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2동 공청회(공청경로회)가 주관해 매년 음력 10월 초에 지내는 마을 제례로, 2015년을 기준으로 100회를 맞이하였다. 본래는 정릉 안에 위치한 약수터 위 산신제단에서 거행되었으나, 현재는 정수초등학교 뒤 북한산 숲내 북악정 앞에서 진행된다. 이 제사는 전통 산신제를 현대적으로 계승해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례로, 제사에 앞서 ‘옥황상제’에게 먼저 제사를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의식은 유교적 절차를 따르며 축문을 읽고 헌작을 반복한 뒤 소지를 올리는 순서로 진행된다.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 내에는 마을을 지켜주는 산신제단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한 해의 농사를 마무리하고 시작하는 첫 달인 음력 10월을 상달이라 하여 추수에 대한 감사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제사를 지내곤 했다. 정릉 산신제는 매년 음력 10월 1일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정릉2동 공청회(공청경로회)에서 주관하고 있다.
산신제에 앞서 옥황상제께 먼저 제를 올린다. 산신제를 주관하는 제관은 공청회 대표로, 지내는 순서는 강신 → 참신 → 초헌 → 독축 → 아헌 → 종헌 → 헌각 → 사신 → 음복 → 사신 → 음복 → 소지 순으로 이루어진다. 주민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정릉산신제는 2015년 100회를 기점으로 새로운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정릉 2동 공청회에서 주관하는 산신제로 사적 제208호 정릉 내에 위치한 산신당에서 지내고 있다. 산신제는 올해 100회를 맞았다. 매년 음력 10월 1일에 지내며 올해(2014년)는 산신제 100회 맞이 축제를 연다.
◆ 산신단 산신제 ◆
산신제를 주관하는 제관은 공청회 대표로, 지내는 순서는 강신→ 참신→ 초헌→ 독축→ 아헌→ 종헌→ 헌각→ 사신→ 음복→ 사신→ 음복→ 소지로 진행한다.
1. 강신
신을 모시는 절차로, 대표는 신발을 벗고 제단 앞으로 다가가서 먼저 촛불을 켠다. 향(홀수)을 피우고 술잔(3잔)을 받아서 조금 채운 다음 제상 좌우 중앙에 세 번씩 술을 붓고 삼배를 한다.
2. 참신
산신에게 인사를 드리는 절차로, 참석자 모두 삼배(三拜)를 한다.
3. 초헌
산신에게 첫 잔을 올리는 절차로 초헌관인 대표가 잔을 올려 집사에게 전해주면 집사는 잔을 제상에 올린다. 모든 참가자는 동서로 나누어 진설방향으로 서서 사배(四拜)한다. 초헌관은 앞으로 나와 4배 올리고 굽혔다 일어나 제상 앞에서 3회 분향한다. 신위전 궤상에 잔을 올린다. 헌관이 반복하여 술잔을 올리고 신위전 밥그릇 뚜껑을 열고 수저를 꽂은 다음 젓가락을 올린 후 집사는 하강한다.
4. 독축
미리 준비한 축문을 축관이 읽는다. 이때 참가자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앉는다. 축문 낭독 뒤에 초헌관은 삼배를 한다.
5. 아헌
(아헌관)이 두 번째 잔을 올리고 (전체) 삼배를 한다.
아헌관은 앞에 나와 분향하고 술잔을 신위전에 따라 올린다. 술을 따라 헌작하고 수저와 젓가락을 올린다. 집행자가 물러나고 헌관은 사배를 올린 후 나온다. 그 후 상 위의 술을 철주(輟酒)한다.
6. 종헌
세 번째 잔을 올리는 것으로 종헌관이 잔을 올리고 (전체) 삼배를 한다. 종헌관은 입취하여 절하고, 궤 앞에 분향 후 술잔을 신위전에 올린다. 술잔을 올린 후 다시 술을 따르고 수저와 젓가락을 올린다. 집사는 하강하고 헌관은 사배를 올린 후 퇴복위(退復位)한다. 이 때 모든 참가자가 사배한다.
7. 헌작
참가자 모두 잔을 올리고 삼배를 한다.
8. 사신
산신께 이별을 고하는 절차로서 대표가 잔을 올리고 참가자 모두 삼배를 한다.
9. 음복
집사가 제상에 있는 술잔을 헌관(초헌, 아헌, 종헌 술을 올린 분들)에게 드리고 음복한다.
10. 소지
축관은 축문을 불태운다.
서울시로 편입되기 이전 경기도 고양군 정릉리였던 정릉2동에는 산신제가 전승되고 있다. 정릉2동의 산신제는 정릉리 아랫말의 산신제가 전승되고 있는 것으로, 웃말인 정릉3동에도 산신제가 전승되고 있다. 산제당은 사적 제208호로 지정된 정릉 내에 위치한다. 정릉 내의 약수터 바로 윗 부분 산 중턱이다. 이 약수터는 간이휴게소의 왼쪽에 있는 것으로, 할머니약수터로 불린다. 약수터의 왼쪽에는 남북통일이란 글씨가 새겨진 바위를 비석처럼 세워 놓았고, 그 옆으로 계단을 오르면 산제당이 있다. 산제당은 산 중턱에 약 30cm정도의 단을 쌓아 만든 것으로, 제단은 가로 430cm, 세로 195cm이다. 정면은 화강암으로 축대를 쌓았다.
산신제 때 비가 오면 산제당에 오르지 않고 경로당 안에서 산신제를 지낸다. 그래서 경로당에 제물을 진설하고 북쪽을 향해 제사를 지낸다. 그러나 경로당에서 산신제를 지낸 것은 약 20년 전 단 한번뿐이었다. 제일은 매년 음력 10월 1일이다. 제사는 오후 4, 5시경부터 지내기 시작하여 약2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제사를 지내는 대상은 옥황상제와 토지신으로, 각각 두 개의 상을 차려 지낸다. 제물은 돼지머리, 삼색과일, 시루떡, 삼색나물, 정종을 준비한다. 제비는 경로당의 회원을 중심으로 추렴하는데, 산신제 지내기 약5일전에 자발적으로 내고 있다. 경로당 안에는 제비를 낸 사람들의 명단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산신제에는 유사, 집사,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등 10여명 정도가 제관의 의관을 갖추고 참가한다. 제의는 유교식으로 진행되어 제사 자체는 시간이 그리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제의시간은 참석자 외 그들의 자손들까지 모두 100여 장의 소지를 올리기 때문에 상당히 오래걸리는 편이다.
산신제에는 제물을 장만하는 여성 3명을 제외하고는 여성들은 참석할 수 없다. 도시화된 이후 산신제의 주체는 노인회관의 회원들을 중심으로 바뀌었다. 서울시로 편입되기 이전 산신제는 마을의 각 집에서 추렴하여 제비를 마련하고, 깨끗한 집으로 도가를 뽑았다. 그러나 도시로 편입된 이후 젊은층의 관심이 줄어들어 노인들을 중심으로 산신제의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마을의 노인회관인 공청에서는 제비를 낸 사람들의 명단과 액수, 제수물목, 홀기와 축문, 제관들의 명부 등을 적은 문서를 보관하고 있다. 이 문서들은 1988년도분 부터인데, 이전의 것들은 보관하기 힘들어 폐기처분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