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항아리」, 경향신문, 1963.4.24
한때는 항아리 속에서 산 적이 있다. 온통 집안 구석구석에 항아리가 안 놓여진 구석이 없었으니 우리집을 일러 항아리집이라 부른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하나 둘 사들인 것이 대청 화실 그리고 마당까지 번져가게 되니 아무리 항아리광(狂)이 된 사람이지만 좁은 집에 골치가 아닐 수 없어 이젠 다시 사들이지 않아야 겠다고 몇 번이고 결심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김환기는 한때 항아리에 푹 빠져 집안 구석구석이 항아리로 가득찼었고 이로 인해 항아리집이라고 불리기도 했었다고 고백한다. 성북동의 중요한 장소중 하나인 김환기·김향안 가옥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그는 좁은 집이 항아리로 가득차게 되자 더 이상 사들이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밑에서 시내에 나가면 자연스레 골동품 가게로 향해 한 두점을 들고 나오고 집안 다락과 광, 시렁 위까지 항아리가 가득 차게 되니 항아리에 대한 사랑이 아편중독에 못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던 항아리들, 부산 피난 살이 3년 만에 내 집 뜰에 들어서니 우거진 난초 속이 온통 항아리의 파편 천지였다. 사금파리 무더기에 서서 나는 이상한 충격을 받았다.
이전에 그는 항아리는 조금만 소홀해도 깨지는 물건이라 겨울이면 혹시 얼어 터질까 걱정하였다. 하지만 피난살이를 마치고 온 집 마당에 널부러진 수많은 항아리 파편들을 보며 충격을 받는다. 이후 김환기는 다행히 멀쩡한 것들을 주워 감상하는 것에 만족하며 더 이상 항아리에 손대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