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제2의 고향 성북
기록가 : 황윤선
일 시 : 2026년 8월 21일 금요일 14:00 – 16:00
장 소 : 투썸플레이스 북서울꿈의숲점(도로명 주소 : 서울 강북구 월계로 183 1층)
조사 인물 선정 이유
- 구술자 김재원은 2018년 11월 2일, 성북구에서 운영하는 ‘사람책도서관’에 출연함.
- 김재원의 생애는 탈북민으로써 한 개인의 정착 과정을 넘어 한국 사회의 다양성과 지역공동체의 포용성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례라고 생각되어 선정하게 되었음.
- 특히 탈북과 정착 과정에서 구술자가 경험한 드라마 같은 스토리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본인의 의사를 고려하였음.
조사 내용
- 북한 인권과 4.18기념관
- 분단의 기억과 미아리고개
- 기록의 가치와 의미
- 선택의 자유와 길상사
[인터뷰]
Q : 대학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리베르타스”라고 하는 “북한인권연구학회”에서 활동을 했어요. 그때 동아리방이 없어서 학회 세미나가 있을 때마다 4.18기념관에 있는 소극장을 자주 이용했어요. 아마도 선생님께서도 아실 거예요.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 씨라고, 1980년대 주사파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죠. 그런데 이후에는 북한 체제의 실상을 비판하고 북한인권운동에 뛰어든 분입니다. 한 번은 그분을 모시고 4.18기념관에서 토론회를 연 적이 있었어요.
저는 북한에서 태어나 그 체제 안에서 살다가 대한민국으로 온 사람이고, 김영환 씨는 남한에서 북한 체제를 동경했던 시기를 거쳐 오히려 북한인권운동을 하게 된 분이잖아요. 서로 출발한 지점은 완전히 달랐지만 결국 북한의 현실과 인권 문제라는 하나의 주제를 놓고 같은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 거죠. 그런 점에서 그날의 토론회가 저에게는 상당히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Q : 지난 인터뷰 말미에 성북구가 제2의 고향이라고 하셨는데, 특별한 인연이나 사연이 있다면 말씀해 주실래요?
네~ 시ㆍ공간적으로도 성북구에서 가장 오래 살았어요. 인연이나 사연으로 봐도 여기 성북구 만큼 할 이야기가 많은 곳은 없죠. 특히 성북구에는 제 삶의 정체성의 무게를 실감 나게 해주는 곳이 있어요. 바로 “단장의 미아리고개”죠. 제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인 2013년 7월에 구름다리 위에서 ‘미아리고개 추모ㆍ평화의 밤’ 공연이 있었어요. 그날 넋풀이 공연을 보면서 미아리고개가 품고 있는 비극과 아픔의 역사를 생각해 봤습니다.
원래 미아리는 두루 ‘彌’ 자에 언덕 ‘阿’ 자를 써서 ‘넓은 언덕’이라는 뜻인데, 고려 말기에 명명되었다고 해요. 지난 수년 동안 성북구가 미아리고개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단장(斷腸)’이라는 말처럼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이별의 아픔이 담긴 장소가 세계인의 치유와 평화로 나아갈 수 있는 화합의 장소가 되면 좋겠죠. 저 역시 고향과 가족을 뒤로하고 북한을 떠나온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저에게 미아리고개는 단순히 매일 지나치는 평범한 고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분단과 이산의 역사, 그리고 제 개인의 삶까지 함께 떠올리게 만드는 장소입니다.
Q : 고려대 신문사에서 기자도 하셨다고 들었는데, 해주실 이야기가 있을까요?
물론 고대신문사는 인턴으로 아주 잠깐 있었어요. 고대신문사에서 보낸 시간은 아주 짧았지만, 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준 곳입니다. 고대신문이 1947년에 창간됐는데, 당시 내걸었던 기치 가운데 하나가 “역사적인 것과 비논리적인 것의 본질 파악”이에요. 해방 직후 좌우 이념의 대립으로 사회가 굉장히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학생들이 스스로 신문을 만들면서 내걸었던 말이죠. 지금까지 저도 글을 많이 쓰고, 사람들 앞에서 말도 많이 했지만, 이 문구는 이상하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어요. 기자가 하는 일이 결국 눈앞에 보이는 현상을 그대로 받아 적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감춰진 본질을 찾아내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특히 저에게는 ‘역사적인 것’이라는 표현이 참 크게 다가왔어요. 제가 북한에서 태어나 탈북해서 대한민국에 왔고,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와 공부를 시작했잖아요. 제가 살아온 과정 자체가 분단이라는 한국 현대사와 떨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도 기록해 놓으면 언젠가는 역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고대신문사에서의 경험은 짧았지만, 사람을 만나 질문하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 글로 남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처음으로 제대로 배운 곳이었습니다.
Q : 혹시 성북구와 관련된 기사를 쓰신 적도 있나요?
네, 그때 길상사를 취재차 여러 번 간 적이 있었어요. 저에게 흥미로웠던 것은 단순히 건물의 용도가 바뀌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스스로 내놓았다는 점이었어요. 북한에서도 개인이 헌신이나, 국가에 기부하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하지만 그것이 정말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인지 질문하기 어려운 사회죠. 길상사의 이야기는 달랐습니다. 자신의 것을 가질 권리가 있는 사람이 자신의 의지로 그것을 내려놓았다는 점, 그것이 헌신과 기부의 핵심이죠.
그때 저는 처음으로 ‘가지지 못하는 것’과 ‘가지고 있지만 내려놓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소유’라는 말도 그래서 다르게 들렸고요. 소유할 자유가 없는 사람에게 무소유는 철학이 될 수 없습니다. 가질 수 있지만 스스로 내려놓을 때 비로소 그것은 선택이 되고, ‘무소유’가 되는 거죠. 제가 길상사를 취재하면서 발견했던 것은 어쩌면 ‘불교’보다도 ‘선택’이라는 것의 의미였는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