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 1913년 - 1989년
- 국가무형유산
- 인물 · 개인 · 음악가 · 유물 · 무형유산
- 중요무형문화재 제59호 판소리 고법 예능보유자이다. 고법은 가객이 부르는 판소리 소리에 맞추어 북으로 장단을 치는 반주법이다. 17세 때부터 장판개, 주봉현, 신찬문 여러 명고수로부터 판소리와 고법을 배웠다. 1960년대 서울로 진출하여 판소리 공연에서 고수로 활동하며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판소리 이론에도 조예가 깊어 이론과 실기에서 따르는 제자가 많았다. 판소리, 가야금산조 등 공연과 음반에 참여하였다. 1971년부터 10여 년 동안 석관동에 거주하며 제자들이 모여 만든 ‘일산회’와 공연을 열어 국악을 알렸다.
- 시대:일제강점기
- 시기:1913년 - 1989년
- 주소: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 지정 유형:국가무형유산
- 지정일:1978.02.02
- 비고:1989.04.05 보유자 사망으로 인해 해제
- 판소리 고법鼓法의 명인이다. 전라남도 곡성의 명창 장판개, 임방울, 송만갑과 같은 당대 최고의 판소리 명창과 고수를 찾아다니며 소리와 고법을 배웠다. 1960년대 서울로 진출하여 판소리 공연에서 고수로 활동하며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일고수 이명창’이란 말도 있듯이 판소리 명창들은 김명환의 북에 맞추고, 추임새를 받으며 소리를 하고 싶어 했다. 판소리 이론에도 조예가 깊어 이론과 실기에서 따르는 제자가 많았다. 판소리, 가야금산조 등 공연과 음반에 참여하였다. 1971년부터 10여 년 동안 석관동에 거주하며 제자들이 모여 만든 ‘일산회’와 공연을 열어 국악을 알렸다. 1978년 첫 중요무형문화재 제59호 판소리 고법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성북, 100인을 만나다, 72쪽
- 판소리 고법鼓法의 명인이다. 전라남도 곡성의 명창 장판개, 임방울, 송만갑과 같은 당대 최고의 판소리 명창과 고수를 찾아다니며 소리와 고법을 배웠다. 1960년대 서울로 진출하여 판소리 공연에서 고수로 활동하며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일고수 이명창’이란 말도 있듯이 판소리 명창들은 김명환의 북에 맞추고, 추임새를 받으며 소리를 하고 싶어 했다. 판소리 이론에도 조예가 깊어 이론과 실기에서 따르는 제자가 많았다. 판소리, 가야금산조 등 공연과 음반에 참여하였다. 1971년부터 10여 년 동안 석관동에 거주하며 제자들이 모여 만든 ‘일산회’와 공연을 열어 국악을 알렸다. 1978년 첫 중요무형문화재 제59호 판소리 고법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성북, 100인을 만나다, 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