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일명칭:박수진 외_2015_성북동 이야기자원 모음집_성북문화원
- 유형:문서류 · 단행본
- 형태:PDF
- 수량:1
- 크기:6.71MB
- 페이지:256
- 미디어 형식:application/pdf
- 미디어 크기:7,044,970 바이트
- 생산자 소속 및 이름:박수진, 백외준, 남기현, 한봉석, 김보라, 김지은
- 생산자 이름 유형:본명
- 생산자 유형:저자
- 생산유형:생산
- 생산지 유형:발행처
- 생산지:08507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4길 13-8 성북문화원)
- 내용:조선시대(1392~1910)의 성북동
1-1 한양도성의 축조
1-2 한양도성의 수축(1)
1-3 한양도성의 수축(2)
1-4 한양도성의 수축(3)
1-5 한양도성의 축조와 수축(태조~세종)
1-6 한양도성의 수축(4)
1-7 한양도성의 수축(5)
1-8 수성절목(守城節目)
1-9 한양도성의 수축(6)
1-10 혜화문(1)
1-11 혜화문(2)
1-12 혜화문(3)
1-13 혜화문(4)
1-14 숙정문(1)
1-15 숙정문(2)
1-16 선잠단과 선잠제(정종~태종)
1-17 선잠단과 선잠제(세종-1)
1-18 선잠단과 선잠제(세종-2)
1-19 선잠단과 선잠제(세종-3)
1-20 선잠단과 선잠제(세종-4)
1-21 선잠단과 선잠제(세종-5)
1-22 선잠단과 선잠제(세조~성종)
1-23 선잠단과 선잠제(성종-1)
1-24 선잠단과 선잠제(성종-2)
1-25 선잠단과 선잠제(성종-3)
1-26 선잠단과 선잠제(성종~연산군)
1-27 선잠단과 선잠제(중종)
1-28 선잠단과 선잠제(명종)
1-29 선잠단과 선잠제(광해군~영조)
1-30 선잠단과 선잠제(영조-1)
1-31 선잠단과 선잠제(영조-2)
1-32 선잠단과 선잠제(영조-3)
1-33 선잠단과 선잠제(영조~순종)
1-34 성북둔 설치 배경
1-35 영의정 홍봉한의 성북둔 설치 건의
1-36 「성북동포백훈조계완문절목」(1)
1-37 「성북동포백훈조계완문절목」(2)
1-38 성북동 한시(1)
1-39 성북동 한시(2)
1-40 성북동 한시(3)
1-41 성북동 한시(4)
1-42 성북동 한시(5)
1-43 성북동 한시(6)
1-44 성북동 한시(7)
1-45 유북저동기(遊北渚洞記)
일제강점기(1910~1945)의 성북동
2-1 삼산의숙 운동회
2-2 삼산의숙 창설 취지
2-3 성북동의 촛불, 봉시 황연수의 아름다운 일
2-4 교육가의 열성, 삼산의숙의 원족회
2-5 경향의 자선가
2-6 삼산학교 설립자 황수연 별세
2-7 삼산의숙의 장래-세탁공전으로 유지
2-8 삼산학교 창립 17주년 기념 운동회
2-9 삼산학교 부형회
2-10 삼산학교와 숭인면 부호(富豪)
2-11 백인기(白寅基)군과 동척감사
2-12 성북구락부 가맹
2-13 경기의 수군이오 경선의 번병
2-14 성북야학원 설립
2-15 성북소년회 야학부
2-16 교실에 난로 없어 200생도 고생
2-17 삼산교에 서광
2-18 이원우 씨의 독지
2-19 성왕히 거행할 경성 어린이날
2-20 성북의 향기 (一)
2-21 성북의 향기 (二)
2-22 성북의 향기 (三) - 1
2-23 성북의 향기 (三) - 2
2-24 삼산학교 대운동회
2-25 하윤실씨가 지난 20일에 삼산교장으로 취임
2-26 삼산학교를 보통학교로 승격 노력 중
2-27 성북 국유지 1만8천평 불하
2-28 성북동민 단오위안회(端午慰安會)
2-29 성북유치원 설립
2-30 성북동의 문인촌
2-31 삼산학교 운동회
2-32 삼산학교 학예회
2-33 성북유치원에 내는 의연금
2-34 성북동 동명의 유래
2-35 전차구역제를 철폐하라
2-36 학령초과아동 위해 영명학교 신설
2-37 고심 20여년 거자(巨資)도 희생(犧牲)
2-38 조선사서지사항
2-39 김경중의 『조선사』
2-40 내년 주민의 숙원이던 성북정 하천 개수
2-41 버스 운전시간 연장을 진정
2-42 성북정 산불
2-43 숭인, 창신정 사무는 동부출장소에서 취급
2-44 성북정 요정촌화에 주민이 궐기진정
2-45 경성부내 수도선(水道線) 확장
2-46 경성부 풍치지구 20개소 지정
2-47 전염병원설립중지를 경영자에게 교섭
2-48 성북정민, 요양원 설치 중지 최후권고
2-49 폐병원의 설치반대, 성북정민 재진정
2-50 부호의 별장지대 풍경, 성북동 일대
2-51 백만장자의 제2세 행장기
2-52 음벽정
2-53 삼산학교당국담
2-54 삼산학교 승격문제로 후원회측에서 궐기
2-55 삼산학교 교주 姜振九 氏 책임경영 성명
2-56 재건의 삼산학교
2-57 음벽정 화재, 별실 1동 전소
2-58 삼산학교 동창회
2-59 음벽정의 철야영업
2-60 삼산학교 이사장, 경성부 의원 입후보
2-61 성북정 순사 파출소, 9월말에 준공
2-62 교외 산재한 요정에 철야영업을 경고
2-63 구인회는 ‘무의지파’가 아니다
2-64 1934년과 조선문단 - 반동의 시대
2-65 구인회 주최 “시와 소설의 밤”
2-66 구인회는 어디로?
2-67 내가 문단에 데뷔하던 때 - 박금청 회고담
2-68 구인회-조용만 회고담
2-69 李無影 씨 10주기 맞아 - 백철
2-70 30년대 전반의 문인들 - 김병익
2-71 찬란한 1930년대 조선문단
2-72 유진오의 구인회회고
2-73 월북문인작품의 규제완화
2-74 이상(李箱)의 일화
2-75 월북 작가 이태준 작품 출간
2-76 30년대 구인회 조용만 씨 소설 출간
2-77 노시산방기
2-78 동일(冬日)에 제하여
2-79 육장후기
2-80 김환기와의 결혼
2-81 산방기
2-82 남풍
2-83 편편상(片片像)-김환기의수필
2-84 근원의 글을 읽다
2-85 첫 만남
2-86 두 번째 만남
2-87 서울대 미술학부 창립
2-88 근원의 미술교육
2-89 서양화에서 동양화로
2-90 노시산방, 반야초당, 경운동 집
2-91 근원 선생과 나
2-92 국대안 반대 운동
2-93 『근원수필』과 『조선미술대요』
2-94 미술문화의 사회교육자
2-95 해방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현대(1945~ )의 성북동
3-1 성북동회, 동회를 이끈 인물들
3-2 해방공간 좌우의 소용돌이
3-3 한국전쟁의 상처
3-4 전후의 살림살이와 ‘판자촌’(1)
3-5 전후의 살림살이와 ‘판자촌’(2)
3-6 ‘풍치지구’를벗어나북악스카이웨이시대로
3-7 ‘성북동 비둘기’의 추방
3-8 소설에 나타난 1959년의 성북동 풍경
3-9 성북동 고급주택지의 조성과정
3-10 성북동 고급주택지의 사회적 위상
3-11 1997년 길상사의 개원
3-12 1996년 성북문화원의 개원
3-13 성북로(1)
3-14 성북로(2)
3-15 선잠로의 문화공간
3-16 청룡암과 삼청각
3-17 북정마을 순환로
3-18 성북동의 순성길
3-19 ‘성․아․들’과 ‘성북동천’
3-20 대한교육보험, 외국인주택건설
3-21 ‘동베를린사건’과 작곡가 윤이상
3-22 명수학교의 개교
3-23 성북동 무허가주택 철거의 진통
3-24 조지훈 시인 별세(1)
3-25 조지훈 시인 별세(2)
3-26 보화각에서 국보급 고서 발견
3-27 시인 천상병이 살아 있다
3-28 말뿐인 호화주택 증과세
3-29 검도복 차림 일본 대학생 성북동 활보
3-30 홍익북초등학교의 폐교 결정
3-31 성북동 고지대 주민들의 식수난
3-32 화가 박래현 별세
3-33 서울성곽의 복원에 따른 주택철거
3-34 서울성곽 안팎 20m를 보호구역으로 지정
3-35 주한 서독대사관저 준공
3-36 숙정문의 복원
3-37 김광섭 시인 별세
3-38 성북천변 모윤숙의 집(박화성회고담)
3-39 성북동 성곽 주변 102채 건물 철거 방침
3-40 성북동 도로포장공사 준공
3-41 오일용 씨(오세창의 3남) 정년퇴직
3-42 형제강도 수배
3-43 고 박정희 전 대통령 4주기 제사
3-44 채동선음악상 제정한 이소란 여사
3-45 김광균 시인,신작시 발표
3-46 심우장 서울시 기념물 지정
3-47 불교 태고종 새청사 건립 예정
3-48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 별세
3-49 성북천 복개공사장 사고
3-50 불교 태고종 「중앙회관」 낙성식
3-51 간송미술관 추사 탄생 200돌 기념특별전
3-52 성북1동 가압장 시설 확장공사
3-53 선잠단 정비
3-54 독립유공자 백매수 옹 별세
3-55 코오롱그룹 창업주 이원만 회장 별세
3-56 요정 三淸閣, 혼례식장 변신
3-57 한국화가 서세옥의 집
3-58 卍海 일대기 연극으로 본다
3-59 매듭장 김은영 여사 인터뷰
3-60 성북동에 고급빌라 속속 들어서
3-61 성북동 財界총수들 지역문화원 설립 나서
3-62 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실장 인터뷰
3-63 성북동 ‘대원각’ 도심속 山寺로 탈바꿈
3-64 만해 한용운 심우장 정비 후 개방
3-65 김수환 추기경 길상사 개원법회 참석
3-66 법정스님 명동성당서 강연
3-67 성북동 배경의 연극 ‘혈맥’ 공연
3-68 간송미술관 설립 60주년
3-69 97년 강도 침입 최순영 회장 집 5억 털려
3-70 전 대원각 주인 김영한 씨 별세
3-71 운보 김기창의 삶과 작품세계
3-72 요정정치 산실 삼청각 문화공간 탈바꿈
3-73 한국 최초 카톨릭 순교자상 발견
3-74 최순우옛집에서열린전시회
3-75 노조원 30여 명 이웅렬 회장 집 점거 농성
3-76 ‘한국판 비벌리힐스’ 성북동 24시
3-77 화가 서도호의 성북동 집
3-78 ‘바람의 화원’ 전시장을 휘감다
3-79 국내 최초 외교관 사택단지
3-80 법정스님 입적
3-81 전 대선 후보 사돈 집에 도둑
3-82 1950년대 성북동 신문기사
3-83 1960년대 성북동 신문기사(1)
3-84 1960년대 성북동 신문기사(2)
3-85 1970년대 성북동 신문기사(1)
3-86 1970년대 성북동 신문기사(2)
3-87 1990년대 성북동 신문기사(1)
3-88 1990년대 성북동 신문기사(2)
3-89 1990년대 성북동 신문기사(3)
3-90 1990년대 성북동 신문기사(4)
3-91 1990년대 성북동 신문기사(5)
3-92 1990년대 성북동 신문기사(6)
- 작성자:이재민
- 작성일:2019-06-25
- 수정자:오진아
- 수정일:2025-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