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180] 발 연기? 발로 하는 예술! 발탈
- 우리는 흔히 형편없는 연기를 낮잡아 부를 때 ‘발 연기’라고 합니다. 실력이나 질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손이 아닌 발로 한 것 같다는 의미로 접두사 ‘발’을 붙인 것이죠. 오늘 소개할 ‘발탈’은 이런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 발을 사용하여 연기를 합니다. 발로 연기를 한다고 하니 우스꽝스러울 것 같나요? 발탈은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낮잡아 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발탈은 우리의 전통 예술로, 발에 탈을 씌워 사람처럼 꾸민 탈 인형과 어릿광대, 아낙네 등이 서로 소리와 재담을 주고받는 민속극입니다. 탈 역할의 연희자는 검은 포장막 뒤에서 의자에 앉아 발에 탈을 씌우고 상반신만 있는 인형에 발을 얹고 연기를 합니다. 또 손으로는 막대기를 이용해 인형의 팔을 조종하여 인형의 다양한 몸짓을 표현합니다. 발탈은 어릿광대가 이 상반신만 있는 탈 인형의 외양에 놀라 시비조로 정체를 물으면서 극이 시작됩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김광섭
- 시인, 언론인, 번역가이다. 일본에서 유학 후 교사 생활과 평론 활동을 하였다. 1933년부터 모교인 중동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면서 1940년까지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41년 2월 이로 인해 경찰에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1961년 성북동 168-34(현 성북로10길 30)에 집을 마련했지만, 뇌출혈로 쓰러져 오랜 기간 병석에 있었고 그동안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는 성북동 집에 대한 애착을 잃고 동소문동을 거쳐 미아동으로 이사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병마와 싸우면서 관념적인 시에서 구체적인 체험을 시로 형상화하는 변화를 보인다. 그의 대표작인 「성북동 비둘기」를 비롯한 「겨울산」, 「산」 등은 성북동 집에서 구상하여 미아동에서 완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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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성
- 1912년 대구에서 출생한 서양화가이다. 1929년 제8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처음 입선한 후, 수채화와 유화 작품으로 입선과 특선을 거듭하였다. 1931년 일본으로 건너가 1935년까지 다이헤이요미술학교에서 유학하였다. 1934년 9월 7일 동아일보의 실린 이인성의 글 '향토를 찾아서'를 보면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던 그가 여름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하여 서울을 찾았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북한산 일대를 돌며 스케치를 했던 그는 현 정릉동의 아리랑고개를 보고 「아리랑고개」라는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다. 또한 1947년 9월 12일 경향신문 기사를 통해 성북회화연구소 설립 당시 지도교사로 활동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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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윤국
-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자 생활을 하던 중 일제의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대우로 궐기하여 농성시위를 주도했다. 그 후 1945년 5월 여러 동지들과 함께 서울 관수동 유만수의 집에서 비밀결사인 대한애국청년당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그 해 7월 24일 저녁에는 친일매국대회가 개최되는 경성 부민관(현재 서울시의회)에 잠입하여 장치해 둔 2개의 폭탄을 터뜨려 대회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이 거사는 일제 말기 한민족의 민족적 의열투쟁의 대미를 장식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1977년 건국포장과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유공자 정보에 따르면 그의 주소는 서울 성북 정릉 16-29(현 정릉로40길 3)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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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설리 여성노동자 파업
- 1933년 발생한 경성제사공장의 파업 사건이다. 9월 21일 숭인면 신설리(현 성북구 보문동, 동대문구 신설동 일대)에 있었던 종연방직 경성제사공장의 여성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돌입했다. 일제 경찰과 회사 측은 강경하게 진압하면서 파업참가자들을 체포했고 파업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파업을 통해 당시 매우 열악한 상황에 놓인 조선인 여성노동자들의 처지를 볼 수 있다. 1929년 기준 하루 임금이 일본인 남성노동자가 2.32원, 일본인 여성노동자가 1.01원, 조선인 남성노동자가 1원을 받았던 것에 비해 조선인 여성노동자들의 임금은 0.59원에 불과했다. 그리고 1920년대부터 확산된 사회주의 진영의 영향도 있었는데, 이효정, 이병희, 허마리아 등이 주도한 당시의 파업에 이재유 등의 사회주의자도 연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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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