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동소문로 25가길 20(동선동4가 279-1)에 위치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설이다. 1992년 대한시각장애인역리학회가 미아리 역학촌 안에 점자도서관을 개관하였고, 1997년 사회복지법인 대한맹인복지회 설립 인가를 받아 도서관 터에 복지관을 세웠다. 복지관에서는 역학사양성 · 심리상담사양성 · 경락안마 등 직업교육 외에도 시각장애 어린이들의 음악 지도, 점자책 제작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복지관 2층에는 점자도서관을 갖춰 다양한 분야의 도서 및 파일을 제공하고 있다.
주소:02829 서울특별시 성북구 동선동4가 279-1 (동소문로25가길 20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
‘미아리 점성촌’에 살어리랏다'
화려한 꽃다발 세례나 학사모는 없었다. 그러나 졸업장을 받아쥔 이들의 얼굴은 환했다. 검은 선글라스 뒤 초점 잃은 눈동자는 여전히 표정을 담을 수 없었지만 입꼬리엔 미소가 어렸다. 고생스런 공부를 끝냈다는 기쁨이었다. 새로운 앞날에 대한 작은 희망이었다.
서울 성북구 동선동4가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 흔히 ‘미아리 점성촌’이라 불리는 곳에 자리잡은 이 복지관에서 2월1일 작은 졸업식이 열렸다. 1년 동안의 역학인 양성교육을 마친 11명의 수료생들과 이들을 가르친 선생님들의 수고를 위로하는 자리였다. 졸업생들이 세상의 시련에 굴하지 않고 떳떳이 자립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마음이 담긴 날이었다.
2004년, 절망의 바닥에서 잡은 끈
졸업생 문충성(36·서울 양천구 신월동)씨도 마음이 벅찼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했던 그는 몇년 전부터 눈이 침침해져옴을 느꼈다.
(중략)
몸이 불편해도 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것처럼 시각장애인으로서도 밥 벌어먹고 살 방법을 찾기로 했다. 닥치는 대로 정보를 구하던 중 시각장애인들끼리 모여 역학교육을 베푸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됐다. 이전엔 한번도 점을 본 적이 없었지만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점이 맘에 들었다. 고난과 역경이 어떤 것인지 철저히 겪어본 사람으로서 남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2004년 2월 용기를 내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을 찾았다.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이 직업교육 차원에서 마련한 ‘역학교육’은 1년 동안 숨가쁘게 진행된다. 매년 2월 신입생을 모집해 면접 심사를 거친 뒤 3월에 새 학기를 시작한다. 처음엔 궁합·택일 등을 일러주는 <요집서>를 뗀 뒤 5월부터 사주학을 비롯해 산통·거북점 등을 통해 괘를 풀이하는 육효학, 작명·해명을 주로 하는 성명학을 공부한다. 마지막엔 희망자에 한해 독경을 할 수 있는 경문 공부로 마무리짓는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역학교육은 뿌리가 깊다. 대한맹인역리학회가 역학교육을 시작한 것이 81년. 맹인들의 결사체이자 교육 양성소였던 ‘맹청’까지 거슬러올라간다면 조선시대 효종 임금대(1668)까지 닿는다. 1998년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이 생기고 난 뒤엔 역리학회로부터 전통을 이어받아 복지관의 정식 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게 됐다. 경제적으로 막막한 시각장애인을 서로 도와주자는 취지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이곳에선 강의료를 한푼도 받지 않는다. 서울 아닌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복지관에서 방을 내주어 숙식을 해결하도록 해준다. 보통 정원 20명보다 1.5~2배 많은 사람들이 입학 신청을 하는데 장애등급·성별 등엔 제한이 없지만 중도실명자 중 점자·보행이 어려운 사람들을 선발 우대한다.
대한맹인역리학회의 1기 졸업생이자 이곳에서 사주학을 강의하는 심남용(56)씨는 “눈 잃은 아픔은 우리가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가장 필요한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평등을 바란다. 나라에서 주는 생활지원금만 가지고 살아간다면 하다못해 동사무소에서 가서라도 당당하게 제 요구를 할 수 있겠는가. 학생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금 내고 사는 인생’을 살자고 누누이 강조한다.”
(중략)
대부분 시각장애인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역학공부를 시작하지만 1년 동안의 공부만으로는 당장 ‘창업’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엉덩이에 풀 날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역술의 이치를 깨달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충성씨는 졸업과 동시에 역술인자격시험을 통과했지만 요즘도 강의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를 들으며 집에서 반복 학습을 하고 있다. 남의 운을 논할 정도로 공부가 깊어졌다고 판단될 때 철학관을 낼 계획이다. 드물긴 하지만 실력이 탄탄할 경우엔 역학인 양성교육을 받은 뒤 바로 개업을 한다. 문씨보다 한해 앞서 공부한 김선중(40·청암사주닷컴)씨는 졸업 직후 복지관 맞은편 미아리고개에 철학관을 내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복지관의 역학교육은 후학 양성뿐 아니라 외로운 시각장애인들에게 정서적인 구심점이 되기도 한다. 문씨의 동기생인 정대흥(46·서울 노원구 월계동)씨는 “가족적인 분위기로 함께 공부하고 졸업 뒤에도 운생계라는 ‘동창회’를 통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친목을 다지는 점이 좋다”고 말한다. 그는 “보증금이 족히 5천만원은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은 어렵지만 기회가 되면 미아리로 이사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외로운 이들의 정서적 구심점
‘몸값이 만냥이면 눈값이 구천냥’이라는 옛말이 있다. 남들이 만냥으로 살아갈 때 천냥에 의지해야 하는 시각장애인들은 자기의 혹독한 운명을 인정하는 자기와의 투쟁을 격렬하게 벌이게 된다. 심남용씨는 “한번쯤 죽음 같은 절망에 치열하게 다가가본 사람들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주역의 원리를 체득하게 된다”고 말한다.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운 건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겨울이니 추우려니, 여름이니 더우려니 마음을 다지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것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직업으로서 역술을 배우면서 또 하나 인생의 깨달음으로 삼는 것이 그것이다.”
『한겨레 21』 2005. 2. 22
‘미아리 점성촌’에 살어리랏다'
화려한 꽃다발 세례나 학사모는 없었다. 그러나 졸업장을 받아쥔 이들의 얼굴은 환했다. 검은 선글라스 뒤 초점 잃은 눈동자는 여전히 표정을 담을 수 없었지만 입꼬리엔 미소가 어렸다. 고생스런 공부를 끝냈다는 기쁨이었다. 새로운 앞날에 대한 작은 희망이었다.
서울 성북구 동선동4가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 흔히 ‘미아리 점성촌’이라 불리는 곳에 자리잡은 이 복지관에서 2월1일 작은 졸업식이 열렸다. 1년 동안의 역학인 양성교육을 마친 11명의 수료생들과 이들을 가르친 선생님들의 수고를 위로하는 자리였다. 졸업생들이 세상의 시련에 굴하지 않고 떳떳이 자립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마음이 담긴 날이었다.
2004년, 절망의 바닥에서 잡은 끈
졸업생 문충성(36·서울 양천구 신월동)씨도 마음이 벅찼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했던 그는 몇년 전부터 눈이 침침해져옴을 느꼈다.
(중략)
몸이 불편해도 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것처럼 시각장애인으로서도 밥 벌어먹고 살 방법을 찾기로 했다. 닥치는 대로 정보를 구하던 중 시각장애인들끼리 모여 역학교육을 베푸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됐다. 이전엔 한번도 점을 본 적이 없었지만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점이 맘에 들었다. 고난과 역경이 어떤 것인지 철저히 겪어본 사람으로서 남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2004년 2월 용기를 내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을 찾았다.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이 직업교육 차원에서 마련한 ‘역학교육’은 1년 동안 숨가쁘게 진행된다. 매년 2월 신입생을 모집해 면접 심사를 거친 뒤 3월에 새 학기를 시작한다. 처음엔 궁합·택일 등을 일러주는 <요집서>를 뗀 뒤 5월부터 사주학을 비롯해 산통·거북점 등을 통해 괘를 풀이하는 육효학, 작명·해명을 주로 하는 성명학을 공부한다. 마지막엔 희망자에 한해 독경을 할 수 있는 경문 공부로 마무리짓는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역학교육은 뿌리가 깊다. 대한맹인역리학회가 역학교육을 시작한 것이 81년. 맹인들의 결사체이자 교육 양성소였던 ‘맹청’까지 거슬러올라간다면 조선시대 효종 임금대(1668)까지 닿는다. 1998년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이 생기고 난 뒤엔 역리학회로부터 전통을 이어받아 복지관의 정식 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게 됐다. 경제적으로 막막한 시각장애인을 서로 도와주자는 취지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이곳에선 강의료를 한푼도 받지 않는다. 서울 아닌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복지관에서 방을 내주어 숙식을 해결하도록 해준다. 보통 정원 20명보다 1.5~2배 많은 사람들이 입학 신청을 하는데 장애등급·성별 등엔 제한이 없지만 중도실명자 중 점자·보행이 어려운 사람들을 선발 우대한다.
대한맹인역리학회의 1기 졸업생이자 이곳에서 사주학을 강의하는 심남용(56)씨는 “눈 잃은 아픔은 우리가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가장 필요한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평등을 바란다. 나라에서 주는 생활지원금만 가지고 살아간다면 하다못해 동사무소에서 가서라도 당당하게 제 요구를 할 수 있겠는가. 학생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금 내고 사는 인생’을 살자고 누누이 강조한다.”
(중략)
대부분 시각장애인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역학공부를 시작하지만 1년 동안의 공부만으로는 당장 ‘창업’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엉덩이에 풀 날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역술의 이치를 깨달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충성씨는 졸업과 동시에 역술인자격시험을 통과했지만 요즘도 강의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를 들으며 집에서 반복 학습을 하고 있다. 남의 운을 논할 정도로 공부가 깊어졌다고 판단될 때 철학관을 낼 계획이다. 드물긴 하지만 실력이 탄탄할 경우엔 역학인 양성교육을 받은 뒤 바로 개업을 한다. 문씨보다 한해 앞서 공부한 김선중(40·청암사주닷컴)씨는 졸업 직후 복지관 맞은편 미아리고개에 철학관을 내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복지관의 역학교육은 후학 양성뿐 아니라 외로운 시각장애인들에게 정서적인 구심점이 되기도 한다. 문씨의 동기생인 정대흥(46·서울 노원구 월계동)씨는 “가족적인 분위기로 함께 공부하고 졸업 뒤에도 운생계라는 ‘동창회’를 통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친목을 다지는 점이 좋다”고 말한다. 그는 “보증금이 족히 5천만원은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은 어렵지만 기회가 되면 미아리로 이사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외로운 이들의 정서적 구심점
‘몸값이 만냥이면 눈값이 구천냥’이라는 옛말이 있다. 남들이 만냥으로 살아갈 때 천냥에 의지해야 하는 시각장애인들은 자기의 혹독한 운명을 인정하는 자기와의 투쟁을 격렬하게 벌이게 된다. 심남용씨는 “한번쯤 죽음 같은 절망에 치열하게 다가가본 사람들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주역의 원리를 체득하게 된다”고 말한다.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운 건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겨울이니 추우려니, 여름이니 더우려니 마음을 다지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것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직업으로서 역술을 배우면서 또 하나 인생의 깨달음으로 삼는 것이 그것이다.”
『한겨레 21』 2005. 2. 22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www.blindnet.or.kr)도 미아리 점성촌의 주요 구성원 중 하나이다. 대한시각장애인역리학회가 학회 재산을 털어 1992년 점성촌 안에 점자도서관을 개관하였고, 이후 회원들의 십시일반으로 1998년 도서관 터에 복지관을 세웠다. 시각장애인들 스스로의 힘으로 지은 시각장애인 복지관이라는 점에서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은 미아리 점성촌 역학사들의 자부심 그 자체이다. 복지관에서는 역학사양성 · 심리상담사양성 · 경락안마 등 직업교육 외에도 시각장애 어린이들의 음악 지도, 점자책 제작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역학사양성교육은 복지관 설립 초 대한시각장애인역리학회로부터 전통을 이어받아 복지관의 정식 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으며 매년 열다섯 명에서 스무 명가량의 역학사들을 배출하고 있다. 매년 12월 신입생을 모집해 면접 심사를 거친 뒤 이듬해 1월에 새 학기를 시작한다. 처음엔 궁합·택일 등을 일러주는 『요집서』를 뗀 뒤 5월부터 사주학을 비롯해 산통·거북점 등을 통해 괘를 풀이하는 육효학, 작명·해명을 주로 하는 성명학을 공부한다. 마지막엔 희망자에 한해 독경을 할 수 있는 경문 공부로 마무리 짓는다. 경제적으로 막막한 시각장애인을 서로 도와주자는 취지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이곳에선 강의료를 한푼도 받지 않는다. 서울 아닌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복지관에서 방을 내주어 숙식을 해결하도록 해준다. 보통 정원 20명보다 1.5~2배 많은 사람들이 입학 신청을 하는데 장애등급·성별 등엔 제한이 없지만 중도실명자 중 점자·보행이 어려운 사람들을 우대 선발한다.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www.blindnet.or.kr)도 미아리 점성촌의 주요 구성원 중 하나이다. 대한시각장애인역리학회가 학회 재산을 털어 1992년 점성촌 안에 점자도서관을 개관하였고, 이후 회원들의 십시일반으로 1998년 도서관 터에 복지관을 세웠다. 시각장애인들 스스로의 힘으로 지은 시각장애인 복지관이라는 점에서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은 미아리 점성촌 역학사들의 자부심 그 자체이다. 복지관에서는 역학사양성 · 심리상담사양성 · 경락안마 등 직업교육 외에도 시각장애 어린이들의 음악 지도, 점자책 제작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역학사양성교육은 복지관 설립 초 대한시각장애인역리학회로부터 전통을 이어받아 복지관의 정식 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으며 매년 열다섯 명에서 스무 명가량의 역학사들을 배출하고 있다. 매년 12월 신입생을 모집해 면접 심사를 거친 뒤 이듬해 1월에 새 학기를 시작한다. 처음엔 궁합·택일 등을 일러주는 『요집서』를 뗀 뒤 5월부터 사주학을 비롯해 산통·거북점 등을 통해 괘를 풀이하는 육효학, 작명·해명을 주로 하는 성명학을 공부한다. 마지막엔 희망자에 한해 독경을 할 수 있는 경문 공부로 마무리 짓는다. 경제적으로 막막한 시각장애인을 서로 도와주자는 취지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이곳에선 강의료를 한푼도 받지 않는다. 서울 아닌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복지관에서 방을 내주어 숙식을 해결하도록 해준다. 보통 정원 20명보다 1.5~2배 많은 사람들이 입학 신청을 하는데 장애등급·성별 등엔 제한이 없지만 중도실명자 중 점자·보행이 어려운 사람들을 우대 선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