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문화재'는 역사적, 문화적, 예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무형의 문화유산을 가리키는 말로, 우리 고유의 문화가 담겨있는 전통 예술이나 공예 기술 등이 포함됩니다. 형태가 없기에 그 능력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지정 대상이 되는데요. 이곳 성북구에서도 많은 무형문화재 보유자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정릉동에 거주했던 소목장 강대규부터 태평무 예능보유자 강선영, 침선장 정정완 그리고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대금산조 예능보유자 이생강, 발탈 예능보유자 조영숙, 매듭장 김은영까지 다양한 분야의 국가 및 서울시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성북구와 연을 맺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보유자들과 전수교육조교가 우리 문화의 전승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8호 서울맹인독경의 보유단체로 인정받은 대한시각장애인역리학회 서울지부가 공연과 행사 등의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습니다.
돈암동과 성북동에서 활동한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기능보유자이다. 태평무는 풍년과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방안춤의 하나로, 다른 민속무용에 비해 장단이 복잡하고 예술성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그는 전통음악과 춤을 집대성한 한성준을 사사한 후 ‘강선영무용연구소’를 개설하고, 「초혼」, 「수로부인」 등 창작무용을 발표하였다. 170여국에서 천 오백 회가 넘는 공연을 하며 전통춤을 알렸다. 태평무의 유일한 전승자인 강선영은 1960년대 돈암동에 자리를 잡고, 성북동으로 거처를 옮긴 뒤 전수소를 열어 제자들과 일반인들에게 전통춤을 가르쳤다. 170여개 나라에서 천 오백회가 넘는 공연을 하며 한국 전통춤의 세계화에 이바지한 그는 1988년 12월 1일 주요무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었다.
석관동에 거주했던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제18호 민화장 기능보유자이다. 민화란 일상생활과 풍습을 그린 실용적 그림을 말하며 이런 민화를 그리는 사람을 민화장이라 한다. 민화는 한국인의 사상과 신앙, 생활에 관련되는 다양한 소재를 다양한 화법을 통해 그림으로 표현함으로써, 친근한 생활 속의 낙으로 자리잡아 오랫동안 보존되어왔다. 김만희는 1968년부터 민속자료를 수집하고 민화의 작화에 착수한 이래 한국전통미술인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며 한국 민화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그는 민화장 기능보유자로서 1996년 12월 31일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으며, 2017년 4월 13일에 명예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성북구 화랑로48길 16번에 거주하였다.
성북동에 거주하는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제13호 매듭장 기능보유자이다. 매듭장이란 끈목을 이용해 여러 가지 종류의 매듭을 만들거나 술을 다는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김은영은 김희진 선생에게 매듭을 배웠으며, '매듭과 노리개', '매듭과 주머니', '매듭과 현대의상'과 같은 다양한 주제를 통해 매듭을 옛 것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매듭의 여러 쓰임을 소개하였다. 2002년부터 자신과 제자들의 작품을 모아 '김은영전승매듭연구회' 회원전을 열었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각국에서도 다양한 전시를 개최하였다. 1996년 12월 31일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었으며, 2017년 11월 16일 명예보유자로 인정받아 우리의 고유한 매듭기법을 전승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35호 조각장 기능보유자이다. 조각장이란 금속기의 표면에 평각(平刻)·투각(透刻)·고각(高刻)·육각(肉刻)·상감(象嵌) 등의 기법으로 문양을 새기는 장인으로 조이장(彫伊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각장 분야의 첫 기능보유자였던 김정섭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47년 백하금속조각사라는 공방을 열고 기술을 연마하였다. 이후 1970년대 초반부터 아버지의 전통 조각 기능을 배우고 익혀 1989년 12월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성북구 종암동 35번지에 거주하였다.
돈암동 흥천사(신흥사)에 거주했던 승려이자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문화재) 제48호로 단청장 기능보유자이다. 단청장이란 목조건물에 광물성 안료인 진채(眞彩)로 채색을 올리는 장인을 의미한다. 그는 경기‧서울‧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했던 승려 낙현[1869-1933]의 제자로 서울 흥천사에 월주고전미술전수원을 개원해 많은 불교미술 작가를 양성하였으며, 1972년에는 단청문양보존연구회를 설립하여 단청 및 전통미술의 전승과 보급에 힘썼다. 1972년 8월 1일 국가무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었다.
국가무형문화재 단청장(丹靑匠) 명예보유자이다. 단청장이란 목조건물에 광물성 안료인 진채(眞彩)로 채색을 올리는 장인을 의미한다. 단청문양보존연구회 설립자이자 초대 기능보유자인 흥천사 월주 원덕문스님을 사사하였다. 1988년 8월 1일 단청장 전수교육조교로, 2020년 7월 27일 명예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단청문양보존연구회(정릉동 소재) 이사장을 지내며, 불교미술의 맥을 잇고 있다.
성북구에 거주하는 국악인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산타령 전수교육조교이다. 국악인 신영희, 윤평하를 사사하고, 1986년부터 선소리산타령 기능보유자 황용주로부터 본격적으로 선소리산타령을 전수받았다. 2003년부터 성북구에 국악전수소를 개설하여 일반인들에게 우리 소리를 가르치고 알려왔으며, 2005년부터 성북문화원 문화강좌 ‘선소리산타령’반을 개설해 지도하고 있다. 선소리산타령은 조선시대 초기부터 전래되어 내려온 우리나라 민간음악이다. 소고로 박자를 치며 남녀 10명 내외가 서서 소고를 들고 간단한 율동을 하면서 부르는 것으로, 각 지방의 명승지 가사가 다 들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2012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산타령 전수교육조교로 선정되었다.
국가무형문화재 번와장(翻瓦匠) 기능보유자이다. '번와장'이란 지붕의 기와를 잇는 장인을 말한다. 1950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난 그는 부친을 따라 어려서부터 어깨너머로 현장에서 건축 일을 익혔다. 스무 살 무렵 상경하여 돈암동의 건재상에서 근무하며 기선길 등 고건축 대가들로부터 본격적으로 기와 잇는 기술을 배웠다. 숭례문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경복궁 수정전, 창덕궁 돈화문, 법주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 등 국보급 문화재 수백여 건의 기와 보수공사에 참여했다. 2008년 10월 21일 번와장 최초의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어, 2021년 현재도 유일하다.
성북구에 거주하는 국악인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예능보유자이다. 대금산조의 명인 한주환을 사사했고, 대금, 태평소, 단소 등 부는 악기의 명인들에게 남도, 서도, 경기지역 음악을 모두 전수받았다. 재즈나 팝송 등 다른 장르와 서양악기와 협연하고, 앨범을 내는 한편 대금과 단소 교본 발간, 제자 양성, 국내외 공연 등 국악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1997년 혜화문 건너편 삼선교에 4층 건물을 짓고, 종로구 와룡동에 있던 대금전수소를 집 근처에 마련하였다. 집을 다시 돈암동으로 옮기고, 전수소는 성북동으로 이사하였다. 1996년 12월 10일 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칠장(漆匠) 중 남태칠 분야의 명예보유자이다. 칠장은 칠기를 만드는 기술과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하며, 그중에서도 남태칠은 대나무의 표피를 벗겨내고 다듬어 칠기의 백골 및 재료로 만든 후 옻칠을 도장하는 전통공예 기법이다. 2009년 3월 5일 남태칠 기능 보유자 인정 이후 종목의 전승에 크게 기여해 왔으며 최근 건강 악화에 따른 전수교육이 불가하다고 판단함에 따라 2021년 1월 18일 명예보유자로 인정하였다. 주소지는 성북구 종암동이며, 서울공예박물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동소문동에 거주했던 중요무형문화재 제89호 침선장 기능보유자이다. 침선장이란 바느질로 옷을 만드는 장인을 말한다. 1913년 정인보의 맏딸로 태어나 혼인 후 사대부 가문과 왕실 가문의 침선기법을 함께 배웠다. 1985년 이후 일본 오사카, 고베, 교토 등 여러 도시에서 복식 전시를 열어 전통 바느질 기법을 널리 알렸다. 우리 전통 의상의 아름다움이 주목을 받게 되면서, 1988년 8월 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89호로 선정되었다. 근대 이후 복식의 서구화 추세가 가속화되면서 침선기술의 전통이 단절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뒤늦게나마 다행히 몇 사람의 전승자가 현재는 쓰이지 않는 옛 침선기술을 계승하고 있다. 2007년 사망과 함께 지정이 해제되었으며, 맏며느리인 구혜자가 계승하였다.
성북구에 거주하는 전통연희 공연가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예능보유자이다. 발탈은 인간 배우와 발과 손을 이용하여 조종하는 인형 배우가 함께 등장하여 재담을 중심으로 연행하는 전통예술이다. 조영숙은 함경도 출신으로 판소리 명창인 조몽실의 딸로 태어났다. 1951년부터 임춘앵 여성국극단에서 배우 생활을 했으며, 임춘앵의 대역을 할 정도로 인정받은 여성국극인이었다. 1980년대 중반 이동안[1906-1995] 발탈 보유자를 만나 2000년 10월 18일에 전수교육조교, 2012년 2월 2일에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전수조교 시절 성북구청 옆에 전수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 고령 나이지만 왕성한 활동을 하며 전통을 지키고 있다.
국악인이다. 1924년 광주에서 태어난 한갑주는 대표적인 세습예인 집안 출신으로, 판소리 명창이자 가야금 명인 한성태의 아들이다. 197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적벽가)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판소리는 한 사람의 창자(唱者)가 한 고수(鼓手)의 북장단에 맞추어 긴 서사적인 이야기를 소리와 아니리로 엮어 발림(몸짓)을 곁들이며 구연하는 창악적 구비록사시(口碑錄事詩)이다. 판소리 보유자의 경우 북으로 장단을 맞추는 고법과 판소리 다섯마당, 즉 적벽가, 수궁가, 심청가, 춘향가, 흥보가의 6분야에 각각의 보유자가 복수로 지정되는데, 한갑주는 적벽가의 보유자였다. 성북구 정릉 2동에 거주하면서 공연과 전수 활동을 하였다.
성북구 정릉동 북악당에서 행해지는 의식이다. 북악당은 성북구 아리랑로19다길 16(정릉동 506-109)에 위치한 종교시설로 1978년 미아리고개에 있던 당을 팔아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 맹인들의 독경(讀經)은 옥추경 등과 같은 여러 경문(經文)을 읽으며 복을 빌거나 질병 치료 등을 목적으로 하는 전통신앙 의례이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맹인들의 독경의례는 20세기 초반까지 전국에 분포했으나 현재는 급격히 줄어들어 서울을 중심으로 독경에 종사하는 일부 태사(太師, 맹인세계에서 독경하는 사람을 지칭)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 2017년 1월 5일에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어 채수옥이 보유자로 인정받았으며, 보유단체는 대한시각장애인역리학회 서울지부(북악당)이다.
정릉동에 거주했던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보유자이다. 소목장은 목제로 된 세간이나 건축상의 소목조 즉, 각종 가마, 수레, 농기구 등을 제작하는 목수이다. 강대규는 1974년 동아공예대전에서 과반(果盤), 애기장, 서류함, 귀목팔각병, 문방구, 문갑 등을 출품하여 입선하면서 이름이 알려졌고, 1980년 전승공예대전에서 그가 만든 연(輦)이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소목장으로 명성을 얻었다. 소목은 연장의 종류가 많고 나무 선별과 오랜 건조 기간, 정밀한 짜임, 상감, 옻칠 등 공정이 까다로운데 강대규는 전통 기법을 제대로 계승한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성북구 정릉로 21가길 35-4번에 거주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9호 판소리 고법 예능보유자이다. 고법은 가객이 부르는 판소리 소리에 맞추어 북으로 장단을 치는 반주법이다. 17세 때부터 장판개, 주봉현, 신찬문 여러 명고수로부터 판소리와 고법을 배웠다. 1960년대 서울로 진출하여 판소리 공연에서 고수로 활동하며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판소리 이론에도 조예가 깊어 이론과 실기에서 따르는 제자가 많았다. 판소리, 가야금산조 등 공연과 음반에 참여하였다. 1971년부터 10여 년 동안 석관동에 거주하며 제자들이 모여 만든 ‘일산회’와 공연을 열어 국악을 알렸다.
석관동에 거주했던 국가무형무화재 제5호 판소리 기능보유자이다. 전라남도 구례 출생으로 판소리 명창 만조의 아들이다. 국악인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 박만조와 박봉채에게서 동편제 판소리를 전수받았다. 1940년 명창 임방울이 이끌던 동일창극단에 입단하여 정광수, 박초월 등과 함께 전국 순회공연을 하였다. 판소리 사설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 순천 국악원에서 판소리를 가르쳤고, 1973년 11월 11일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다. 박봉술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적벽가」, 「수궁가」 다섯 바탕소리에 고르게 뛰어난 기량을 보유했으며, 이 가운데 네 바탕을 음반으로 남겨 후대에 전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89호 침선장 보유자 정정완이 만든 철릭이다. 철릭은 상의와 하의가 연결된 남성용 겉옷으로, 겉감은 청색 명주, 안감은 흰색 명주로 된 홑옷이다. 깃은 칼깃이고, 소매는 붕어배래이다. 허리선에는 촘촘한 잔주름이 있다.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사진 설명 인용]
국가무형문화재 제89호 침선장 보유자 정정완이 한지와 양지로 만든 관대 등의 깃본이다. (3-1) 관대 안깃본, (3-2) 안깃본, (3-3) 깃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3-1) 양지로 제작되었다. 앞면 중앙에 세로쓰기로 "관듸안깃", 하단에 "고름단다"라 검은색 볼펜으로 수기되어 있다.
(3-2) 양지로 제작되었다. 앞면 상단에 "단초", 중앙에 "싱을 느어 선을 반든다", 하단에 "압깃"이라 검은색 볼펜으로 수기되어 있다.
(3-3) 한지로 제작되었다.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사진 설명 인용]
국가무형문화재 제89호 침선장 보유자 정정완이 만든 버선본이다. 흰색 마분지로 만들었으며 버선목 뒷부분에는 다른 종류의 종이를 덧붙여 버선목의 둘레를 넓혔다. 세로쓰기로 앞면에는 "길표 버선본", 뒷면에는 "충헤"라 수기되어 있다.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사진 설명 인용]
국가무형문화재 제89호 침선장 보유자 정정완이 사용하던 바느질 바늘이다. 다양한 호수의 바늘들로 모두 사용한 흔적이 있다. (10-1) 영국 제품, (10-2~8) 일본 제품, (10-9~10) 생산지 미상 제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10-1) 영국산 10호 바늘 4개이다.
(10-2) 일본산 바늘 세트이다. 접이식 종이 케이스 안에 바느질 바늘 4개, 재봉틀 바늘 15호 1개, 실끼우기 1개가 들어 있다.
(10-3) 일본 크로바사 종이 포장지 안에 2호 바늘 8개가 들어 있다.
(10-4, 5) 일본 크로바사 종이 케이스 안에 다양한 호수의 바늘이 각각 6개, 14개 들어 있다.
(10-6) 일본산으로 종이 케이스 안에 8호 바늘 1개, 9호 바늘 4개가 들어 있다.
(10-7) 일본산으로 비닐 케이스 안에 바늘 4개가 들어 있다.
(10-8) 일본 오르간사 은박지에 바늘 6개가 싸여 있다.
(10-9) 광택있는 녹색 종이에 바늘 2개가 꽂혀 있다.
(10-10) 은박지에 바늘 16개가 싸여 있다.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사진 설명 인용]
1993년 5월 1일에 진행된 제8회 인간상록수 추대식 당시 정정완이 추대패를 받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정정완은 이날 유관순 열사의 오빠 유제한과 함께 인간상록수로 추대되었다. 인간상록수는 지역사회개발상록회에서 선정하는 것으로 오랫동안 하나의 분야에 매진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사진 설명 인용]
정정완의 보유자 인정 1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해돋이에서 해넘이까지>의 개막식 사진이다. 정정완, 한상수, 유희경(1921~ , 전 이화여자대학교 의류학과 교수, 한국복식문화연구원장) 등이 함께 시루떡 케이크 커팅식을 하는 모습의 사진이다.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사진 설명 인용]
정정완이 회갑에 찍은 기념 사진이다. 6폭 병풍을 배경으로 화문석 위의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정정완 양쪽으로는 기념 화환이 배치되었고, 오른쪽 화분에 묶인 리본에 "祝 回甲"이라 쓰여 있다. 인화지 상단에는 "OC1 · 73"이라 인쇄되어 있는데, 이는 1973년에 촬영되었다는 의미로 추정된다. 정정완은 1913년생으로 1973년이 회갑인 해이다.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사진 설명 인용]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수집한 태평무 기능보유자 강선영의 사진이다.
태평무는 나라의 평안과 태평성대를 기리는 뜻을 담은 춤이다. 유래는 확실치 않으나 1900년대의 무용가이며 명고수였던 한성준이 경기 무속춤을 재구성하여 추었던 춤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다른 춤 장단에 비해 구성이 복잡하며 그 기교가 현란하면서도 절제미를 가지고 있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설명 인용]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수집한 태평무 기능보유자 강선영의 사진이다.
태평무는 나라의 평안과 태평성대를 기리는 뜻을 담은 춤이다. 유래는 확실치 않으나 1900년대의 무용가이며 명고수였던 한성준이 경기 무속춤을 재구성하여 추었던 춤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다른 춤 장단에 비해 구성이 복잡하며 그 기교가 현란하면서도 절제미를 가지고 있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설명 인용]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수집한 태평무 기능보유자 강선영의 사진이다.
태평무는 나라의 평안과 태평성대를 기리는 뜻을 담은 춤이다. 유래는 확실치 않으나 1900년대의 무용가이며 명고수였던 한성준이 경기 무속춤을 재구성하여 추었던 춤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다른 춤 장단에 비해 구성이 복잡하며 그 기교가 현란하면서도 절제미를 가지고 있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설명 인용]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수집한 태평무 기능보유자 강선영의 사진이다.
태평무는 나라의 평안과 태평성대를 기리는 뜻을 담은 춤이다. 유래는 확실치 않으나 1900년대의 무용가이며 명고수였던 한성준이 경기 무속춤을 재구성하여 추었던 춤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다른 춤 장단에 비해 구성이 복잡하며 그 기교가 현란하면서도 절제미를 가지고 있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설명 인용]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수집한 태평무 기능보유자 강선영의 사진이다.
태평무는 나라의 평안과 태평성대를 기리는 뜻을 담은 춤이다. 유래는 확실치 않으나 1900년대의 무용가이며 명고수였던 한성준이 경기 무속춤을 재구성하여 추었던 춤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다른 춤 장단에 비해 구성이 복잡하며 그 기교가 현란하면서도 절제미를 가지고 있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설명 인용]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수집한 태평무 기능보유자 강선영의 사진이다.
태평무는 나라의 평안과 태평성대를 기리는 뜻을 담은 춤이다. 유래는 확실치 않으나 1900년대의 무용가이며 명고수였던 한성준이 경기 무속춤을 재구성하여 추었던 춤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다른 춤 장단에 비해 구성이 복잡하며 그 기교가 현란하면서도 절제미를 가지고 있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설명 인용]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수집한 태평무 기능보유자 강선영의 사진이다.
태평무는 나라의 평안과 태평성대를 기리는 뜻을 담은 춤이다. 유래는 확실치 않으나 1900년대의 무용가이며 명고수였던 한성준이 경기 무속춤을 재구성하여 추었던 춤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다른 춤 장단에 비해 구성이 복잡하며 그 기교가 현란하면서도 절제미를 가지고 있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설명 인용]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수집한 태평무 기능보유자 강선영의 사진이다.
태평무는 나라의 평안과 태평성대를 기리는 뜻을 담은 춤이다. 유래는 확실치 않으나 1900년대의 무용가이며 명고수였던 한성준이 경기 무속춤을 재구성하여 추었던 춤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다른 춤 장단에 비해 구성이 복잡하며 그 기교가 현란하면서도 절제미를 가지고 있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설명 인용]
2019 서울무형문화축제의 서울맹인독경 공연 사진이다. 맹인들의 독경(讀經)은 옥추경 등과 같은 여러 경문(經文)을 읽으며 복을 빌거나 질병 치료 등을 목적으로 하는 전통신앙 의례이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맹인들의 독경의례는 20세기 초반까지 전국에 분포했으나 현재는 급격히 줄어들어 서울을 중심으로 독경에 종사하는 일부 태사(太師, 맹인세계에서 독경하는 사람을 지칭)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 2017년 1월 5일에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어 채수옥이 보유자로 인정받았으며, 보유단체는 대한시각장애인역리학회 서울지부(북악당)이다.
2019 서울무형문화축제의 서울맹인독경 공연 사진이다. 맹인들의 독경(讀經)은 옥추경 등과 같은 여러 경문(經文)을 읽으며 복을 빌거나 질병 치료 등을 목적으로 하는 전통신앙 의례이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맹인들의 독경의례는 20세기 초반까지 전국에 분포했으나 현재는 급격히 줄어들어 서울을 중심으로 독경에 종사하는 일부 태사(太師, 맹인세계에서 독경하는 사람을 지칭)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 2017년 1월 5일에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어 채수옥이 보유자로 인정받았으며, 보유단체는 대한시각장애인역리학회 서울지부(북악당)이다.
2019 서울무형문화축제의 서울맹인독경 공연 사진이다. 맹인들의 독경(讀經)은 옥추경 등과 같은 여러 경문(經文)을 읽으며 복을 빌거나 질병 치료 등을 목적으로 하는 전통신앙 의례이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맹인들의 독경의례는 20세기 초반까지 전국에 분포했으나 현재는 급격히 줄어들어 서울을 중심으로 독경에 종사하는 일부 태사(太師, 맹인세계에서 독경하는 사람을 지칭)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 2017년 1월 5일에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어 채수옥이 보유자로 인정받았으며, 보유단체는 대한시각장애인역리학회 서울지부(북악당)이다.
2019 서울무형문화축제의 서울맹인독경 공연 사진이다. 맹인들의 독경(讀經)은 옥추경 등과 같은 여러 경문(經文)을 읽으며 복을 빌거나 질병 치료 등을 목적으로 하는 전통신앙 의례이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맹인들의 독경의례는 20세기 초반까지 전국에 분포했으나 현재는 급격히 줄어들어 서울을 중심으로 독경에 종사하는 일부 태사(太師, 맹인세계에서 독경하는 사람을 지칭)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 2017년 1월 5일에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어 채수옥이 보유자로 인정받았으며, 보유단체는 대한시각장애인역리학회 서울지부(북악당)이다.
2019 서울무형문화축제의 서울맹인독경 공연 사진이다. 맹인들의 독경(讀經)은 옥추경 등과 같은 여러 경문(經文)을 읽으며 복을 빌거나 질병 치료 등을 목적으로 하는 전통신앙 의례이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맹인들의 독경의례는 20세기 초반까지 전국에 분포했으나 현재는 급격히 줄어들어 서울을 중심으로 독경에 종사하는 일부 태사(太師, 맹인세계에서 독경하는 사람을 지칭)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 2017년 1월 5일에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어 채수옥이 보유자로 인정받았으며, 보유단체는 대한시각장애인역리학회 서울지부(북악당)이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남태칠장 정병호가 1994년에 제작한 <남태 나전칠 이층농>이다. 남태칠기는 대나무의 표피를 벗겨내어 필요한 폭으로 다듬어 칠기의 백골 및 재료로 만든 후 옻칠을 도장한 것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의복의 종류가 다양하고 많아 이를 보관하기 위한 여러 층의 농이 많이 사용하였다. 이때 윗면에 문이 달려있으면 아래쪽의 물건을 사용하기 불편하기때문에 전면에 문을 달아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하였다.
[서울공예박물관 홈페이지 소장자료 설명 인용]
농의 크기는 63*41*117cm이며, 서울공예박물관 소장품이다.
판소리 열두 마당 중의 하나, 또는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가 이를 고쳐 지은 판소리의 이름으로 《화용도(華容道)》라고도 한다. 중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가운데 관우(關羽)가 화용도에서 포위된 조조(曹操)를 죽이지 않고 너그러이 길을 터주어 달아나게 한 적벽대전(赤壁大戰)을 소재로 하여 만든 것이다.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자료 설명 인용]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CD - Ⅱ에 실린 적벽가(박봉술) ; 초앞부터 조조 군사 탄식까지1 음원이다. 녹음은 호남지방 민속예능 조사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김명환 자택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이 하였다. 녹음일자는 1971년 11월 5일이며, 링크를 따라가면 음원을 들을 수 있다.
판소리 열두 마당 중의 하나, 또는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가 이를 고쳐 지은 판소리의 이름으로 《화용도(華容道)》라고도 한다. 중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가운데 관우(關羽)가 화용도에서 포위된 조조(曹操)를 죽이지 않고 너그러이 길을 터주어 달아나게 한 적벽대전(赤壁大戰)을 소재로 하여 만든 것이다.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자료 설명 인용]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CD - Ⅱ에 실린 적벽가(박봉술) ; 초앞부터 조조 군사 탄식까지2 음원이다. 녹음은 호남지방 민속예능 조사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김명환 자택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이 하였다. 녹음일자는 1971년 11월 5일이며, 링크를 따라가면 음원을 들을 수 있다.
판소리 열두 마당 중의 하나, 또는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가 이를 고쳐 지은 판소리의 이름으로 《화용도(華容道)》라고도 한다. 중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가운데 관우(關羽)가 화용도에서 포위된 조조(曹操)를 죽이지 않고 너그러이 길을 터주어 달아나게 한 적벽대전(赤壁大戰)을 소재로 하여 만든 것이다.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자료 설명 인용]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CD - Ⅲ에 실린 적벽가(박봉술) ; 조자룡 활 쏘는데부터 새타령까지 음원이다. 녹음은 호남지방 민속예능 조사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김명환 자택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이 하였다. 녹음일자는 1971년 11월 5일이며, 링크를 따라가면 음원을 들을 수 있다.
판소리 춘향가는 남원 퇴기 월매의 딸 성춘향과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의 신분을 뛰어 넘은 사랑노래다. 단오날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춘향과 이몽룡이 백년가약을 맺었다가 이몽룡 아버지의 근무지 이동으로 이별을 하게 되고, 고을에 새로 부임한 신임사또가 춘향에게 수청들 것을 요구하자 죽음을 불사하고 이를 거절하여 옥고를 치른다. 이때 과거에 급제하여 어사가 된 이몽룡이 나타나 죽음 직전의 춘향을 구하고 사랑의 승리를 거둔다는 줄거리로, 현전 판소리 다섯 마당 중에서 음악적으로나 문학적으로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자료 설명 인용]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CD - Ⅳ에 실린 춘향가(박봉술) ; 초앞부터 백년가약까지 음원이다. 녹음은 호남지방 민속예능 조사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김명환 자택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이 하였다. 녹음일자는 1971년 12월 2일이며, 링크를 따라가면 음원을 들을 수 있다.
판소리 춘향가는 남원 퇴기 월매의 딸 성춘향과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의 신분을 뛰어 넘은 사랑노래다. 단오날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춘향과 이몽룡이 백년가약을 맺었다가 이몽룡 아버지의 근무지 이동으로 이별을 하게 되고, 고을에 새로 부임한 신임사또가 춘향에게 수청들 것을 요구하자 죽음을 불사하고 이를 거절하여 옥고를 치른다. 이때 과거에 급제하여 어사가 된 이몽룡이 나타나 죽음 직전의 춘향을 구하고 사랑의 승리를 거둔다는 줄거리로, 현전 판소리 다섯 마당 중에서 음악적으로나 문학적으로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자료 설명 인용]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CD - Ⅴ에 실린 춘향가(박봉술) ; 사랑가부터 기생점고까지 음원이다. 녹음은 호남지방 민속예능 조사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김명환 자택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이 하였다. 녹음일자는 1971년 12월 2일이며, 링크를 따라가면 음원을 들을 수 있다.
장단 내두름은 판소리가 장시간을 지속해야하는 음악이기에 생긴 미학이라고 생각된다. 즉 장시간 관람하는 청중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소리 처음을 반갑게 냄으로써 주의를 환기시키고 소리 끝은 아쉽게 마침으로써 다음 장면에 대한 호기심을 야기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등배가려치기와 진양 24박은 소리는 등과 배의 조화 다시 말하면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북도 소리의 음양 조화를 잘 헤아려서 그에 상응하게 쳐줘야 한다는 이론이다. 소리가 강하게 나올때는 북도 강하게, 소리가 약할때는 북도 약하게, 슬플때는 슬프게, 신명낼 때는 신명을 내야한다는 것이다. 소리 앞 부분에서는 소리꾼이 장단의 한배를 잡아 나가지만 소리가 몇 장단 이상 진행되면 여러가지 다양한 변화를 갖는 부침새를 쓰기 때문에 소리꾼이 장단의 한배나 박을 놓칠 염려가 있다. 이럴때 고수는 소리꾼이 한배를 가늠하게끔 장단눈을 정확하게 내주어야한다. 이것을 각내기 라고 한다.
북은 장단의 모든 박을 정확한 한배로 쳐야하는 것이나 진양과 같이 느린 장단에서는 제 5,6박에 사설이 붙지 않을 경우 정상적인 한배대로 박을 짚으면 지루하여 소리가 맥이 풀리므로 약간 빠르게 말아치는 수가 있는데 이것을 가르켜 '장단을 살짝 거둔다.'라고 한다. 반대로 자진모리와 같은 빠른 장단에서는 소리꾼이 제 흥에 겨워 한배가 빨라질 염려가 있으므로 장단의 끝부분을 약간 느리게 치는데 이것을 가르켜 '장단을 살짝 느린다.'라고 한다.
소리꾼이 특이한 리듬으로 소리할 때 북도 소리 리듬에 따라서 북가락을 쳐주는 것을 따라치기라고 한다. 소리 짜임새의 다양한 리듬을 꿰고 있어야 함은 물론이려니와 소리 전개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가능하다.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자료 설명 인용]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CD - Ⅰ에 실린 판소리 고법의 원박 및 변주박1 음원이다. 녹음은 호남지방 민속예능 조사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김명환 자택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이 하였다. 녹음일자는 1971년 12월 5일이며, 링크를 따라가면 음원을 들을 수 있다.
장단 내두름은 판소리가 장시간을 지속해야하는 음악이기에 생긴 미학이라고 생각된다. 즉 장시간 관람하는 청중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소리 처음을 반갑게 냄으로써 주의를 환기시키고 소리 끝은 아쉽게 마침으로써 다음 장면에 대한 호기심을 야기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등배가려치기와 진양 24박은 소리는 등과 배의 조화 다시 말하면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북도 소리의 음양 조화를 잘 헤아려서 그에 상응하게 쳐줘야 한다는 이론이다.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자료 설명 인용]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CD - Ⅰ에 실린 판소리 고법의 원박 및 변주박2 음원이다. 녹음은 호남지방 민속예능 조사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김명환 자택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이 하였다. 녹음일자는 1971년 12월 5일이며, 링크를 따라가면 음원을 들을 수 있다.
장단 내두름은 판소리가 장시간을 지속해야하는 음악이기에 생긴 미학이라고 생각된다. 즉 장시간 관람하는 청중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소리 처음을 반갑게 냄으로써 주의를 환기시키고 소리 끝은 아쉽게 마침으로써 다음 장면에 대한 호기심을 야기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등배가려치기와 진양 24박은 소리는 등과 배의 조화 다시 말하면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북도 소리의 음양 조화를 잘 헤아려서 그에 상응하게 쳐줘야 한다는 이론이다.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자료 설명 인용]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CD - Ⅰ에 실린 판소리 고법의 원박 및 변주박3 음원이다. 녹음은 호남지방 민속예능 조사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김명환 자택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이 하였다. 녹음일자는 1971년 12월 5일이며, 링크를 따라가면 음원을 들을 수 있다.
장단 내두름은 판소리가 장시간을 지속해야하는 음악이기에 생긴 미학이라고 생각된다. 즉 장시간 관람하는 청중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소리 처음을 반갑게 냄으로써 주의를 환기시키고 소리 끝은 아쉽게 마침으로써 다음 장면에 대한 호기심을 야기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등배가려치기와 진양 24박은 소리는 등과 배의 조화 다시 말하면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북도 소리의 음양 조화를 잘 헤아려서 그에 상응하게 쳐줘야 한다는 이론이다.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자료 설명 인용]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CD - Ⅰ에 실린 판소리 고법의 원박 및 변주박4 음원이다. 녹음은 호남지방 민속예능 조사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김명환 자택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이 하였다. 녹음일자는 1971년 12월 5일이며, 링크를 따라가면 음원을 들을 수 있다.
장단 내두름은 판소리가 장시간을 지속해야하는 음악이기에 생긴 미학이라고 생각된다. 즉 장시간 관람하는 청중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소리 처음을 반갑게 냄으로써 주의를 환기시키고 소리 끝은 아쉽게 마침으로써 다음 장면에 대한 호기심을 야기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등배가려치기와 진양 24박은 소리는 등과 배의 조화 다시 말하면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북도 소리의 음양 조화를 잘 헤아려서 그에 상응하게 쳐줘야 한다는 이론이다.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자료 설명 인용]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CD - Ⅰ에 실린 판소리 고법의 원박 및 변주박5 음원이다. 녹음은 호남지방 민속예능 조사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김명환 자택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이 하였다. 녹음일자는 1971년 12월 5일이며, 링크를 따라가면 음원을 들을 수 있다.
장단 내두름은 판소리가 장시간을 지속해야하는 음악이기에 생긴 미학이라고 생각된다. 즉 장시간 관람하는 청중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소리 처음을 반갑게 냄으로써 주의를 환기시키고 소리 끝은 아쉽게 마침으로써 다음 장면에 대한 호기심을 야기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등배가려치기와 진양 24박은 소리는 등과 배의 조화 다시 말하면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북도 소리의 음양 조화를 잘 헤아려서 그에 상응하게 쳐줘야 한다는 이론이다.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자료 설명 인용]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CD - Ⅰ에 실린 판소리 고법의 원박 및 변주박6 음원이다. 녹음은 호남지방 민속예능 조사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김명환 자택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이 하였다. 녹음일자는 1971년 12월 5일이며, 링크를 따라가면 음원을 들을 수 있다.
장단 내두름은 판소리가 장시간을 지속해야하는 음악이기에 생긴 미학이라고 생각된다. 즉 장시간 관람하는 청중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소리 처음을 반갑게 냄으로써 주의를 환기시키고 소리 끝은 아쉽게 마침으로써 다음 장면에 대한 호기심을 야기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등배가려치기와 진양 24박은 소리는 등과 배의 조화 다시 말하면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북도 소리의 음양 조화를 잘 헤아려서 그에 상응하게 쳐줘야 한다는 이론이다.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자료 설명 인용]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CD - Ⅰ에 실린 판소리 고법의 원박 및 변주박7 음원이다. 녹음은 호남지방 민속예능 조사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김명환 자택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이 하였다. 녹음일자는 1971년 12월 5일이며, 링크를 따라가면 음원을 들을 수 있다.
장단 내두름은 판소리가 장시간을 지속해야하는 음악이기에 생긴 미학이라고 생각된다. 즉 장시간 관람하는 청중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소리 처음을 반갑게 냄으로써 주의를 환기시키고 소리 끝은 아쉽게 마침으로써 다음 장면에 대한 호기심을 야기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등배가려치기와 진양 24박은 소리는 등과 배의 조화 다시 말하면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북도 소리의 음양 조화를 잘 헤아려서 그에 상응하게 쳐줘야 한다는 이론이다.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자료 설명 인용]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CD - Ⅰ에 실린 판소리 고법의 원박 및 변주박8 음원이다. 녹음은 호남지방 민속예능 조사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김명환 자택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이 하였다. 녹음일자는 1971년 12월 5일이며, 링크를 따라가면 음원을 들을 수 있다.
장단 내두름은 판소리가 장시간을 지속해야하는 음악이기에 생긴 미학이라고 생각된다. 즉 장시간 관람하는 청중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소리 처음을 반갑게 냄으로써 주의를 환기시키고 소리 끝은 아쉽게 마침으로써 다음 장면에 대한 호기심을 야기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등배가려치기와 진양 24박은 소리는 등과 배의 조화 다시 말하면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북도 소리의 음양 조화를 잘 헤아려서 그에 상응하게 쳐줘야 한다는 이론이다.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자료 설명 인용]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CD - Ⅰ에 실린 판소리 고법의 원박 및 변주박9 음원이다. 녹음은 호남지방 민속예능 조사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김명환 자택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이 하였다. 녹음일자는 1971년 12월 5일이며, 링크를 따라가면 음원을 들을 수 있다.
장단 내두름은 판소리가 장시간을 지속해야하는 음악이기에 생긴 미학이라고 생각된다. 즉 장시간 관람하는 청중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소리 처음을 반갑게 냄으로써 주의를 환기시키고 소리 끝은 아쉽게 마침으로써 다음 장면에 대한 호기심을 야기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등배가려치기와 진양 24박은 소리는 등과 배의 조화 다시 말하면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북도 소리의 음양 조화를 잘 헤아려서 그에 상응하게 쳐줘야 한다는 이론이다.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자료 설명 인용]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CD - Ⅰ에 실린 판소리 고법의 원박 및 변주박10 음원이다. 녹음은 호남지방 민속예능 조사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1971년 12월,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김명환 자택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이 하였다. 링크를 따라가면 음원을 들을 수 있다.
장단 내두름은 판소리가 장시간을 지속해야하는 음악이기에 생긴 미학이라고 생각된다. 즉 장시간 관람하는 청중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소리 처음을 반갑게 냄으로써 주의를 환기시키고 소리 끝은 아쉽게 마침으로써 다음 장면에 대한 호기심을 야기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등배가려치기와 진양 24박은 소리는 등과 배의 조화 다시 말하면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북도 소리의 음양 조화를 잘 헤아려서 그에 상응하게 쳐줘야 한다는 이론이다.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자료 설명 인용]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CD - Ⅰ에 실린 판소리 고법의 원박 및 변주박11 음원이다. 녹음은 호남지방 민속예능 조사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1971년 12월,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김명환 자택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이 하였다. 링크를 따라가면 음원을 들을 수 있다.
장단 내두름은 판소리가 장시간을 지속해야하는 음악이기에 생긴 미학이라고 생각된다. 즉 장시간 관람하는 청중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소리 처음을 반갑게 냄으로써 주의를 환기시키고 소리 끝은 아쉽게 마침으로써 다음 장면에 대한 호기심을 야기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등배가려치기와 진양 24박은 소리는 등과 배의 조화 다시 말하면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북도 소리의 음양 조화를 잘 헤아려서 그에 상응하게 쳐줘야 한다는 이론이다.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자료 설명 인용]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CD - Ⅰ에 실린 판소리 고법의 원박 및 변주박12 음원이다. 녹음은 호남지방 민속예능 조사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1971년 12월,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김명환 자택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이 하였다. 링크를 따라가면 음원을 들을 수 있다.
장단 내두름은 판소리가 장시간을 지속해야하는 음악이기에 생긴 미학이라고 생각된다. 즉 장시간 관람하는 청중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소리 처음을 반갑게 냄으로써 주의를 환기시키고 소리 끝은 아쉽게 마침으로써 다음 장면에 대한 호기심을 야기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등배가려치기와 진양 24박은 소리는 등과 배의 조화 다시 말하면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북도 소리의 음양 조화를 잘 헤아려서 그에 상응하게 쳐줘야 한다는 이론이다.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자료 설명 인용]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CD - Ⅰ에 실린 판소리 고법의 원박 및 변주박13 음원이다. 녹음은 호남지방 민속예능 조사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1971년 12월,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김명환 자택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이 하였다. 링크를 따라가면 음원을 들을 수 있다.
장단 내두름은 판소리가 장시간을 지속해야하는 음악이기에 생긴 미학이라고 생각된다. 즉 장시간 관람하는 청중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소리 처음을 반갑게 냄으로써 주의를 환기시키고 소리 끝은 아쉽게 마침으로써 다음 장면에 대한 호기심을 야기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등배가려치기와 진양 24박은 소리는 등과 배의 조화 다시 말하면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북도 소리의 음양 조화를 잘 헤아려서 그에 상응하게 쳐줘야 한다는 이론이다.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자료 설명 인용]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CD - Ⅰ에 실린 판소리 고법의 원박 및 변주박14 음원이다. 녹음은 호남지방 민속예능 조사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1971년 12월,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김명환 자택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이 하였다. 링크를 따라가면 음원을 들을 수 있다.
장단 내두름은 판소리가 장시간을 지속해야하는 음악이기에 생긴 미학이라고 생각된다. 즉 장시간 관람하는 청중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소리 처음을 반갑게 냄으로써 주의를 환기시키고 소리 끝은 아쉽게 마침으로써 다음 장면에 대한 호기심을 야기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등배가려치기와 진양 24박은 소리는 등과 배의 조화 다시 말하면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북도 소리의 음양 조화를 잘 헤아려서 그에 상응하게 쳐줘야 한다는 이론이다.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자료 설명 인용]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CD - Ⅰ에 실린 판소리 고법의 원박 및 변주박15 음원이다. 녹음은 호남지방 민속예능 조사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1971년 12월,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김명환 자택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이 하였다. 링크를 따라가면 음원을 들을 수 있다.
장단 내두름은 판소리가 장시간을 지속해야하는 음악이기에 생긴 미학이라고 생각된다. 즉 장시간 관람하는 청중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소리 처음을 반갑게 냄으로써 주의를 환기시키고 소리 끝은 아쉽게 마침으로써 다음 장면에 대한 호기심을 야기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등배가려치기와 진양 24박은 소리는 등과 배의 조화 다시 말하면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북도 소리의 음양 조화를 잘 헤아려서 그에 상응하게 쳐줘야 한다는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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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CD - Ⅰ에 실린 판소리 고법의 원박 및 변주박16 음원이다. 녹음은 호남지방 민속예능 조사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1971년 12월,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김명환 자택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이 하였다. 링크를 따라가면 음원을 들을 수 있다.
장단 내두름은 판소리가 장시간을 지속해야하는 음악이기에 생긴 미학이라고 생각된다. 즉 장시간 관람하는 청중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소리 처음을 반갑게 냄으로써 주의를 환기시키고 소리 끝은 아쉽게 마침으로써 다음 장면에 대한 호기심을 야기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등배가려치기와 진양 24박은 소리는 등과 배의 조화 다시 말하면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북도 소리의 음양 조화를 잘 헤아려서 그에 상응하게 쳐줘야 한다는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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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CD - Ⅰ에 실린 판소리 고법의 원박 및 변주박17 음원이다. 녹음은 호남지방 민속예능 조사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1971년 12월,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김명환 자택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이 하였다. 링크를 따라가면 음원을 들을 수 있다.
판소리 춘향가는 남원 퇴기 월매의 딸 성춘향과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의 신분을 뛰어 넘은 사랑노래다. 단오날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춘향과 이몽룡이 백년가약을 맺었다가 이몽룡 아버지의 근무지 이동으로 이별을 하게 되고, 고을에 새로 부임한 신임사또가 춘향에게 수청들 것을 요구하자 죽음을 불사하고 이를 거절하여 옥고를 치른다. 이때 과거에 급제하여 어사가 된 이몽룡이 나타나 죽음 직전의 춘향을 구하고 사랑의 승리를 거둔다는 줄거리로, 현전 판소리 다섯 마당 중에서 음악적으로나 문학적으로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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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CD - Ⅵ에 실린 춘향전(정권진) ; 이도령 춘향집에서부터 이별가까지1 음원이다. 녹음은 호남지방 민속예능 조사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김명환 자택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이 하였다. 녹음일자는 1971년 12월 5일이며, 링크를 따라가면 음원을 들을 수 있다.
판소리 춘향가는 남원 퇴기 월매의 딸 성춘향과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의 신분을 뛰어 넘은 사랑노래다. 단오날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춘향과 이몽룡이 백년가약을 맺었다가 이몽룡 아버지의 근무지 이동으로 이별을 하게 되고, 고을에 새로 부임한 신임사또가 춘향에게 수청들 것을 요구하자 죽음을 불사하고 이를 거절하여 옥고를 치른다. 이때 과거에 급제하여 어사가 된 이몽룡이 나타나 죽음 직전의 춘향을 구하고 사랑의 승리를 거둔다는 줄거리로, 현전 판소리 다섯 마당 중에서 음악적으로나 문학적으로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자료 설명 인용]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CD - Ⅵ에 실린 춘향전(정권진) ; 이도령 춘향집에서부터 이별가까지2 음원이다. 녹음은 호남지방 민속예능 조사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김명환 자택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이 하였다. 녹음일자는 1971년 12월 5일이며, 링크를 따라가면 음원을 들을 수 있다.
판소리 춘향가는 남원 퇴기 월매의 딸 성춘향과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의 신분을 뛰어 넘은 사랑노래다. 단오날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춘향과 이몽룡이 백년가약을 맺었다가 이몽룡 아버지의 근무지 이동으로 이별을 하게 되고, 고을에 새로 부임한 신임사또가 춘향에게 수청들 것을 요구하자 죽음을 불사하고 이를 거절하여 옥고를 치른다. 이때 과거에 급제하여 어사가 된 이몽룡이 나타나 죽음 직전의 춘향을 구하고 사랑의 승리를 거둔다는 줄거리로, 현전 판소리 다섯 마당 중에서 음악적으로나 문학적으로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자료 설명 인용]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 시리즈15> 김명환 판소리 고법 CD - Ⅶ에 실린 춘향전(정권진) ; 이별가부터 춘향변학도에게서 부름받다까지 음원이다. 녹음은 호남지방 민속예능 조사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김명환 자택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이보형이 하였다. 녹음일자는 1971년 12월 5일이며, 링크를 따라가면 음원을 들을 수 있다.
내용: 국가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보유자 조영숙을 인터뷰한 기사이다. 발탈을 하게 된 계기, 발탈의 매력, 전수의 어려움 등을 이야기한 인터뷰 영상 및 인터뷰 전문을 확인할 수 있다.
저널명: CPN문화재TV
발행 형태: 인터넷 뉴스
발행일: 2019.09.18. 18:08(승인)
내용: 서울맹인독경이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알리는 기사.
저널명: 서울신문
발행 형태: 인터넷 신문 기사.
발행일: 2017.01.04 18:06(입력)ㅣ2017.01.04 18:09(수정)
비고: 2017년 01월 05일 『서울신문』 27면 2단에 지면 기사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