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경성사립소화공과학교 졸업 후 설계사무에 종사하였으며, 종로 2정목(현 종로구 종로2가) 건축사무소에서 설계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1942년 8월에 큰 형의 아들이 취업 알선을 목적으로 상경하여 자신의 집에 머물자 같은 달 16일 작은 형 앞으로 편지를 보내 “경성에서는 식량이 부족하여 대곤란에 빠져 있고 자살도 한다”는 서신을 보냈다. 20일 이러한 사실이 발각되어 체포된 후 벌금 200원 형에 처해졌다.
본적: 경북 영덕군 병곡면 각리동 619
주소: 경성부 돈암정 69-11
계열과 단체: 시국담
<활동 내용>
1939년 4월 경성사립소화공과학교를 졸업후 설계사무에 종사하였다. 종로 2정목 건축사무소에서 설계사로 근무하던 1942년 경 작은형이 조카를 자신의 집에 맡기자, 그는 작은 형 앞으로 편지를 보내 “경성에서는 식량이 부족하여 대곤란에 빠져 있고 자살도 한다”는 서신을 보내었다가 체포되어 벌금 200원을 받았다.
<특이사항> 岩本正用
<참고문헌>
「이정용 판결문」(경성지방법원, 1942.12).
본적: 경북 영덕군 병곡면 각리동 619
주소: 경성부 돈암정 69-11
계열과 단체: 시국담
<활동 내용>
1939년 4월 경성사립소화공과학교를 졸업후 설계사무에 종사하였다. 종로 2정목 건축사무소에서 설계사로 근무하던 1942년 경 작은형이 조카를 자신의 집에 맡기자, 그는 작은 형 앞으로 편지를 보내 “경성에서는 식량이 부족하여 대곤란에 빠져 있고 자살도 한다”는 서신을 보내었다가 체포되어 벌금 200원을 받았다.
<특이사항> 岩本正用
<참고문헌>
「이정용 판결문」(경성지방법원, 1942.12).
본적: 경북 영덕군 병곡면 각리동
주소: 경성부 돈암정 69-11
계열과 단체: 시국담
<활동내용>
1942년 돈암동 69번지 –11호에서 처와 함께 거주하던 중 본적지에 거주하는 큰 형에게 경성부내의 식량의 부족 상황을 알렸다가 체포되었다.
<참고문헌>
「식량핍박에 대한 불온통신에 관한 건」(1942.10.7), 『사상에 관한 정보』.
본적: 경북 영덕군 병곡면 각리동
주소: 경성부 돈암정 69-11
계열과 단체: 시국담
<활동내용>
1942년 돈암동 69번지 –11호에서 처와 함께 거주하던 중 본적지에 거주하는 큰 형에게 경성부내의 식량의 부족 상황을 알렸다가 체포되었다.
<참고문헌>
「식량핍박에 대한 불온통신에 관한 건」(1942.10.7), 『사상에 관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