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월곡로 36(종암동 7-10)에 있었던 학교이다. 경성고등상업학교는 일제강점기인 1922년 현재의 종로구 명륜동 2가에서 관립(官立)으로 문을 열었다. 그런데 학교가 이때 처음 설립된 것은 아니었다. 그 전신을 거슬러 올라가면 ‘동양협회’라는 일본 우익이 식민지 관리대책의 일환으로 현재의 필동에 설립한 ‘재동경 동양협회 전문학교 경성분교’로 출발하여, 1915년 ‘동양협회식민전문학교경성분교’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20년 ‘사립경성고등상업학교’로 바꾸고 명륜동으로 옮겼다. 1922년에 관립으로 바뀐 후, 1939년에는 종암동으로 이전하였고, 1943년 ‘경성경제전문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해방 이후 1946년 서울대학교가 설립되면서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이 되었으며, 1970년대 서울대학교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함께 옮겼고, 그 자리엔 서울대학교 부속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들어섰다.
경성고등상업학교는 종로구 명륜동에서 현재 종암동 19번지 자리에 새 교사를 건설하여 1939년에 이전하였다. 이 학교는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으로 바뀌었다가 1970년대 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같은 자리에 서울사대부속중·고등학교가 대신하여 들어서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당시에 지은 3층짜리 교사와 강당이 아직도 남아 있다.
경성고등상업학교는 종로구 명륜동에서 현재 종암동 19번지 자리에 새 교사를 건설하여 1939년에 이전하였다. 이 학교는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으로 바뀌었다가 1970년대 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같은 자리에 서울사대부속중·고등학교가 대신하여 들어서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당시에 지은 3층짜리 교사와 강당이 아직도 남아 있다.
7) 京城高等商業學校의 鍾岩洞立地
京城高等商業學校, 오늘의 서울大學校 商科大學이라는 학교만큼 수다한 경력을 지닌 학교는 아마 이땅안에서도 매우 희귀할 것 같다.
이 학교는 日帝에 의해서 强點되기 2년 전 즉 1908년 10월에 「在東京 東洋協會 專門學校 京城分校」라는 이름으로 오늘날의 中區 筆洞 1家 24번지에 설립되었다가 1915년에 학교이름을 「東洋協會植民專門學校京城分校」라 고친다. 그리고 1918년 4월에 在東京 東洋協會植民專門學校와 분리하여 東洋協會 京城專門學校라고 이름을 바꾸면서 독립하게 된다. 그리고 1920년에 校名을 私立京城高等商業學校로 바꾸었으며 그때까지도 日本에 있던 東洋協會라는 단체의 경영아래 있었다. 東洋協會라는 단체는 당시 일본 최대의 俠客團體를 이끌던 頭山 滿등이 중심이 되어 日本의 右翼 및 貴族·財産家들이 출자하여 만든 대만·조선·만주 등지의 日本植民地 관리대책을 연구·지원하는 단체였었다.
1922년에 朝鮮總督府學務局이 편찬한 「朝鮮諸學校一覽」이라는 책자에 의하면 1921년 5월 현재 이 私立 京城高等商業學校는 현재의 明倫 2가洞(당시는 崇仁洞)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학생은 1학년 80명, 2학년 60명, 3학년 25명 합계 165명이었으며 직원 수는 교수가 6명, 일반 사무직원이 15명이었는데 전원이 일본인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 私立專門學校가 官立(國立)으로 바뀐 것은 1922년 4월 1일자 朝鮮總督府令 제53호로 京城高等商業學校規程이 發布되고 부터의 일이다. 이 規程의 附則에 「本令施行 당시에 私立 京城高等商業學校에 在學하는 生徒는 試驗에 의하지 않고 本校의 相當學年에 편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私立 京城高商과 이 學校를 운영하였던 財團法人은 1922년 3월 31일에 해산되었고 그 財産일체와 學生·敎職員은 새로운 官立 京城高商에 편입된 것이다.
현재의 鐘路區 明倫洞에 위치하고 있던 京城高等商業學校가 현재의 성북구 鍾岩洞 19번지의 자리에 새 校舍를 건설하여 이전한 것은 1939년이었다. 앞서 普成專門學校가 安岩洞에 입지한데 이어 京城高等商業學校가 鍾岩洞에 입지하였다는 것은 安岩洞-鍾岩洞으로 이어지는 이 일대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이 京城高等商業學校는 1943년 즉 太平洋戰爭下에서 京城經濟專門學校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光復後 美軍政下였던 1946년 8월 22일에 공포된 軍政法令 제102호 「國立서울大學校 設立에 관한 法令」에 의하여 서울大學校 商科大學이 되었으며 학생과 교수의 수가 많아지면서 이 일대의 지역개발에 기여한 바가 컸었다.
그때까지 각처에 흩어져 있던 서울大學校의 각 單科大學을 묶어 冠岳山 北麓에 거대한 캠퍼스를 지어 이사할 때 鍾岩洞의 商科大學도 관악산으로 이전해갔고 그 뒷자리에는 서울大學校 師範大學附屬中·高等學校가 자리하고 있다.
7) 京城高等商業學校의 鍾岩洞立地
京城高等商業學校, 오늘의 서울大學校 商科大學이라는 학교만큼 수다한 경력을 지닌 학교는 아마 이땅안에서도 매우 희귀할 것 같다.
이 학교는 日帝에 의해서 强點되기 2년 전 즉 1908년 10월에 「在東京 東洋協會 專門學校 京城分校」라는 이름으로 오늘날의 中區 筆洞 1家 24번지에 설립되었다가 1915년에 학교이름을 「東洋協會植民專門學校京城分校」라 고친다. 그리고 1918년 4월에 在東京 東洋協會植民專門學校와 분리하여 東洋協會 京城專門學校라고 이름을 바꾸면서 독립하게 된다. 그리고 1920년에 校名을 私立京城高等商業學校로 바꾸었으며 그때까지도 日本에 있던 東洋協會라는 단체의 경영아래 있었다. 東洋協會라는 단체는 당시 일본 최대의 俠客團體를 이끌던 頭山 滿등이 중심이 되어 日本의 右翼 및 貴族·財産家들이 출자하여 만든 대만·조선·만주 등지의 日本植民地 관리대책을 연구·지원하는 단체였었다.
1922년에 朝鮮總督府學務局이 편찬한 「朝鮮諸學校一覽」이라는 책자에 의하면 1921년 5월 현재 이 私立 京城高等商業學校는 현재의 明倫 2가洞(당시는 崇仁洞)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학생은 1학년 80명, 2학년 60명, 3학년 25명 합계 165명이었으며 직원 수는 교수가 6명, 일반 사무직원이 15명이었는데 전원이 일본인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 私立專門學校가 官立(國立)으로 바뀐 것은 1922년 4월 1일자 朝鮮總督府令 제53호로 京城高等商業學校規程이 發布되고 부터의 일이다. 이 規程의 附則에 「本令施行 당시에 私立 京城高等商業學校에 在學하는 生徒는 試驗에 의하지 않고 本校의 相當學年에 편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私立 京城高商과 이 學校를 운영하였던 財團法人은 1922년 3월 31일에 해산되었고 그 財産일체와 學生·敎職員은 새로운 官立 京城高商에 편입된 것이다.
현재의 鐘路區 明倫洞에 위치하고 있던 京城高等商業學校가 현재의 성북구 鍾岩洞 19번지의 자리에 새 校舍를 건설하여 이전한 것은 1939년이었다. 앞서 普成專門學校가 安岩洞에 입지한데 이어 京城高等商業學校가 鍾岩洞에 입지하였다는 것은 安岩洞-鍾岩洞으로 이어지는 이 일대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이 京城高等商業學校는 1943년 즉 太平洋戰爭下에서 京城經濟專門學校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光復後 美軍政下였던 1946년 8월 22일에 공포된 軍政法令 제102호 「國立서울大學校 設立에 관한 法令」에 의하여 서울大學校 商科大學이 되었으며 학생과 교수의 수가 많아지면서 이 일대의 지역개발에 기여한 바가 컸었다.
그때까지 각처에 흩어져 있던 서울大學校의 각 單科大學을 묶어 冠岳山 北麓에 거대한 캠퍼스를 지어 이사할 때 鍾岩洞의 商科大學도 관악산으로 이전해갔고 그 뒷자리에는 서울大學校 師範大學附屬中·高等學校가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