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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의 인물, 사건, 장소, 유물, 문헌, 작품 등을 유형별, 시대별, 지역별로 검색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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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전기공사협회 서울중부회
    인물
    한국전기공사협회 서울중부회
    안암로 21(안암동4가 41-29)에 위치한 한국전기공사협회 시도회이다. 한국전기공사협회는 1960년 4월 4일에 '대한전기공사협회'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립되었으며 1977년 11월 19일에 지금의 명칭으로 개칭하였다. 전기공사업의 발전 및 전기공사 시공방법 개선, 기술 향상 등을 목적으로 하는 이곳은 <한국전기공사업법> 제25조에 근거한 전기공사업의 유일한 법정단체이다. 주요 업무로는 공사업의 경영합리화와 시공기술의 향상을 위한 조사연구 및 지도, 공사업의 발전향상을 위한 홍보활동, 전기공사기술인력의 교육 및 양성, 전기공사업체에 대한 시공능력 평가 및 공시, 기공사 기술자의 등급 및 경력 등에 관한 기록의 유지, 관리 등이 있다.
  • 사단법인 한국직업훈련총연합회
    인물
    사단법인 한국직업훈련총연합회
    동소문로44길 5(하월곡동 88-187)에 위치한 사단법인 단체이다. 노동부장관으로부터 사단법인 허가를 받았으며 정부와 민간 직업훈련기관 간의 협력 체계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요 사업으로는 직업능력개발을 위한 교육, 훈련 사업과 직업교육 및 훈련의 평가 및 개선 사업, 양질의 교육을 위한 인프라 구축 사업, 훈련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 사업 등이 있으며 안암로 21(안암동4가 41-29)에 위치하다가 현재의 주소로 이전하였다.
  • 보성전문학교 체육부
    인물
    보성전문학교 체육부
    보성전문학교 체육부는 현재 고려대학교 체육위원회의 전신이다. 보성전문학교 체육부에는 축구부, 농구부, 럭비부를 비롯한 15개 운동부가 소속되어 있었는데, 당시 전교생 580명 가운데 300명이 운동부에 가입해 있을 정도로 보성전문 학생들의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보성전문 체육부 소속의 여러 운동부원은 국내 경기뿐 아니라 베를린 올림픽, 일왕배 전일본 선수권 대회 등에서도 여러 차례 좋은 성적을 거두며 식민지 조선 청년들의 울분을 푸는데 일조하였다. 보성전문학교 체육부 출신의 선수들은 이후 대한민국 스포츠의 주축을 차지하게 된다.
  • 인창세탁조합
    인물
    인창세탁조합
    일제강점기 세탁노동자들이 설립한 조합이다. 성북동 지역에는 조선 영조때 둔전을 설치하고 둔전민의 생계와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포백훈조계가 설치되었다. 그중 포백(마전)은 옷감을 삶거나 빨고 표백하는 일을 말하는데 이 포백일은 일제강점기에도 이어져 성북동민의 주요 생계수단이 되었다. 1918년 동소문 외 성북리 등 세 곳의 표백업자 70여 명이 홍태윤을 대표로 하는 인창세탁조합을 설립하였다. 1918년 3월 31일 『매일신보』에 실린 기사를 보면 인창세탁조합에서는 종래 다량의 가성소다를 사용하여 1, 2번 쪄서 포백이 되게 하던 것을 소량의 가성소다와 쇄분(晒粉, 표백분)을 이용하고, 찌는 횟수를 배가하여 포목의 원질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하였다고 한다.
  • 대한시각장애인역리학회
    인물
    대한시각장애인역리학회
    한국 시각장애인 역학사들을 주축으로 미아리 역학촌에 본부를 두고 있는 단체이다. 고려시대에는 시각장애인 역학사들을 맹승(盲僧)이라고 불렀으며 수도에 이들의 동업조합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명통사(明通寺), 맹청(盲廳)으로 이어졌다. 일제강점 초기 명맥이 잠시 끊겼다가 1925년 조선맹인역리대성교 맹인조합이라는 단체로 부활하였다. 1971년 사단법인 대한맹인역리학회라는 명칭으로 법인설립 인가를 받았고, 1989년 7월 성북구 동선동 현재의 자리로 중앙회 회관을 이전하였다. 미아리 역학촌은 한국의 대표적 역학촌으로만 아니라 한국 시각장애인 점복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나가는 장소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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