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233] 보문동 역사의 산증인 박춘화 이야기
- 금도끼 <성북 사람들의 구술생애사> 시리즈, 이번 주 소개해 드릴 분은 1947년 보문동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그곳에 생활 터전을 두고 계신 박춘화 님입니다. 박춘화 님은 보문동의 변화 모습과 인생 이야기를 덤덤하게 들려주셨습니다. 지면상 모든 이야기를 공개할 수 없기에 보문동 일대의 변화와 지역 이야기를 중심으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오세창
- 독립운동가, 서예가, 언론인이다. 『만세보』, 『대한민보』 사장을 역임하며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고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활약하였다. 전각과 서예에도 뛰어났으며 1918년에는 서화협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우리나라 역대 서화가의 사적과 평전을 수록한 사전인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1928)을 편찬하였다. 성북동 128번지는 그가 서화류를 보관하기 위한 가옥인데, 이곳에서 골동품의 수집·감정이 이루어졌고, 간송미술관과 최순우 옛집을 오가는 사람들의 접대 혹은 객사의 공간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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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래현
- 동양화가이다. 일본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초기에는 사실묘사를 기초로 한 화조, 인물, 산수 등을 그렸으나 1950년대부터 동양화의 전통적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형실험을 전개하였다. 운보 김기창과 결혼한 후 1954년 성북동 55-1번지(현 운우미술관)에 집을 마련하였다. 1962년에는 성북동 집에 30여 평인 화실을 짓고 작품 활동에 전념하며, 10여 차례의 부부전과 개인전을 가졌다. 1966~1967년 성신여자사범대학(현 성신여자대학교)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판화 수업 등으로 뉴욕 등에서도 활동하였다. 1976년 성북동 자택에서 타계하였다. 작품으로 「부엉이」(1953), 「노점」(1956), 「작품 19」(196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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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남옥
- 영화감독이다. 광복 후 서울로 올라와 조선영화사 광희동 촬영소에 들어가 편집을 배웠다. 1940년대 돈암동에 거주하며 주변에 살던 영화인들과 교류했고, 1953년 극작가 이보라와 결혼하고 이듬해 남편이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미망인』을 촬영했다. 제작비 부족 등으로 어렵게 완성하여 개봉하였으나 흥행을 거두진 못했다. 1960년 도쿄에서 열린 제7회 영화제에 참가했다. 1997년 제1회 서울 여성영화제가 『미망인』을 상영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의 존재가 알려졌고, 2008년 여성 영화인에게 수여하는 '박남옥상'이 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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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성우
- 성북동에서 활동했던 화가이다. 호는 우송(雨松)으로 간송 전형필의 장남이다. 1934년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어릴 때부터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을 찾는 예술가들을 통해 그림을 보는 안목과 지식을 익히고 교육받았다. 서울대학교 미대에 입학했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현대미술을 접하고 추상화의 세계에 빠져들어, 해방 후 1세대 추상화가가 되었다. 부친의 사망을 계기로 귀국하여 1966년 전형필의 지인들과 함께 한국민족미술연구소를 설립하고 보화각을 간송미술관으로 새롭게 개편시켰다. 서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의 교수를 역임하고, 보성고등학교 교장을 맡기도 하였다. 퇴직 후에는 미국 유학 시절부터 주제로 삼았던 「만다라」를 이어 「청화만다라」 연작을 발표하였고, 국내외에서 많은 개인전과 초대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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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동 우리밀국시
- 성북구 혜화로 84에 있는 상가 건물이다. 건물의 사용승인일은 1988년 4월 25일이다. 연면적은 207.58㎡이다. 우리밀국시라는 음식점 하나가 있는 건물이며, 1층만 식당으로 쓰이고 있다. 2층에 행주를 널어놓거나 실외기가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2층 이상도 영업을 위해 사용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건물 옆 공간이 좁고 계단이 가파르다. 빨간 벽돌조로 되어있어 일반 가정집 같으면서도 가게 앞부분이 거의 유리로 되어있어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가게가 주변 건물과 다닥다닥 붙어있다시피 하기에 앞부분이 집중적으로 노출되고 옆과 뒤는 보기 힘들다. 국시는 성북동에서 많이 파는 칼국수의 종류이고, 성북동의 명물로 상징성이 있다. 성북동은 삼선교와 더불어 고위 관료 등 요직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살던 동네였고, 고기 고명의 칼국수를 파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이 좋아하던 음식이기에 더 주목받게 되었다는 배경도 있다. (2024학년 2학기 한성대학교 서비스러닝 사회봉사 조사 내용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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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