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268] 성북동 국시 한 그릇에 담긴 반세기
작성자 정경모
서울 성북구 성북동 일대를 걷다 보면 유난히 국수·칼국숫집이 많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북동이 서울의 대표적인 국수 동네로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시대의 식생활 정책과 지역적 특성, 그리고 1990년대 정치 문화가 만들어낸 흐름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성북동과 그 주변의 국수 전문 식당 (출처: 네이버지도)

성북동과 그 주변의 국수 전문 식당 (출처: 네이버지도)

그 첫 단서는 1960~70년대 혼분식 장려 운동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산 원조 밀가루가 대량으로 들어왔지만, 쌀을 고집하던 식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에 정부는 식량난을 해결하고자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을 '무미일(無米日)'로 지정해 식당의 쌀밥 판매를 금지하고, 곰탕이나 설렁탕에도 면을 섞어 팔도록 강제했습니다. 이 국가 정책은 한국 사회 전반에 밀가루 음식을 대중 외식으로 뿌리내리게 했습니다.
혼식 분식 실천 궐기 대회 (출처: 서울기록원)

혼식 분식 실천 궐기 대회 (출처: 서울기록원)

보리혼식과 분식보급 및 접객업소의 식사판매제한조치 (1967)  (출처 : 국가기록원)

보리혼식과 분식보급 및 접객업소의 식사판매제한조치 (1967) (출처 : 국가기록원)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성북동 국수 거리의 시작을 알린 칼국숫집이 등장합니다. 한국전쟁 전 교사로 재직했던 창업주 고(故) 이옥만 여사는 성북동의 작은 공간에서 직접 손으로 면을 밀어 국수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1968년, 우연히 가게를 찾은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은 “이렇게 맛 좋은 집이 왜 영업 허가가 없느냐”며 정식 영업 허가를 받아 장사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이듬해인 1969년, ‘국시집’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정식으로 문을 열게 됩니다.
성북동 국시집 외관

성북동 국시집 외관

성북동 국시집 내부

성북동 국시집 내부

상호에 쓰인 ‘국시’는 국수의 경상도 방언으로, 경상북도 안동의 국수 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밀이 귀했던 조선시대, 종갓집이 많았던 안동에서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에게 국수를 대접하면서 국수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국시집은 반죽을 넓게 펴 칼로 가늘고 얇게 썰어내는 절면법(切麵法)을 사용하는 점에서 안동식 국수와 닮아 있습니다. 다만 멸치나 바지락 육수 대신 한우 양지와 사태, 사골을 푹 우려낸 담백한 고기 육수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사업 초기 이옥만 여사는 칼국수 한 가지 메뉴만을 전문으로 선보였습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수육과 문어숙회, 전 등 경상도 잔칫상에서 빠지지 않는 음식들이 하나둘 더해지며 오늘날의 국시집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성북동 국시 칼국수 메뉴판

성북동 국시 칼국수 메뉴판

성북동 국시 칼국수

성북동 국시 칼국수

약 20년 뒤, 이 국시집은 유명 정치 인사들의 단골집으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당시 성북동과 그 주변에는 옛 서울시장 공관을 비롯해 정·재계 인사와 외교관들의 거주지가 많았고, 자연스럽게 성북동 국시집을 찾는 인사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부터 가족들과 함께 예배를 마친 뒤 이곳을 자주 찾았습니다. 대통령 취임 후에는 청와대 오찬 메뉴는 물론, 국가 인사들을 접대하는 자리에도 소박한 칼국수를 올렸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김 전 대통령의 정치를 ‘칼국수 정치’라고 불렀고, 칼국수는 그가 내세운 청렴과 개혁 의지를 상징하는 정치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처럼 대통령의 단골집으로 알려진 성북동 국시집과 성북동 일대는 자연스럽게 대중과 언론의 큰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진8. 신문에 실린 성북동 국시집 (경향신문 1993.1.11.)   (출처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사진8. 신문에 실린 성북동 국시집 (경향신문 1993.1.11.) (출처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이후 국시집에서 일하며 손맛과 기술을 익힌 주방 인력과 종업원들이 하나둘 독립하여 ‘혜화칼국수’ ‘명륜손칼국수’ ‘밀양손칼국수’ 등 인근 성북동과 혜화동에 새로운 칼국숫집을 열었습니다. 얇고 긴 면발, 담백한 고기 육수, 그리고 정갈한 상차림 양식은 칼국수를 시작으로 다양한 국수 메뉴와 어우러지며 성북동 주변으로 번져나갔습니다. 특히 성북동과 맞물린 혜화동 대학로 일대가 연극인 등 수많은 예술가가 모여 활동하는 문화적 거점이 되면서, 따뜻한 국수 한 그릇과 전 한 접시는 이들에게 예술을 논하는 안주가 되었습니다.
서울미래유산 현판

서울미래유산 현판

성북동 국시집은 이러한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5년 서울미래유산(보존번호 2015-135)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이옥만 여사의 딸 이수자 대표가 가업을 이어받아, 50년 넘게 이어온 2대의 손맛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한 그릇의 칼국수에 담긴 시간은 그렇게 성북동의 역사와 함께 오늘까지 이어집니다. <참고자료> 국가기록원, 「혼분식장려」,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https://theme.archives.go.kr/next/koreaOfRecord/EncourageSoul.do 서울기록원, 「시정사진 컬렉션」, 『서울사진 아카이브』. https://archives.seoul.go.kr/photo/collection/detail/82 네이버 지도, 「성북동 국수」 검색 결과. https://map.naver.com/p/search/%EA%B5%AD%EC%88%98?c=15.20,0,0,0,dh 서울특별시, 「(심층인터뷰) 성북동국시집 2024」, 『라이브서울』. https://tv.seoul.go.kr/v/1b05bcd1293a4ce599d750ed06dc0644 김성윤, 「[공복 김선생] 한여름 땀 뻘뻘 흘리며 칼국수 먹은 이유는?」, 『조선일보』, 2021. 7. 23. https://www.chosun.com/culture-life/food-taste/2021/07/23/3HG724DVHVCETCNFFSOIUKTWRA/ 대통령기록관, 「청와대 칼국수 이야기」, 『대통령 이야기』. https://www.pa.go.kr/online_contents/story/story08.jsp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경향신문』, 1993. 1. 11.자 기사,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3011100329102004&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3-01-11&officeId=00032&pageNo=2&printNo=14640&publishType=00010 성북문화재단, 「국수 한 그릇과 전에 담긴 정성과 애정 | 성북밀로 매거진 EP.08 성북동구포국수 김신철, 이향 사장님」,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sbculture1/224068184713 성북마을아카이브, 「성북동 국시집」, 『아카이브 이야깃거리』. https://archive.sb.go.kr/isbcc/home/u/story/view/727.do#downl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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