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안암동의 동명으로 붙여진 도로명이다. 보문로와 교차하는 대광고등학교(현 동대문구 신설동)를 기점으로 하여 고려대학교를 지나 종암로와 만나는 지점까지의 구간이다. 전구간이 동대문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19세기 중엽 김정희의 『대동여지도』에도 나타나는 길로, 동대문을 나와 안암동, 미아리를 고쳐 수유에 이르는 길이었다. 1961년 미아리~제기동 구간 약 2.1㎞의 확장공사가 이루어졌으며, 1962년에도 미아리~안암동 구간 약 3.6㎞의 확장공사가 완료되었다. 1966년 11월 도심권 간선도로에 대한 가로명을 제정할 때 처음 이름 붙여졌다. 이때는 대광중학교에서 고려대학교 앞에 이르는 구간까지만이었다. 1984년 11월 서울특별시고시에 의해 종점을 종암동삼거리로 변경하면서 안암로가 연장되었다.
④ 鍾岩路, 安岩路
종암로는 종암동 3거리(동대문구 청량리동 136-8) 을 기점으로 하여 종암동 하월곡을 남북으로 뻗어 미아 3거리(하월곡동 181) 에 이르는 폭 30m, 길이 2,250m의 길로서 전구간이 성북구관내 도로이다.
안암로는 普門路와 교차하는 대광고등학교앞(동대문구 신설동 58) 을 기점으로 하여 高大앞을 지나 회기로와 만나는 지점까지의 구간으로서 전구간이 동대문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들 도로는 성북구관내에서는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도로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金正浩作 19世紀 中葉의 大東與地圖에도 나타나는데 東大門을 나와 安岩洞 미아리를 거쳐 水踰峴에 이르는 길이였기 때문이다.
이 길의 工事沿革으로 발견된 것은 1958년에 高大앞∼미아리간의 도로개수공사를 한 기록이 있고 그 후 1961년에 미아리∼제기동간 2,100m를 폭 30m로 확장한 바 있는데 이는 한강을 거점으로 하여 한남동∼옥수동∼금호동∼왕십리∼고대 앞∼미아리∼정릉∼부암동∼홍제동∼연희동∼마포∼원효로 종점에서 다시 한강으로 되돌아오는 循環道路建設工事의 한 부분으로 시행된 것이다.
이 도로확장공사는 1962년에도 계속사업으로 시행되어 그해 12월 19일에는 미아리∼안암동간 3,614m의 확장공사가 완료되었다. 연도별 확장연혁은 〈표 –7〉과 같다(352쪽 표 참조).
④ 鍾岩路, 安岩路
종암로는 종암동 3거리(동대문구 청량리동 136-8) 을 기점으로 하여 종암동 하월곡을 남북으로 뻗어 미아 3거리(하월곡동 181) 에 이르는 폭 30m, 길이 2,250m의 길로서 전구간이 성북구관내 도로이다.
안암로는 普門路와 교차하는 대광고등학교앞(동대문구 신설동 58) 을 기점으로 하여 高大앞을 지나 회기로와 만나는 지점까지의 구간으로서 전구간이 동대문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들 도로는 성북구관내에서는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도로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金正浩作 19世紀 中葉의 大東與地圖에도 나타나는데 東大門을 나와 安岩洞 미아리를 거쳐 水踰峴에 이르는 길이였기 때문이다.
이 길의 工事沿革으로 발견된 것은 1958년에 高大앞∼미아리간의 도로개수공사를 한 기록이 있고 그 후 1961년에 미아리∼제기동간 2,100m를 폭 30m로 확장한 바 있는데 이는 한강을 거점으로 하여 한남동∼옥수동∼금호동∼왕십리∼고대 앞∼미아리∼정릉∼부암동∼홍제동∼연희동∼마포∼원효로 종점에서 다시 한강으로 되돌아오는 循環道路建設工事의 한 부분으로 시행된 것이다.
이 도로확장공사는 1962년에도 계속사업으로 시행되어 그해 12월 19일에는 미아리∼안암동간 3,614m의 확장공사가 완료되었다. 연도별 확장연혁은 〈표 –7〉과 같다(352쪽 표 참조).
안암로는 이 길이 지나는 성북구 안암동 동명에서 유래되었다. 안암로는 동대문구 신설동 53번지(대광고등학교 앞)에서 안암동을 거쳐 제기동 136번지(종암동삼거리)에 이르는 폭 25m, 길이 1,700m의 4차선 도로이다. 이 길은 1966년 11월 26일 서울특별시고시 제1093호에 의해 도심권 간선도로 37개에 대한 가로명을 제정할 때 안암로로 처음 이름 붙여졌다. 이때 안암로는 신설동 58번지 대광중학교에서 안암동 1번지 고려대학교 앞에 이르는 구간이었다. 1984년 11월 7일 서울특별시공고 제673호에 의해 종점 이름을 종암동삼거리로 변경하여 안암로의 가로명을 계승하였다. 이 길은 조선시대 이후 동대문을 지나 普濟院을 거쳐 의정부로 가는 간선도로 구실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