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조선시대
- 시기:?
- 경국사 남쪽 손가정 마을은 바로 옆 계곡의 물과 바위가 ‘밝고 환하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풍광이 수려해 많은 사대부들이 여기에 머물러 시를 읊었다. 그 중에서도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1629~1711)이 그의 동갑내기 친구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1629∼1703)과 함께 놀러와 지은 시가 가장 유명했다. 서계와 함께 손가장에 놀며 돌 위에 쓰다(與西溪游孫家莊 題石上) 손씨 집안의 부자 영웅으로 알려지니 孫家父子號英雄 천하를 삼분하여 할거해서 패업이 융성하였네 割據三分霸業隆 지금 서인이 됨 어찌 한탄할 것이 있는가 爲庶於今何足恨 한 구역 천석이 강동을 차지한 것보다 낫다오 一區泉石勝江東 손가정 마을이 손씨 동성촌이란 점에 착안하여 중국 삼국시대 오 나라의 손견, 손권 부자의 이야기를 끌어와 지은 기발한 시인데, 지금 이 자그마한 구역에서 산수와 함께 하는 즐거움이 저들 손씨 부자의 영화보다 낫다는 내용이다. 현종·숙종대의 대학자이자 소론의 영수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남구만의 호연지기를 엿볼 수 있다. 제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시는 계곡의 커다란 바위 위에 새긴 것인데, 그로부터 약 100여 년이 지나서 손가정을 찾은 윤기尹愭(1741∼1826)는 바위에 새겨진 남구만의 시구에 차운하여 지은 자신의 시를 남구만의 시 아래에 새겨 넣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이 시들을 각자한 바위는 정릉천 정비 당시에 땅에 묻혔다고 전한다.동소문 밖 능말이야기, 86-87쪽
- 경국사 남쪽 손가정 마을은 바로 옆 계곡의 물과 바위가 ‘밝고 환하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풍광이 수려해 많은 사대부들이 여기에 머물러 시를 읊었다. 그 중에서도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1629~1711)이 그의 동갑내기 친구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1629∼1703)과 함께 놀러와 지은 시가 가장 유명했다. 서계와 함께 손가장에 놀며 돌 위에 쓰다(與西溪游孫家莊 題石上) 손씨 집안의 부자 영웅으로 알려지니 孫家父子號英雄 천하를 삼분하여 할거해서 패업이 융성하였네 割據三分霸業隆 지금 서인이 됨 어찌 한탄할 것이 있는가 爲庶於今何足恨 한 구역 천석이 강동을 차지한 것보다 낫다오 一區泉石勝江東 손가정 마을이 손씨 동성촌이란 점에 착안하여 중국 삼국시대 오 나라의 손견, 손권 부자의 이야기를 끌어와 지은 기발한 시인데, 지금 이 자그마한 구역에서 산수와 함께 하는 즐거움이 저들 손씨 부자의 영화보다 낫다는 내용이다. 현종·숙종대의 대학자이자 소론의 영수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남구만의 호연지기를 엿볼 수 있다. 제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시는 계곡의 커다란 바위 위에 새긴 것인데, 그로부터 약 100여 년이 지나서 손가정을 찾은 윤기尹愭(1741∼1826)는 바위에 새겨진 남구만의 시구에 차운하여 지은 자신의 시를 남구만의 시 아래에 새겨 넣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이 시들을 각자한 바위는 정릉천 정비 당시에 땅에 묻혔다고 전한다.동소문 밖 능말이야기, 86-87쪽
- 작성자:오진아
- 작성일:2020-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