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성북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금도끼 #221] 동네 한 바퀴, 종암동 북바위둘레길
- 10월 중순,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었습니다. 서늘해진 날씨가 이어지면서 서울 곳곳에서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행사 소식이 들리는 요즘입니다. 가을에는 푸르던 나뭇잎들이 누렇게 물들며 떨어집니다. 그래서인지 봄은 밝은 분위기가 나는 반면, 가을은 쓸쓸하고 고독한 분위기입니다. 이러한 분위기에는 마음의 양식인 책을 읽기 딱 좋아서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최근 우리나라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면서 책을 찾는 열기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사실 가을은 놀러 가기에 딱 좋은 계절입니다. 특히 도보여행을 많이 가시는데요, 단박에 둘레길이 떠오르실 겁니다. 둘레길은 관광사업진흥을 목적으로 걷기 편하게 조성한 길인데요, 동기 부여를 위해 스탬프투어와 병행하기도 합니다. ‘걷기길’, ‘걷기여행길’ 이나 ‘도보여행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한국관광공사에서는‘걷기여행길’이라는 명칭으로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올레길과 서울시의 북한산둘레길 프로그램의 성공으로, 많은 지자체에서 이를 벤치마킹해서 둘레길을 개발했습니다. 둘레길은 지역마다 명칭이 조금씩 다르지만, 각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한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데, 강화나들길·성남누비길·하남위례길·고양누리길 등이 그 예입니다. 이제부터 성북구에 걷기 좋은 둘레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달의 마을아카이브
이 달에 기록된 성북 마을이야기를 만나봅니다.
- 이강
-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04년 미국에서 안창호, 정재관 등과 함께 공립협회(共立協會)를 창립하고 1905년 기관지 『공립신문』을 창간해 주필이 되었다. 1907년 귀국하여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하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서 정재관과 함께 신민회 블라디보스토크지회를 설립하였다. 이밖에도 『대동공보』 편집책임을 맡아 독립사상을 고취시켰다. 1919년에는 강우규의 폭탄 투척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 석방 후 상해로 탈출하여 임시정부에 참여, 의정원 의장을 역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안창호가 중심이 된 흥사단 운동에도 참가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1964년 10월 13일 자택인 정릉동 재건주택 88호(현 정릉동 16-7)에서 별세하였다.
- 이야기 더보기
- 조화벽
-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강원도 양양 출신으로 개성의 호수돈 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 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호수돈 비밀결사대’를 조직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휴교령이 내려지자 조화벽은 버선 솜에 독립선언서를 감추고 고향 양양으로 귀향하여 지역만세운동의 불씨 역할을 했다. 1925년 교직생활을 하던 중 유관순 열사의 오빠인 유우석과 결혼하였다. 이후 유우석의 가족을 모두 양양에 은신시켰으며, 유관순의 동생인 관복과 관석을 양육하였다. 1932년에는 양양에 정명학원을 설립하여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쳤다. 광복 이후 정릉동 604-16번지(현 아리랑로5길 128)에서 거주하였고, 1975년 타계하였다. 정부에서는 1982년 대통령표창을,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이야기 더보기
- 임종국
- 시인이자 평론가이며, 또한 친일문제를 연구한 역사학자이다. 성북동에 살면서 고려대학교를 다녔고, 이후 「비(碑)」, 「자화상」 등의 시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1965년 한일회담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분노하여 친일연구에 뛰어들었다. 1966년 월곡동에 거주하면서 『친일문학론』을 저술하였고, 70년대부터 본격적인 친일연구를 진행하여 80년대에는 『일제침략과 친일파』, 『일제하의 사상탄압』, 『친일문학작품선집』, 『친일 논설집』 등 다수의 저작물이 출판되었다. 1989년 임종하기까지 친일파 총서를 집필 중이었는데, 그 유지를 후학들이 받들어 민족문제연구소를 설립하고 연구를 지속하였고, 마침내 2009년 친일인명사전을 출간하였다.
- 이야기 더보기
- 서경대학교
- 성북구 서경로 124(정릉동 산 16-1)에 위치한 사립대학교이다. 1947년 재단법인 한국학원이 장충동에 ‘한국대학’이라는 이름의 4년제 야간대학을 설립하였다. 1955년 재단법인 국제학원이 인수하면서 ‘국제대학’으로 교명을 바꾸고 교사도 이전하였으나 학교 운영 주체가 감리학원, 이화학당 등 여러 번 변경되었다. 1970년대에는 각 대학의 양적 팽창과 야간강좌 개설로, 국내 유일의 순수 야간 정규대학이라는 학교의 특징이 흐려지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1980년 삼문학원, 1984년 명지학원으로 학교 운영 주체가 변경되었다가 1987년 학교법인 성한학원이 대학을 인수하고 1988년 현재 위치로 교사도 이전하였다. 1992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면서 ‘서경대학교’로 이름도 바꾸었고,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 이야기 더보기
주제로 보는 성북
이야깃거리와 기록을 주제별로 묶어 관심 있는 주제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