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13] 주민들의 포근한 휴식처가 되어주는 개운산
- 성북구에는 여러 산이 있어 가까이에서 자연을 느끼기 좋습니다. 그중에서도 성북구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주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산이 있는데요, 바로 개운산(開運山)입니다. 개운산은 북한산(835.6m)이나 북악산(342m) 등 성북구의 다른 산들과 비교하면 야트막한 134m 높이를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접근성이 좋아 주민들에게 친근한 공간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오늘의 금도끼에서는 개운산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들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흥천사
- 성북구 흥천사길29(돈암동595)에 있는 사찰이다. 1397년(태조 6) 신덕왕후 강씨의 능침사찰로서 중구 정동에 창건되었다. 1409년(태종 9) 정릉이 이전되고, 조선왕조의 억불정책과 몇 번의 화재 등을 겪으면서 폐사되었다. 1669년(현종 10) 함취정(含翠亭) 자리에 이건하여 중창하고 신흥사(新興寺)로 이름을 고쳤다. 1794년(정조 18) 현재 자리에 중창하였고, 1865년(고종 2) 흥선대원군의 지원을 받아 다시 흥천사라고 불리면서 왕실원당의 기능을 담당했다. 흥천사는 대한제국 순종황제의 황후인 순정효황후가 6.25전쟁 때 피난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의 첫 번째 왕후였던 신덕왕후의 원찰(願刹)에서 조선(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의 피난생활까지 조선왕실의 역사와 함께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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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재
- 성북동(현 동소문로 64)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31년 상해로 망명한 뒤 상해한인청년단을 조직하여 그 이사에 선임되었다. 또한 의열단에 가입하여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졸업하고 의열단 동지들과 함께 통합된 민족혁명당에서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35년에는 중국비행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중국 공군의 기계사 직책으로 대일전에 참가하였다. 1938년 10월 김원봉이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를 창립하자 그는 제3지대장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40년에 광복군 총사령부원으로서 충칭[重慶]에서 요인 경호 및 비서직을 맡았으며, 1945년에는 미군과 합작으로 한국항공대를 창설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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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정
- 보문동과 관련있는 독립운동가이다. 1933년 9월 21일 숭인면 신설리(현 성북구 보문동, 동대문구 신설동 일대)에 있었던 종연방직[종방(鐘紡)] 경성제사공장의 여성노동자들이 총파업을 주도했다. 이 사건은 1930년대 열악하였던 조선인 여성 노동자들의 상황과 당시 성북구의 노동환경을 알 수 있는 파업 사건이다. 종방 파업 이후 1933년 10월 17일 청량리에서 동대문경찰서 고등계 형사에게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35년 11월에는 이재유, 권우성 등이 주도 조직한 ‘경성지방좌익노동조합 조직준비회’에 가담하여 동지 규합과 항일의식 고취에 주력하다가 경찰에 검거되어 약 13개월 동안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2006년에 건국포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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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박이넝쿨책·야책
- 성북구 정릉로26가길 30(정릉동 445-3)에 위치한 서점이다. 서점의 간판은 아리랑시장에 있던 채소 가게 '호박이넝쿨째'와 '야채' 간판을 재활용해서 만들었다. 지난 2016년 책을 좋아하는 서점의 두 대표가 주민들과 함께 책을 읽고 여러 모임을 하기 위해 만든 공간으로 글쓰기, 낭독, 철학 등의 주제를 다루는 모임을 진행하였고 유튜브에서도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정릉야책'이라는 마을 잡지도 발간하고 있어 한 공간에서 도서 판매와 발간, 모임이 모두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점의 두 대표는 공간의 확장을 통해 다양한 행사와 공연을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구축하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교육공간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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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