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에서 1969년부터 1972년 사이에 발표한 연작소설로 1976년에 문학과지성사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이 작품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제목이 같은데, 현실에 대한 항의 내지는 고발이라는 동일한 문제의식을 1970년대 한국사회로 가져온 것이다. 총 15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제목과는 달리 시간이 모두 다르지만, 구보씨의 일상 생활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일일‘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박태원의 구보를 통해 현실의 억압적인 면모를 폭로하고, 나아가 자신의 문학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ㆍ 최인훈,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72.
구보씨는 5시 반에 성북동에 있는 ‘유정’이라는 술집에 닿았다. 거기가 『성남동 까치』 출판 기념회 자리였다. 여느 술집과 마찬가지로, 가로가 긴 아크릴 간판을 단 한옥이었다. 이 집의 위치를 초청장 뒤에 그린 지도를 보고 찾아왔던 것인데 쉽게 찾았다. 쉽게 못 찾을 만하면 하긴 술집도 아닐 것이었다. 벌써 와 있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구보씨는 앉은 사람 모두에 대하여 막연히 인사하고 빈자리에 가 앉았다. 대청마루와 건넌방 사이의 문을 걷어 내고 상을 여러 개 붙여놓은 자리에 앉아서 살펴보니, 둘러앉은 얼굴은 모두 선배들이었다. 사람들이 이어 들어왔다. 새로 온 사람들이 자리에 앉다가 말고 김광섭 씨에게 인사하러 가는 것을 보고서야 구보씨는 김광섭 씨가 아까부터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공교롭게 그가 앉은 줄 몇 사람 건너에 앉아 있어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인사하러 가야 했으나 이미 사람이 들어찬 자리가 몹시 좁아져 있었으므로 그는 그만뒀다.
(중략)
(김광섭) 씨의 지금 얼굴은 사실은 없어도 좋은 여러 선들을 지우개로 모두 지워버린 다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는 『성남동 까치』에 실린 시들을 생각하였다. 그 시들에게는 말로만 듣던, 삶의 겨울의 그 무서움이 있었다. 닳아빠지도록 징징 운 적이 없는 사람이 나 정말 봤소, 하고 보고하는 그 삶의 겨울의 얼굴이 있었다.
(중략)
“‘성남동 까치’ 좋지?”
“응.”
‘성남동 까치’는 이번에 나온 시집의 이름이자 그 속에 실린 한 편의 이름이었다. 김광섭 씨의 앓기 전의 시는 존 던을 연상케 하는, ‘形而上學의 騎士’가 투구를 쓰고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기생방 병풍 냄새 같은 것이라든지, 청상의 안쓰러움 같은 것이 대체로 주류를 이룬 시단에서 그의 시풍은 쇳소리가 울리는 특이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시집에서 그는 그 투구를 벗고 있었다. 그리고 구보가 놀란 것은 투구를 벗은 그의 머리가 그사이에 세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투구 안에서 그는 다른 싸움을 싸웠던 모양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가 투병하는 동안 그에게 씌우고 있었던 옛날의 그의 시풍의 투구를 그는 스스로 벗고, 지금도 그러리라고 생각해 온 그와는 너무 다른 얼굴을 드러냈던 것이다. 투구보다는 더 튼튼한 그러나 가벼운, 싸움을 치른 그의 체력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함과 무게 사이의 비례 관계를 벗어난 그런 옷을 입고 그는 서 있었다. 아니 저기 앉아 있다.
ㆍ 최인훈,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72.
구보씨는 5시 반에 성북동에 있는 ‘유정’이라는 술집에 닿았다. 거기가 『성남동 까치』 출판 기념회 자리였다. 여느 술집과 마찬가지로, 가로가 긴 아크릴 간판을 단 한옥이었다. 이 집의 위치를 초청장 뒤에 그린 지도를 보고 찾아왔던 것인데 쉽게 찾았다. 쉽게 못 찾을 만하면 하긴 술집도 아닐 것이었다. 벌써 와 있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구보씨는 앉은 사람 모두에 대하여 막연히 인사하고 빈자리에 가 앉았다. 대청마루와 건넌방 사이의 문을 걷어 내고 상을 여러 개 붙여놓은 자리에 앉아서 살펴보니, 둘러앉은 얼굴은 모두 선배들이었다. 사람들이 이어 들어왔다. 새로 온 사람들이 자리에 앉다가 말고 김광섭 씨에게 인사하러 가는 것을 보고서야 구보씨는 김광섭 씨가 아까부터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공교롭게 그가 앉은 줄 몇 사람 건너에 앉아 있어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인사하러 가야 했으나 이미 사람이 들어찬 자리가 몹시 좁아져 있었으므로 그는 그만뒀다.
(중략)
(김광섭) 씨의 지금 얼굴은 사실은 없어도 좋은 여러 선들을 지우개로 모두 지워버린 다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는 『성남동 까치』에 실린 시들을 생각하였다. 그 시들에게는 말로만 듣던, 삶의 겨울의 그 무서움이 있었다. 닳아빠지도록 징징 운 적이 없는 사람이 나 정말 봤소, 하고 보고하는 그 삶의 겨울의 얼굴이 있었다.
(중략)
“‘성남동 까치’ 좋지?”
“응.”
‘성남동 까치’는 이번에 나온 시집의 이름이자 그 속에 실린 한 편의 이름이었다. 김광섭 씨의 앓기 전의 시는 존 던을 연상케 하는, ‘形而上學의 騎士’가 투구를 쓰고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기생방 병풍 냄새 같은 것이라든지, 청상의 안쓰러움 같은 것이 대체로 주류를 이룬 시단에서 그의 시풍은 쇳소리가 울리는 특이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시집에서 그는 그 투구를 벗고 있었다. 그리고 구보가 놀란 것은 투구를 벗은 그의 머리가 그사이에 세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투구 안에서 그는 다른 싸움을 싸웠던 모양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가 투병하는 동안 그에게 씌우고 있었던 옛날의 그의 시풍의 투구를 그는 스스로 벗고, 지금도 그러리라고 생각해 온 그와는 너무 다른 얼굴을 드러냈던 것이다. 투구보다는 더 튼튼한 그러나 가벼운, 싸움을 치른 그의 체력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함과 무게 사이의 비례 관계를 벗어난 그런 옷을 입고 그는 서 있었다. 아니 저기 앉아 있다.
구보씨는 5시 반에 성북동에 있는 '유정'이라는 술집에 닿았다. 거기가 『성남동 까치』 출판 기념회 자리였다. 여느 술집과 마찬가지로, 가로가 긴 아크릴 간판을 단 한옥(韓屋)이었다. 이 집의 위치를 초청장 뒤에 그린 지도를 보고 찾아왔던 것인데 쉽게 찾았다. 쉽게 못 찾을 만하면 하긴 술집도 아닐 것이었다. 벌써 와 있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구보씨는 앉은 사람 모두에 대하여 막연히 인사하고 빈자리에 가 앉았다. 대청마루와 건넌방 사이의 문을 걷어 내고 상을 여러 개 붙여놓은 자리에 앉아서 살펴보니, 둘러앉은 얼굴은 모두 선배들이었다. 사람들이 이어 들어왔다. 새로 온 사람들이 자리에 앉다가 말고 김광섭 씨에게 인사하러 가는 것을 보고서야 구보씨는 김광섭 씨가 아까부터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후략)
광화문 지하도 쪽에서 극작가 배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구보씨는 작가 김광섭의 『성남동 까치』 출판 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 성북동에 간다. 성북동 어느 술집에서 열린 출판 기념회에는 김광섭을 축하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고, 구보씨는 그중 몇몇 사람들과 어울린다. 이 장면은 제1장 느릅나무가 있는 風景의 내용 중 출판 기념회가 열린 곳을 묘사한 것으로, 1970년대 초반 한옥이 많았던 성북동의 일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김광섭은 「성북동 비둘기」를 지은 성북동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문인들 간의 활발한 교류와 한옥식 주점들이 곳곳에 있었던 성북동의 옛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