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목차
역사/인물
조선 최초의 국모, 신덕왕후 강씨
1. 이성계를 만나다
2. 조선최초의 국모가 되다
역사/ 문화재
정릉이야기
3. 법도를 어기고 도성 안에 능을 만들다
4. 조선 최초의 국모에서 후궁으로
5. 송시열, 정릉을 복권하다
6. 세계 문화유산 정릉
7. 영화 『건축학개론』과 정릉
조선 불교의 흥망성쇠, 흥천사
8. 이성계의 정성이 담긴 사찰
9. 왕실사찰로 거듭나다
10. 불타 사라지다
11. 새로운 흥천사
12. 중흥, 그리고 이름을 되찾다
13. 왕실사찰에서 연회장으로
14. 강북지역 중심 도량
역사/문학
조선후기 동소문 밖 유람길
15. 일구천석이 강동을 차지한 것보다 낫다오 - 남구만의 바위글씨
16. 십리 중에 내리는 붉은 가랑비 - 김려의 동소문 밖 1박2일
17. 가을 손가장에서 - 조수삼의 한시
18. 닷새간의 북한산 유람 - 이승희의 「북한일기」
19. 눈보라 속에 숨은 서울 - 신기선의 「유북한기」
20.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고 - 이남규의 한시
21. 시골? 詩谷! - 손가장과 정릉계곡에 바치는 시들
역사/인물
대한제국기 동소문 밖 유람
22. 총리대신 이완용의 경국사 피서
23. 서울기생조합소의 경국사 탁족회
24. 경국사의 가을밤, 서북학회의 시회(詩會)
대한제국기 동소문 밖 운동회
25. 흥천사에서 열린 운동회
26. 봉국사에서 열린 운동회
27. 개운사에서 열린 운동회
28. 연설회와 애국운동가
29. 개운사에서 열린 ‘원수’의 추도회
일제강점기 동소문 밖 유흥 공간
30. 지긋지긋한 경성을 떠나고 싶다
31. 천재시인 이상과 흥천사의 풍경 소리
32. 두 친구의 결혼식
33. 다동기생조합의 흥천사 운동회
34. 동대문경찰서 김주임 인터뷰 - 동문 밖 사찰 정화
35. 흥천사 어수통을 일본군에 헌납
36. 동소문 밖 임화(林和)의 여름 추억
37. 흥천사의 자화상 - 흥천사 감로도(1940)
정릉동의 주인(主人)들
38. 손가장 농민들 국왕 정조 앞에 나아가다
39. ‘돌일’- 옛 손가장 사람들의 또다른 생업
40. 정릉천 경국사 앞 돌다리의 내력
41. 정릉 일대 토막민의 생활상 ①
42. 정릉 일대 토막민의 생활상 ②
43. 돈암지구 구획정리사업과 토막민들의 정릉리 이주
44. 김교신의 생애 - 김교신의 정릉리 개척기 ①
45. 정릉으로 이사하기로 결정 - 김교신의 정릉리 개척기 ②
46. 김교신의 정릉집 - 김교신의 정릉리 개척기 ③
47. 정릉에서 출퇴근길 - 김교신의 정릉리 개척기 ④
48. 북한학원(北漢學園) 설립 - 김교신의 정릉리 개척기 ⑤
49. ‘참교육’과 ‘황국신민교육’ 사이에서
50. 이남덕의 회고담 - 1950년 정릉의 여름 ①
51. 김성칠의 일기 - 1950년 정릉의 여름 ②
52. 폐허 위 재건의 몸부림
53. 1957년 정릉의 봄 풍경 - 소설가 계용묵의 수필
54. 세계 최대 초등학교, 숭덕초등학교
55. 정릉2동 교수단지의 탄생과 현재
역사
슬픈 경종
56. 어마마마, 왜 날 낳으셨나요?
57. 경종을 불행하게 만든 아버지 숙종
58. 경종은 어떤 왕이었나?-당파싸움의 희생양
59. 경종은 독살되었는가?
의릉 수난사
60. 명당 중의 명당, 하늘이 숨겨놓은 땅 천장산
61. 의릉의 위치 선정에 얽힌 불편한 진실
62. 5·16 군사쿠데타로 의릉을 불법 점거하다
63. 의릉, 역사적인 7·4남북공동성명의 현장이 되다
의릉 복원과 시민 개방
64. 왕릉으로 인한 지역 사회(석관동일대)의 변화
65. 34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다
66. 안기부는 떠났지만 권력의 횡포는 여전
67. 안기부 부지 활용 방안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다
68. 마침내 제 모습을 되찾은 의릉
석탄동에서 석관동으로 되돌아오기까지 - 석관동 이야기
69. 개발시대 도시 거주 서민의 난방 문제와 연탄
70. 연탄공장과 ‘석탄동’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석관동
71. 석탄가루가 없어지자 철가루가 왠말이냐?
72. 석탄동에서 석관동으로
'쇠고랑 찬 꿈 속의 학사님' - 장위동 이야기
73. 장위동이란 마을의 유래
74. 복면강도 사건과 60년대 장위동
75. 복면을 벗은 강도의 맨얼굴
76. 꿈속의 학사님
77. 서민의 애환과 장위동의 미래
민속
정릉, 의릉 일대의 동제(洞祭)
78. 정릉3동 배밭골 산신치성제
79. 정릉2동 산신제
80. 정릉4동 북한산 산신제
81. 종암동 북바위 산신제
82. 석관동 도당제
83.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
역사/인물
독립운동가의 아내 - 이은숙
84. 우당 이회영의 삶 ①
85. 우당 이회영의 삶 ②
86. 우당 이회영의 삶 ③
87. 마적에게 총을 맞다!
88. 온가족이 함께한 짧은 서울 생활
89. 북경생활
90. 비밀문서를 갖고 조선으로
91. 신채호와 김창숙의 멱살을 잡다
92. 아들·손녀의 죽음, 남편과의 영원한 이별
93. 조선에서 남편의 독립운동 자금을 대다
94. 아들·딸을 만주로 보내고 홀로 남다
95. 남편의 부고를 듣다
96. 만주로 돌아가다
97. 해방을 맞이하였지만
98. 전란속에서
99. 정릉에서 편안한 만년을 보내다.
운명적 독립운동가의 삶 - 이규창
100. 프롤로그
101. 최고의 명문집안에서 태어나 가난한 삶을 살다
102. 독립운동을 하다
103. 고문 속에서
104. 공판과 서울에서의 감옥살이
105. 생과 사의 순간을 목격하던 광주형무소 생활
106. 건국 이후(정릉에서의 삶)
107. 에필로그
남겨진 자의 이야기 - 유우석
108. 서울특별시 성북구 아리랑로5길
109.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 그리고 유관순의 가족들
110. 출옥 이후
111. 해방을 맞이하여
어느 여학생의 4월 혁명
112. 어머니의 술회
113. 4월 혁명과 학생들 ①
114. 4월 혁명과 학생들 ②
115. 딸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
역사/에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맑은 날을 보다 - 4월의 시인 신동엽
116. 시인이 성북구에 자리 잡은 과정
117. 시인의 눈에 비친 맑은 하늘
118. 시인의 기억 속에 남은 4월, ‘갈아엎는 달’
119. 신동엽의 시인이 살았던 동선동의 현재
예술
정릉동의 예술가들
120. 정릉동의 시인들 (박재삼, 고은, 신경림, 김태정, 박정대)
121. 정릉동의 소설가들 (최정희, 박경리, 김지원, 김채원)
122. 정릉동의 화가들 (박고석, 한묵, 이중섭)
문화재
정릉, 의릉 일대의 문화유산
123. 정릉
124. 의릉
125. 서울 선잠단지
126. 성저오리 정계석표
127. 한양도성 성곽
128. 북한산 북한산성 성곽
129. 혜화문
130. 숙정문
131. 동활인서
132. 경국사
133. 봉국사
134. 개운사
135. 내원사
136. 미타사
137. 정법사
138. 적조사
139. 대원암
140. 길상사
141. 석관동 도당
142. 보문사
143. 삼군부 총무당
144. 성락원
145. 김진흥 가옥
146. 한규설 가옥
147. 이종석 별장
148. 심우장
149. 이태준 가옥 (수연산방)
150. 간송미술관
151. 돈암장
152. 최순우 옛집
153. 청수동
154. 삼청각
자연
정릉, 의릉 일대의 자연유산
155. 북한산
156. 미아리 고개
157. 아리랑 고개
158. 북한산 정릉계곡
159. 개운산
160. 천장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