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암동/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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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인문지리
안암동의 명칭 변화와 관련된 설명이다. 안암동은 성북구에서 가장 먼저 생긴 지명이기도 하다. 조선 태조대부터 등장하는 이 이름은 지금의 대광아파트 단지에 20명 정도가 앉아서 쉴 수 있는 ‘앉일바위’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또한, 세종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과 그 후손들이 살아서 궁리(宮里)라고 불렀다고 하며, 그들이 살았던 집과 사당은 현재 안암동3가 지역에 있었다고 전한다. 이밖에 조선초 이 지역에 살았던 문정공 한계희와 관련된 설도 있다. 곤궁하게 살던 한계희를 위해 친척들이 북바위 부근 논을 주었는데, 한계희가 이 논에서 나온 곡식을 인근의 백성에게 나누어 주어 백성들이 편안히 살게 되었고, 이를 기려 마을 이름에 ‘편안할 안(安)’을 붙여 안암동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그것이다.
안암동
안암동 청사, 1993.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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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암동 청사, 1993.03.05

안암동 청사, 1993.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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