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40] 선잠단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를 현대적 공간으로, ‘카페 선잠’
- 최근 지역 고유의 문화자원을 활용하여 여러 상품이나 콘텐츠로 개발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0원 주화에 경주 불국사 다보탑(국보)이 그려져 있음에 착안하여 만들어진 ‘경주 십원빵’이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겠죠. 지역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의 큰 호응을 얻은 십원빵은 현재 대표적인 지역 브랜드로 자리 잡았고, 전국 각지에 십원빵을 판매하는 매장이 생겨났습니다. 심지어 일본에도 유사상품인 ‘십엔빵’이 생겨날 정도로요.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이승만
- 동소문동(당시 돈암동)에서 거주한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독립협회에 참가해 활동했고, 고종 폐위 음모에 휘말려 약 6년간 옥고를 치렀다. 미국에 유학하여 5년만에 학사·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의 대통령이 되었고, 1925년 탄핵 면직되었다. 광복 후 귀국하여 반탁반공노선을 견지하였고, 남한 단독정부 수립 불가피론을 주창했다. 1948년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부산정치파동, 사사오입개헌, 3.15부정선거 속에서 세 차례 더 대통령에 선출되지만, 4.19혁명으로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환국 이후 돈암동의 돈암장에서 약 2년간 거주하였다. 돈암장의 구조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승만은 아래채를 썼고, 위채는 비서와 살림 맡은 사람들, 바깥채는 경비원들이 사용했다.
- 이야기 더보기
- 김영재
- 성북동(현 동소문로 64)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31년 상해로 망명한 뒤 상해한인청년단을 조직하여 그 이사에 선임되었다. 또한 의열단에 가입하여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졸업하고 의열단 동지들과 함께 통합된 민족혁명당에서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35년에는 중국비행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중국 공군의 기계사 직책으로 대일전에 참가하였다. 1938년 10월 김원봉이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를 창립하자 그는 제3지대장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40년에 광복군 총사령부원으로서 충칭[重慶]에서 요인 경호 및 비서직을 맡았으며, 1945년에는 미군과 합작으로 한국항공대를 창설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이야기 더보기
- 김환기
- 한국 추상미술의 1세대 화가이다. 1933년 동경 니혼대학 예술과 미술부에서 공부하고, 1937년 귀국 이후 ‘신사실파’를 조직하여 모더니즘 운동을 주도하였다. 자연을 통하여 한국적인 감성을 담고자 노력했던 그는 항아리, 달, 별, 학, 구름, 밤하늘 등 문학적이고 음악적인 소재를 다루었다. 1944년 김향안과 결혼하여 김용준의 ‘노시산방’을 이어받아 자신의 호와 아내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 ‘수향산방’이라 이름 붙였다. 1948년 종로구로 이사하였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성북동으로 돌아와 집을 마련했다. 그의 수필 「산방기」에는 이곳에서의 생활과 성북동에 대한 애정이 잘 나타나 있다. 현재 ‘수향산방’은 성북동 274-1번지 수월암 부근이며, 두 번째 집은 성북동 32-1번지 부근으로 추정되고 있다.
- 이야기 더보기
- 변종하
- 서양화가이다. 대구 계성중학교 재학시절 서진달을 만나 서양화의 기초를 배웠다. 1942년 일본군 해군 하사관으로 뽑히자 만주로 피신 후 서진달의 추천으로 만주 신경시립미술원 서양화과에 편입하였다. 1956년 제4회 국전에서 〈포푸라〉로 부통령상을 수상하는 등 1954년부터 1957년까지 연속 특선을 하며 추천작가가 되어 미술계에서 입지를 다졌다. 1960년 프랑스로 건너가 공부하였는데 이 시기의 대표적 작품은 일그러진 인물상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우화〉와 〈돈키호테〉 등이다. 성북동으로 들어온 이후인 1980년대에는 ‘서정적 풍경’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성북동 330-48번지 집의 2층에 화실을 두었고, 꽃, 새, 나무, 달, 잠자리 등을 소재 삼아 간결하고 소박하게 묘사하여 주목을 받았다. 그의 집은 생전에 큰 돌거북이 있는 집이자 성북동 구석에 있는 집이라고 해서 ‘구석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 이야기 더보기
- 성북동 성북로 76 상가 건물
- 성북구 성북로 76에 있는 상가 건물이다. 성북동 60-33의 사용승인일은 1965년 7월 30일, 성북동 60-48의 사용승인일은 1973년 12월 26일이다. 두 지번의 토지를 합친 건축면적은 321㎡이다. 연면적은 60-33(제1종근린생활시설)이 439.79㎡, 60-48(제2종근린생활시설)은 453.08㎡이다. 1층에는 디저트 카페 밀플렉스, CU 성북본점이 있고, 2층에 성암이발관, 3층에 지요건축사사무소가 있다. 근방에 홍익사대부고, 경신중⦁고, 서울과고, 서울국제고, 성북초가 있고, 주변에 편집샵과 카페가 많다. 성북동의 주요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삼각지에 있다. 이 부근을 기점으로 조용하고 차분한 동네 경관이 이어지기 시작한다. 로드맵 등으로 확인해 봤을 때, 2010년도에는 지하에 성암탕이, 2층 이발관 자리에는 하나美치과가 있었으며 밀플렉스 자리엔 옷 가게가 있었다. 2012년 4월에는 옷 가게 자리가 아성 공인중개사사무소로 바뀌었고, 2층에는 이발관과 구보다스시집이 함께 있게 되었다. 2014년 11월에 목욕탕은 없다. 2017년에는 공인중개사사무소가 내가 만든 나라라는 인형 가게로 바뀌었으며, 2020년엔 이마트24와 한식당, 클래식 카페 등이 들어오게 되었다. 굉장히 다양한 점포가 들어왔다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2024학년 2학기 한성대학교 서비스러닝 사회봉사 조사 내용 참고)
- 이야기 더보기
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