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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금도끼 #224] 점복자들의 오랜 전통, 서울맹인독경
보이지 않는 존재의 힘을 빌리고 싶을 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우리는 점을 봅니다. 요즘은 타로나 사주카페, 혹은 온라인 점집이 많이 등장했지만, 옛날에는 역학촌에 가 미래를 점쳐보곤 했습니다. 1970~80년대에 성북구의 미아리고개 역학촌은 미래를 엿보고 싶은 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곳이었습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김용준
김용준
한국미술사학자, 화가, 평론가, 수필가이다. 1920년 중앙 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자 통학을 위해 성북동으로 이사하면서 이곳과 인연을 맺었다. 도쿄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였으나 오원 장승업의 병풍을 보고 동양화로 전향하였다고 한다. 1934년 노시산방(성북동 274-1)로 이사하여 이태준 등 문인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였다. 1944년 노시산방은 김환기·김향안 부부에게 넘기고 의정부로 이사하였다. 1949년 출간한 『조선미술대요』는 한국의 미술사를 다루면서 대화하듯이 쉽게 읽히도록 구어체를 사용하여 저술하였다. 수필로는 1948년에 출간한 『근원수필』이 있다. 6.25 전쟁 이후 9.28 서울수복 때 월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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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김영기
화가이다. 1911년 서울에서 서화가인 해강 김규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중국 화단의 거장 제백석(齊白石)을 사사하고 북경 보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여 등단한 이래, 문인화적 필치에 현대적인 기법을 더하여 한국적 수묵화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였다. 특히 ‘동양화’ 대신 '한국화'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주장하며 한국 미술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강조하였다. 『조선미술사』(1948), 『동양미술사』(1971), 『동양미술론』(1980) 등을 저술하여 미술이론가로도 활동했으며, 이화여대 홍익대 고려대 성균관대 등에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돈암동 전차종점 인근 주택에 거주한 바 있으며 기와집이 어우러지는 돈암동 풍경화를 다수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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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성
이인성
1912년 대구에서 출생한 서양화가이다. 1929년 제8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처음 입선한 후, 수채화와 유화 작품으로 입선과 특선을 거듭하였다. 1931년 일본으로 건너가 1935년까지 다이헤이요미술학교에서 유학하였다. 1934년 9월 7일 동아일보의 실린 이인성의 글 '향토를 찾아서'를 보면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던 그가 여름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하여 서울을 찾았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북한산 일대를 돌며 스케치를 했던 그는 현 정릉동의 아리랑고개를 보고 「아리랑고개」라는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다. 또한 1947년 9월 12일 경향신문 기사를 통해 성북회화연구소 설립 당시 지도교사로 활동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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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린
최만린
조각가이다.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경기중학교 시절부터 조각 공부를 시작하여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였고,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는 모교의 교수로 재직하였다. 살 곳을 선택할 때에도 반포지구의 아파트 분양 혜택을 거부하고, “생명을 찾고 예술로 표현하는 사람은 땅을 밟고 흙을 만지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연이 가까운 곳을 선택, 정릉동에 손수 집을 짓고 살았다. 대표작으로는 「이브」, 「O」 시리즈가 있는데, 생명의 본질을 더욱 단순화된 형태로 승화시키면서 자신만의 방법과 소재로 작품을 만들었다. 자택은 성북구 솔샘로 7길 23(정릉동 716-16)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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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립미술관
성북구립미술관
성북구 성북로 134(성북동 246)에 위치한 미술관이다. 성북구립미술관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기초자치단체에서 만들고 운영하는 미술관이다. 2009년 옛 성북2동사무소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개관했는데, ‘성북장학회’에 참여하고 있는 작가들의 기획과 노력, 그리고 작품 기증으로 출범할 수 있었다. 성북동에 오랫동안 거주하고 있는 원로화가 서세옥 화백이 명예 관장을 맡았다.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상 2~3층은 전시실로 꾸며져 구민들에게 수준 높은 예술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며, 1층은 성북동에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특성을 살려 ‘성북글로벌빌리지센터’로 꾸며져 외국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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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

  • 함께 그린 성북 이야기 보러가기
    함께 그린 성북
    올해 3회째를 맞은 성북마을아카이브 프로젝트 《성북구의 아름다운 봄》 전시와 제4회 성북 마을기록 전시 《반짝이는 순간들: 성북 다시쓰기》에서 성북구가 그림으로 다시 탄생했습니다. 한성대학교 회화과와 성북문화원이 함께하는 성북마을아카이브 프로젝트 《성북구의 아름다운 봄》 전시는 2024년 5월 한성대학교 지선관에서 열렸습니다. 2022년 《그림으로 기록한 2022년 성북천》을 시작으로, 2023년 《369예술마을의 봄》을 지나 어느덧 첫 프로젝트 때 1-2학년이던 학생들은 이제, 3-4학년이 되어 더욱 풍성한 작품을 이뤄냈습니다. 성북구에 거주하는 12명의 주민이 출품한 약 50점의 어반스케치 작품으로 이뤄진 제4회 성북마을기록전시 《반짝이는 순간들: 성북 다시쓰기》는 2024년 6월 서울성북미디어문화마루에서 열렸습니다. 1,500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참석한 이 전시를 통해 주민들의 시선으로 재탄생한 성북 도심의 아름다운 풍경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성북구의 명소뿐만 아니라 일상 속 장소들이 담겨있는 이 그림들을 통해 소중한 순간을 포착하고, 그 순간이 다시 우리의 삶과 연결되길 바랍니다.
  • 성북구의 다리들 이야기 보러가기
    성북구의 다리들
    성북구에는 북악산에서 발원한 성북천, 북한산 정릉계곡에서 시작한 정릉천, 북한산 우이봉 아래에서 발원한 우이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전, 성북천와 정릉천을 중심으로 하천과 그 주변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하천은 주민들에게 휴식을 제공해 주고, 때로는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 때로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됩니다. 하천은 여러 기능을 맡는 동시에 자신을 중심으로 양옆을 나누어 놓기도 합니다. 우리는 나뉜 공간을 잇기 위해 다리를 놓아왔습니다. 다리를 놓음으로써 하천의 주변은 비로소 하나의 풍경이 됩니다. 우리 주변에는 오랫동안 사람을 이어주었던 다리들이 있습니다. 요즈음 다리에 걸린 현수막과 안내 전광판, 게시판은 물리적인 차원을 떠나 사람들의 마음까지 이어줍니다. 이름이 없는 다리부터 ‘도란도란교’와 같이 아기자기한 이름의 다리까지. 다양한 크기와 모습, 이름을 가진 다리들의 모습을 만나보세요.
  • 그림 속 369예술마을의 봄 이야기 보러가기
    그림 속 369예술마을의 봄
    성북마을아카이브는 지난 2023년 5월, 한성대학교 회화과 재학생들과 함께 <369예술마을의 봄>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2022년에 진행됐던 <그림으로 기록한 2022년 성북천> 전시를 성공리에 마친 후 이어진 현 프로젝트에서는 이전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여 369마을의 봄을 보다 다양한 시선으로 그려냈습니다. 369마을의 한양도성, 카페, 주택, 고양이 등 일상 속 익숙한 풍경들을 다채롭고 새로운 분위기로 기록하였으며 그림 한 폭에 저마다의 개성과 감정이 녹아들어 있어 낯익은 풍경들을 새로워 보이게끔 합니다. 풍부한 예술적 감각이 담긴 <369예술마을의 봄>을 통해 369마을의 가치와 이야기를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 성북을 모으는 민간기록물 수집 공모전 이야기 보러가기
    성북을 모으는 민간기록물 수집 공모전
    성북문화원은 2021년과 2023년 두 차례에 걸쳐 민간기록물 수집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민간기록물 수집 공모전은 성북구의 기록유산들을 보존하고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며 추억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공모전으로 2021년 제1회 성북구 민간기록물 수집 공모전에서는 '우리의 기억, 성북의 기록으로', 2023년 제2회 성북구 민간기록물 수집 공모전에서는 ‘서랍 속 학교 이야기’ 의 주제로 개최했습니다. 제1회 성북구 민간기록물 수집 공모전은 2010년 이전 성북마을기록으로의 소중한 가치를 지닌 문헌, 사진, 영상, 생활용품 등 민간기록물을 수집하여 1940년대 돌 꽃신, 돌 한복, 1950년대 성북교회 사진, 1970년대 성북초등학교 생활통지표 등의 수집물을 만나볼 수 있었으며 제2회 성북구 민간기록물 수집 공모전에서는 1970년대 성북초등학교 졸업앨범, 1980년대 우촌초등학교 교지, 1980년대 학교 견장 등 2010년 이전 생산된 성북구 내 학교 관련 민간기록물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주제로 보는 성북'에서는 이러한 성북구의 추억을 모으는 성북구 민간기록물 수집 공모전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공모전에 수집된 기록물들을 통해 잠시나마 추억이 서려 있는 과거와 재회하시길 바랍니다.
  • 나누는 기쁨, 성북의 봉사활동 이야기 보러가기
    나누는 기쁨, 성북의 봉사활동
    봉사는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존재를 의식하며 이웃과 사회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성북구에서도 지역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공간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리가 필요하지만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집을 방문해 도배 및 장판 등을 교체해주는 집수리 봉사,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나누는 음식봉사, 오랜 세월 동안 낡고 헐어진 외관을 환한 그림으로 채워 동네의 분위기를 바꾸는 벽화 봉사,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인 사람들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연탄 봉사, 깨끗하고 쾌적한 지역사회를 위해 하천과 지역 일대를 청소하는 환경 및 정화 봉사 등 지역 곳곳의 다양한 봉사활동에 성북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제로 보는 성북에서는 1970년대부터 2023년에 이르기까지 성북의 곳곳을 자세히 살피고 있는 봉사자들의 모습과 이들의 다양한 봉사활동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가치를 두고 타인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재능, 에너지를 할애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눔이 지닌 따뜻함과 기쁨을 함께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 세월을 품은 성북의 도시형 한옥 이야기 보러가기
    세월을 품은 성북의 도시형 한옥
    성북구의 보문동 일대를 걷다 보면 조금은 색다른 형태의 가옥들을 마주칠 수 있습니다. 주변의 4층 남짓한 주택과 달리, 높게 올리지 않은 단층에 기와가 눈에 띄고 또 서까래와 처마가 있는, 얼핏 보면 기와집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또 책에서 보던 옛 기와집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주택을 ‘도시형 한옥’이라고 합니다. 보문동 일대의 ‘도시형 한옥’ 주거지는 일제가 시작한 ‘돈암지구’ 개발로서 대개 1930년대 말부터 1950~60년대까지 형성되었으며, 당시엔 ‘개량한옥’이나 ‘집장사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보문동 일대에 오래 거주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도시형 한옥’이 성북천을 따라 늘어서 있는 장관을 보였습니다. 지금은 대부분이 재개발되어 집적도 높은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으로 변모하여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기도 합니다. 또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더라도, 처음 지어진지 오랜기간이 흘렀기에 내부, 외부 모두 많은 변화가 있기도 합니다. 성북구는 2013년 관내에 위치한 도시형 한옥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한옥보전을 위해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쳤습니다. 조사에서는 "한옥"이란 주요구조부가 목조구조로서 한식기와를 사용한 건축물 중 전통미를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과 그 부속시설로 정의하였으며, 이에 지붕, 서까래, 추녀, 기둥, 창호 등에 주목하여 성북구 일대의 한옥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주거 건축은 당대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이번 주제로 보는 성북에서는 당시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존속하고 있는 도시형 한옥의 여러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삶의 변화도 함께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 활력의 장(場), 성북구와 축제 이야기 보러가기
    활력의 장(場), 성북구와 축제
    문화는 인류의 유희와 놀이를 통해 발달되었다는 요한 호이징가(Johan Huizinga)의 말처럼 축제(祝祭)는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인류와 함께하며 발전하였습니다. 축제란 개인과 집단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일 혹은 시간을 기념하는 일입니다. 인류는 이를 통해 일과 시간을 기념하고 즐기며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성북구는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한 지역입니다. 이를 활용한 뮤지컬 심우, 만해 추모 다례재, 선잠제와 같은 역사적 장소와 인물을 기리는 다양한 축제들이 문화원과 관공(官公)의 주도하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문화유산을 활용한 축제 같은 경우는 그렇지만, 민간과 함께 이루어지는 축제들도 많이 있습니다. 동 단위의 자치 조직들이 모여 이루어낸 삼선동 선녀축제, 안암동 은행나무 축제, 삼태기마을 축제, 장위부마축제 등의 축제들은 성북구청에서 지원하지만 각 동의 자치 조직들이 지역축제를 구상하고 각 동의 색깔에 맞는 축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북구는 성북 세계음식축제 누리 마실, 유러피언 크리스마스 마켓, 라틴아메리카 축제 등 글로벌 시대에 맞추어 다양한 계층과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축제를 진행 중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 지역민들과 구청 그리고 다양한 공동체들이 힘을 합쳐 축제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축제를 통해 성북구는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외부 방문객들도 다양한 문화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특별한 곳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축제는 지역의 흥과 활력을 불어넣어 주며,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만남을 만들어냅니다. 성북의 다양하고 매력적인 축제들은 지역사회의 활성화와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성북 축제를 통해 성북의 흥과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그림으로 기록한 2022년 성북천변 이야기 보러가기
    그림으로 기록한 2022년 성북천변
    2022년, 성북마을아카이브는 한성대학교 예술학부 회화과 재학생들과 함께 아카이브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였습니다. 성북의 예비 문화예술인들이 한성대입구역에서 성북구청까지, 성북천을 따라 걸으며 주변의 건물을 스케치하였습니다. 상가, 관공서, 아파트 등 일상에서 마주했던 낯익은 건물들이 회화 매체를 통해 정교하고 충실하게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같은 장소를 촬영한 사진과 함께 살펴보면 창작자 저마다의 예술적 감각이 더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으로 기록한 2022년 성북천변>을 통해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 주변의 풍경에서 각각의 이야기와 가치를 발견해 보시기 바랍니다.
  • 지도로 보는 성북 이야기 보러가기
    지도로 보는 성북
    지도는 실재하는 장소 그 자체를 넘어 제작 당시 공간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상황이 반영된 기록물입니다.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중요한 배후지였던 성저십리(城底十里)로, 일제강점기 경성의 첫 번째 계획도시 돈암지구로, 우리는 지도를 통해 성북이 품은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볼 수 있습니다. 또한, 수많은 문화유산과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동시에 전국에서 대학이 가장 많은 젊은 도시, 도심과 가까운 뉴타운, 활발하게 운영되는 마을공동체 등 현재의 성북구를 둘러싼 여러 인식과 가치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국왕의 정사(政事)를 위해 만든 조선시대 도성도부터, 토지의 소재·지번·지목·경계를 나타내는 지적도, 자원활동가들과 어린이들이 마을 곳곳을 직접 탐방하고 조사한 결과물인 마을지도까지 다양한 지도가 들려주는 각양각색 성북의 이야기를 만나보시기를 바랍니다.
  • 조각가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이야기 보러가기
    조각가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권진규(1922~1973)는 테라코타와 건칠(乾漆) 기법을 탐구하여 한국 근현대 조각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조각가로, 성북구와도 인연이 깊습니다. 1947년, 성북회화연구소(現 동소문동3가 65-2)에서 수업을 받으며 미술에 입문하였고, 1959년에는 동선동3가 250-1에 작업공간과 살림채를 겸한 아틀리에를 손수 지었습니다. 2022년 4월, 권진규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가 한국적 리얼리즘을 정립한 동선동 시기(1959~1973)의 작품 이미지를 중심으로 자료를 수집하였습니다. 자소상과 여성흉상 등 널리 알려져 있는 환조작품 외에도 부조·유화·수묵화·드로잉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이미지는 그의 폭넓은 조형언어를 보여줍니다. 작품활동의 흔적이 남아있는 동선동 아틀리에 곳곳을 촬영한 사진들, 생전 인터뷰 기사와 지인들의 회고 글은 불꽃같았던 권진규의 삶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예술을 통해 그가 그토록 갈망했던 영원불멸한 정신성과 사물의 본질을 발견해보시기를 바랍니다.
  • 2021 성북동밤마실 x 한성대학교 기억저장소 이야기 보러가기
    2021 성북동밤마실 x 한성대학교 기억저장소
    성북동은 한양도성, 최순우옛집, 이종석별장, 선잠단지 등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김광섭, 김환기, 이태준, 조지훈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창작 활동을 펼친 곳입니다. '성북동밤마실'은 이와 같은 풍부한 역사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성북문화원과 성북구가 기획한 성북의 대표 문화축제, '성북동문화재야행'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2021년 11월 5~6일에 진행된 축제는 문화재와 문화시설을 야간개방하고 AR문화재 해설, 무형문화재 명인 공연, 거리 공연, 전통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3,500여명의 시민들을 끌어모았습니다. 기억저장소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성대학교 학생들이 기록한 사진과 영상을 통해 달빛 아래 밤마실의 생생한 현장을 만나보세요! (참여 학생: 강서연, 고진, 김가현, 김선영, 김용혁, 김지은, 박근령, 박태헌, 배인지, 백승빈, 변은재, 손수연, 오주림, 유란, 이주진, 이하민, 이호영, 장호연, 정다희, 정서린, 조혜원, 최수진, 최정윤, 최정현, 황민)
  •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리빙랩 사업] 안암학 디지털 아카이브 이야기 보러가기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리빙랩 사업] 안암학 디지털 아카이브
    안암학은 지역학의 관점에서 안암동이라는 공간을 사유하고 재해석하고자 하는 학문입니다. 안암동이라는 공간에는 전통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습니다. 안암동에 거주하는 주민, 상인, 노동자, 학생들을 포함하여 안암동의 역사, 문화, 예술, 자연 경관, 민속 등 안암동의 모든 것이 안암학 연구의 원천 자료가 됩니다. 우리는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학제간의 연구를 통해 안암학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그 시작 단계로 고려대학교를 중심으로 안암동 일대의 ‘역사’와 ‘문학’ 자원을 정리했습니다. 이를 통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안암동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연구책임자: 정호섭 / 공동연구원: 엄태웅 / 참여 학생: 이행묵, 하태희, 양여진, 이영채, 권순, 정요한, 문기백, 김민경)
  • 정릉골 일대 이야기 보러가기
    정릉골 일대
    정릉천에서 가파른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좁고 굽은 골목과 그 사이사이에 위치한 계단, 길을 따라 지어진 각양각색의 집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작은 마을은 바로 북한산 자락, 정릉3동에 위치한 ‘정릉골’입니다. 정릉골은 얼마 남지 않은 서울의 달동네 중 한 곳으로 국민대학교와 청덕초등학교 뒤편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요. 넓은 골목과 정돈된 길 대신 자연을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이곳은 지난 2012년, 재개발 예정 구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총면적 203,965㎡에 해당하는 ‘정릉3동 주택재개발구역’은 현재 사업시행인가를 앞에 두고 있어 본격적인 재개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입니다. 정릉골에 살던 주민들은 하나둘씩 이곳을 떠나고 주인이 떠난 빈집들은 빠르게 낡아 가고 있지만, 대규모 타운하우스가 들어설 마을의 골목골목에는 아직 주민들의 삶과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새로운 변화를 앞에 두고 있지만 여전히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정릉골의 현재 모습과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한글날 575돌 기념 이야기 보러가기
    한글날 575돌 기념
    2021년 10월 9일은 한글날이 575돌을 맞는 날입니다. 이는 한글의 창제를 기념하고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국경일로, 일제의 탄압으로부터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창립된 조선어 연구회에서 1926년 '가갸날'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정하였습니다. 조선어 연구회는 1931년,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꾸어 다양한 활동을 펼쳤는데요. 이곳 성북구에도 이극로, 최두선, 안재홍, 서승효 등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했거나 관계하던 인물들이 있으며, 광복 이후 한글학회 『국어교본』의 편찬위원을 맡았던 조지훈도 성북구와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이렇듯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지켜진 한글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문헌을 통해 그 가치를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간송미술관 및 고려대학교에는 국문연구안, 동국정운, 용비어천가, 홍무정운역훈, 훈민정음 해례본 등의 한글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으며, 장위동에 묘소가 마련되었던 순조의 셋째 딸 덕온공주와 그의 아들 윤용구의 글씨는 한글의 위대함과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 [한성대학교 아카이빙 활동] 동선2구역 이야기 보러가기
    [한성대학교 아카이빙 활동] 동선2구역
    2021년 여름, 동선2구역은 곧 이주가 진행되고 건물들이 철거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사람들이 평범하게 오고가고, 사람들의 흔적이 구석구석 느껴지는 장소였습니다. 재개발은 단순히 기존의 건물들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 머물던 사람들의 기억 속 장소가 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재개발이 시작되기 전의 동선2구역을 기록하여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기억 속 동선2구역의 모습을 보존하려 합니다. 이 기록들을 통해 재개발 전 동선2구역의 모습을 그리워할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달래졌으면 합니다. (한성대학교 디지털인문정보학트랙 황민, 이주진, 김한효)
  • [한성대학교 아카이빙 활동] 동선·돈암동의 종교시설 이야기 보러가기
    [한성대학교 아카이빙 활동] 동선·돈암동의 종교시설
    고민을 해결하고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해 존재하는 종교는 우리의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에 대해서 기도를 할 때, 우리의 가족이 언제나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기도할 때, 우리 구성원이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기를 기도할 때마다 찾았던 많은 종교의 흔적들이 여기저기에 남아있습니다. 무병장수와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구하는 기도를 올리던 산신제와 같은 무속신앙부터 천막을 세워 예배를 드린 기독교까지 다양한 종교들이 돈암동과 동선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와 기록물을 통해 그 자취들을 살펴보세요.(한성대학교 디지털인문정보학트랙 변지현, 김수빈, 김민찬)
  • 그림, 성북의 풍경과 이야기를 담다 이야기 보러가기
    그림, 성북의 풍경과 이야기를 담다
    우리의 삶에서 예술은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글이 아닌 다른 수단을 통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특히 그림의 경우에는 미적 표현이 강조되어 시각적인 즐거움을 줍니다. 화가들은 자신의 주변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성북구에 거주하며 활동했던 화가들도 성북 곳곳의 모습을 캔버스에 담았습니다. 수화 김환기는 성북동의 자연을 매우 사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소의 화가 이중섭도 정릉동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의 작가인 김성환 화백의 <6.25 스케치> 연작은 당시 성북구 일대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남아있습니다. 화가들의 작품과 함께 성북구 곳곳에 그려진 벽화와 표지석의 그림을 통해서도 성북의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북을 거쳐갔던 위대한 화가들의 다채로운 작품들과 성북천·성북동 일대에 그려진 벽화들, 마전터·북바위 전답터 등 여러 장소의 표지석을 통해 성북의 풍경과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영원한 안식처를 지키는 석물 이야기 보러가기
    영원한 안식처를 지키는 석물
    우리나라에는 42기의 조선왕릉이 조성되어 있으며, 왕과 왕후의 생전 업적을 기리고 능이 영원한 안식처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능침 주위에 다양한 형태의 석물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혼이 노니는 돌인 혼유석, 능의 한가운데서 불을 밝혀 사악한 기운을 쫓는 장명등, 봉분을 지키는 석인(문석인, 무석인), 석수(석마, 석호, 석양) 등의 석물들은 조성 시기에 따라 양식이 변화하여 그 종류와 생김새가 왕릉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입니다. 성북구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과 조선 20대 경종과 그의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의 능인 의릉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두 왕릉의 석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왕릉을 수호하는 늠름한 자태를 만나보세요.
  • 정릉2동의 어제와 오늘 이야기 보러가기
    정릉2동의 어제와 오늘
    우리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마을의 모습과 거리의 경관은 시시때때로 변합니다. 여러 건물이 모여 있던 곳이 공원으로 바뀌고, 한옥 밀집 지역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도 합니다. 자주 가던 오래된 단골 가게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가게가 들어오기도 합니다. 성북구 또한 이러한 변화를 많이 겪고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과 아리랑시장, 정수초등학교 등이 위치한 정릉2동은 주거시설과 상가, 문화유적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데요. 이곳의 옛 모습은 어땠을까요? 성북문화원은 옛 정릉동 주민이신 이일주 선생님의 기증을 통해 2004년 정릉2동 일대의 모습이 담긴 기록물을 입수하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2004년과 2021년 현재의 기록물을 비교하며 정릉2동 일대의 변화된 모습을 확인해보세요.
  • 무형문화재 이야기 보러가기
    무형문화재
    '무형문화재'는 역사적, 문화적, 예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무형의 문화유산을 가리키는 말로, 우리 고유의 문화가 담겨있는 전통 예술이나 공예 기술 등이 포함됩니다. 형태가 없기에 그 능력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지정 대상이 되는데요. 이곳 성북구에서도 많은 무형문화재 보유자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정릉동에 거주했던 소목장 강대규부터 태평무 예능보유자 강선영, 침선장 정정완 그리고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대금산조 예능보유자 이생강, 발탈 예능보유자 조영숙, 매듭장 김은영까지 다양한 분야의 국가 및 서울시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성북구와 연을 맺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보유자들과 전수교육조교가 우리 문화의 전승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8호 서울맹인독경의 보유단체로 인정받은 대한시각장애인역리학회 서울지부가 공연과 행사 등의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습니다.
  • 코로나19 이야기 보러가기
    코로나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 이후 우리의 일상은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서로의 표정을 보기가 어려워졌고 음식점과 카페에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더 이상 당연한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교실과 강의실이 아닌 모니터 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게 되었고 직장인들은 사무실이 아닌 집에서 업무를 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성북구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음식점과 카페 등 여러 가게 앞에는 마스크 착용 및 방역 수칙 안내문이 부착되었으며 학생들을 기다리는 선생님들의 마음이 담긴 현수막이 교문 앞에 걸렸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 및 길거리 곳곳을 수시로 소독하는 모습도 이제는 익숙해졌습니다. 이처럼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성북구 주민들의 노력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 사찰과 불교 유물 이야기 보러가기
    사찰과 불교 유물
    성북구에는 유서 깊은 사찰이 많이 모여있습니다. 돈암동 흥천사는 이성계와 조선의 건국을 함께한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지금의 위치로 옮긴 후에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 순정효황후가 한국전쟁 때 피난 생활을 했습니다. 조선 왕실과 역사를 함께한 사찰은 이후 서울 사람들의 나들이 처로 각광받기도 했습니다. 성북동 길상사는 원래 대원각이라는 고급 요정이었습니다. 백석의 연인으로도 유명한 운영자 김영한이 법정 스님에게 감화하여 땅과 건물을 시주하면서 사찰로 거듭났습니다. 흥천사를 비롯해 안암동의 개운사와 보타사, 정릉동의 경국사 등 사찰은 중요한 불교 유물을 소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찰뿐만 아니라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는 국보급 문화재인 불상과 불감을,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는 고려시대 석탑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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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
    도심과 가깝고 교통이 편리했으며, 주변에 교육기관이 많은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성북구는 수많은 독립지사들과 연을 맺었습니다. 한용운이 지조를 지키며 말년을 보낸 곳이 성북동 심우장이고, 이육사가 대표작 「청포도」와 「절정」을 발표한 곳이 종암동 62번지입니다. 나중소, 김규식, 최용덕, 김기진, 손진태 등 성북구와 인연이 있는 인물들의 독립운동은 의병활동부터 의열 활동, 3.1운동, 무장투쟁, 임시정부 활동 등 거의 모든 유형의 독립운동을 포괄합니다. 해방 이후에도 성북구는 독립지사들의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김의한, 정정화 부부와 삼균주의의 제창자 조소앙이 자리 잡은 곳이 돈암동이고, 평생을 독립운동에 매진한 유우석과 조화벽 부부, 이회영의 아내, 그의 아들로 독립운동을 했던 이은숙과 이규창이 마지막을 보낸 곳이 정릉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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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시장
    현재 성북구에는 10개가 넘는 전통시장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과거 서라벌예대 학생들의 아지트였던 길음시장은 6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며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데, 지난 2003년 최신식 설비를 갖추고 현대화에 성공하여 지역의 대표시장이라는 명성을 되찾았습니다. 다양한 먹거리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돈암시장 또한 오랜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1944년 몇 개의 점포가 들어선 공설시장 건물이 세워졌고 그 주변에는 사설시장이 형성되었다가, 재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정릉시장은 매월 개최되는 ‘개울장’을 통해 특색을 갖추고 주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성북구의 시장들은 여러 프로그램을 개최하고, 상인교육 등을 통해 주민을 위한 시장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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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리고개
    미아리고개는 도심에서 혜화문을 나와 동북 방면으로 향하는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조선 초에는 이 길을 통해 여진인이 한양으로 왔으며, 많은 물산이 이동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교통의 편의를 이유로 ‘죽은 자의 수도’로 불린 미아리 공동묘지가 조성되었습니다. 한국전쟁 때는 서울을 두고 이 고개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통해 북으로 끌려갔습니다. 노래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당시의 아픔을 잘 전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도심에서 밀려난 맹인역술가들이 미아리점성촌을 형성하였습니다. 1960년대에는 판자촌이 형성되었고, 1970년대에 높은 고개를 깎고, 도로를 넓혔습니다. 2019년 현재 미아리점성촌은 서울시 미래유산이 되었고, '죽은 자의 수도'는 산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 동신제(洞神祭) 이야기 보러가기
    동신제(洞神祭)
    성북구에는 각 마을에서 해마다 음력 10월 초에 치르는 마을 제사가 있습니다. 성북구는 전체 면적의 70%가 산과 구릉지로 이루어졌기에 서울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산과 연관된 동신신앙(洞神信仰)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성북구의 동신제는 매년 음력 10월 초 각 동마다 정해진 장소에서 치러집니다. 아파트가 생기는 등 주변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장소가 달라지기도 했지만 성북구의 대표적 의례로서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제사의 분위기나 형식에서 동마다 특색이 드러나 각 공동체의 개성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 한옥밀집지역 이야기 보러가기
    한옥밀집지역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한옥은 흔하게 볼 수 있었지만, 재개발로 인해 점차 사라지면서 이제 관광의 대상이 될 정도로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성북구는 아직도 아름답고 역사적 가치가 있는 한옥들이 많이 모여있습니다. 정릉동 한옥단지는 조상들의 주거문화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돈암지구 토지구획 정리사업을 통해 대규모로 개발되면서 대량의 한옥이 들어섰던 성북동·보문동·안암동 일대에도 여전히 많은 한옥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동소문동2가 한옥밀집지역’은 서울미래유산에서 서울 사대문 밖에 있는 지역으로는 처음으로 한옥밀집지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성북구에서는 한옥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고 실생활에서 한옥을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하천 이야기 보러가기
    하천
    성북구에는 크게 2개의 하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북악산에서 발원하여 성북구와 동대문구를 거쳐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성북천은 과거에 주민들이 빨래를 하고 아이들이 수영을 즐길 정도로 맑았다고 합니다. 복개공사를 진행하여 상가아파트를 건설하고, 주차장으로도 이용했으나 다시 복원하여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정릉천은 북한산 정릉계곡에서 시작해 월곡동과 동대문구를 지나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하천입니다. 북한산의 맑은 물을 품은 정릉천은 성북천과 마찬가지로 주민들에게 휴식을 제공해주는 공간입니다. 현재는 대부분 복개가 되고 그 위에 도로가 건설되었지만, 상류 부분은 여전히 정릉동 주민들의 곁에 남아 있습니다. 현재는 복개되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인수천도 길음동을 가로질러 흘렀던 하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