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보문로 190(삼선동4가 349-1)에 있는 행정기관이다. 조선시대 혜화문 밖의 동소문동, 동선동 일대의 평평한 들판을 삼선평이라고 칭한데서 동이름이 유래되었다. 1949년 5월 13일 삼선동 1~5가로 신설 분리되었다. 삼선동 1, 2가는 삼선1동의 담당이었고, 삼선2동은 1동의 경계도로 서쪽, 산54, 467-11, 산48의 동쪽지역을 담당했고, 삼선3동은 돈암동 산 54에서 산 48에 이르는 도로 서쪽, 동소문 성벽 이동, 삼선교 아래 성북천 이남 지역을 담당하였다. 이후 1980년 삼선2동과 3동이 통폐합되었고, 2007년 12월 삼선동으로 통합되었다. 현재 삼선동 1~5가와 동소문동 2가, 3가, 5가를 담당하고 있으며, 담당 지역의 면적은 0.92㎢이고 1만 2천여 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三仙 第1洞〉
三仙 第1洞은 삼선동 1가, 2가 지역과 駱山(125m) 밑의 敦岩洞 일부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는 洞長管轄區域명칭이다. 앞서 성북 제1동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日帝때인 1933년 10월 3일에 서울에 町會가 설치되었지만 이곳은 1936년 4월 1일 이후에 京城府에 편입되었으므로 이 때 旭丘東部洞會가 설치되었으리라고 추측된다. 그 후 1955년 4월 18일 (市條例제66호) 「洞制」실시 때 일제식 명칭인 旭丘 대신 三仙이라 하고 1, 2, 3洞으로 分洞되면서 旭丘東部洞會는 三仙 第1洞事務所로 개칭하는 외에 旭丘西部洞會는 三仙 第3洞事務所로 바꾸었다.
이 洞남쪽의 醫山은 서울 內四山의 하나로서 산모습이 낙타와 같으므로 駱駝山또는 駝駱山이라고도 칭하였다. 이 산은 서울의 左靑龍에 해당되는 산으로 화강암으로 이루어지고 전에는 숲이 우거지고 깨끗한 水石과 약수터가 있어서 산책로로 많이 이용되었는데 현재는 산중턱까지 아파트가 들어서서 옛자취를 찾기 어렵고, 서울성곽만이 옛모습을 지니고 있다.
조선초 명종 때 학자 南師古가 동으로 낙산, 서로 鞍峴을 가리키며 반드시 朋黨이 생길것인데, “駱이란 것은 各馬이니, 동을 주장하는 당은 각기 나눠질 것이요, 鞍은 革安이니, 서를 주장하는 당은 혁명한 후에 안정되리라” 하였는데 과연 東人은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西人은 인조반정 후에 안정되었다.
삼선제1동사무소 관내인 삼선동 1이 북쪽으로는 城北川이 복개되어 있고, 「동소문로」에는 지하철 4호선의 한성대입구역이 있다.
삼선동 1가와 삼선동 2가 남쪽은 山地로서 지대가 높은데 삼선동 2가 392번지에는 漢城大學이 자리잡고 있고, 그 서쪽에는 한성여자중고등학교가 있다.
한성대학은 金義衡이 1972년에 私立 한성여자대학을 세운 뒤 1978년 1월에 남녀공학으로 바꾸면서 현재와 같은 명칭으로 되었다. 한성여자고등학교는 1945년 10월에 金義衡이 세운 뒤 1950년에 학제변경으로 중고등학교가 분리되었다.
광복 당시부터 1990년까지 삼선제1동사무소의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774쪽 표 참조).
〈三仙 第1洞〉
三仙 第1洞은 삼선동 1가, 2가 지역과 駱山(125m) 밑의 敦岩洞 일부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는 洞長管轄區域명칭이다. 앞서 성북 제1동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日帝때인 1933년 10월 3일에 서울에 町會가 설치되었지만 이곳은 1936년 4월 1일 이후에 京城府에 편입되었으므로 이 때 旭丘東部洞會가 설치되었으리라고 추측된다. 그 후 1955년 4월 18일 (市條例제66호) 「洞制」실시 때 일제식 명칭인 旭丘 대신 三仙이라 하고 1, 2, 3洞으로 分洞되면서 旭丘東部洞會는 三仙 第1洞事務所로 개칭하는 외에 旭丘西部洞會는 三仙 第3洞事務所로 바꾸었다.
이 洞남쪽의 醫山은 서울 內四山의 하나로서 산모습이 낙타와 같으므로 駱駝山또는 駝駱山이라고도 칭하였다. 이 산은 서울의 左靑龍에 해당되는 산으로 화강암으로 이루어지고 전에는 숲이 우거지고 깨끗한 水石과 약수터가 있어서 산책로로 많이 이용되었는데 현재는 산중턱까지 아파트가 들어서서 옛자취를 찾기 어렵고, 서울성곽만이 옛모습을 지니고 있다.
조선초 명종 때 학자 南師古가 동으로 낙산, 서로 鞍峴을 가리키며 반드시 朋黨이 생길것인데, “駱이란 것은 各馬이니, 동을 주장하는 당은 각기 나눠질 것이요, 鞍은 革安이니, 서를 주장하는 당은 혁명한 후에 안정되리라” 하였는데 과연 東人은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西人은 인조반정 후에 안정되었다.
삼선제1동사무소 관내인 삼선동 1이 북쪽으로는 城北川이 복개되어 있고, 「동소문로」에는 지하철 4호선의 한성대입구역이 있다.
삼선동 1가와 삼선동 2가 남쪽은 山地로서 지대가 높은데 삼선동 2가 392번지에는 漢城大學이 자리잡고 있고, 그 서쪽에는 한성여자중고등학교가 있다.
한성대학은 金義衡이 1972년에 私立 한성여자대학을 세운 뒤 1978년 1월에 남녀공학으로 바꾸면서 현재와 같은 명칭으로 되었다. 한성여자고등학교는 1945년 10월에 金義衡이 세운 뒤 1950년에 학제변경으로 중고등학교가 분리되었다.
광복 당시부터 1990년까지 삼선제1동사무소의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774쪽 표 참조).
〈三仙 第2洞〉
三仙第2洞은 三仙洞3, 4, 5街와 東小門洞 5街 및 郭岩洞일부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는 洞長管韓區域 명칭이다. 삼선 제1동과 같이 삼선 제2동은 1936년 4월 1일 京城府에 편입된후 旭丘西部洞會가 설치된 것으로 추측된다. 광복 후까지도 이와같이 불리우다가 1955년 4월 18일(市條例 제66호) 「洞制」실시 때 三仙 第1, 2, 3洞으로
分洞되면서 이 곳은 三仙 第2, 3洞지역이 되었다. 이 당시 삼선제2동은 돈암동 중 제1동 경계도로 以西, 山 54,467의 11, 山 48의 沿道 以東의 지역을 관할했고,삼선제3동은 돈암동 중 山 54로부터 山 48에 이르는 도로 以西, 동소문 성벽 以東, 三仙橋 下성북천 以南의 지역을 관할하게 되었다, 그 후 1980년 7월 1일(市條例 제1413호) 常住人口1만 미만의 洞은 통폐합하게 됨에 따라 삼선제3동을 삼선제2동사무소 관할구역에 통합하였다. 이 당시 조정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775쪽 표 참조).
이 洞북쪽으로는 성북천이 복개되어 있고 「보문로」(신설동∼성북구청∼돈암시장)가 남북으로 지나고 있으며 동서로는 「삼선교길」(삼선교∼삼선2동∼삼선2교)이 통해 있다.
그리고 이 동 관내 「보문로」변에는 城北區廳(삼선동 5가 411번지)이 있고 그 옆에는 성북경찰서가 위치하고 있다. 성북구청은 1949년 8월 13일(大統領令 제159호) 東大門區의 일부 지역과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의 일부를 합하여 서울특별시의 9번째 區로 출발한 후 1950년 3월 30일 「동소문로」변의 동소문동 3가 29번지의 3층 석조건물에서 행정업무를 보다가 1957년에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전일 삼선제3동 지역에는 鳳凰亭이 세워져 있었는데 전에 三仙坪 일대에 새의 폐해가 많았으므로 이를 막기 위해 惠化門 門樓에다 鳳凰을 그려놓고 이곳에 정자를 세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삼선동 3가 남쪽의 玉女峰은 옛날 玉女가 세 신선과 더불어 놀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 지하철 한성대입구역이 있는 城北川에 놓였던 三仙橋는 복개되어 그 모습이 사라졌으나 이 다라 이름은 전에 동소문동 2가와 삼선동 1가 지역을 대표하는 명칭이었다. 30여년 전까지도 이 다리 밑에서 세탁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삼선동 3가에는 京東高等學校(50번지), 三仙國民學校(30번지의 4) 가 위치하고 있다.
〈三仙 第2洞〉
三仙第2洞은 三仙洞3, 4, 5街와 東小門洞 5街 및 郭岩洞일부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는 洞長管韓區域 명칭이다. 삼선 제1동과 같이 삼선 제2동은 1936년 4월 1일 京城府에 편입된후 旭丘西部洞會가 설치된 것으로 추측된다. 광복 후까지도 이와같이 불리우다가 1955년 4월 18일(市條例 제66호) 「洞制」실시 때 三仙 第1, 2, 3洞으로
分洞되면서 이 곳은 三仙 第2, 3洞지역이 되었다. 이 당시 삼선제2동은 돈암동 중 제1동 경계도로 以西, 山 54,467의 11, 山 48의 沿道 以東의 지역을 관할했고,삼선제3동은 돈암동 중 山 54로부터 山 48에 이르는 도로 以西, 동소문 성벽 以東, 三仙橋 下성북천 以南의 지역을 관할하게 되었다, 그 후 1980년 7월 1일(市條例 제1413호) 常住人口1만 미만의 洞은 통폐합하게 됨에 따라 삼선제3동을 삼선제2동사무소 관할구역에 통합하였다. 이 당시 조정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775쪽 표 참조).
이 洞북쪽으로는 성북천이 복개되어 있고 「보문로」(신설동∼성북구청∼돈암시장)가 남북으로 지나고 있으며 동서로는 「삼선교길」(삼선교∼삼선2동∼삼선2교)이 통해 있다.
그리고 이 동 관내 「보문로」변에는 城北區廳(삼선동 5가 411번지)이 있고 그 옆에는 성북경찰서가 위치하고 있다. 성북구청은 1949년 8월 13일(大統領令 제159호) 東大門區의 일부 지역과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의 일부를 합하여 서울특별시의 9번째 區로 출발한 후 1950년 3월 30일 「동소문로」변의 동소문동 3가 29번지의 3층 석조건물에서 행정업무를 보다가 1957년에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전일 삼선제3동 지역에는 鳳凰亭이 세워져 있었는데 전에 三仙坪 일대에 새의 폐해가 많았으므로 이를 막기 위해 惠化門 門樓에다 鳳凰을 그려놓고 이곳에 정자를 세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삼선동 3가 남쪽의 玉女峰은 옛날 玉女가 세 신선과 더불어 놀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 지하철 한성대입구역이 있는 城北川에 놓였던 三仙橋는 복개되어 그 모습이 사라졌으나 이 다라 이름은 전에 동소문동 2가와 삼선동 1가 지역을 대표하는 명칭이었다. 30여년 전까지도 이 다리 밑에서 세탁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삼선동 3가에는 京東高等學校(50번지), 三仙國民學校(30번지의 4) 가 위치하고 있다.