활동에 참가하였고, 선전위원회의 선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한인애국단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낙양군관학교 분교 내의 한인군관학교와 의열단 계열의 군관학교에 관여해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해방 후 돈암동에 거처를 마련했지만 전쟁 때 납북되었다. 임시정부 요인으로 여성 계몽운동에 힘썼던 정정화가 아내이며,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인 김자동이 그의 외아들이다. 김자동의 구술 증언에 의하면, 이들 가족은 해방 이후 돈암동 178-1번지(현 동선동 3가 130-7)의 한옥에서 거주하였다고 한다.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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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미당
- 성북동에 거주했던 독립운동가이다. 본명은 연충효이나 1938년 임시정부가 장사로 피신했을 때부터 아명인 ‘연미당’을 사용하였다. 1920년 가족과 함께 상하이[上海]로 이주했다가 아버지를 따라 진강으로 이사하여 진강여자중학교를 다녔다. 1926년 아버지 사망 후 상하이에 정착하였으며, 1927년 3월 엄항섭과 결혼하였다. 상해여자청년동맹, 한인애국단, 임시의정원, 한국독립당, 한국애국부인회 등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광복 이후 엄항섭이 1945년 11월에 환국하였고, 연미당과 가족들은 1946년 6월 입국하였다. 엄항섭·연미당 가족은 경교장에서 일주일을 보낸 후 성북동 산꼭대기 별장에 거처를 마련하고, 이후 삼청동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성북동에 거주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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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낙현
-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42년 배재중 재학 중에 김영헌과 함께 자유주의 사상과 독립사상을 가졌다. 1944년 6월에는 충청남도 서천의 김영헌 집에서 지인들과 함께 조선독립사상에 매진하자고 다짐하였다. 같은 해 8월 함평여관에서는 농촌정신대를 조직한 후 적절한 시기에 이를 역이용할 것과 일본 패망에 따른 결정적인 기회가 오기를 준비하자고 김영헌과 협의하였다. 이로 인해 1945년 4월에 치안유지법 및 조선임시보안령 위반으로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의 처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당시 신낙현은 경성부 동대문구 돈암정 69-27번지(현 동소문로 111)에 거주하였다. 2017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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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