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의 지리와 교통로의 확대에 관한 내용이다. 성북동은 한양도성의 성곽을 품고 있으며, 북악산 서쪽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청계천과 합류하는 성북천의 상류이다. 1900년대 지도에 의하면 선잠단과 마전터를 중심으로 거주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동소문과 가까운 성북천 주변은 아직 마을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 개간되지 않은 산간 지역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에는 관리주체가 없어져 성벽이 방치됨으로써 붕괴 및 훼손이 가속화되었고, 이 때문에 성벽 내외의 왕래가 가능하게 되었다. 교통수단이 다양화되면서 인근 지역에 고등교육기관이 설립되고, 혜화문 북쪽으로 혜화동과 왕래하는 큰 길이 개통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혜화문의 석축은 1939년에 완전히 철거되었다.
○ 《최신경성전도 最新京城全圖》1907년, 1:10,000, 74.8×52.9cm, 서15439
○ 1900년대 : 성곽과 도로 등 조선시대의 모습을 간직
- 1907년에 일한서방(日韓書房)에서 간행한 1:10,000 지도로 1905년(광무 9) 을사늑약 체결 이후 서울의 모습을 보여줌
- 한양도성 성곽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이며, 동소문을 나와 성곽을 따라 선잠단 앞까지 이르는 도로를 볼 수 있음.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경관 요소를 그대로 유지
- 선잠단과 마전터를 중심으로 거주지가 형성되어 있음을 추정
- 동소문과 가까운 성북천 주변은 아직 마을이 형성되지 않고 개간되지 않은 산간 지역으로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
○ 《최신경성전도 最新京城全圖》1907년, 1:10,000, 74.8×52.9cm, 서15439
○ 1900년대 : 성곽과 도로 등 조선시대의 모습을 간직
- 1907년에 일한서방(日韓書房)에서 간행한 1:10,000 지도로 1905년(광무 9) 을사늑약 체결 이후 서울의 모습을 보여줌
- 한양도성 성곽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이며, 동소문을 나와 성곽을 따라 선잠단 앞까지 이르는 도로를 볼 수 있음.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경관 요소를 그대로 유지
- 선잠단과 마전터를 중심으로 거주지가 형성되어 있음을 추정
- 동소문과 가까운 성북천 주변은 아직 마을이 형성되지 않고 개간되지 않은 산간 지역으로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
○ 《경성부 지적원도》, 조선총독부 토지조사부, 1912.
○ 1910년대 : 허물어진 한양도성, 한층 복잡해진 골목길
- 일제가 토지 수탈을 목적으로 실시한 토지조사사업(1910~1918) 당시 토지조사부와 함께 제작된 도면으로 지목이 대지, 전답, 임야로 구분되어 있음
- 1907년에 비해 선잠단과 마전터 위쪽의 주거지역이 다소 확대되었음을 볼 수 있고 여전히 성북천 하류양안으로는 주택이 적고 주로 밭농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
- 붉은 색으로 두른 토지는 성북둔에 딸려 있던 국유지로 민간에 미불하된 상태
- 한일강제병합으로 관리 주체가 없어진 방치된 성벽의 붕괴 및 훼손 가속화 → 성문 외 지역에서 성벽 양측 왕래 가능
○ 1920년대 : 교통수단의 다양화, 인근 지역에 고등교육기관 설립
- 혜화문 북쪽, 성곽 터진 곳에 혜화동과 왕래하는 큰길 개통
- 인력거, 자전거, 자동차 등으로 왕래 가능, 도심과의 이동 시간 단축
- 인근 명륜동, 혜화동, 동숭동 지역에 고등교육기관 설립 또는 이전
※ 공업전습소가 경성고등공업학교로 승격(1916, 동숭동), 중앙불전(1922, 명륜동), 경성제국대학(1926, 동숭동), 보성고보(1929, 혜화동), 동성상업학교(1929, 혜화동)
○ 《경성부 지적원도》, 조선총독부 토지조사부, 1912.
○ 1910년대 : 허물어진 한양도성, 한층 복잡해진 골목길
- 일제가 토지 수탈을 목적으로 실시한 토지조사사업(1910~1918) 당시 토지조사부와 함께 제작된 도면으로 지목이 대지, 전답, 임야로 구분되어 있음
- 1907년에 비해 선잠단과 마전터 위쪽의 주거지역이 다소 확대되었음을 볼 수 있고 여전히 성북천 하류양안으로는 주택이 적고 주로 밭농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
- 붉은 색으로 두른 토지는 성북둔에 딸려 있던 국유지로 민간에 미불하된 상태
- 한일강제병합으로 관리 주체가 없어진 방치된 성벽의 붕괴 및 훼손 가속화 → 성문 외 지역에서 성벽 양측 왕래 가능
○ 1920년대 : 교통수단의 다양화, 인근 지역에 고등교육기관 설립
- 혜화문 북쪽, 성곽 터진 곳에 혜화동과 왕래하는 큰길 개통
- 인력거, 자전거, 자동차 등으로 왕래 가능, 도심과의 이동 시간 단축
- 인근 명륜동, 혜화동, 동숭동 지역에 고등교육기관 설립 또는 이전
※ 공업전습소가 경성고등공업학교로 승격(1916, 동숭동), 중앙불전(1922, 명륜동), 경성제국대학(1926, 동숭동), 보성고보(1929, 혜화동), 동성상업학교(1929, 혜화동)
○ 《(지번구획입)대경성정도》, 경성부, 1936.
○ 1930년대 : ‘학교촌’의 배후 주택지 겸 ‘대경성’ 후보지
- 교통로의 확대
ㆍ1939년 혜화문 석축 완전 철거
ㆍ버스 노선 신설 : 경성부내 ~ 돈암동간(일 2회)
ㆍ전차 선로 완공 : 을지로 ~ 돈암동네거리(1941) → 출퇴근 인구 대거 유입, 이동 시간 대폭 단축
- 행락공간의 확대
ㆍ성북포도원~미륵암~청룡암 간 산책로(청춘남녀들의 데이트 장소)
ㆍ고급음식점[料亭] ‘음벽정’ 등 개업
ㆍ이강공별저, 음벽정 주변 별장 지대 형성
- 택지조성사업 실시
ㆍ돈암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에 성북동 지역 포함(근대적 택지조성사업으로 대경성계획의 일환)
ㆍ현 성북동 1가(옛 운수교 남동쪽) 지역 바둑판식 골목 구조의 원형이 이때 만들어짐
- 풍치지구 지정
ㆍ1941년 풍치지구 고시(성북동 자연경관 보존)
○ 《(지번구획입)대경성정도》, 경성부, 1936.
○ 1930년대 : ‘학교촌’의 배후 주택지 겸 ‘대경성’ 후보지
- 교통로의 확대
ㆍ1939년 혜화문 석축 완전 철거
ㆍ버스 노선 신설 : 경성부내 ~ 돈암동간(일 2회)
ㆍ전차 선로 완공 : 을지로 ~ 돈암동네거리(1941) → 출퇴근 인구 대거 유입, 이동 시간 대폭 단축
- 행락공간의 확대
ㆍ성북포도원~미륵암~청룡암 간 산책로(청춘남녀들의 데이트 장소)
ㆍ고급음식점[料亭] ‘음벽정’ 등 개업
ㆍ이강공별저, 음벽정 주변 별장 지대 형성
- 택지조성사업 실시
ㆍ돈암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에 성북동 지역 포함(근대적 택지조성사업으로 대경성계획의 일환)
ㆍ현 성북동 1가(옛 운수교 남동쪽) 지역 바둑판식 골목 구조의 원형이 이때 만들어짐
- 풍치지구 지정
ㆍ1941년 풍치지구 고시(성북동 자연경관 보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