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에 소재하였던 청조사가 발간한 월간문예잡지이다. 1934년 8월 변서봉·유춘정·박귀송·이준숙·황백영·정규창 등이 창간하여, 1936년 9월 통권 21호로 종간되었다. 편집인 겸 발행인은 노자영으로 그가 성북동 문화주택에 살며 청조사를 직접 운영하였기 때문에 노자영의 개성과 취향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의 낭만적 감상주의로 일관되었는데 『신인문학』 역시 대중오락지적 요소가 다분하였다. 이에 대해 계용묵은 「한국문단 측면사」에서 노자영이 창간한 문학잡지 『신인문학』은 신인들을 발굴하고 기성문인층의 창작도 발표되었다는 의의가 있으나 가십란에 가십으로 판매 부수를 올렸다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정의
1934년에 창간되었던 월간문예잡지.
개설
A5판. 124면 정도(뒤에 320면 정도로 늘어남.) 1934년 8월 변서봉(卞曙峰)·유춘정(柳春汀)·박귀송(朴貴松)·이준숙(李俊淑)·황백영(黃白影)·정규창(丁奎彰) 등이 창간하여, 1936년 9월 통권 21호로 종간되었다.
편집인 겸 발행인은 노자영(盧子泳)이며, 청조사(靑鳥社)에서 발행하였다. 노자영 개인의 발행이기 때문에 그 개성과 취향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러나 미문가(美文家)였던 그가 어떤 주의나 경향을 좇은 것은 아니다. 영업상 순문예지를 지양하여 대중오락지적 요소도 다분히 있었다.
내용
창간호를 보면 소설에 이무영(李無影)의 「당기 삽화(揷話)」, 정은성(鄭銀城)의 「청춘 애화(靑春哀話)」, 노자영(盧子泳)의 「청묘(靑猫)」, 시에 박종화(朴鍾和)의 「아춘(餓春)」, 김안서(金岸曙)의 「바다」 외 3편, 신석정(辛夕汀)의 「오월(五月)의 아침」 등이 있으며, 수필에 이광수(李光洙)의 「나의 문단생활(文壇生活) 30년」, 논문에 망운루인(望雲樓人)의 「장개석(蔣介石)과 그의 고원(高遠)한 이상(理想)」, 노자영의 「구주(歐洲)의 멸망(滅亡)과 신사회연방(新社會聯邦)」, 우몽산인(又夢山人)의 「작가박식론(作家博識論)」 등이 있다.
춘성의 작품은 무엇이나 출판을 하면 팔리었습니다. 그래서 춘성의 원고라면 거절을 하는 출판사가 없었습니다. 이런 인기를 알게 된 춘성은 그 이윤을 출판사에게 줄 것이 아니라, 그 이윤까지도 깡그리 한몫 보고 싶어서 '청조사'라는 역시 출판사의 이름조차 미문 식으로 붙여 놓고 손수 자비출판을 하여 성북동에 문화주택을 마련하고 한동안 경제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하였으나 지병인 폐환 때문에 집필도 못하고 병치료에 출판 밑천까지 놓았다가 병세가 떨림에 《신인문학》이라는 문학잡지를 창간하여 발표에 애쓰는 신인들의 심리를 포착하여 꽤 많은 독자를 붙들고 몇 해 동안을 계속하였는데 그때는 또 이렇다는 문학잡지가 없었던 시절이라, 기성 문인층의 창작도 많이 발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