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40] 선잠단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를 현대적 공간으로, ‘카페 선잠’
- 최근 지역 고유의 문화자원을 활용하여 여러 상품이나 콘텐츠로 개발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0원 주화에 경주 불국사 다보탑(국보)이 그려져 있음에 착안하여 만들어진 ‘경주 십원빵’이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겠죠. 지역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의 큰 호응을 얻은 십원빵은 현재 대표적인 지역 브랜드로 자리 잡았고, 전국 각지에 십원빵을 판매하는 매장이 생겨났습니다. 심지어 일본에도 유사상품인 ‘십엔빵’이 생겨날 정도로요.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전형필
- 간송미술관(당시 명칭 보화각)을 설립한 문화재 수집가이다. 간송은 그의 호이다. 1906년 종로의 거상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시절 민족문화에 관심을 가졌고, 귀국하여 오세창의 도움을 받아 문화재의 수집과 보호에 심혈을 기울였다. 1934년 수집한 문화재를 보존하고 연구할 장소를 물색하다 현재 성북구 간송미술관 자리에 대지를 마련하였고, 오세창은 그곳에 ‘북단장’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1938년에는 북단장 내에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을 완공하였다. 그가 수집한 주요 문화재에는 김정희, 정선, 김홍도, 장승업 등의 서화 뿐만 아니라 국보와 보물급의 문화재도 다수 포함되었다. 1962년 사망하였는데, 문화재 수호 행적을 기려 1964년 대한민국문화훈장 국민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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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환기
- 한국 추상미술의 1세대 화가이다. 1933년 동경 니혼대학 예술과 미술부에서 공부하고, 1937년 귀국 이후 ‘신사실파’를 조직하여 모더니즘 운동을 주도하였다. 자연을 통하여 한국적인 감성을 담고자 노력했던 그는 항아리, 달, 별, 학, 구름, 밤하늘 등 문학적이고 음악적인 소재를 다루었다. 1944년 김향안과 결혼하여 김용준의 ‘노시산방’을 이어받아 자신의 호와 아내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 ‘수향산방’이라 이름 붙였다. 1948년 종로구로 이사하였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성북동으로 돌아와 집을 마련했다. 그의 수필 「산방기」에는 이곳에서의 생활과 성북동에 대한 애정이 잘 나타나 있다. 현재 ‘수향산방’은 성북동 274-1번지 수월암 부근이며, 두 번째 집은 성북동 32-1번지 부근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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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정
- 보문동과 관련있는 독립운동가이다. 1933년 9월 21일 숭인면 신설리(현 성북구 보문동, 동대문구 신설동 일대)에 있었던 종연방직[종방(鐘紡)] 경성제사공장의 여성노동자들이 총파업을 주도했다. 이 사건은 1930년대 열악하였던 조선인 여성 노동자들의 상황과 당시 성북구의 노동환경을 알 수 있는 파업 사건이다. 종방 파업 이후 1933년 10월 17일 청량리에서 동대문경찰서 고등계 형사에게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35년 11월에는 이재유, 권우성 등이 주도 조직한 ‘경성지방좌익노동조합 조직준비회’에 가담하여 동지 규합과 항일의식 고취에 주력하다가 경찰에 검거되어 약 13개월 동안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2006년에 건국포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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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
-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어 1953년 휴전할 때까지 약 3년간 한반도에서 전개되었던 전쟁이다. 북한은 성북구 미아리고개를 통해 서울로 들어왔고 후퇴할 때에도 그곳을 통해 많은 사람을 납치해 갔다. 북한은 전쟁 중에 서울을 점령했다가 후퇴하면서 남한의 많은 사람을 미아리고개를 통해 북으로 강제납치하였고, 그중에는 성북구에 살던 사람들도 다수 포함되었다. 조소앙, 안재홍, 조헌영 등은 독립운동가이자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인물로 납북 당시 성북구에 거주하고 있었다. 전쟁으로 인한 이산의 아픔과 고통은 반야월이 작사하고 이재호가 작곡한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통해 대중가요로도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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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