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180] 발 연기? 발로 하는 예술! 발탈
- 우리는 흔히 형편없는 연기를 낮잡아 부를 때 ‘발 연기’라고 합니다. 실력이나 질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손이 아닌 발로 한 것 같다는 의미로 접두사 ‘발’을 붙인 것이죠. 오늘 소개할 ‘발탈’은 이런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 발을 사용하여 연기를 합니다. 발로 연기를 한다고 하니 우스꽝스러울 것 같나요? 발탈은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낮잡아 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발탈은 우리의 전통 예술로, 발에 탈을 씌워 사람처럼 꾸민 탈 인형과 어릿광대, 아낙네 등이 서로 소리와 재담을 주고받는 민속극입니다. 탈 역할의 연희자는 검은 포장막 뒤에서 의자에 앉아 발에 탈을 씌우고 상반신만 있는 인형에 발을 얹고 연기를 합니다. 또 손으로는 막대기를 이용해 인형의 팔을 조종하여 인형의 다양한 몸짓을 표현합니다. 발탈은 어릿광대가 이 상반신만 있는 탈 인형의 외양에 놀라 시비조로 정체를 물으면서 극이 시작됩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유봉영
- 장위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평안북도 철산 출신으로 1919년 철산의 명흥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3.1운동에 앞장섰다. 경찰과 충돌한 후 2,000원을 가지고 상해로 망명했다. 임시정부 재무부에서 일하면서 재정지원을 하다가 여러 차례 수감되어 옥고를 치렀다. 1936년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하여 1940년 폐간될 때까지 재직하였고, 광복 이후 조선일보가 복간한 뒤 재입사하여 1971년 퇴사했다. 학교법인 숙명학원 이사장과 제8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정부에서는 1977년에 대통령표창을,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에는 주소가 성북(城北) 장위(長位) 219(현 장위동 219-3)로 표기되어 있으나, 그의 별세 기사를 통해 자택 주소는 장위동 219-403번지인 것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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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우미술관
- 성북구 선잠로 12-11(성북동 55-1)에 있던 미술관이다. 운보 김기창(1913~2002)과 그의 부인 우향 박래현(1920~1976)의 호에서 ‘운우’라는 미술관의 이름을 지었다. 이 미술관은 김기창과 박래현이 살던 집이었다. 부부는 1954년 무렵 군산에서 서울로 올라왔고, 박래현의 노력으로 한옥을 장만했다. 1976년 김기창은 성북동 한옥을 헐고 아내를 위해 미술관을 건립하였지만, 불행히도 미술관이 완공되기 전에 박래현은 세상을 떠났다. 김기창은 이곳에서 1984년까지 홀로 살며 작품활동을 하다가 어머니의 고향인 청원으로 화실을 옮겼다. 2001년 9월 27일 서울시 제1종 미술관으로 등록하고 2002년 3월 개관하였으나 미술관 대표가 운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폐관신청을 하면서 2015년 11월 10일 폐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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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성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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