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기록단 활동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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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의 기록]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걸어보다 2026(기록가 : 유성은) 2026.10.01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걸어보다 2026 기록가 : 유성은 일 시 : 2026년 9월 19일 토요일 17:00 – 17:30 장 소 : 정릉1동 일대, 길음시장, 정릉중앙하이츠빌1단지 1. 조사지를 선정하게 된 이유 성북구 정릉동에 거주하여 정릉동에 대한 애정 어린 글을 남긴 문인들은 여럿이 있다. 조선 후기 김종수의 시와 권상신의 <정릉유록>에서는 솔숲과 계곡을 찾아 진달래꽃 놀이와 유람을 즐기던 한양 도성 인근 유람지로서의 정릉이 그려졌고, 1930~1950년대 임화의 <정릉리 계곡>, 계용묵의 <정릉일일>에서는 아직은 순수하고 맑은 계곡 정릉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어 1965~1980년 박경리 정릉시대를 거쳐 1978년부터 2024년까지 정릉에 거주한 신경림 시인의 시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정릉에서 서른해를>, <길음시장>에서는 유람하는 정릉이 아닌 서민의 보금자리로서의 정릉이 그려졌다. 본인은 신경림 시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작품인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의 배경이 된 장소와 신경림 시인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사셨던 정릉중앙하이츠빌 1단지를 시를 쓴 시인의 마음을 헤아려 보며 다녀보고자 한다. 2. 현장 조사 내용 우선 정릉동 동방주택 단지는 1962년경 삼성생명의 전신인 동방생명보험 직원용 주택이었으며, 부촌인 장위동 동방주택단지와는 달리 개량한옥과 근대식 ‘문화주택’의 절충형 단독주택 양식이었고 현재는 10채 정도의 한옥이 남아 있었다. 이경자 작가의 <시인 신경림>이라는 책의 101쪽에 “낮은 추녀를 맞대고 들어선 집 중 하나이고 방 네 칸은 있어야 하는 구식 주택이었다”는 구절이 있다. 따라서 신경림 시인의 정릉동 집은 한옥이라기보다는 절충형 단독주택이었을 것 같다. 정릉의 옛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서경대 언덕길에 있는 동방주택은 일종의 랜드마크 같은 느낌의 주택가였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한옥 형태보다는 양옥이었을 것 같다. 정릉동 동방주택단지에서 길음시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생각보다 먼 거리가 아니었다. 시(詩)에서처럼 약방, 떡집 등을 들러 들러 시장으로 가다 보면 금방 시장이 나온다. 길음시장은 대규모의 전문적인 시장이었다. 주변의 아리랑 시장이나 정릉 시장보다 크고 구역이 나뉜 시장의 모습이었다. 4호선 길음역도 가까워 우이신설선이 생기기 전까지 정릉 주민들의 출근이나 외출 동선도 가늠할 수 있었다. 시인의 마지막을 함께한 정릉 중앙하이츠빌 1단지는 우이신설선 정릉역에서 가보았다. 자그마한 아리랑 시장 골목을 7분 정도 걸으면 중앙하이츠빌 1단지와 2단지가 나온다. 길을 하나 두고 나뉘어 있다. <시인 신경림> 9쪽에는 이 아파트 단지에 아들, 딸, 손자와 손녀도 이웃해 살고 있다고 적혀 있다.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며 노년의 시인이 느린 걸음으로 아파트를 나와 시장을 지나 정릉천 주변을 산책하시다가 예쁜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지 않으셨을까 상상해 보았다. 3. 시인 신경림의 인생 여정 1935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충주고와 동국대에서 공부한 신경림은 중원군 노은면 연하리 470, 충주시 역전동 477의 49, 안양시 비산동 489의 43, 성북구 정릉동 227의 29에서 거주했다. 한학을 공부한 할아버지 밑에서, 면서기이면서도 금광이나 탄광 등 한탕주의를 꿈꾼 아버지와 시인을 끝까지 거두어 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촉망받는 장남이었으며 본명은 신응식이다. 파락호 같은 아버지 덕에 할머니는 틀국수 가게를 하시고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기본적인 생계를 이었으며 중학생이 된 응식은 한국 전쟁의 회오리에 휩싸여 일대 전환을 맞는다. 모범생 응식은 전쟁통에 양담배 장사, 하우스 보이 등을 하며 세상을 알게 되었다. 1954년 동국대 영문학과에 진학하여 충무로4가에 있던 외가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한다. 현재의 대학생들도 방황하는데 전후 대한민국의 대학생들의 방황은 더욱 컸다. 물론 문학청년 신응식의 방황도 걷잡을 수 없었다. 그는 문학지 <문학예술>의 3회 추천을 통해 서정시 <낮달>, <갈대>, <석상>을 발표하며 시인 신경림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방황은 마무리되지 않았고 시대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1964년 결혼을 하고 서울 흥은동 산동네에 자리를 잡고 아이를 낳았다. 이후부터 그의 시는 노동자의 고된 삶이 주제이나, 서정적이고 따뜻한 색채의 저항시 경향을 띠게 된다. 1973년 스스로 <농무>라는 시집을 내었다. 그러나 남편의 시집 발간을 보지 못하고 아내는 지병으로 사망한다. 그 이후 <정릉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의 주인공이 되시는 어머니가 시인의 아내 몫까지 그의 가정을 돌본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어머니가 많이 등장한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타래>, <가난한 사랑 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어머니> 등이 그렇다. 외람된 표현이지만 귀여운 외모와 친근하고 구수한 말투를 가진 신경림 시인은 47년간을 정릉동에서 사셨다. 그의 정릉동을 깊게 느낀 가을이었다. <사진 설명> 1. 신경림 시인이 거주했던 정릉동 동방주택단지 2. 신경림 시인이 거주했던 정릉동 동방주택단지 3. 신경림 시인이 거주했던 정릉동 동방주택단지 4. 동방주택단지의 한옥과 뉴타운아파트의 대비되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5. 정릉역에서 시장 골목으로 보이는 신경림 시인의 마지막 보금자리 6. 중앙하이츠빌1단지 안 모습 7. 동방주택단지에서 길음시장까지 가는 길은 곧고 멀지 않다. 8. 시장 상인들의 거래 은행이었을 신한은행 조명 간판 9. 녹색으로 깔끔한 간판 한자(音)이 눈에 띈다.
정릉동 주택단지 1

정릉동 주택단지 1

정릉동 주택단지 2

정릉동 주택단지 2

정릉동 주택단지 3

정릉동 주택단지 3

동방주택단지의 한옥과 뉴타운아파트

동방주택단지의 한옥과 뉴타운아파트

정릉역에서 보이는 중앙하이츠빌

정릉역에서 보이는 중앙하이츠빌

중앙하이츠빌1단지

중앙하이츠빌1단지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 가는 길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 가는 길

길음시장과 장기간 거래 은행이었을 신한은행 간판

길음시장과 장기간 거래 은행이었을 신한은행 간판

녹색 길음시장 간판

녹색 길음시장 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