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파리8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충남대학교, 한양대학교, 중앙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후 1966년에는 건축사를 취득하고 1992년까지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로 재임하였다. 1959년 대전시 종합경기장 마스터플랜 및 주경기장 설계를 시작으로, 교육시설, 사무소 등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건축계획 분야에서도 많은 저술을 남겼다. 1988년에는 대한건축학회 회장도 맡았다.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파리8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충남대학교, 한양대학교, 중앙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후 1966년에는 건축사를 취득하고 1992년까지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로 재임하였다. 1959년 대전시 종합경기장 마스터플랜 및 주경기장 설계를 시작으로, 교육시설, 사무소 등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건축계획 분야에서도 많은 저술을 남겼다. 1988년에는 대한건축학회 회장도 맡았다.
캠퍼스의 건축을 보면 두드러진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박동진, 이정덕, 박윤성. 박동진은 고려대학교의 상징인 문화재 건물 외에 다수의 건축물을 남겨 기틀을 다졌고, 마스터플랜을 입안한 이정덕과 함께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박윤성은 교내에 많은 건축물을 남겨 부흥기를 만들었다.
캠퍼스의 건축을 보면 두드러진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박동진, 이정덕, 박윤성. 박동진은 고려대학교의 상징인 문화재 건물 외에 다수의 건축물을 남겨 기틀을 다졌고, 마스터플랜을 입안한 이정덕과 함께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박윤성은 교내에 많은 건축물을 남겨 부흥기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