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수필』(을유문화사, 1948)에 수록된 수필이다. 이 글은 김용준이 자신의 집 노시산방을 절친한 벗인 김환기에게 넘겨주고 난 뒤 이에 대한 감정을 기술한 작품이다. 이로 인해 둘의 우정은 돈독해졌고, 우정을 예술로 승화한 작품들을 잇따라 발표하게 되었다. 작가는 노시산방은 일종의 환영이었음을 고백하면서, 이를 통해 예술심을 회복했음과 동시에 귀중한 예술가를 얻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좋은 친구 수화에게 노시산방을 맡긴 나는 그에게 화초들을 잘 가꾸어달라는 부탁을 하고 의정부에 새로 마련한 삼간두옥에 두 다리를 쭉 뻗고 누웠다.
한 채 있던 집마저 팔아먹고 이렇다는 직업도 없이 훨훨 날 것처럼 자유스러운 마음으로 천석고황이 되어서 자고 먹고 하다 보니 기껏해야 고인의 글이나 뒤적거리는 것이 나의 일과일 수밖에 없었다.
(중략)
노시산방이 지금쯤은 백만 원의 값이 갈는지도 모른다. 천만 원, 억만 원의 값이 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노시산방은 한 덩어리 환영에 불과하다.
노시산방이란 한 덩어리 환영을 인연삼아 까부라져 가는 예술심이 살아나고 거기에서 현대가 가질 수 없는 한 사람의 예술가를 얻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쁜 일이다.
인용된 문장은 이 작품의 처음과 끝 부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드러나 있다. 김용준은 평소 절친했던 벗인 김환기에게 노시산방을 넘겨 주고 의정부로 떠난다. 그리고는 옛날 한시들을 들춰보며 물욕의 허망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에게 있어 노시산방은 일종의 환영이었으며, 오히려 이를 통해 예술에 대한 자기 각성을 하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성북동의 노시산방은 김환기가 거주하면서 수향산방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고, 여기에서 김환기는 여러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이처럼 성북동은 예술가들의 정신적인 안식처이자 예술혼을 일깨워주는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