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에서는 먼저 몇몇 문학 연구가나 평론가들이 그들의 글에서 인용한 김광섭 시인의 시, 「성북동 비둘기」를 원전과 비교하였을 때 나타난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지적하였다. 다음으로 원전에 나타나 있는 형식론적 문제점을 원전 비평적 견지에서 논의하여 「성북동 비둘기」를 수정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을 두었다. 그리고, 이러한 형식론적 분석을 한 「성북동 비둘기」를 언어학적 분석 방법을 이용하여 그 시의 의미를 해석하고, 아울러 작가의 정신과 태도를 밝히는 데에 연구의 주목적을 두었다.
이 연구에서 분석한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원전 인용에 있어서 연구자들이 「성북동 비둘기」를 인용했을 때 문제점을 파악하였다. 그리고 형식론적 분석을 통해서, 「성북동 비둘기」의 원전을 문장 부호에 있어서 한 개, 띄어쓰기에 있어서 여섯 개 그리고 어휘 표기에 있어서 네 개 등 모두 열한 군데를 수정하여 새로 제시하였다. 또한 김광섭의 시, 「성북동 비둘기」를 언어학적 관점에서 분석하여 시의 의미를 해석하고 시에 담겨 있는 작가의 정신을 파악하였다.
이 시의 첫째 연에서는 문명화로 인한 자연 파괴와 그로 인한 자연과의 단절에 관한 시인의 인식 및 자연 파괴와 삶의 터전 상실에 의한 서민의 두려움과 비극적 현실에 관한 시인의 비판적인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시인의 민중에 대한 사랑과 서민과의 일체감에 대한 정신이 드러나 있다. 이 시의 둘째 연에는 서민의 소외감과 문명화로 인한 자연 파괴의 심화에 대한 인식이 나타나 있다. 또한 물질 문명의 비정성과 인간적이며 근원적인 것에 대한 애착과 그리움의 정신 및 자연성을 옹호하는 정신이 표출되어 있다. 이 시의 셋째 연에는 김광섭 시인의 사람간의 조화와 친밀감, 사랑 그리고 평화에 대한 갈망의 태도가 드러나 있고, 시인의 사랑과 평화에 대한 희구와 현대 사회의 비정함에 대한 인식이 표출되어 있다. 그리고 사랑과 평화의 상실에 따른 위기감의 인식이 나타나 있다.
결국, 김광섭 시, 「성북동 비둘기」에는 문명화와 자연 파괴로 인한 서민의 소외감과 삶의 터전 상실이 나타나 있고, 시인의 현실의 비정함과 사랑과 평화에 대한 갈망의 정신이 담겨 있음을 파악하였다.
금연정책에 대한 전국적·통일적 기준은 중앙정부의 업무영역에 속한다고 할지라도 실제 금연이라는 행위는 주민의 복리에 직접적으로 관계된 공간범역 내에서 집행의 실효성이 더욱 요구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주민의 실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금연정책 집행의 역할을 담당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 연구는 이러한 문제인식을 토대로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금연정책의 성공적 집행을 위한 정책대안의 모색을 위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를 위하여 연구의 적실성을 강조한 정책지향적 연구가 수행되었으며 대안제시를 위한 방법론적 차원에서 주로 국·내외 흡연 규제 정책에 대한 역사적 전개배경 및 흡연 규제에 관한 이론의 고찰을 통하여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흡연 규제 관련 조례 제정의 범위와 한계에 관한 규범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이와 더불어 각국의 금연정책의 성공사례에 대한 사례분석과 1995년 국민건강증진법이 제정된 이후 흡연 규제와 관련된 조례제정현황, 지방자치단체의 금연정책 실시현황의 구체적 사례로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서 시행하고 있는 '담배연기 없는 성북'의 검토를 통해 지방자치단체의 성공적 금연정책 집행을 위한 효과적인 정책수단을 모색하는데 연구의 목적을 두었다.
이 연구의 범위는 성북구 단일 지방자치단체로 한정하는 중범위지향의 연구이다. 연구 결과의 보다 높은 과학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성북구 이외에 동일규모의 몇몇의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비교횡단연구가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재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성북구에서 시행하고 있는 '3S정책'과 같은 정책구조를 가진 유사한 금연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자치단체가 없는 관계로 성북구의 금연정책의 성과에 대한 자치단체 수준에서의 비교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이점은 추후 보다 심도 높은 연구가 요청된다고 하겠다.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의 금연정책의 성과수준 측정 및 분석결과를 통한 효과적 금연정책수단을 모색·개발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다양한 전략적 접근을 통해 금연정책을 시행한 후 정책 시행 전·후 또는 모집단 특성인 우리나라 전체의 흡연 현황과의 비교를 통해 정책성과를 측정하는 현지연구가 채택되었다. 사회정책에 대한 실험의 연구 일반적으로 발생 가능한 외생변수에 대한 통제가 어려운 관계로 사후실험과 유사한 현장연구(field study)가 자주 사용되며 도출된 결과의 분석을 통한 주장의 전개가 이루어졌다.
이 논문의 주요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사기간 동안 전국과 성북구의 조사대상은 1,000명-1,500명으로 독립변수(성별, 연령별, 교육수준, 직업)가 유사한 비율로 구성되었다.
둘째, 20세 이상 성인흡연율이 전국의 경우 2002년 32.8%, 2003년 29.8%, 2004년 30.4%이고 성북구는 2002년 27.7%, 2003년 26.3%, 2004년 22.2%로 전국 흡연을 평균치와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북구의 '담배연기 없는 성북 3S'정책 년도인 2002년도에는 전국과 성북구의 흡연율 차이가 약 5%였으나 2004년은 약 8%로 벌어졌다.
셋째, 흡연량은 전국에 비해 성북구가 독립변수 모두에 유의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는 흡연량이 전반적으로 적어졌음을 의미한다.
넷째, 흡연시작연령은 전국과 성북구의 차이는 거의 없었으며 독립변수인 성별, 연령, 교육수준 등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섯째, 금연시도 경험은 전국과 성북구 모두 과거 금연경험이 높아져 그만큼 금연실패율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여섯째, 금연시도 이유는 전국과 성북구 모두 '건강이 나빠져서'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금연 결심율도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일곱째, 금연실패 이유는 전국의 경우 '스트레스'(외부요인)가 주원인인 반면, 성북구의 경우 '의지부족'(내부요인)으로 나타났다.
여덟째, 금연을(현재 비흡연자의 과거 흡연경험)은 조사기간 동안 전국은 큰 차이가 없었으나 성북구는 꾸준히 증가하였다.
아홉째, 흡연실태 조사도 흡연자, 비흡연자, 금연자 비율이 전국에 비해 성북구의 흡연을 감소가 계속 이어짐을 알 수 있다.
성북구의 '담배연기 없는 성북 3S'정책 시행후 성북구민의 금연에 대한 인식조사를 실시하여 본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북구 주민의 금연정책의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법적규제 보다 흡연 예방 및 금연교육·홍보에 의한 선호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둘째, 성북구 주민의 금연방법의 선호도는 금연상담 보다 약물요법의 선호도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성북구 주민의 공공장소에서의 흡연 규제에 대한 의식은 '개인의 권리'(흡연권) 보다 '금지되어야 한다'(혐연권)가 크게 앞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넷째, 성북구의 '담배연기 없는 성북 3S'정책의 인지율은 조금씩 증가하기는 하나 조사대상자 전체의 15.3%로 다소 낮게 나타났다.
다섯째, 성북구에서 금연결심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대상은 50대이상 연령에 하루 반갑에서 한갑정도 흡연량을 가진 주민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분석결과를 토대로 지방자치단체의 흡연억제 정책의 성공적 발전방향으로서의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흡연억제 방안을 제시하는데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최근 경쟁과 성장 중심에서 삶의 질 중심으로 도시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인간다움을 존중하며 인류의 안녕과 복지를 이상으로 하는 휴머니즘적인 사상이나 태도가 강조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복지라는 키워드가 사회전반의 이슈로 부각되고 있으며 우리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으로서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소득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자연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웰빙에서 힐링으로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주민들의 욕구가 증대되면서 자연환경을 다루는 공원녹지 분야에 대한 인식 또한 높아지고 있다. 나아가 주민들이 직접 피부로 느끼는 접점행정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으므로 주민들이 공원녹지 행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
따라서 공원녹지 분야도 복지에 대한 관심을 갖고 시대흐름에 앞장서서 변화를 선도해 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서울시 등 지자체 공원녹지 정책에서 보편적 복지가 강조되고 있다. 즉, 공원녹지가 하드웨어적인 만남과 소통의 장소, 휴식공간의 복지인프라로서의 역할을 넘어 건강과 힐링프로그램으로서 숲체험, 치유, 명상, 교육 등 복지의 최상위 개념인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개발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본 연구는 공원녹지가 도시의 환경성과 생태성을 구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도시민의 공공복지와 연계성을 지닌다는 인식에서 공공복지로서의 공원녹지 정책을 도출하고자 실시되었다.
초기의 공원녹지는 휴식공간이자 사교의 장으로 인식되었으나 산업화 이후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시민들의 휴양 및 복지를 위한 공간으로 법적, 제도적인 틀로 규정되어 왔다.
본 연구에서는 공원녹지의 공공복지로서의 기능을 분석하기 위해 생태계서비스 구성요소를 공공복지로서의 기능으로 해석하고 서울시와 성북구의 공원녹지사업을 분석하여 공원녹지의 공공복지 요소로서 그린복지 인프라서비스, 그린복지 서비스, 그린생태문화 서비스 등의 개념적 틀을 제시하였다.
공원녹지를 기반으로 공공서비스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서울시와 성북구의 50개 주요 사업을 각각 분석한 결과, 두 지자체는 생물다양성 확보를 위한 공간 창출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성북구는 서울시에 비해 그린생태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어 차별화된 특성화 프로그램으로 나타났다.
본 연구에서는 공원녹지를 생태계서비스 속성으로 파악하여, 사례연구로는 성북구에서 수행한 공원녹지사업을 개념적 틀에 의해 분석하였다.
본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린복지 인프라는 공원녹지를 양적으로 증대시키고 연결성을 확보하는 등 공공복지로서의 공원녹지 모델구성요소 중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으며, 그린복지 서비스와 그린생태문화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기초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그린복지 서비스는 시민을 위한 공공복지 개념으로 수목공개념, 그린서비스 소외지역 해소, 보행약자를 위한 산책로 조성과 공공일자리 창출을 들 수 있다. 그린복지 서비스는 공원녹지 정책 중 가장 주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서비스 행정이라 볼 수 있다.
셋째, 그린생태문화 서비스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생태계서비스에서 다루고 있는 문화적인 측면을 고려한 자연생태교육프로그램을 운영과 생태역사문화탐방프로그램, 또한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도시농업교육프로그램 등을 들 수 있다.
넷째, 공원녹지정책의 원활성을 위한 조직개편이 필요하다.
현재 서울시 각 구에서 공원녹지정책을 담당하는 공원녹지과 또는 푸른도시과는 도시관리국 또는 안전건설교통국에 속해 있으나 향후 공공복지로서의 공원녹지정책의 예산확보등 원활한 업무 추진을 위해서는 문화복지국 산하 가칭“그린복지 서비스과”로 조직개편을 통해 공공복지로서의 공원녹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면 주민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업무추진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서울시 각 자치구에 그린생태문화 서비스를 위한 생태체험관 운영 등 재정적 지원이 요구된다.
서울시 차원에서 각 자치구에 1개소 이상 생태체험관이 운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재정 및 인력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공공복지차원에서 건강한 시민정신 함양과 공공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것이다.
본 연구에서 제안된 공공복지로서의 공원녹지정책 모델을 향후 기초지방자치단체인 시․군․구 일선기관 공원녹지정책으로 적용이 가능하다.
기후 변화에 대한 정부 간 위원회(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에 의하면, 가정과 상업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잠재량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에 대응한 온실가스 배출저감을 위해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에서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환경부 주관 탄소포인트 제도를 도입 시행하고 있다. 탄소포인트 제도는 가정부문의 전기, 가스 에너지 사용 감축분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이다. 현재, 기존의 국가정책 및 연구는 사업장 위주의 온실가스 소스 인벤토리 구축에 한정되어있고, 가정부문에 대한 탄소저감정책 및 제도와 그에 관한 실증적 연구는 아직 미흡하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탄소저감정책 중 탄소포인트 제도를 중심으로 가정부문의 에너지 사용에 따른 탄소배출 저감에 관한 실증 분석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를 위한 연구내용으로 첫째, 탄소포인트 제도에 대한 이론고찰을 통하여 제도에 관한 현황을 분석하였다. 둘째, 성북구를 대상으로 가정부문의 전기, 가스 사용량 자료를 이용하여 탄소배출량을 산출하였다. 셋째, IPA 분석을 통해 동단위의 전역적 분석을 위하여 공간패턴을 가시화하고,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시계열 공간분석을 실시하였다. 넷째, 대응표본 t검정을 이용하여 탄소포인트 제도의 사전-사후분석을 통해 제도의 효과를 분석하였다. 마지막으로, 에너지 사용에 따른 탄소배출량의 공간적 분포 유형을 파악하고 실제 높은 탄소배출 유형을 나타내는 지역을 판별하기 위해 공간통계기법과 핫스팟을 이용한 점사상의 국지적 분석을 실시하였다. 본 연구는 실제 에너지 사용 자료에 대한 탄소배출량을 산정한 점과 산업적 측면에 한정된 기존 연구에서 가정부문의 사례분석을 통한 결과를 도출한 점에서 의의가 있다.
우리 국토의 대부분은 산지로 되어 있다.
8∙15 광복과 6∙25전쟁의 일대 혼란기 이후 도시는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팽창을 가져왔으며, 전후 난민들의 유입과 급격한 도시화로 무허가 불량주택들이 구릉지 지역에 우후준순 들어서게 되었다. 이들은 주거생활에 대한 기반시설이 갖추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난립하였기 때문에 거주성이 열악한 불량주거지역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도시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도심 무허가 건축물 철거와 철거민의 집단이주는 무허가 정착지의 재생산이라는 악순환을 반복하였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자력재개발사업, 합동재개발사업 등 여러 가지 도시정비사업이 시행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도시의 재정비사업은 기성 노후 시가지를 정비한다는 공공의 목적을 배경으로 구릉지 등 자연경관이 보호되어야 할 대상지들이 사업성 위주의 개발이 이루어지다 보니 재정비사업으로 도시경관이 훼손되는 또 다른 문제점이 나타났다.
이러한 사정을 배경으로 새로운 구릉지 개발방식인 결합개발제도가 2005년 12월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의 공포로 제도화 되었으며, 서울시의 제3차 뉴타운지구인 ‘이문∙휘경재정비촉진지구’에서 역세권인 이문3-1구역과 문화재와 인접하면서 구릉지인 이문3-2구역을 결합하여 하나의 촉진구역(이문3구역)으로 하는 재정비촉진계획이 결정됨으로써 결합개발의 효시가 되었다.
지금까지는 하나의 재정비촉진구역에 한하여 결합개발이 가능하였으나 사업시행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하여 일반 정비구역과의 결합도 가능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제도적 뒷받침으로 문화재 인근이면서 구릉지인 대상지에서 재개발사업을 시행하는 서울시 성북2구역과 역세권지역에서 도시환경정비사업을 시행하는 신월곡1구역이 결합개발을 위한 협약을 체결함으로써 본격적인 사업시행 단계에 이르렀다.
본 논문에서는 결합개발이 실행단계에 이른 성북2구역과 신월곡1구역이 협약을 체결하기까지의 과정을 분석하고 전문가, 과정에 참여한 조합관계자 및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하여 결합개발 실행과정에서 각 주체들이 어떠한 역할을 하였고, 그 과정에서 발생된 갈등은 어떻게 해결하였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결합개발 실행을 위한 각 주체들의 역할을 정립함으로써 결합개발을 활성화하여 구릉지, 문화재보호구역 등 저밀개발이 필요한 지역의 주거환경 개선과 도시경관 보호라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함은 물론 사업참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주민들에게도 도움을 주고자 한다.
그동안 경관이 보호되어야 할 구릉지가 도시정비라는 명목으로 많은 훼손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마련된 결합개발제도가 궤도에 도입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여러 가지 법령상의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본 연구를 통해 구릉지의 열악한 주거환경개선과 경관보호라는 두 가지 목적 달성을 위해 각 주체들이 노력한다면 앞으로 결합개발 사업은 저밀관리가 필요한 지역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사업방식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화의 급속한 진행은 취업, 교육 및 사회경제 발전에 있어서의 기회를 제공하는 긍정적 효과와 함께 도시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기존의 건강개념인 예방적, 치료적 공중보건 차원의 관리로는 시민건강증진에 한계가 있다는 점에 기반 하여 건강도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였다.
본 연구는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의 효과성 강화를 위해서는 지역주민의 공감과 협조를 통한 능동적 참여의 기초가 되는 주민의 인식을 주목하였다. 본 연구는 건강도시에 대한 주민의 인식도를 조사하고 실증 분석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과를 도출하였다..
첫째, 성북구의 거주환경에 대한 응답은 중간 이하의 수준을 보이고 있다. 건강도시에 대한 주거환경의 만족도로 해석될 수 있는 결과로 본다면 전반적 주거 환경에 대한 만족도가 긍정적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건강도시사업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역시 중간 이하의 다소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셋째, 성별로 보면 남자가 여자에 비해 주거환경에 대해 더 긍정적이고 건강도시사업계획에 대한 인식도도 다소 높은 결과를 보이고 있다. 넷째, 건강도시사업계획이 일반인의 참여 보다는 관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정책은 정책 대상자인 주민의 인식과 참여가 활성화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 이렇게 주민의 인식이 중요함에도 전반적으로 부진한 것으로 나타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정책적 제언을 하였다.
첫째, 건강도시사업계획은 연령층을 벗어나 남녀노소 모두가 사업의 필요성을 공유하는 ‘공감행정’의 차원으로 건강도시사업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건강도시사업은 지역의 거버넌스형으로 추진되어 주민의 참여가 활성화되고 이에 따라 지지가 강화되어야 한다. 셋째, 사업 추진을 위한 행・재정 지원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우선 순위의 총체적 협조가 필요하다.
이처럼 건강도시사업은 우리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에 직결되는 도시 전체의 통합을 전제로 하는 중차대한 과제이다. 결론적으로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주민의 인식과 참여를 제고하는 입체적인 정책으로 진행되어전략수용도를 높여야 할 것이다.
(주제어 : 건강도시, 건강도시사업, 전략수용도, 주민 인식, 참여)
건축물의 용도 변화는 최근 국내의 저층 주거지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변화 중 하나다. 특히 저층 주거지의 용도 변화는 2000년대 이후 특정 주거 지역이 지나치게 상업화됨에 따라 학계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왔다. 하지만 성북동의 용도 변화는 상업화라는 부정적인 의미 외에도 도시의 다양성과 적응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의미도 있다.
성북동은 한양 도성에 면하여 위치한 주거 지역으로 과거 사대문 밖으로 도시가 확장되면서 형성된 주거지다. 특히 1970년대 시행된 성북천 복개공사 이외의 대형 개발이 없고 일부 지역의 주택재개발사업이 무산되면서 도시형 한옥을 비롯한 지난 80여 년간의 도시조직과 구성원이 남아 있는 역사문화지역이다.
성북동은 1980년대부터 주거지의 용도 변화가 시작되었으며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서서히 진행되었다. 역사문화자원의 가치 상승으로 인한 상업화의 영향과 재개발구역 설정 등 물리적인 개발 제한 속에서도 변화는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 변화는 대규모 개발 과정에서도 급격하게 일어나지 않았으며 거주자 이탈, 무분별한 신축, 골목 상권 파괴 등의 일반적인 도시적 문제점 역시 두드러지게 발생하지 않았다. 건축물의 용도 변화는 성북동의 기존 물리적 환경을 유지한 채 다양한 업종으로의 변화를 수용하였고, 변화 과정에서 독특한 공간 활용 방법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양상은 삼청동, 홍대 인근 등의 저층 주거 지역의 용도 변화가 지나친 상업화 혹은 문화 주도적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지역 고유의 매력 퇴색, 부작용 초래 등과는 다르다.
본 연구의 목표는 성북동 건축물 용도 변화의 물리적 특성을 도시 맥락적 특징과 건축정 특징으로 나누어 밝히는 것이다.
도시 맥락적인 특징은 용도 변경 건축물의 지역 내 균형적 분포현황, 상업화와 커뮤니티 밀착형 용도의 공존이다. 성북동 건축물의 용도 변경은 1980년대 초 이면가로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상업가로변과 더불어 이면가로변에서도 54%가 진행되었다. 상권의 변화가 가장 활발한 성북로 30m 구간의 업종과 용도 변화 대상이 다양하여 가로환경에 다채로움을 유지하고 있다. 그중 지역 주민을 위한 생활근린업종이 상업시설 사이에 분포하여 남아 있는 것은 급진적인 상업화를 막고 지역 주민의 가로 이용률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성북동 이면 가로는 대부분 4m의 보차혼용가로이며 입지 목적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개인적인 목적의 용도 변경은 종교시설, 고급주택 주변에서 진행되며 공통적인 특징이 없다. 골목상권 형성의 가능성이 있는 중고등학교 인접 가로변, 교차로와 한옥밀집구역에 용도 변화가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임차료가 저렴한 곳을 찾는 새로운 계층을 중심으로 한 재개발구역이다.
성북동의 건축적 변용은 역사문화자원 주변의 개발 제한, 재개발구역으로 인해 신축, 증·개축이 제한되는 제도적 제어 아래 있었다. 이는 신축보다 창의적이고 다양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요인이 되었다. 건축물 단위 성북동의 공간적 특성으로는 총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유휴 공간의 활용이다. 성북동은 2010년부터 인근의 혜화동의 지가가 상승하면서 연극단이 유입되었다. 극단은 기존 창고로 쓰이거나 비어 있던 지하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한옥의 유휴 공간 활용이다. 한옥의 앞, 뒷마당 공간으로 수평 증축은 대부분의 개조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옆 건물과 다양한 형태의 민원 문제가 쉽게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둘째, 인접 건축물과의 연계다. 이면거리에 위치한 오래된 목구조 주택, 한옥은 건물 간의 이격거리가 짧고 층수가 낮아 멸실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개조 시 인접 건물과 연계하여 수평, 수직 증축을 하면서 특색 있는 공간을 연출하였다. 개조 과정에서 과소평가되었던 인접 공간을 연계하여 증축하는 방식은 저층 주거지의 이면가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80년대 이전의 목구조 주택을 유지하고 가치 상승 가능성을 보여준다. 셋째, 탄력적 공간 이용이다. 성북동의 2015년 일부 재개발구역이 해제되며 개발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신축 시 적용되는 건축법에 따른 면적 제한으로 인해 건축주가 개조방식을 선호하는 추세에 따라 이에 대한 세부 연구와 제도 정립이 필요하다. 또한 성북동은 오래된 목구조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고 개조를 통해 가치를 상승시킨다는 것을 중요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성북동은 상업화의 속도가 급진적이지 않고 대형 개발이 없어 시대적 변화를 수용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용도 변화가 진행된 대표적인 저층 주거지다. 그 물리적인 특징은 성북동과 유사한 골목, 구릉지 등을 가지고 있는 지역과 더불어 급격한 변화로 인해 지역의 독특한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한 지역의 공간관리계획에 시사점을 줄 것이다.
도시한옥이란 전통주거유형인 한옥이 도시화와 근대화라는 사회적 변화에 적응한 주거유형이다. 이런 도시한옥은 근대 이후의 급격한 변화속에서 시기와 지역에 따라서 유형의 특성이 조금씩 다르다. 경제개발이라는 급격한 변화를 갖는 시기에 지어진 60년대의 도시한옥은 이전 시기의 도시한옥이 보편적인 주거유형으로 도시에서 보급되었던 것과 다르게 적응하였다. 본 연구는 정릉동 372-20번지일대 도시한옥주거지를 중심으로 1960년대의 도시한옥에 대해서 연구하였다.
서울은 1914년 이후 1936년, 1949년, 1963년에 행정구역을 크게 확장하였다. 이 중에서 1949, 1963년 확장된 행정구역은 1960년대 도시계획을 통해서 주거지로 개발 되었다. 이렇게 개발된 주거지에는 주로 민간건설업자들이 단독주택을 지어 보급하였다.
1960년대의 도시한옥은 확장된 주거지에 지어지던 단독주택의 한 유형으로 새로운 주거유형과 경쟁속에서 지어졌다. 60년대의 정부 정책과 건축산업, 제도는 목구조가 주구조체인 도시한옥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첫번째 민간건설을 지원하는 융자지원제도에서는 내화구조나 방화구조가 아닌 목조건축물이 배제되었다. 두 번째 부동산투기억제책의 일환으로 제시된 건물시가기준표준안은 목조건축물의 가치를 낮추었다. 세 번째 당시에 산림녹화사업으로 인해서 벌채가 억제되어 대부분의 목재 공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목재의 단가는 다른 건축 재료에 비해서 두 배 가까이 상승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시한옥의 건설량은 전체 주택의 건설량 증가와 함께 증가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60년대의 주거생활방식이 좌식생활, 기능의 미분리, 유교적 의례, 작업공간인 외부 공간 등으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주거생활방식이 유지되고 있었고 도시한옥은 이런 1960년대의 주거생활방식을 수용하기에 적합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의 도시한옥과 같이 보편적으로 보급되기에는 경쟁력이 부족하였고 집을 구매할 때 자신이 선호하는 생활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를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도시한옥은 특화된 주거유형으로 자리 잡았다.
정릉동은 1960년대 대표적인 도시한옥 밀집지역 이었다. 정릉동은 1949년에 서울의 행정구역 안으로 편입된 지역으로 대부분의 지역은 토지구획정리사업과 같은 택지개발사업 없이 택지 개발부터 주택 건설까지 모두 민간에 의해 개발된 지역이다. 본 연구의 대상지역인 정릉동 372-20번지일대의 도시한옥주거지는 경신학교가 1954년 정릉동에서 혜화동으로 이전하면서 남겨진 공지에 1967~68년에 민간건설업자에 의해서 계획적인 격자형 주거지로 필지가 분할되고 도시한옥이 건설, 분양되었다
주거지구조는 80x90m의 폭 6m의 접근로에 둘러싸인 장방형의 블록을 폭4m의 진입로가 관통하여 6열의 필지를 2열 분할 방식으로 나누고 있다. 이런 주거지구조는 모든 주호가 차량접근성이 확보되고 주거환경이 균일하다는 장점이 있어 1960~70년대에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인 화양지구, 영동지구에서 많이 나타난다.
필지의 규모에 있어서도 정릉동 도시한옥주거지의 필지가 9.2~12x14m로 128~169㎡의 면적을 갖는다. 돈암지구를 비롯한 도시한옥주거지나 60년대의 면목 지구 등 대부분의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에는 필지 면적 100㎡내외로 소형 필지로 대상지역의 필지가 비교적 큰 필지임을 알 수 있다. 대상지역과 유사한 필지규모는 1960년대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이루진 지역 중 동남부 권역의 중심지역으로 대규모로 사업이 이루어진 지역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서 준수한 주거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정릉동의 도시한옥은 6열의 필지에 38채가 지어졌다. 모든 주호는 진입방식과 필지의 규모의 차이가 없어 동일한 구성을 갖는다. 그리고 그 구성은 ㅡ자의 문간채와 ㄱ자의 안채가 결합된 ㄷ자형 도시한옥을 바탕으로 1960년대의 주거생활방식을 반영하여 과시적인 경향과 기능을 중요시하는 평면계획을 보여준다.
첫 번째로 도시한옥의 의장부재는 가로와 마당에 면한 부분을 중심으로 과시적으로 사용되었다. 전통한옥에서 사용되던 관습적인 부재의 위계보다는 대청과 마당 그리고 가로를 비롯한 외부에서 보여지는 시각적 위계를 중요시한다. 이런 과시적인 경향으로 굴도리, 원주, 장식적인 기단의 위치를 문간채의 바깥 면 그리고 안채의 마당에서 보이는 면에만 사용되고 있다.
두 번째로 관습적인 채 간의 위계질서에 의해서 안채와 문간채가 구조적인 분리가 이루어지고 차가(借家)와 주거생활이라는 문간채와 안채의 기능 차이에 의해서 두 채가 영역이 분리되며 문간채의 계획에서 관습적인 안채와의 관계를 무시하고 문간채의 면적을 확장하는 계획을 보인다. 이는 문간채가 안채의 부속채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차가의 기능을 가진 독립된 채로 분리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새로운 계획의 요소들이 도입된다. 문간방과 부엌의 면적을 늘려 기능적으로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고 이렇게 화보된 공간에는 문간방의 앞에 현관과 부엌과 안방을 연결하기 위한 복도를 두어 채의 기능을 개선하고자하는 노력을 보인다. 이런 동선은 새로운 주거유형에서 나타나는 동선체계로 도시한옥에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이를 수용한 것이다.
정릉동 도시한옥은 단순 필지 구획의 개발방식에어서 벗어나 계획적인 개발방식이 적용되어 대형 블록 안에 공지와 주거지를 함께 계획하고 있다. 그리고 평면의 계획에서 전통적인 주거생활방식을 유지하며 새로운 계획요소를 수용함으로서 더 나은 주거환경을 만들었다. 이런 정릉동의 도시한옥주거지의 주거지 구조, 공간의 구성은 1960년대의 도시한옥이 기존의 보편적인 도시주거유형에서 벗어나 구매자들에게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기존의 도시한옥이나 당시에 지어지던 단독주택에 비해서 더 나은 주거환경을 제공하는 고급 주거지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한식목구조가 가지는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새로운 형태의 도서관으로 휴먼라이브러리는 도서나 인쇄매체가 아닌 사람이 정보자료가 되어 이용자와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통하여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도서관서비스의 개념이다. 휴먼라이브러리는 ‘사람책(휴먼북)’을 통하여 정보를 교환하기 때문에 기존의 도서관서비스와는 다른 특성을 내포하게 되며 새로운 도서관 형태로서의 의의를 지니게 된다. 이에 본 연구는 서울시 성북구에서 실시된 휴먼라이브러리에 관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휴먼라이브러리에 대한 이론적 배경과 성북구의 휴먼라이브러리의 배경을 살펴본 후, 이를 바탕으로 2012년과 2013년에 진행된 성북구의 휴먼라이브러리에 대한 사례분석을 통해 구체적인 내용과 실태 및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분석∙제시함으로써 휴먼라이브러리에 관한 이해 증진에 일조하고자 한다.
지속적으로 높아져 가는 기후변화의 위험과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 참사, 2011년 9.15 순환정전, 2011년부터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밀양송전탑 투쟁 등의 사건들을 통해 에너지 소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 다수 시민들의 참여로 에너지 절약을 성공적으로 이끈 절전소운동이 있다. 그러나 절전소운동의 확대는 물론 유지조차 가로막는 장애물의 존재로 이 운동의 지속성과 확산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에너지 전환의 관점에서 절전소운동을 유지?확대하기 위해 어떤 지원과 방안이 요구되는지에 대한 고민과 고려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 연구에서는 절전소운동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전기절약행동에 미치는 영향 요인을 알아보고, 도출된 영향 요인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성북구 절전소운동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면접을 실시하여 참여자들의 참여 계기와 관심, 참여자들이 느끼는 문제점과 해결 방안 등에 대해 확인하면서 절전소운동이 지속되도록 하기 위한 대안을 제안하고자 하였다.
설문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절전소운동 참여자가 절전소운동을 알게 된 주요 경로는 성북구청의 홍보였고, 절전소운동이 앞으로 유지 혹은 확대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주체로도 성북구청이 가장 높은 빈도를 차지하였다. 이는 성북구청이 절전소운동의 주요 정책행위자로 이러한 운동에 있어 지자체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함을 시사한다. 둘째, 단순회귀분석을 통해 전기절약 행동과 전기절약 의도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으며 독립변수들 중 전기절약 의도와 지각된 행동통제가 인과관계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계획행동이론을 기초로 한 선행연구 결과와 일치하여 연구 모형 구성에 문제가 없음을 의미한다. 셋째, 전기절약 행동에 가장 큰 영향 요인은 환경-에너지 연관성 인식요인으로 나타났고, 그 다음으로 효율성, 지각된 행동 통제, 주관적 규범, 기후변화 결과인식 순이었다. 이는 환경과 에너지의 관계를 인지하면 할수록, 전기절약을 위해 들인 노력에 비해 효과가 좋을수록, 전기절약행동에 대한 능력과 자신감이 높을수록, 응답자의 준거집단이 응답자에게 전기절약행동을 기대하고 영향을 미칠수록, 기후변화로 야기될 영향을 인식할수록 전기절약 행동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향후 환경-에너지 연관성 인식과 효율성, 지각된 행동 통제, 주관적 규범, 기후변화 결과인식을 촉진하는 것이 전기절약 행동의 유지와 지속에 중요할 것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분석결과에 더해 좀 더 깊이 있게 알아보기 위하여 설문지 응답자 중 5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진행하였다. 심층면접을 통해서 전기절약행동의 영향 요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환경 및 에너지에 대한 교육과 참여자들간의 소통 및 정보 공유, 절전소운동 자체에 대한 인식 개선 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설문조사와 심층면접의 결과를 바탕으로 이 연구에서는 절전소운동의 유지 및 확대를 위해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도출하였다. 환경 및 에너지 관련 교육과 전기절약 방법에 관한 교육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교통비 지원이나 멀티탭 제공 등의 유인책을 제공하고, 참여자들간 소통 및 정보 공유를 위해서 길라잡이의 활동을 지원해주며, 절전소운동 자체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서 지역 네트워크에 영향력이 있는 참여자들의 홍보활동을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서사문학인 소설에서 공간 문제는 시간의 문제와 함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여기서 공간은 일반적인 장소의 개념을 넘어 작가의 주제의식 표현의 매개로 이해할 수 있다. 이태준, 김동리, 최정희는 각각 일제 강점기, 해방기, 6.25전쟁기 동안 성북동, 낙산 일대를 형상화한 소설을 발표했다. 세 명의 작가가 한국 근현대사에서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는세 시기를, 일정 지역을 소설의 공간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즉 공간을 상수로 고정시킨 뒤 시대와 작가를 변수로 놓았을 때, 작가의 시대정신을 더 면밀히 관찰할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지정된 공간의 속성을 다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살펴볼 작품은 이태준의 < 달밤 >, < 손거부 >, < 색시 >, 김동리의 < 혈거부족 >, 최정희의 < 인정 >, < 정적일순 >, < 찬란한 대낮 >이다. 각각의 작품은 성북동 그리고 삼선교와 동숭동에 해당하는 낙산 일대를 소설의 공간으로 삼고있다. 이태준의 < 달밤 >, < 손거부 >, < 색시 >에서 성북동은 기본적으로 성 밖의 공간성을 지니고 있다. 작품의 핵심 인물인 황수건, 손거부, 색시는 모두성 밖의 공간적 속성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 성 밖의 공간성은 성 안의 공간성이 침투함에 따라 변하게 되고 작품의 인물들은 외면받고 추방당하게 된다. 여기서 성 밖의 공간성은 반근대를, 성 안의 공간성의 침투는 근대화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성북동의 반근대적 속성이 근대화를 통해 사라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면서도작가 특유의 상고주의적 성향을 통해 애잔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김동리의 < 혈거부족 >에서 낙산은 해방 이후 귀국한 동포들과 극빈자들을 통해 형성된 달동네로 그려진다. 해방만 되면 모든 일이 잘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는 다르게 해방 당시의 조선의 상황은 매우 비참했다. 해방이전 꿈꿔온 공간이 ‘고향’으로 나타난다면 해방 당시는 가난, 무지, 죽음이 뒤섞인 공간인 낙산으로 형상화된다. 최정희의 < 인정 >, < 정적일순 >, < 찬란한 대낮 >은 낙산 일대를 배경으로 6.25 전쟁기의 가족 상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최작가, 노파, 길수 어머니는 모두 여성 인물로 각각 전쟁통에 사라진 남편과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 여성 인물인 이들은 상대적 약자로서 비인간적인 다른 인물들의 횡포에 고통 받게 된다. 여기서 나타나는 낙산은 전쟁터도 피난처도 아닌 공간이며 작가는 이런 허공에 뜬 공간에서의 전쟁 체험을 소설화한다. 여성인물들의 고통은 점차 가중되며 낙산 일대는 죽음의 공간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작가는 파종이나 결혼 같은 행위를 통해 죽음의 공간에서 희망적 공간으로의 공간 치환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 근현대 소설 가운데 서울 도심지가 배경인 소설이 상당수 있다. 그 가운데 성북동 낙산 일대가 배경으로 그려진 소설은 얼마나 있을까. 1936년 돈암지구로 형성된 성북천 일대는 한양도성의 동소문인 혜화문과 서울성곽의 동측에 있고 선잠단, 성락원 등 중요한 유적들이 있어서 현재는 역사문화 컨텐츠와 함께 한옥밀집지역으로 가치가 높다. 성북천과 이어진 삼청동이나 삼선교는 모두 도교적 명칭인데 이러한 신선 사상이 워낙 산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성북동 뒤의 북한산과 삼선동에서 이어지는 낙산이라는 지리적 환경이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일대에는 예술가들이 많이 살면서 당시의 모습을 그린 작품들도 있는 만큼 이 일대, 즉 한성대학교 근처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찾아 구체적으로 지역이 언급되어 있는 성북동 일대와 삼선교 일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중심으로 한성대 근처가 어떻게 형상화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성북동 일대를 배경으로 한 이태준의 소설과 삼선교 낙산 일대를 배경으로 한 최정희의 <인정> 연작, 김동리의 <혈거부족>이 대상이 되겠다. 이태준의 성북동이 배경인 소설들은 일제 강점기에 발표된 작품들로 1930년대 작가가 성북동에 살았던 시기가 그려져 있고, 낙산 일대가 배경인 김동리의 <혈거부족>은 해방 이후 정부 수립 전이 배경이며, 최정희의 <인정> <정적일순>은 6.25가 시대적 배경이다. 이태준은 성북동에 십여 년 이상 살면서 성북동을 배경으로 한 서민들의 삶을 그린 작품이 여러 편 있고 그의 대표작들이 대개 이때 쓰여졌다. 작가 이태준이 살았던 시절인 1930년대 성북동 일대가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던 서민들이 살던 곳, 아직 인정이 남아있는 성 밖 마을이었고, 작가는 배우지 못해 어리석지만 악하지는 않은 하층민들에게 애정을 느끼면서 주로 자전적인 면들을 바탕으로 관찰자의 시각에서 그리고 있다. 김동리의 <혈거부족>은 해방 후 삼선교 한성 여중 일대에 산 위에 뚫려 있는 굴에 모여 사는 사람들이 제목으로 강조되고 있는데, 이 굴은 일제말기에 미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조선총독부에서 판 것으로, 작품 모두(冒頭) 에 공간적 배경이 삼선교 돈암교 일대라고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최정희의 <인정>은 6.25 와중의 낙산이 배경이고, <정적 일순> 은 <인정>과 연작으로 보이는 작가의 자전적인 면이 그려져 있는데 낙산의 지형적 사회적 특징이 6.25의 혼란과 함께 잘 그려져 있다. 낙산은 경복궁을 중심으로 좌청룡 우백호에서, 좌청룡에 해당하는 산으로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내사산-북악산(백악산), 남산, 인왕산, 낙산-가운데 가장 지대가 낮아 산 주변에 서민 주거지가 쉽게 형성된 곳이다. 현재 성북동이나 낙산 일대는 과거와는 매우 다른 만큼 이곳의 변모 양상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관련 작품을 찾아보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본 연구는 근대이후 서울시 성북동의 문화재와 주변 경관 변화과정과 원인을 분석하고자 하였으며 시대별 폐쇄지적도를 이용한 필지 분석과 문헌자료를 참고하여 연구하였다. 경관은 대체로 제도적 요인과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해 변화가 생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근대 이후 서울의 도시계획이 성북동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예상되며자본주의 경제체제 확립이 그 배경이 된 것이라 판단된다.
이 연구는 지역 연계 평생교육 프로그램 사례 분석으로서, 연구자가 개발을 주도한 성신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의 성북, 종 로, 도봉구청과의 관학 연계 사업의 인문학아카데미 프로그램에 대한 일종의 자체분석 보고서이다. 4년간의 인문학아카데미 운 영과정에서 지역자치단체와 주민들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변형시켰다. 첫째, 지역문화유산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핵심 내용으로 삼는 “살아있는 인문학 박물관”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문화유 산이란 물질적 자원뿐만 아니라 인적자원으로 이해될 때 현재 성을 갖기에 지역 문화예술인들을 섭외하고, 지역문화유산 답사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둘째, 주민들의 대중적 관심과 흥미, 지적 욕구를 수용하여 영화나 미술을 비롯한 문화예술 제 분야와의 융합교육 프로그 램을 모색하였다. “이야기로 배우는 인문학” 프로그램은 토크쇼 형식의 이야기로 진행하는 강의 및 현장 학습을 글쓰기와 연계 화한 내면화 교육을 도입하였다. 이 과정에서 인문학적 성찰과 문화예술교육의 융합, 강사와 청중이 이야기로 소통하는 강의실, 지역 사회와 역사 속에서의 ‘나’의 발견을 추구하는 평생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인문학아카 데미의 지향점으로 삼았다. 또한 지역문화유산을 활용한 현장 교육 모형으로서 종로구의 ‘소설가 구보 따라 종로 걷기’와 도 봉구의 ‘김수영 문학관과 도봉 역사문화길 탐방’을 소개하였다. 이와 같은 경험적 사례를 공유함으로써 인문학과 문화예술교 육과의 융합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역 사회의 요구에 부응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인문학아카데미의 모델이 되기를 희망한다. 한편 평생교육 프로그램은 주민들의 참여에 의해 완 성된다는 점에서 지역공동체의 동아리 활동과 같은 자발적인 네트워크로의 연결은 도시인문학의 또 하나의 과제가 될 것이 다. 이 연구가 인문학이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대중적이고 실용적 인 학문으로 자리 잡는 하나의 시론이 되길 기대한다.
인간의 생존과 사회 유지에는 물·식량·자원·에너지·자연환경에 걸친 ‘라이프라인(Life Line, 生命線)’의 종합적인 확보가 필요불가결하다. 세계적으로 지구온난화와 식량·에너지·물 부족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은 자급률이 낮고 도시화율은 높아 라이프라인의 위기관리가 시급하고 특히 통합적인 관리를 위한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본 연구는 라이프라인 개념과 선행연구를 소개한 후 서울시 성북구의 사례를 중심으로 라이프라인 정책을 분석 평가하고 향후 과제를 제시하였다. 특히 본 연구에서는 문헌자료와 지자체 방문 및 관련자 인터뷰를 통해 지자체의 조례나 자치구 행정, 거버넌스 방식의 마을계획 등에서 나타나는 라이프라인 확보 현황을 파악하고 평가하였다. 이 연구는 도시사회의 위험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도시안보나 지속가능도시 정책의 발전에 도움을 줄 것이다.
선잠제는 양잠의 신 서릉씨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제사는 선잠단에서 지냈다. 그 시기는 매년 3월 첫 번째 巳日이었다. 선잠제는 제사의 대상이 여성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선잠제를 지내는 것은 백성들에게 양잠을 권장하기 위한 것이며, 이를 통해 풍요롭게 살기를 바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선잠제는 조선왕조에서 국가의 의례로 정비되었다. 조선의 의례는 크게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오례’라고 했다. 제사를 지내는 의례는 ‘길례’였다. 선잠제는 그 제사의 규모가 중간에 해당했고, 제사의 대상은 사람, 곧 인귀였다. 그러므로 길례의 중사로 정해졌다. 선잠제에 대한 논의는 태종대부터 시작되어 세종대 『세종실록』 「오례」에 정리되었다. 이후 수정을 하여 『국조오례의』로 법제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선잠제의 의미와 의식은 강화되었다. 선잠제를 지냈던 선잠단의 위치는 지속적으로 이동하는 것이 논의되었다. 그렇지만 옮기지 않고 현재 성북동의 ‘先蠶壇址’에서 제사를 지냈다. 선잠제는 제사의 대상은 여성이지만 제사를 지내는 주체는 국왕이었다. 그러나 제사의 규모가 중사였기 때문에 관료를 보내어 대신 지내게 하였다. 이런 것을 섭사라고 한다. 선잠제는 매년 지내야 하겠지만 기록을 보면 그렇지 못하였다. 다만 세조와 명종은 상대적으로 자주 선잠제를 지냈다. 세조는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19세기에는 선잠제가 거의 매년 시행되었다. 왕권이 약한 대신에 의례를 강화하였기 때문이다. 선잠제 시행에서 큰 변화는 1767년(영조 43)에 있었다. 이 해에는 왕비가 친잠례를 치르게 되었다. 이때 영조는 왕비가 직접 선잠제를 치르도록하였다. 이것은 조선에서는 유일한 일이었다. 이때 왕비였던 정순왕후는 직접 술을 올리는 선잠작헌례를 시행하였다. 조선시대 선잠제는 백성을위하는 민본정치를 반영한 것이다. 또한 백성들의 의생활을 걱정하고 장려하였던 정책이 의식으로 완성된 것이었다.
본 논문은 신덕왕후 정릉을 중심으로 조선초기~후기에 이르는 산릉제도의 형성과 변화양상을 살펴본 것이다. 아울러 정릉의 실질적인 능제로서의 승격과정을 담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기록을 통해 왕실 원 · 묘제와의 관련성, 조선후기 산릉역사에 있어 추봉릉으로서 정릉이 갖는 위상을 함께 파악하고자 하였다.
정릉은 조선이 개국한 후 가장 먼저 건설된 능인만큼 고려 말 공민왕릉[玄陵 · 正陵]에서 유래한 초기 왕릉 산릉제도의 기원뿐 아니라 17세기 封陵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통해 산릉제도의 변화와 그 배경요인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1409년 태종에 의해 민묘로 강등되면서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조선초기 왕릉조영과 관련한 논고에서 부분적으로 언급되어 왔을 뿐, 후대 신덕왕후의 위상 변화에 따른 조선후기 능제로까지 이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는 주목받지 못했다.
1397년 처음 조성 당시의 정릉 체제는 고려 말 공민왕릉에서 유래한 산릉제도에 기초하여 건설되었다. 이는 공민왕릉 공사를 담당했던 金師幸이 정릉 공역의 책임자였단 사실과 이성계가 등극 후 실시한 함경도 지역에 조성된 4대조 무덤의 능역 공사를 공민왕릉 형식을 따라 진행했다는 점에서 그 배경을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정릉의 최초 모습은 함경도 4대조 왕릉이나 태조 계비 신의왕후 齊陵처럼 공민왕릉을 충실하게 계승한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1409년 태종에 의해 遷葬된 후 원형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 후 1669년 현종에 의해 왕후의 지위가 복권되고 묘소 역시 封陵되면서 조선후기 추봉릉 제도라는 아주 새로운 기준에 의해 정비되었다. 이로써 정릉은 덕종 敬陵의 선례를 따라 추봉릉 제도로 조성된 최초의 왕후릉이자 이후 조성된 단경왕후 온릉, 단의왕후 혜릉 등에 영향을 주면서 조선후기 추봉릉 상설제도의 선구적인 예시가 되었다.
이처럼 정릉은 조선 개국 후 가장 먼저 조성된 능으로서 조선초기 능제 형성의 경향이 반영되어 있을 뿐 아니라 후기 추존 陵園의 조영에 있어 중요한 범본이 되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산릉제도의 형성과 변화를 동시에 담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장명등은 능묘의 능침 앞 중앙에 놓여 사자(死者)를 지키고 밝혀주는 상징적인 기능과 함께 뛰어난 조형성으로 능역을 장식하는 역할도 담당했던 중요한 석물로서, 석등의 한 범주에 속한다. 정릉 장명등은 조선왕릉 장명등 중 최초로 조성된 장명등이며, 조선 전·중기 왕릉 장명등 가운데 유일한 사각 장명등(四角長明燈) 형태를 이루고 있다. 대석, 화사석, 옥개석 형식이 기본적으로 사각을 이루고 있어 팔각 장명등 (八角長明燈)형식과는 완연하게 구분된다. 하대석, 간주석, 상대석을 1매의 통석으로 마련하고, 화사석은 1매의 통석 으로 전후로 화창을 표현하였다. 정릉 장명등은 고려 현·정릉 장명등의 전통을 그대로 따랐으나, 이보다 뛰어난 조형성을 보이고 있어 조선 개 국 이후 최초로 조성되었던 왕릉 장명등으로서의 격조를 무리없이 보여준다. 본고에서는 정릉 사각 장명등 양식의 원류를 파악하는 데 연구 목적을 두고 고려 왕릉 장명등과 더불어 사각 장 명등의 연원이 되는 사찰 사각 석등과의 비교 고찰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고려 말 회암사지 지공선사 석등 및 나옹화상 석등, 조선 초 회암사지 무학선사 석등 및 청룡사 보각국 사 정혜원융탑석등과 다음의 공통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대석, 화사석, 옥개석 등이 기본적으로 사각을 이루고 있는 점, 둘째, 간주석이 낮아지면서 대석부분이 안 정적인 형태를 이루는 점, 셋째, 화사석의 경우 대석 위에 양측으로 석재를 세워 자연스럽게 전후로 화창을 구성하 는 방법, 넷째, 옥개석이 사모지붕 형태를 하고 있는 점 등이다. 한편 정릉 장명등에는 불교적 요소가 다분히 내제되어 있는데, 간주석의 삼주문(三珠文)표현이 그것이다. 삼주 문은 밀교와 관련된 상징물의 하나로서,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 불화 및 조선 초기 보살상의 보관에 표현된 예가 확 인된다. 정릉 장명등은 이후 묘 사각 장명등 조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데, 15세기 후반 이후부터는 점차로 정릉 장 명등의 영향에서 벗어나 팔각 장명등 형식이 보다 많이 가미된 경향으로 변모해 나간다. 정릉 사각 장명등은 고려왕릉에서 조선왕릉으로의 능제 계승, 사찰 사각 석등 양식의 수용, 그 시대 불교사상의 반영 등 당대의 시대상과 문화의 흐름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담겨진 산 증거물로서 의의가 있다 하겠다.
본 연구는 성북구와 동대문구의 마을공동체 육성 네트워크를 비교하고, 중간지원조직의 역할과 성과가 네트워크 내에서 어떻게 나타나는 지 분석해보고자 했다. 우선 중간지원조직의 역할과 기능을 중개자, 조정자, 역량구축자 등으로 나누어 도출했다. 두 번째 주체에 따른 마을공동체 활성화 모형과 네트워크 유형을 호환 및 결합시켜 3가지 마을공동체육성 네트워크 유형을 도출했다. 성북구는 중간지원조직 주도형 네트워크, 중간지원조직이 없는 동대문구는 지방정부 주도형 네트워크로 보았다. 마지막으로 네트워크 분석을 활용하여 성북구와 동대문구의 마을공동체 육성 네트워크의 비교분석 결과, 성북구 마을공동체 네트워크가 네트워크 활성화와 핵심행위자의 중심성 비교 모두에서, 성북구 중간지원조직(마을만들기지원센터)이 네트워크 구성원들의 활동과 참여 및 정보공유를 체계적으로 활성화시키는 중개자 역할을 통해 더 높은 밀도와 성과를 가져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향후 지방자치단체가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방 정부 주도형 보다는 마을만들기지원센터와 같은 전담조직을 두는 중간지원조직 주도형 마을공동체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태준은 1930년대 성북동이라는 교외의 변화 및 인정세태와 풍속의 다양한 양상을 소재로 한 다수의 소설과 수필을 썼으며 그 구체적 재현의 질과 양에 있어서 독보적이었다. 그는 성북동에 거주하고 있는 어리숙한 빈민과 반편 등의 친밀한 주민이 급속한 도시화에 따라 도태될 운명에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한편으로 그의 소설은 문화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속물적 인간상에 대한 냉소적 시각을 유지했다. 전자에 대한 애착은 고완품에 대한 이태준 자신의 각별한 의미 부여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런 만큼 몇몇의 수필에서 성북동의 풍경과 사물을 고완품으로 간주하고자 하는 생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한 관점은 결국 단편 「장마」에서 수연산방에 거주하는 소설가 자신과 가족 전체로 향하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 소설가와 가족은 오랜 장마 속에 녹과 곰팡이 슬어가며 운무 속에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도시화․세속화의 시류로부터 낙오되거나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는 존재로 묘사된다. 스스로를 포함한 성북동의 주민들에 대한 이와 같은 관점은 그러나 식민지 조선의 대도시 경성으로 출퇴근하는 교외 주택민 즉 도시의 생활인으로서의 감각으로부터 연유한 위계질서와 미적 거리에 의해 가능해진 것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시골이나 전원으로만 간주되던 성북동을 다양한 부류의 주민이 유입된 신흥 주거지로서의 변모에 주목하도록 했다. 이태준의 소설과 수필에서 성북동은 민간업자들에 의해 불수의적으로 조성된 시골이면서 도시이고, 도시도 시골도 아닌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의 공간으로 재발견된다. 이태준 자신의 의도와는 별개로 그것이 성북동이라는 교외에 복합적으로 공존하고 있었던 과거와 현재, 시골과 도시, 정지와 변화의 양쪽 모두 및 그 사이의 간극을 부지불식간 의식하도록 한다. 그리고 후자로부터 전자로 소급하고자 하는 상상적 단절과 거리가 시차(時差/視差)를 발생시키고 있었다. 이태준은 성북동의 “구석진 곳”에서 역사적 유효성을 상실했거나 앞으로 그렇게 될 것(죽음)임에 틀림없는 옛 도성에 비친 석양으로 비유되는 자기동일성의 세계에 천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그것은 애초 소멸과 파국의 운명을 내포한 것이었다.
본고는 이태준과 도자기의 관계를 새로 발굴된 일본어 수필 「파편적인 이야기」와 관련 자료를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1930년대 본격적으로 창작 활동을 시작한 이태준은 소설가인 동시에 편집자로서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와 동시에 도자기를 중심으로 이태준을 조명할 필요가 있는데 본고는 그것을 발굴 자료를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수필 「파편적인 이야기」에 따르면 이태준은 부친의 연적을 계기로 도자기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본고는 그것을 계기로 이태준이 쓴 도자기 관련 글을 세 편 확인하였다. 이 글에서는 또한 이태준이 1930년대 중반 이화여자전문학교 박물관 주임으로 수집 활동을 하였고 성북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수집가 네트워크에도 참여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처럼 도자기는 이태준의 생애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전기적 사실은 기존의 연구에서 간과되었던 문학사와 미술사가 새롭게 마주치는 지점을 부각시켰다.
본 고는 조선시대 왕릉 중 중요한 역할을 점유하고 있는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위치하고 있는 의릉의 정원건축적 특성을 파악하기 위하여 입지 및 공간구성특성을 중심으로 고찰한 바, 집약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입지는 당시 궁궐로 사용한 창덕궁으로부터 약 6.4km, 도성 사대문 밖 흥인지문을 기준으로 의릉까지의 거리는 약 5.5km로 보아 조선시대 능원묘제에 따른 거리기준(40km)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둘째, 능의 공간구성과 용도에 따라 진입공간, 제향공간, 능침공간으로 구분하는 바, 공간위계에 따라 홍살문, 정자각, 명등석, 혼유석, 봉분으로 공간 축을 형성하고 있는 바, 이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조화로우며, 왕권의 권위적인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셋째, 공간구성요소에는 석물의 경우 상계에는 능침, 석양, 석호, 혼유석, 망주석이. 중계에는 문석인, 마석, 명등석이, 하계에는 무석인, 석마 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건조물의 경우 정자각은 이익공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익칸이 있으며, 참도는 신도와 어도로 구분되며, 수공간인 연지와 재실은 멸실되고 없으나 관련 고증자료를 통해 그 위치, 규모, 형태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식생은 능상 주변의 경우 소나무 군락이 조성되어 있으며 능하구역은 느티나무, 전나무 등 64종이 분포하고 있다.
서울의 목조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국보 제1호 숭례문이 화마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 참사는 정부의 안일한 문화재 관리 의식과 태만이 빚은 결과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문화재관리 전반에 걸친 총체적인 점검과 방화뿐만 아니라 도난, 훼손 등 위험에 노출되어있는 문화재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과 보다 새로운 관점에서 우리 문화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보존관리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만해 한용운 선사는 민족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요 불교사상가이다. 그가 말년을 살았던 서울 성북동의 심우장은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문화재로서의 소중한 가치가 있음에도 지금까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해 왔다. 사실상 지금까지 만해 선사에 대한 수많은 연구는 주로 그의 문학적인 측면에 집중되어 왔다. 만해 선사가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게 되는 것이 싫어 북향으로 집을 지어 생을 마감한 곳이 심우장이다. 다시 말해 우리 민족 주체성 회복의 공간이요, 자존의 역사적인 의미가 내재된 공간이 심우장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심우장의 그 기능을 오늘날의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고 민족문화 창달의 공원으로 거듭나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간 심우장이 우리의 민족사에 있어 귀중한 문화재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우리의 관심 밖에 있어 왔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은 심우장이 단순한 문화유산의 한 부분일 뿐 우리의 내면세계를 움직이는 문화역량으로 살아 움직이지 못해 왔음을 반증해 준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올곧은 정신으로 자유와 평등사상, 그리고 생명사랑을 실천한 만해 선사의 생애와 불교사적 위치, 민족정신 고취의 공간으로서의 심우장의 의의와 현재의 보존관리 상황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향후 심우장의 보존관리방안과 그것의 성역화 사업을 통한 우리의 문화 창달의 한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우리는 지나간 과거를, 흔적을 그리워한다. 추억은 누군가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하고, 되돌아 가보고 싶은, 이상향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한 과거의 이야기 속에 공간을 본다. 그 속에서 지금은 사라져가는 장소를 생각한다.
골목길...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이웃들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큰일이 있을 때에는 작업장도 된다. 골목은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아직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골목길은 정(情)이 넘치는 장소이다. 예전의 흔적이 묻어있는 골목길. 하지만 단지계획 개념의 계획들이 들어서면서 예전의 집들과 길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이 흔적을 지워버리는 계획들을 좋지 않다고 말한다. 현재의 골목길을 본다. 예전에 우리가 말하던 골목길과는 스케일도, 느낌도 사뭇 다르다.
성북동. 예로부터 산세가 빼어나기로 유명했던 곳이다. 야트막한 구릉지에 저층 고밀도 주거지가 있다. 이곳의 골목을 보았다. 길이 먼저 생겼는지, 집이 먼저 생겼는지 알 수 없지만, 빽빽이 들어찬 주택들 사이로 길이 보인다. 한사람이 지나가기 딱 좋을 만큼의 폭. 아이들이 모여 땅따먹기 하기에 딱 좋을 정도의 공터가 교차된다. 언덕을 따라 오르며 다양한 폭과, 길이와, 깊이의 골목을 느낀다. 평지와 오르막 경사, 다양한 입면의 담들, 조금씩 꺾이기도 하고, 다른 골목으로 연결되기도 하는 각도, 이런 것들은 다양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골목에서는 예전처럼 아이들이 공을 차고, 딱지를 치고, 마주치는 이웃 주민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오버랩 되지만, 실재 골목길은 텅 비어있다. 골목길은 그저 외부와 집을 이어주는 길로 존재할 뿐이다.
예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억 속 장소처럼 기능하지 못하는 성북동 골목길이 본 작업의 싸이트이다. 성북동의 골목길은, 경사지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생긴 옹벽과 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길의 경계를 만드는 것은 건물과 건물의 담과 옹벽, 그리고 옹벽과 반대로 땅을 파고들어가 영역을 형성하는 부분이다. 싸이트는 평지로, 언덕으로, 조금씩 꺾여 들어가며 지형을 안고있는 길과, 이런 길의 경계를 만들어 주고 있는 물리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싸이트의 물리적 조건들을 변화시키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행위도 변화하지 않을까. 작업은 싸이트의 물리적 통합으로 소통을 이끌어 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즉, 골목길을 이루고 있는 하나 하나의 것들을 분리하여 각각을 요소화 하고, 그 요소들은 다른 요소로 대체하여 골목길에 보다 다양한 행위가 벌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작업의 목표이다. 소통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을 하나의 장애로 간주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아이콘화 된 요소들을 삽입하여 소통을 꾀하는 것이다.
본 논문은 서울시 성북천 복원 계획과 관련하여 ‘근린형 생태하천복원’을 목적으로 인근 주민들의 공동체적 교류와 편의를 제공하는 근린형 하천복원을 제안하기 위하여 ‘근린형 개발’과 ‘평지 조성’이라는 두 개의 계획 전략을 구상하였으며, ‘근린형 개발’ 측면에서는 성북천 일대의 주변 가로들의 특징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차별화된 접근을 시도하였으며, ‘평지 조성’ 측면에서는 성북천 일대의 평지형 공개공지 조성의 필요성을 확인하고 기존의 성북천 복 원 계획상에 평지 조성 방안을 제안한다.
본 연구는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여성노인의 삶의 만족도와 자아존중감, 건강 및 경제상태, 가족관계, 사회참여와의 관계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하여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여성노인 16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사용된 통계적 방법은 백분위수, 평균, 표준편차, Cronbach's α, Pearson의 상관관계, 다중회귀분석이었다. 회귀분석은 건강이 좋지 않은 여성 노인들의 만족도에 대한 가장 강력한 예측 변수는 그들의 자부심이었고, 그 다음으로 그들의 성인 자녀와의 관계, 인식된 재정 상태, 나이, 용돈 액수였다.
이 변수들은 표본의 삶의 만족도의 41.7%를 차지했다.
정책 입안자들과 실무자들을 위한 시사점이 더 논의되었다.
본 연구는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을 대상으로 근대 이후 문화재와 주변 경관 변화과정 및 원인을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설명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1962년부터 2010년까지 사용한 폐쇄지적도를 이용하여 필지를 분석하고, 문헌자료를 참고하여 연구하였다. 시대별 변화과정 확인이 가능한 성락원, 마포최사영고택, 서울선잠단지, 서울한양도 성을 위주로 변화과정을 추적하였으며, 문화재의 소경관(素景觀)을 검토하고 필지 변화와 함께 경관변천을 분석하였다. 성락원은 1954년에 송석정과 연못이 조성된 모습을 소경관이라 볼 수 있으며, 마포최사영고택은 2003년 이후 성북동으로 이전·복원한 것, 서울선잠단지는 1960년대 개발로 현재의 터만 남게 된 모습을, 서울한양도성은 숙종30년에 석성으로 개축한 것을 각 문화재의 소경관으로 정의하였다. 성락원은 제도적 요인에 의해 변화가 생겼고, 마포최사영고택과 주변 경관은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해 변화가 생겼으며, 서울 선잠단지와 그 주변은 사회경제적·제도적 요인에 의해, 서울한양도성과 그 주변은 기술적·제도적 요인에 의해 변화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성북동의 문화재와 그 주변경관은 대체로 제도적 요인과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해 변화가 생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근대 이후 서울의 도시계획이 성북동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예상되며, 자본주의 경제체제 확립이 그 배경이 된 것이라 판단된다. 따라서 문화자원으로서의 잠재적 가치를 인식한 바람직한 경관변화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우리나라는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의 인구집중과 그에 따른 고층, 고밀의 건축행위로 인해 서울시전체 면적의 약 65%가 시가지로 구성되어 있고, 이에 따른녹지면적이 부족한 실정이다. 최근 주거지 내외 공간을 활용한 도시농업을 통해 부족한 녹지공간을 확보하고, 농업활동을 통한 도시민의 취미.여가활동은 삶의 질을 향상과 공동체를 회복 등 다양한 도시문제 해결의 대안으로 그 가치가 새롭게 평가되고 있다. 이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도시농업 활성화를 통한 도농 상생 및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하는 ‘제1차 도시농업 육성 5개년 계획(2013~2017년)을 발표하여 2017년까지 도시텃밭을 1,500ha 조성하고, 도시농업 참여자(도시농부)수를 200만 명으로 늘리겠다는 목표치를 제시하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도시텃밭 면적확대 계획은 실제 도시텃밭 현장조사를 기초로 한 특성별 공간 확보 대안마련이 필요하다. 2011년에 제정된 도시농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법률(이하 ‘도시농업법’, 법률 제11096호, 2011.11.22.)에 의하면 도시텃밭의 유형은 주택활용형 도시농업, 근린생활권 도시농업, 도심형 도시농업, 농장형.공원형 도시농업, 학교교육형 도시농업으로 구분된다. 이에 따른 세부적인 현황 및 특성 파악이 선행되고, 이에 따라 각 지역에 적합한 정책수립 및 시행이 필요하다. 도시농업법 제9조(실태조사)에서도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은 종합계획, 시행계획 및 도시농업의 육성 및 지원에 필요한 시책을 효율적으로 수립·시행하기 위하여 도시농업의 현황 등에 관한 실태조사를 실시할수 있다”고 하여 실태조사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및 각 지자체별로 최근 사업추진을 반영한 도시농업 실태조사를 시행한 사례가 거의 없고, 통계자료도 도시농업의 유형이 다양하고, 주택 내외부의 소규모 텃밭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이에 따른 조사 및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서울시 성북구를 대상으로 도시텃밭현장조사를 통해 도시농업의 유형 및 특성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문제점 및 개선점을 도출하여 향후 서울시와 성북구의 도시농업 정책마련을 위한 기초자료 제공을 목적으로하였다. 서울시의 경우 정부의 도시농업법이 시행되기 이전 도시농업 관련 조례를 시행하고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는 등 활발하게 도시농업 정책 및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의25개 자치구 중 성북구는 2011년에 .서울특별시 성북구 친환경 도시농업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서울특별시성북구조례 제850호)를 제정하였고, 도시농업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계획을 수립하여 실행하는 등 서울의 도시농업을 대표할 수 있는 자치구로 적합하다고 판단되어 연구 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연구의 시간 범위는 2014년 4월부터 2014년 11월까지 8개월에 걸쳐 수행하였다. 공간 범위는 성북구 내 자투리텃밭으로 한정하여 현장조사를 실시하였다. 자투리텃밭은 텃밭 조성 면적이 10㎡ 이상 1,000㎡ 미만의 도시농업 공간으로 정의하였다. 참고로 도시농업 법률에서 각 유형의 면적에 따른 기준이 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현장조사 시자투리텃밭의 최소 면적 기준으로 현재 서울시 내 공영농장이나 사설주말농장에서 분양하는 최소 면적인 10㎡를 기준으로 정의하였다. 또한, 1,000㎡ 이상의 면적범위는 농지법에서 관행농업의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농지로 정의하기때문에 자투리텃밭의 규모는 1,000㎡ 미만으로 설정하였다. 연구 내용은 문헌고찰을 통해 대상지 일반현황을 조사하였고, 현장조사를 통해 대상지 별 자투리텃밭의 위치, 면적, 구획 수, 텃밭 부지의 지목, 시설물 및 재배작물 현황등 특성을 조사하였다. 성북구의 일반현황으로 면적은 총 24.57㎢(서울시의4.06%)이고, 인구는 193,258세대(466,354명)가 거주하고있다. 지리적으로 서울 동북권에 위치하며, 의정부 등 서울북부 외곽 지역과 도심을 연결하는 부도심권역에 속해있다. 행정구역은 20개 행정동과 39개 법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북구의 공원면적은 8,391,000㎡이고, 1인당 공원면적은 17.29㎡이다. 그러나 공원면적 중 46%(3,864,000㎡)가북한산 국립공원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100% 도시공원으로 이루어진 노원구와 비교했을 때 공원 접근성이 떨어지며, 실제 인구밀집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공원은 그규모도 매우 작고 부족한 실정이다. 이는 이동에 제한을 갖는 유·아동 및 노인층, 저소득층의 녹색환경 측면에서 녹지공간의 만족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성북구통계연보, 2014). 따라서 성북구의 공원녹지 현황을 검토한 결과 생활권 내에서 이용이 가능한 도시농업 공간의 조성 및 활용은 녹지면적 확보 및 구민의 친환경 녹색환경 만족도 개선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성북구의 도시농업관련 조례(‘서울특별시 성북구 친환경 도시농업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서울특별시 성북구 조례 제850호)에 근거하여 구민들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 개인정서 함양과 단절된 지역공동체를 회복 등을 위한 ‘친환경도시농업’ 사업을 공원녹지과 도시농업팀에서 다양하게 추진하였다. 도시농업 현장조사 결과 자투리텃밭의 수는 285개(면적총 21,917㎡, 구획 수 842개)로 조사되었다. 텃밭 면적 규모별 조사 결과 10~100㎡(약 3평 이상~30평 이하)의 텃밭면적이 243개소 86.4%로 나타났고, 101~200㎡(약 30평~60평)가 25개소(9.0%)로 이 둘을 합하면 총 95.4%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는 전통가옥구조의 형태가 많은 성북구 주거형태도 일부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며, 자투리텃밭 면적 규모는 대부분 100㎡ 이하의 소규모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알 수있었다. 이에 따라 성북구의 도시농업 활성화를 위해 소규모 형태의 다양한 씨앗 및 모종 보급, 소규모 형태의 텃밭관리를 위한 농자재 보급 및 기술교육, 소규모 텃밭 특화 프로그램 운영 등의 지원이 성북구 도시농업 활성화에 효과적일것으로 판단되었다. 토지 형태별로 비교해 본 결과 자투리텃밭 총면적은 21,917㎡로 조사되었다. 그 중 정릉동이 10,933㎡(49.9%)로 성북구 자투리텃밭 중 약 절반정도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 성북동 7,520㎡(34.3%), 종암동 1,014㎡(4.6%), 석관동 543㎡(2.5%), 안암동 471㎡(2.1%), 장위동273㎡(1.2%), 삼선동 375㎡(1.7%), 동선동 337㎡(1.5%)등의 순서로 나타났다. 자투리텃밭 면적이 가장 넓게 차지했던 정릉동의 경우 자투리텃밭의 지목의 구성은 임야3,597㎡(16.4%), 전 2,967㎡(13.5%), 답 1,710㎡(7.8%), 대지 1,630㎡(7.4%), 종교용지 560㎡(2.6%), 잡종지 360㎡(1.6%), 도로 등 기타 109㎡(0.6%)의 순서로 나타났다. 그리고 성북구 전체 자투리텃밭 면적 중 공원용지에 조성된 자투리텃밭 면적은 339(1.6%)로 분석되었다. 이는 향후장기 미집행 도시공원 계획시설의 일몰 시한이 4년 앞으로 다가왔고, 2013년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서 도시농업 주제 공원 설치 조항이 추가된 것을 근거로 하여 장기 미집행 도시공원을 도시농업 주제공원으로 활용하는방안 모색도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대상지 내 자투리텃밭 조성형태의 유형별 세부 구성은 자연지반형 188개소(66.0%), 화단형 53개소(18.6%), 자연지반 및 상자 혼합형 16개소(5.6%), 화단형 및 상자 혼합형28개소(9.8%)로 조사되었다. 재배 작물 현황은 고추 등 총44개 작물이 조사되었다. 대부분 호박(11.8%), 고추(18.8%), 상추(15.5%)가 46.1%를 차지하였고, 아주 극소수(3개소, 0.3%)지만 벼와 보리를 심는 경우도 있었다. 인공지반의 소규모 자투리텃밭 특성상 밭작물의 비율이 높았지만, 지역 내 농사 경험이 많은 노령의 경작자를 중심으로 다양한 작물재배에 대한 요구가 반영되어 40여 종 이상의 작물이 도시농업 공간에서 활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작물 외에밭 주변에서 자라는 식물 및 곤충 등의 생물종 수가 포함되지 않은 점을 감안 했을 때 도시농업을 통한 생물다양성의 효과는 더 높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는 향후 보다 정밀한조사를 통해 도시농업의 생물다양성 증진 효과를 보다 과학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토지 소유 유형별 특성은 사유지가 14,878㎡(67.9%)로 가장 많았고, 국유지 3,249㎡(14.8%), 법인소유 1,925㎡(8.8%), 시.도유지 1,074(4.9%) 등의 순으로 분석되었다. 이는 마당이 있는 전통가옥 구조가 많은 성북구의 주택특성도 반영된 것으로 생각되며, 성북구의 경우 주택활용형 도시농업에 대한 지자체의 지원을 통해 사유지 내 도시농업 공간을 확대해 나가는 것은 지역의 경관가치도 높일 수 있고, 노인층 및 저소득층의 생태복지 측면의 긍정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 연구는 도시형 생활주택 중 주차장 기준 완화를 받아 건설된 원룸형 주택의 주차장 실태조사를 실시하여 주차문제 발생여부를 파악하고, 설치된 법적 주차대수와 주차공간 이용실태조사에 따른 주차장이용 대수를 비교 분석해 전용면적에 따른 주차이용 특성을 분석하였다. 비록 자동차 등록현황보다 더 많은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었지만, 각 필지별 주차장을 이용하는 세대수가 주차장설치 기준보다 적어 여유 있게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전용면적에 따른 이용률을 분석한 결과, 전용면적이 커질수록 주차장 이용률이 커졌다. 지하철역까지의 거리와 전용면적별 주차장 이용률의 상관성을 분석한 결과, 역세권에서는 상관성을 보였으나 비역세권에서는 상관성을 보이지 않았다. 지하철역까지의 거리에 따른 단위별 주차장 이용률을 조사한 결과, 지하철역까지의 거리가 700m까지는 주차장 이용률이 점차적으로 증가하였으나 700m 이상은 주차장 이용률이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임대비용에 따른 거주자의 소득수준이 주차수요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서울 정릉은 문헌기록에 의하면 태조6년(1397)에 황화방 언덕(지금의 중구 정동)에 있었으나 태종 9년(1409)에 도성 안에 있는 것이 논란이 되어 지금의 정릉으로 옮겨지면서 묘로 격하시키고 관리가 되지 않았다.
춘관통고에 재실은 6칸이고 홍전문 남쪽 250보 되는 곳에 있으며, 연지는 재실 동남쪽에 있고 길이는 20척, 너비는 10척이라는 기록이 있다. 위치적으로 지금의 홍살문의 남쪽에 재실이 위치하고 연지의 위치도 기록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재실의 축조시기와 관련하여 초축은 출토된 유물로 볼 때 18세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되고 초촉과 관련된 건물지는 윗채의 연도와 축대 일부만 확인되었고 여러 번에 걸쳐 보수, 개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기와, 자기 등이 출토되었는데 기와의 문양은 거미문으로 궁궐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판단되며, 자기는 ‘福’자, ‘壽’자 명문과 굽이 높은 형태로 볼 때 제기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본 논문은 성북동의 역사문화자원 주변경관을 대상으로 경관 형용사 분석에 의한 시각적 특성을 분석하고, 시각적 특성과 선호도와의 관계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연구는 성북동에 위치하고 있는 역사문화자원 주변 경관사진 30장을 선정하여 설문조사를 실시하였으며, 경관 선호요인을 파악하기 위하여 16개 형용사를 척도화하여 요인분석을 실시하였다. 마지막으로 이미지 요인이 시각적 선호도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하여 분산분석과 회귀분석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성북동 내 역사문화자원이 분포하고 있는 주변에 나타나는 경관에 대한 30장의 사진을 대상으로 16개의 형용사 어휘에 대한 선호도 평균분석을 실시한 결과, 전체적인 선호도 평균치는 3.72로 분석되었는데, 이들 중 4.5점 이상의 사진은 VP8번, VP9번, VP10번, VP12번, VP15번의 순으로 높게 나타났으며, 전체적으로 높은 선호를 보인 곳은 마포 최사영 고택과 성락원 주변경관으로, 이는 역사문화자원 주변에 대한 서울시 경관계획에 의해 고도를 제한함으로써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에서 문화재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북한산에서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조망경관이 양호하게 확보되고 있는 것이 중요한 이유로 판단된다. 둘째, 역사문화자원 주변경관에 대한 시각적 특성을 요인 분석한 결과, 요인 1(심미적 요인), 요인 2(문화적 요인), 요인 3(물리적 요인) 등 3가지 요인으로 요약되어 구분할 수 있었으며, 시각적 선호도와 이미지 요인에 대한 회귀분석 및 분산분석 결과는 심리적 요인이 성북동의 역사문화자원 주변경관에 대한 시각적 선호 이미지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났다. 이는 역사문화자원에 대한 조망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역사문화자원 주변에 위치한 주거지역에 대한 심미적 요인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 것이다. 셋째, 역사문화자원 중 정비되지 않은 주거지역 주변경관에서는 부정적인 측면의 인자가 부각되고 있으며, 역사문화자원과 조화될수록 물리적, 문화적, 심미적 특성의 3가지 영역에서 긍정적인 측면의 인자가 높게 부각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향후, 본 연구에서 표출된 인자에 대한 요인을 분석함으로써 역사문화자원 주변의 경관관리에 있어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요인을 도출하기 위한 다각적 분석이 필요하다.
과거 인간활동과 유적형성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과거 환경변화 정보를 수집하고 구체화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환경변화 정보는 유적지에 형성된 퇴적물을 대상으로 연대측정과 지화학 분석을 통해서 추적할 수 있다. 석관동 구석기 유적지 퇴적층은 약 5 미터의 미고결 퇴적층으로 크게 하부 기반암 풍화층, 그 위의 사면퇴적층 그리고 상부 하천퇴적층의 3부분으로 나뉠 수 있다. 이 가운데 상부 하천퇴적층을 대상으로 입도분석, 대자율 분석, 유기지화학, 광물조성분석, 주성분 원소분석, 방사성탄소연대측정 등을 실시하였다. 시료를 채취한 퇴적층 구간은 4개의 퇴적단위로 구분되며, 3개의 유기물 함량이 높은 퇴적층들이 포함되어 있다. 입도분석 결과 퇴적물 입자의 평균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분급이 매우 불량하게 나타나며, 여러 구간에서 상향 세립화 경향을 보인다. 또한 대자율 측정결과 3개의 유기물층에서 값이 증가하였고, 이러한 특징은 환경변화에 따른 광물의 조성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성분 원소와 광물조성은 기반암인 쥐라기 흑운모 화강암을 구성하는 주요광물과 유사하였으며, 기반암의 석영, K-장석, 운모 등에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방사성 탄소연대측정결과 최하부 유기물층은 14,240±80 yr BP로 나타났으며, 이는 이 퇴적층이 최후빙하기 이후의 점차 온난해지는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상부의 퇴적층은 플라이스토세 후기부터 홀로세에 이르는 기간에 형성된 것으로 해석된다. 결론적으로 연구지역인 석관동 유적은 계곡을 형성하는 하천활동과 사면퇴적 작용에 의해 퇴적물이 쌓이고, 자연제방과 같은 환경 또는 소규모 소택지 형태의 환경이 3 차례에 걸쳐 교대되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독서가 일반화, 대중화되면서 책을 매개로 하는 사회․문화행사인 북페스티벌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역사회의 실정과 환경에 맞게 계획되고 구성되는 북페스티벌은 공공도서관 업무와 역할의 연장선이라는 관점, 대중독서운동의 확산과 진흥이란 관점, 지역사회의 문화적 동질감 정립의 관점 등에서 그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이에 본 연구는 2015년에 서울시 성북구에서 실시된 북페스티벌(책모꼬지)의 사례를 연구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북페스티벌에 관한 이론적 배경을 살펴본 후, ‘2015 성북구 책모꼬지’의 사례를 배경, 준비과정, 현황분석으로 나누어 조사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북페스티벌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분석, 제시함으로써 북페스티벌에 대한 이해의 증진에 일조하고자 한다.
본 논문의 연구목적은 왜 민선5기 이후 자치구의 사회적기업 지원 활동이 강화되었는지를 고찰하기 위함이다. 자치구의 사회적기업 지원 강화요인은 크게 2가지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중앙정부 주도의 사회적기업 발굴 및 육성정책에서 지방정부 중심의 일자리장출 정책으로 변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2010년 6 · 2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후보들의 사회적기업 관련 공약 및 추진의지에 있다. 이러한 2가지 요인으로 말미암아 자치구의 사회적기업 지원 활동이 강화되었다.
먼저, 사회적기업 지원정책이 중앙정부에서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를 검토하기 위해 그간 중앙정부의 지원정책과 여기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점, 지원정책 변화의 의미를 고찰한다. 다음으로 민선5기 당선자들의 공약이 구체적으로 자치구의 정책, 조직, 예산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를 검토한다. 좀 더 현장감있는 연구를 위해 은평구와 성북구의 사회적기업 지원 주무부서의 담당 공무원과 심층인터뷰를 통해 지원활동을 분석했다.
중앙정부 주도에서 자치구가 주도하는 사회적기업 정책변화의 시사점은 1)자치구의 사회적기업 관리 · 감독 이슈로서 부정수급 문제가 부상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2)사회적기업 육성에 대한 자치단체장의 높은 의지가 자치구의 정책, 조직, 예산의 변화뿐만 아니라 주민의 낮은 인식을 개선하고, 수치의 함정을 경계하며, ‘틈새영역’의 사회적기업 발굴이 보완되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의 의미는 그간 중앙정부 주도형 사회적기업 정책에서 발굴하지 못했던 지역사회 유휴자원을 발굴할 수 있고, 지역특색을 살거리나 지역에 기반한 사회적기업의 출현 기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변화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과거 전통시장은 다양한 상품들이 한곳에 모이는 상업의 중심지이자 지역의 사람들이 모이는 지역 최대의 소통의 장소였다. 오늘날 대형 유통업체에 밀려 경쟁력을 잃어가면서 전통시장은 구태의연한 곳이 되어버렸다. 고객들로 하여금 전통시장을 찾을만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기이다. 전통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단순히 시설을 현대화하고 겉모습만 꾸미기에 앞서 지역의 전통과 문화를 발견하고 제대로 해석하는 연구가 선행 되어야 한다. 본 논문은 서울시의 ‘서울형 신(新)시장 육성사업’의 일환으로 2015년 9월부터 2017년 2월까지 진행한 성북구 정릉시장의 환경개선 프로젝트 사례연구로, 전통시장이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지역의 특성을 살린 독창성 있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통한 디자인 개선 전략을 제시하는데 목적이 있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지속적인 지역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산학협력플랫폼을 구축하고 산학동반성장형 프로그램 운영, 스토리 텔링형 문화콘텐츠 개발, 참여형 조직 구성과 같은 3가지 핵심전략을 구상했다. 특화 문화콘텐츠 개발을 통한 활성화를 위해 먼저 지역의 사람과 환경, 생활, 산업의 역사와 현재 등 지역문화 특성을 개관하고 정릉시장만의 독자적인 이야기를 만들었다. 현재 정릉시장 디자인의 문제점을 현황 분석하였으며, 3가지 전략을 바탕으로 디자인 개선 방향을 제안하고 실증적 디자인을 예시하였다.
본 연구는 ‘성북구 2011 제2기 도시아카데미’의 교육대상지 중에서 정릉1동을 대상으로 교육프로그램의 효과와 마을만들기 사업추진과정의 성과를 분석하고, 그에 대한 한계점을 모색하여 마을만들기 사업의 개선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마을만들기 사업 및 주민교육프로그램에 관한 이론고찰을 하였고, 도시아카데미 교육프로그램의 효과와 마을만들기의 사업추진과정에 대한 성과 및 한계를 분석하기 위한 틀을 설정하였다. 그리고 도시아카데미의 교육과정과 결과물을 중심으로 교육프로그램을 분석하였고, 교육관계자를 대상으로 심층인터뷰를 실시하여 교육프로그램의 효과와 사업추진과정의 성과 및 한계를 분석하여 마을만들기 사업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본 연구를 진행하였다. 마을만들기는 시범사업을 통해 물리적인 성과품을 단기간에 완성해 내는 일회적인 행정정책이 아니라 ‘천천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우리의 일상을 지역 주민이 스스로 고쳐나가는 지역사회운동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에 ‘성북구 도시아카데미’는 그 지역에 적합한 교육프로그램으로 거듭나고, 지방자치단체는 지속적인 마을 만들기의 주젒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행정지원체계를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 글은 20세기 도시의 역사를 저장하고 있는 미아리 일대의 역사적 시간과 공간의 변화과정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사회적 약자가 도시공간구조 속에서 어떻게 배제되고 타자화 되어 왔는지를 규명하는데서 출발하고자 한다. 조선시대까지 미아리 지역은 한성부의 성저십리에 속하는 지역으로 국왕 호위와 도성보호의 역할을 한 도심의 허파와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공동묘지로 지정되면서 지역의 명암은 바뀌어 갔고 미아리 고개 넘어 지역은 산자의 공간 보다는 죽은 자의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피난민과 전재민들은 공동묘지 근처에 살기 시작했고 1950년대 후반부터 정부는 4대문 안의 간선도로변 판잣집 강제철거를 시작으로 수재민 화재민들을 이주정착지라는 이름으로 도심 외곽으로 집단이주정책을 펼쳤다. 첫 번째 대상지역이 미아리 지역이었고 그로 인해 자연스레 달 동네가 형성되게 되었다.
1960년대 시작된 미아리 지역개발은 이 지역 경관에 새로운 변화의 상징이었다. 길음교와 미아로 확장공사 정릉천 복개구조물 공사로 인하여 정릉천과 월곡천은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로 뒤덮게 되었다. 이 공간의 한쪽에 속칭'미아리텍사스촌'도 자리를 잡게 됐다. 1990년대 재개발로 들어선 아파트는 길음동 미아동 하월곡동일대를 주거지로 만들어 놓았으며 조망권이 높아질수록 속칭'미아리텍사스촌'의 재개발문제와 더불어 환경공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2002년 시작된 뉴타운 사업의 확대로 근현대시기 동안 미아리 지역을 살아온 서민들의 역사 공간 문화들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도심재생사업의 본격화로 인해 원주민과 도시 빈민들은 더 열악한 곳으로 밀려나기 시작했고 또한 수십 년 동안 가부장제와 공모하여 성문화의 대명사로 각인되어 온 속칭'미아리텍사스촌' 재개발 논쟁이 본격화되면서 성북구와 강북구는 미아리라는 지명을 강제말소 함으로써 균형 잡힌 도시의 역사와 도시의 정체성을 세울 수 있는 기회는 사라져버렸다. 미아리공동묘지 원조 달동네 미아리텍사스촌이라는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삶의 흔적이 된 채 도시화의 상처로 남아있다. 그러나 미아리는 근현대시기 동안 도시가 만들어낸 사회적 약자들의 삶의 터전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본 연구는 도심지에 위치한 명승과 그 주변지역을 보존하기 위해 성북동에 위치한 성락원 주변 필지의 면적을 분류한 후, 주변 거주민을 대상으로 명승 지정구역에 대한 의식조사, 만족도를 분석하였다. 연구 방법으로는 해당구역의 지적조사, 문헌조사, 현장조사, 설문조사를 각각 실시하였다. 설문조사에서 회수된 설문지는 문화재 인지도에 대한 빈도분석, 문화재 주변 만족도에 대한 신뢰도 분석, 필지 면적 별 만족도 분석, 전체만족도 관계에 대한 회귀분석, 필지 면적 별 차이검증을 위한 One-way ANOVA를 각각 실시하였다. 전체적인 문화재 인지도 분석 결과, 거주지 가까이에 위치한 서울선잠단지, 성락원, 만해한용운심우장, 상허이태준가옥, 서울한양도성 순으로 알고 있었으며 문화재에 대한 방문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재방문목적은 휴식과 산책이 가장 많았으며 문화재 보존관리의 수준은 보통 수준으로 응답하였고 문화재로 인한 불편도 크게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재 보존을 위한 규제강도에 대한 인식은 보통수준이었고 문화재가 성북동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긍정적 반응이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문화재 자체가 마을 이미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문화재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고 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문화재 주변 공간에 대한 전체만족도는 필지의 규모가 클수록 만족도가 높게 나타났으며 성북동 거주민 대부분의 만족도가 높게 나타났다. 소규모 필지(150㎡ 미만) 거주자는 야간보행시 안전성, 재산 가치 상승, 사유재산권 행사, 주변 환경과의 조화, 건축물 외관 상태, 문화·예술·정신 등 비물리적 고유성에 대해 만족도가 낮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는 대규모 필지에 비해 소규모 필지의 주거환경의 질이 낮고, 성북동 일대의 재개발로 인한 타 지역 주민의 유입, 자유롭지 못한 사유재산권 행사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시설물(가로등, 안내판 등)의 조화에 대해서 대체로 만족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도심지 내 명승 주변지역의 관리전략 수립 시, 문화재 안내판 시설 확충과 문화재 교육프로그램 도입 등 마을 문화재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여 문화재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마을 고유성을 유지하는 것이 요구된다.
본 연구는 도심 단독주택의 입지 특성이 배치계획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고찰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단독주거의 유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는 주거지를 선정하여 풍수지리의 개념을 바탕으로 분석하였으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연구대상 주거지인 서울 평창동, 성북동 그리고 연희동의 입지는 하나의 자연지리체계에 의해서 형성되고 있다. 이 세 곳의 입지는 풍수적 형국을 잘 갖추고 있으며, 이러한 형국이 배치계획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대상주거지의 주택들은 남서향에서 남동방향의 범위 내에 방위를 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에 나타난 방위의 특성은 입지가 지니고 있는 지형방위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아 좌향을 정하고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입지의 상세한 지형, 지세 흐름이 터를 정하고 배치계획을 하는데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입지에 의해서 나타나는 방위, 주산에서 비롯되는 지형의 흐름이 어느 방향이냐에 따라 주택의 좌향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상에서 입지가 지니는 전체적인 형국은 배치계획의 결정에 직접적인 요인이 되고 있으며, 연구대상 주거지는 이러한 입지의 특성을 최대한 고려하여 배치계획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중독서운동이란 지역사회의 공동체의식을 자극할 수 있는 중요한 사회 · 문화적 운동이다. 대표적인 대중독서 운동인 ‘한 책, 한 도시’ 독서운동은 지역사회에서 시민들로 하여금 한 권의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함으로써 문화적 경험을 공유하게 하고, 공동체 의식을 북돋울 수 있다는 점에서 독서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였다. 본 연구는 ‘2012 독서의 해’ 프로그램으로 선정된 서울시 성북구에서 실시된 대중독서운동인 ‘원 북, 성북’ 독서운동의 사례에 관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이에 본 연구는 대중독서운동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살펴본 후, 성북구의 ‘원북, 성북’ 독서운동의 배경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사례분석을 통해 성북구의 대중독서운동인 ‘원 북, 성북’ 독서운동의 내용과 이에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인 요소들을 분석 · 제시함으로써 지역단위의 대중독서운동에 대한 이해 증진에 일조하고자 한다.
본 논문은 인본주의 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가 창조한 '장소와 장소성(place and placelessness)'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김광섭의 후기시를 1970년을 중심으로 연구한 것이다.
김광섭은 『성북동 비둘기』, 『거대한 서울』, 『와우아파트』, 『교외』, 『산책』 등의 작품에서 산업화가 초래한 장소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보여주었다.
1968년에 발표된 『성북동 비둘기』는 평화로운 시골 성북동이 격렬하게 발전하면서 추상적이고 적대적인 공간이 되어 '무위'에 점령당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자본주의 산업화는 도시화 과정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전원지였던 성북동의 자연을 파괴하였다.
그리고 원주민들의 생계를 빼앗았고, 그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산과 백성을 잃은 『비둘기』는 더 이상 사랑을 품을 수 없고, 발전으로 쫓겨날 운명에 처한 성북동 원주민들에게 평화의 의미가 서려 있다.
그의 시 교외는 우리의 도시화가 얼마나 서울 변두리의 자연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해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시의 『불』은 산업화와 도시화에 대한 반항적인 욕망, 즉 '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를 '불'로 경고하는 파괴적인 불을 묘사하고 있다.
『와우 아파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압축 증가로 인한 부작용과 그림자를 묘사합니다.
그러나 그의 시 『산』은 관용과 관용, 배려와 겸손, 공생과 상생의 해결을 통해 비정상적인 징후와 장소성을 치유할 수 있는 대안적 장소, 진정한 장소를 보여준다.
본 연구는 서울시 등록문화재 268호 최순우 옛집을 사례로 하여 근대인물 문화재 가치창출을 목적으로 인물사와 문화재를 연계로 한 스토리텔링의 기초검토와 작성방법을 제시하였다. 문화재의 문화콘텐츠 가치 분석 결과, 미술사학자 최순우의 미학사상이 옛집의 공간(사랑방 · 뒤뜰)과 유물 (현판 · 예술품 · 전통수목)에 핵심적으로 반영되어 있음을 파악하였다. 그리고 본고에서 제시한 스토리텔링 작성 5단계 즉, 취지 알리기, 인물 소개하기, 인물과 문화재 연결하기, 인물을 통해 문화재 보기, 문화재와 대중 연결하기 기법을 통해 ‘최순우의 한국미(美)를 통해 본 옛집’의 이미지를 창출하였다. 나아가 보존주체인 내셔널트러스트 시민단체의 역사계승운동을 문화재 현대적 가치로 주목하여 스토리텔링에 반영, 이를 대중의 자발적 보존활동의 유도기제로 설정하였다. 본 연구의 의의는 한 문화재 사례를 통해 근대인물의 특징과 문화재인 문화콘텐츠 가치의 상관성을 효고적으로 추출한 점 그리고 이를 스토리텔링으로 가공하여 해당 문화재의 고유한 이미지를 창출하고 새로운 문화자원으로서의 가능성을 모색한 점에 있다.
미국의 민간원조 기구인 아시아재단은 1953년부터 한국 영화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조사를 시작했다. 찰스 태너(Charles Tanner)는 1953년과 1954년에 각각 한국 영화산업에 대한 아시아재단의 지원 계획안을 작성했으며, 1955년에는 아시아재단 도쿄 사무소에서 영화를 담당하고 있던 존 밀러(John Miller)가 한국을 방문하여 산업의 현황을 조사하고 계획안을 제출했다. 찰스 태너와 존 밀러는 전후 한국의 영화산업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로서, 첫째, 영화를 제작할 물적 기반의 파괴, 둘째, 영화산업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지배를 지적한다. 이와 같은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아시아재단은 민간의 비영리, 비정치 조직으로서 한국영화문화협회를 설립했다. 아시아재단이 총 50,000달러를 들여 마련한 영화 제작 장비를 맡아 운영하면서 한국영화문화협회는 1950년대 말 한국 영화산업이 활성화되는 데는 기여하였다. 하지만 정부가 영화를 지배하는 상황을 타개한다는 아시아재단의 애초 목표는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이는 공보와 선전의 수단으로 영화를 중시했던 한국 정부에 대규모의 원조가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이 글에서는 스탠포드 대학교 후버 인스티튜션 아카이브에 소장되어 있는 아시아재단의 영화 프로그램 관련 파일들을 검토하여 한국영화문화협회의 설립과 활동 과정을 재구성함으로써 전후 한국의 상황과 영화에 미친 미국의 구조적인 영향을 밝히고자 했다.
본 논문은 서울이라는 특정한 공간과의 상관관계와 교우관계를 중심으로 한용운의 사회활동과 삶의 의미를 고찰했다. 정치적·사회적 지향이 강했던 한용운에게 서울은 사회적 실천의 무대이자 핵심적 공간이었다. 한용운의 서 울에서의 활동은 심우장 시기를 전후로 두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북촌시 대 한용운은『유심』이나『불교』발간을 통해 여러 방면의 저명인사와 교류하 면서 3·1운동 참여, 불교청년운동, 신간회 참여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이 기간 동안 한용운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회활동에 매진했고, 그 결과 몸 과 마음이 극도로 쇠약해졌다. 1933년 한용운은 결혼을 계기로 성북동 심우장이라는 곳에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명의로 삶의 공간을 소유하게 되었다. 심우장에 거처를 마련하면서 한용운은 처음으로 주거공간과 사회활동(업무) 공간을 분리시킬 수 있었다. 불교도로서 초심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참된 구도를 통해 사회적 실천을 이 어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심우장 이사의 중요한 동기였다. 성북동 심우장은 한용운의 주활동 무대였던 북촌지역과 도보로 왕래가 가능할 정도로 서울 도 심과 가까우면서도 참선 수행이 가능한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곳이라서 한용 운은 지론인 생활선의 실천공간으로 안성마춤이었다. 심우장시대는 한용운의 자유로운 영혼을 더 이상 허락하지 않았다. 일제의 협박과 회유로 많은 민족지도자들이 변절하고 전향했으나 한용운은 일제의 어떠한 유혹이나 협박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지조를 지켰다. 한용운은 변절자들과 공개적으로 절교를 선언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한 김동삼의 유해를 모셔와 장례를 지내는 등 소극적인 저항을 계속했다. 그런가 하면 일 제의 온갖 회유와 협박에도 민족의 지조를 지킨 소수의 지사들과 마음을 열 어놓고 교류하면서 엄혹한 시기 민족의 앞길에 희망을 던져주었다. 그런 의 미에서 심우장은‘전시총동원체제기’라고 불리는 일제의 마지막 수탈과 발 악의 시기에 민족지조의 상징적 공간으로서 기억되고 있다.
1930~40년대 학생운동은 주로, 1937년 중일전쟁 이전에는 사회주의운동의 일환으로서 ‘학생반제동맹운동’이라는 형태로 전개되었고, 중일전쟁 이후에는 다양한 형태의 ‘소규모 비밀결사운동’이라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학생들의 동맹휴교나 문화계몽운동이 1930년대 중반 이후 양적ㆍ질적으로 감소되었던 반면, 비밀결사를 통한 학생운동은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오히려 1940년대 전반기 들어 양적ㆍ질적으로 더 확대되고 강화되어간 면이 있었다. 경성부 내 지역과 경기도 고양군 일대에 걸쳐 있었던 성북지역의 경우, 1930년대 중반 무렵까지는 학교 설립이 다소 미미한 편이었으나, 1934년 보성전문학교의 안암동 이전 이후 각급 학교들이 서울 중심부와 가까운 성북구 관내에 교사를 신축해 이전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또한 성북에 인접한 지역에는 원래부터 각종 관공립 학교와 사립학교들이 많이 있어서 성북지역은 이 학교 학생들의 하숙촌, 즉 그 배후지로서 기능하고 있었다. 1930년대 중반 이후의 학교 이전 등으로 인해 이러한 ‘학도촌’으로서의 역할도 더욱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앞의 사례들에서 살펴보았다시피 이와 같은 성북지역의 조건은, 1930~ 40년대 청년학생 중심의 반제항일민족운동 과정에서도 성북지역이 그 배후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1930년대 학생반제동맹운동에 참여했던 다수의 학생들이 성북지역에 거주하고 있었고, 이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의 소규모 비밀결사운동 참여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성북지역 내의 여러 곳, 특히 성북동과 돈암동은 이러한 결사들의 설립 장소, 모임 장소 등 활동의 근거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