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39] 성북 예술인들의 사랑방, 승설암
- 자연과 어우러진 고즈넉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고, 곳곳에 아기자기한 공간들이 자리하여 여러 세대에게 사랑받는 성북동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역사·문화자원이 남아 있는 동네입니다. 과거에는 수많은 문화예술인의 생활 터전이자 문화적·예술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던 곳으로, 현재도 그들이 거주했던 가옥에 대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난 6월 초 성북문화원에서 개최한 뮤지컬 〈심우〉와 예술제 〈기억할 만해〉의 주인공인 만해 한용운의 집 ‘심우장’은 지금도 북정마을 중턱에서 자리를 지키며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으며, 옛 성북천변 길에는 문인이자 화가였던 근원 김용준이 살았던 ‘노시산방’과 그로부터 집을 물려받아 화가 김환기와 수필가 김향안이 거주했던 ‘수향산방’이 있던 자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인근에는 소설가 상허 이태준이 살았던 ‘수연산방’이 여전히 남아 전통찻집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시인 조지훈의 ‘방우산장’은 집터 부근에 같은 이름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그를 기념하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관련 금도끼 [금도끼 #35] 김용준과 노시산방(老枾山房) [금도끼 #121] 이태준의 『장마』 와 성북동 [금도끼#164] ‘수향’, 성북에 돌아오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이기석
- 삼선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929년 신간회 복대표회의에서 상무집행위원, 신간회 영덕지회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930년에는 조선공산당 재건설준비휘원회 경북책임자, 조선좌익노동조합전국평의회조직준비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1934년 징역 2년을 받았다. 1939년 경성콤그룹에 참여하여, 1940년 성북동 또는 삼선동 자택에서 경성콤그룹의 기관지를 받아 읽었다. 1944년 비밀결사단체인 조선건국동맹이 결성되자, 노농군 편성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동대문구 돈암정 522번지(현 삼선교로6 일대로 추정)에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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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종하
- 서양화가이다. 대구 계성중학교 재학시절 서진달을 만나 서양화의 기초를 배웠다. 1942년 일본군 해군 하사관으로 뽑히자 만주로 피신 후 서진달의 추천으로 만주 신경시립미술원 서양화과에 편입하였다. 1956년 제4회 국전에서 〈포푸라〉로 부통령상을 수상하는 등 1954년부터 1957년까지 연속 특선을 하며 추천작가가 되어 미술계에서 입지를 다졌다. 1960년 프랑스로 건너가 공부하였는데 이 시기의 대표적 작품은 일그러진 인물상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우화〉와 〈돈키호테〉 등이다. 성북동으로 들어온 이후인 1980년대에는 ‘서정적 풍경’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성북동 330-48번지 집의 2층에 화실을 두었고, 꽃, 새, 나무, 달, 잠자리 등을 소재 삼아 간결하고 소박하게 묘사하여 주목을 받았다. 그의 집은 생전에 큰 돌거북이 있는 집이자 성북동 구석에 있는 집이라고 해서 ‘구석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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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암동 동일빌딩
- 성북구 종암로 108에 위치한 상가 건물이다. 건물의 사용승인일은 1971년 7월 12일이며, 면적은 506㎡, 연면적은 1,837.6㎡이다. 지상 3층, 지하 1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옥상이 개방되어 있다. 건물 정면 앞으로 주차공간이 확보되어 있다. 건물의 연식 대비 내외부가 깨끗하게 관리된 편이다. 머릿돌은 따로 없었으나 정면 입구 오른쪽 기둥에 ‘東一빌딩’이 새겨진 비석이 붙어있고, 계단 옆에 부착된 소방안전관리자 현황표 대상명에도 동일빌딩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외부에서 봤을 땐 연식이 그리 오래된 건물 같아 보이지 않는다. 전면부 1층은 기업은행이 사용하고 있었으며 측면부 1층의 경우 주얼리가게(LUMERE), 네일×속눈썹샵(오늘도 맑음 네일, 속눈썹Day)이 입점해 있다. 건물 정면 입구 외에 측면부에 입구가 한 군데 더 있는데, 지하 도미닉 공방으로 이어지는 입구이다. 도미닉 공방의 경우 간판을 확인할 수 없으나 로드뷰로 상호명을 확인할 수 있다. 오토바이 관련 용품을 파는 가게다. 정문 입구로 들어와 계단을 올라오면 바로 PC방 입구가 보인다. 내부 규모는 파악하지 못했으나 꽤 큰 규모로 사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PC방 입구를 바라보고 왼쪽으로 틀면 관계자 외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있는 잠겨 있는 유리문이 보인다. 3층의 대부분은 예향교회가 쓰고 있다. 교회 왼쪽편으로는 복도를 따라 4개의 별도 호실이 있었고 가장 안쪽에는 예향교회의 별도 공간이 있었다. 4개의 호실 중 한 곳만 기업은행 표지판이 붙어있었고 나머지의 경우 별도의 간판이 붙어있지 않다. (2024학년 2학기 한성대학교 서비스러닝 사회봉사 조사 내용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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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봄, 배움, 소통을 위한 정릉 마을카페 만들기
- 2012년 ‘성북구 마을만들기 공모사업’을 통해 정릉동 주민들이 지역공동체 사업으로 카페를 만들었던 일이다. 정릉동의 주민들이 마을 내에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만날 수 있는 사랑방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동네 사람들의 소모임과 문화생활을 엮는 커뮤니티 카페를 구상하였고, 구청의 도움을 받아 ‘행복한 정릉 카페’를 열었다. 처음 발의한 사람들은 정릉동에 살면서 아이를 키우던 5명의 엄마들이었기에 아이 돌봄, 육아와 재교육 관련 배움의 공간, 정보 교류를 위한 소통 공간의 필요성이 컸기에 부담없이 들러서 만날 수 있는 카페라는 형태의 공간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현재 정릉카페는 운영되고 있지 않으며, 2014년 폐점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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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