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28] 온기를 배달해 드립니다. 석관동살이 50년 권춘자의 삶
- <성북 사람들의 구술생애사> 시리즈, 두 번째로 소개해 드릴 분은 석관동에 따뜻함을 나눠준 권춘자 님입니다. 2021년 발간된 다섯 번째 구술생애사의 주인공 권춘자 님은 석관동에서 약 20년간 연탄 장사를 하며 골목 구석구석 온기를 나누고, 약 15년간 버스 기사님들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주며 네 남매를 키웠습니다. 1945년 경상북도 영주에서 태어난 권춘자 님은 칠 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종종 부모님 농사일을 도와드렸습니다. 스물두 살에 지금의 남편분을 만나 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린 이후에도 시댁에서 어르신을 들을 모시며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러다 1970년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서울로 상경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김용준
- 한국미술사학자, 화가, 평론가, 수필가이다. 1920년 중앙 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자 통학을 위해 성북동으로 이사하면서 이곳과 인연을 맺었다. 도쿄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였으나 오원 장승업의 병풍을 보고 동양화로 전향하였다고 한다. 1934년 노시산방(성북동 274-1)로 이사하여 이태준 등 문인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였다. 1944년 노시산방은 김환기·김향안 부부에게 넘기고 의정부로 이사하였다. 1949년 출간한 『조선미술대요』는 한국의 미술사를 다루면서 대화하듯이 쉽게 읽히도록 구어체를 사용하여 저술하였다. 수필로는 1948년에 출간한 『근원수필』이 있다. 6.25 전쟁 이후 9.28 서울수복 때 월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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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산의숙
- 성북구 선잠로 12-11(성북동 55-1)에 있었던 교육시설이다. 성북초등학교의 전신이기도 하다. 1908년 김수영과 황수연(황윤명)의 발의로 설립하고, 성북동에 있었던 민영환의 별장을 학교 건물로 사용했다. 초기에는 고종의 호종내관이었던 황수연이 학교의 재정을 뒷받침했으나, 1916년 황수연이 사망한 이후부터는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도움과 후원으로 학교가 유지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총독부로부터 공식 학교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1939년 6년제 소학교로 승격되었다가 1942년 공립국민학교로 전환되었다. 해방 후 1946년에는 공립학교로 승격되었고, 이름을 ‘경성성북공립국민학교’로 변경하였다. 1996년 일제강점기의 잔재인 ‘국민학교’ 이름의 폐기에 따라 ‘서울성북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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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우성
- 동양화가이다. 1936년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연구단체인 ‘후소회(後素會)’를 김기창 등과 함께 만들었고, 이후 잇따라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해방 이후 삼선교 언덕배기에 살다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이 설립되면서 동양화 교수가 되어 서울대 관사로 들어갔다. 1963년 미국 워싱턴에 동양예술학교를 설립하고 동양미술을 가르쳤으며 이듬해 개인전을 열기도 하였다. 1966년 귀국하여 삼선동 4가 45번지에 ㅁ자 구조의 단층집을 마련하여 살다가, 1971년 지역개발로 인해 이사하였다. 주요작품으로는 「이충무공 영정」, 「성모자상」, 「김유신장군 초상화」, 「백두산 천지」 등이 있다. 시(詩)·서(書)·화(畵)를 온전히 갖춘 현대화단의 마지막 문인화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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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선중학교
- 성북구 동소문로3길 69(동소문동4가 278-174)에 위치한 공립중학교이다. 1960년 2월 19일 삼성중·고등학교 신설을 인가받고 같은 해 5월 3일 개교하였다. 1971년 삼선중·고등학교에서 삼선중학교로 분리운영되었다. 2007년 성북교육청 과학중심학교, 정보과학영재원이 설립되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2019년 영재교육기관 우수학교 성북강북교육지원청 교육장상 수상하였다. 교훈은 ‘성실하자 부지런하자 서로 돕자’이며, ‘함께의 행복 속에 채워가는 지성·인성·감성’을 교육 비전으로 삼고 있다. 2020년 2월 제58회 졸업식을 거행하였고, 누적 졸업생 34,291명을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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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진규의 테라코타
- 황동규 시인의 시집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문학과 지성사, 2003)에 수록된 시로, 근현대 조각의 거장 권진규(1922~1973)의 예술혼과 비극적 운명을 다루고 있다. 그는 점토를 빚어 굽는 테라코타 기법으로 한국적 리얼리즘 조각을 정립하였지만,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스스로 삶을 마감하였다. 특히 두상과 흉상 작업에 주력하며 인물의 내적 세계를 작품에 투영하고 대상과의 정신적 합일을 추구하였다. 생전에 그가 마지막으로 전시한 <가사를 걸친 자소상>도 고개를 들고 먼 곳을 응시하는 시선, 길게 내민 목 등으로 자신의 내면을 조형화했다고 볼 수 있다. 시인은 이러한 권진규의 예술세계를 문학적으로 풀어냈다. 이 시는 현재 시민들에게 개방된 동선동 권진규아틀리에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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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