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다. 황해도 은율출생으로 1934년에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중단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도요시마상업학교[豊島商業學校]를 졸업, 당시 영화인과 접촉하면서 조감독 생활을 했다. 광복 후에는 유치진(柳致眞)을 사사하였고, 극예술협회 연출부에서 음악 효과를 맡아보았다. 6·25전쟁 때는 피난지인 대구에서 「원정」, 「돌각담」 등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1963년에는 동아방송에 입사해 13년간 활동하였다. 직장 은퇴 후 알콜 중독과 건강 악화로 말년을 힘겹게 보냈으며, 성북구 성북동, 종로구 옥인동 등 셋집을 전전하다가 정릉동에서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으로는 시집 『십이음계』(1969), 『시인학교』(1977) 등이 있다.
1921-1984 황해도 은율 출생. 「원정」, 「돌각담」 등을 발표하며 등단한 시인이다. 작곡가를 꿈꿨으나 집안의 반대로 음악공부를 하지 못하고, 시인이 되었다. 일본 유학시절부터 고전음악 감상실에 다니며 음악 듣기를 즐겼다. 1955년 국방부 정훈국 방송과 음악을 담당하였고, 1963년에는 동아방송에 입사해 13년간 활동한다. 전봉건, 김광림과 함께 낸 연대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 1960~80년대에 걸쳐 낸 시집 『십이음계』, 『시인학교』,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가 있다. 초기 시에서 음악의 세계를 추구하고 순수한 평화의 삶을 동경하였고, 후기로 오며 현실의 고통과 죽음, 연민을 담은 시를 썼다. 월급이 들어오면 술을 마시고 후배들에게 용돈을 주고 말아 돈을 모을 새가 없어 집은 늘 이사를 다녀야했다. 직장 은퇴 후 알콜 중독과 건강 악화로 말년을 힘겹게 보냈다. 성북구 성북동, 종로구 옥인동 등 셋집을 전전하다가 정릉동에서 세상을 떠났다.
1921-1984 황해도 은율 출생. 「원정」, 「돌각담」 등을 발표하며 등단한 시인이다. 작곡가를 꿈꿨으나 집안의 반대로 음악공부를 하지 못하고, 시인이 되었다. 일본 유학시절부터 고전음악 감상실에 다니며 음악 듣기를 즐겼다. 1955년 국방부 정훈국 방송과 음악을 담당하였고, 1963년에는 동아방송에 입사해 13년간 활동한다. 전봉건, 김광림과 함께 낸 연대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 1960~80년대에 걸쳐 낸 시집 『십이음계』, 『시인학교』,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가 있다. 초기 시에서 음악의 세계를 추구하고 순수한 평화의 삶을 동경하였고, 후기로 오며 현실의 고통과 죽음, 연민을 담은 시를 썼다. 월급이 들어오면 술을 마시고 후배들에게 용돈을 주고 말아 돈을 모을 새가 없어 집은 늘 이사를 다녀야했다. 직장 은퇴 후 알콜 중독과 건강 악화로 말년을 힘겹게 보냈다. 성북구 성북동, 종로구 옥인동 등 셋집을 전전하다가 정릉동에서 세상을 떠났다.
정의
해방 이후 『시인학교』, 『북치는 소년』,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등을 저술한 시인.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안산(安山)이며 황해도 은율 출신이다. 평양의 광성보통학교(光成普通學校)를 졸업한 뒤 1934년에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중단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도요시마상업학교를 졸업, 당시 영화인과 접촉하면서 조감독 생활을 했다.
광복 후에는 유치진(柳致眞)을 사사하였고, 극예술협회 연출부에서 음악 효과를 맡아보았다. 6·25전쟁 때는 피난지인 대구에서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서울 환도 후에는 군사다이제스트사 기자, 국방부 정훈국 방송실의 상임연출자로 10여 년간 근무하다가 1963년부터 동아방송국 제작부에서 근무했다.
처음으로 시 「돌각담」(1951)을 발표한 뒤 시작에 전념하였고, 1957년에는 전봉건(全鳳健)·김광림(金光林) 등 3인 공동시집 『전쟁(戰爭)과 음악(音樂)과 희망(希望)과』를 발간하였다.
이 시집에 「돌각담」·「개똥이」·「G.마이나」·「음악」 등 초기 시들이 실려 있고, 이 시들은 늘상 그의 세계를 음악과 연결 짓는 시적 환상의 세계였다. “늬 관(棺) 속에 넣었던 악기로다/넣어 주었던 늬 피리로다/잔잔한 온 누리/늬 어린 모습이로다/아비가 애통하는 늬 신비로다 아비로다.”(「음악에서」)와 같이 환상 창조의 작용이 있다.
그러나 이 시인의 삶에 대한 인식태도는, 어린이는 무죄한 순결의 존재인 반면 삶의 때가 묻은 어른은 죄 많은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죄의식은 후기 시에서 더욱 두드러지며, 시인이 겪는 삶의 참담함과 자신의 깊은 죄의식이 숨김없이 드러나고 있다.
1967년에는 문덕수(文德守)·김광림과 함께 3인 공동 시집 『본적지(本籍地)』를 출간하였고, 1969년에는 한국시인협회 후원으로 첫 개인 시집 『십이음계(十二音階)』를 발간하였다.
그 외의 시집으로 『시인학교(詩人學校)』(1977)·『북치는 소년』(1979)·『누군가 나에게 물었다』(1982) 등이 있으며, 사후에 『김종삼전집』(1989)이 간행되었다. 1971년에는 시 「민간인(民間人)」으로 현대시학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