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도끼 #263] 전통을 잇는다는 것 ― 공청대동산신제의 한 세기 -
- 작성자 오진아
- 정릉동의 세 산신제는 같은 마을신앙에서 비롯되었지만, 오랜 시간 각기 다른 모습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세 산신제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공청대동산신제는 올해로 111주년을 맞게 됩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는 동안 우리 사회의 많은 마을신앙은 변화하거나 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공청대동산신제는 한 세기를 넘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이 긴 시간을 이어오게 한 힘이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오랫동안 공청대동산신제를 이끌어 온 류광운 씨의 이야기를 통해, 산신제가 이어져 온 과정과 그 안에 담긴 공동체의 기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공청대동산신제는 이름 그대로 '공청'을 중심으로 이어져 온 마을 제사입니다. 공청(公廳)은 보통 관청의 공적인 업무를 처리하던 건물을 의미하지만, 정릉에서 공청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공청에 모여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고 산신제를 준비했으며, 애경사도 함께 치렀습니다. 류광운 씨는 "예전에는 정릉이라고 하면 그냥 정릉이지, 아랫말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다"고 회상하며, "어디 사느냐"고 물으면 "공청에 산다"고 했다고 합니다. 공청은 주민들에게 하나의 공간을 넘어 마을 공동체와 생활권을 함께 의미하는 이름이었습니다.
공청노인정(성북노인회) 입구. ‘정친회관’이라는 현판에는 1915년 9월 2일 창건되었다는 내용이 써있다.
1959년 제작된 공청 준공기 현판. 준공 이유와 기부금 납부자 및 임원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김성환 화백의 그림. 공청우물 앞을 지나 퇴각하는 북한군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 공청 앞 우물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 공청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여러 차례 모습을 바꾸었지만, 그 역할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1959년 준공기에는 한국전쟁으로 공청이 파괴된 뒤 약 10년 동안 공동 공간 없이 지내다가 주민들의 협조로 다시 공청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후 1979년에는 노후화로 중수를 했고, 2005년에는 인근 아파트 공사로 인한 균열과 침하로 기존 건물을 철거한 뒤 새로 지었습니다. 류광운 씨는 "예전에는 공청 앞에 큰 버드나무가 있었고 우물도 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건물의 모습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공청은 지금도 마을 사람들이 모여 산신제를 준비하고 공동체의 일을 함께 의논하는 중심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공청을 중심으로 산신제 역시 세대를 거쳐 이어져 왔습니다.
정릉 내에 있던 산제단의 모습(2013)
산제단의 표지석(2013)
2019년 제104회 공청대동산신제. 정릉 능역에서 제를 올린 마지막 해의 모습이다.
104회 정릉공청산신제 제의 모습
- 류광운 씨가 기억하는 산신제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제사는 자시(子時), 즉 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 시작되었고, 제를 지내는 장소도 지금과 달리 정릉 능역 안 할머니약수터 위쪽 산제당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나무 끝에 솜을 감고 석유를 적셔 만든 남포불을 앞세워 산제당으로 향했습니다. 여자들은 아래에서 제수를 준비했고, 제당에는 남자들만 올라가 제를 올렸습니다. 산신제는 단순히 제례를 올리는 의식이 아니라 온 마을이 함께 준비하고 참여하는 공동체의 행사였습니다. 지금의 산신제는 당시와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2009년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더 이상 정릉 능역 안에서 산신제를 지낼 수 없게 되었고, 현재는 정수초등학교 뒤편 능학정 인근 공원에서 제를 올립니다. 자시에 지내던 제사는 현재 신시(申時)로 옮겨졌고, 제기도 놋그릇에서 스테인리스로 바뀌었습니다. 류광운 씨는 예전에는 마을 아주머니들이 스무 명, 서른 명씩 모여 연탄재로 제기를 닦아 준비했지만, 함께 준비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줄어들면서 관리가 쉬운 스테인리스 제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그 자체가 좀 남아 있었어야 되는데 그게 없어져서 그게 좀 아쉬워”라고 말했습니다.
제기를 보관하는 상자(2023)
현재 공청에서 사용하는 스테인리스 그릇. 다른 행사에 대여한 뒤 다시 돌려받기 위해 식별용 구멍을 뚫었다.
- 류광운 씨가 산신제에 발 벗고 나서게 된 것은 십여 년 전부터입니다. 원래 공청회는 마을의 장남들만 참여할 수 있는 조직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구성원들이 세상을 떠나거나 마을을 떠났고, 산신제를 미신으로 여겨 더 이상 지내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기존 방식만으로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어려워진 것입니다. 결국 공청회는 외부 구성원에게도 문을 열었고, 원래라면 공청회에 들어올 수 없었던 막내인 류광운 씨도 선조들이 이어온 전통을 지키기 위해 그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태까지 해오신 것들은 우리가 지켜드려야 될 거 아니에요."라고 말했습니다.
공청에서 보관 중인 제관 명단, 축문, 홀기 등의 산신제 관련 문서들(2026)
- 산신제를 이어가는 일은 제를 올리는 하루로 끝나지 않습니다. 준비는 두세 달 전부터 시작됩니다. 제관을 정하고 제물을 마련하는 일까지 모두 공청회가 직접 맡습니다. 산신제에 쓰이는 제물도 적지 않습니다. 소머리 네 개와 밤 40kg, 대추 한 상자를 비롯한 다양한 제수를 준비하는데, 이는 제사상에 올리기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제사를 마친 뒤에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음식을 나누며 공동체의 정을 이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산신제는 한 번의 의례가 아니라 온 마을이 함께 준비하고 함께 마무리하는 행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을 유지하는 일은 점점 쉽지 않아지고 있습니다. 제물을 마련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 데다, 함께 준비하던 사람들은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예전보다 황소머리를 구하기 어려워졌고, 소머리를 직접 삶고 손질하는 데만 다섯에서 여섯 시간이 걸립니다. 류광운 씨는 "누구한테 맡길 수가 없어. 그냥 내가 할 수밖에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한때는 많은 주민들이 나누어 맡았던 일이 이제는 몇 사람의 몫이 되었고, 그 부담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2026년 7월, 공청에서 인터뷰 중인 류광운 씨
- 류광운 씨가 무형문화유산 지정을 바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히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지금처럼 몇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산신제를 오래 이어가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형문화재가 되고 뭔가 법인이 설립돼야 그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자료라든가 모든 걸 정확하게 보존하고, 교육시킬 건 교육시키고, 다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만들어줘야 될 거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기록을 남기고 후계자를 키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그가 무형문화유산 지정을 바라는 이유였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산신제를 주민들과 함께 나누려는 노력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공청회가 중심이 되어 비교적 폐쇄적으로 산신제를 이어왔다면, 이제는 더 많은 주민들이 제례를 직접 경험하며 전통을 이해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실제로 산신제에 참여했던 동주민센터 직원들이 다시 참여 의사를 밝히는 등, 직접 경험이 전통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는 이러한 경험이 산신제를 이어갈 새로운 전승자를 만드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2025년 공청대동산신제의 모습
- 시대에 따라 우리가 믿는 것과 살아가는 방식은 변합니다. 전통 역시 시대의 변화 속에서 변화하거나 때로는 사라집니다. 그럼에도 류광운 씨는 "여태까지 해오신 것들은 우리가 지켜드려야 될 거 아니에요."라고 말합니다. 공청대동산신제는 제례의 형식만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111년을 이어왔습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전통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 류광운 씨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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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깃거리 (1)
- 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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