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 관련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다. 1937년 7월 경부터 경성부 충신정 33-3번지 홍규익의 집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목적으로 하는 무명그룹을 조직하여 혁명론과 계급투쟁 등에 관한 서적을 읽었으며, 의식고취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으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 458-26번지에 거주하였다. 1938년 검거 당시 연령은 22세였다.
본적: 충남 대전부 유천면 탄방리 404
주소: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 458-7
계열과 단체: 사회주의
<활동 내용>
직공으로서 1937년 7월 경부터 경성부 추인정 33-3번지 홍규익의 집에서 공산주의혁명을 목적으로 하는 무명그룹을 조직하여 혁명론과 계급투쟁 등에 관한 서적을 읽었으며, “만주사변 이후의 지금이야말로 좌익실천운동을 할 절호의 기회이다.”라는 의견을 교환하며 의식고취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참고문헌>
「치안상황」(1938.9), 『1937년 6월 이래 중요사건의 검거상황-공산주의무명그룹 검거』.
본적: 충남 대전부 유천면 탄방리 404
주소: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 458-7
계열과 단체: 사회주의
<활동 내용>
직공으로서 1937년 7월 경부터 경성부 추인정 33-3번지 홍규익의 집에서 공산주의혁명을 목적으로 하는 무명그룹을 조직하여 혁명론과 계급투쟁 등에 관한 서적을 읽었으며, “만주사변 이후의 지금이야말로 좌익실천운동을 할 절호의 기회이다.”라는 의견을 교환하며 의식고취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참고문헌>
「치안상황」(1938.9), 『1937년 6월 이래 중요사건의 검거상황-공산주의무명그룹 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